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65)
#365화 삼자 구도 (2)
김평일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불가리아.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후 김평일은 곧바로 권력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물론, 김정일이 김평일을 죽이지는 못했다.
아무리 김정일이 전권을 잡은 상황이라고는 해도 1989년, 현시점에는 아직 김일성이 생존해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김정일이 김평일을 숙청한다면 자연스럽게 김일성이 대노할 것이고, 기본적으로 명분을 가지고 있는 김일성이 김정일의 후계를 부정한다면, 순식간에 김정일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현재 김정일이 김일성을 누르고 있는 것은 분명한 상황이지만, ‘김일성을 비롯한 원로들’이 명분을 가지는 순간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김정일의 권력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김평일은 김일성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생존할 수 있었고, 김일성이 죽은 후에는 이미 전권이 김정일에게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신히 생존할 수 있었다.
특히, 유럽을 전전하면서 조용히 일만 한 것도 분명 영향을 주었겠지.
하지만, 살아남은 것은 어디까지나 김평일과 그 가족들뿐이었다.
김정일은 김평일과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자들은 그야말로 완벽하게 숙청했으니까.
그렇기에 김평일은 80년대에 들어서 친분 있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만들지 못했다.
‘김평일과 1미터 거리 안에 들어가면 죽는다’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까.
불가리아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김정일이 보낸 첩보 요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김평일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는 상황.
이뿐만이 아니다.
김평일의 집무실, 저택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녹음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따라서 김평일이 조금이라도 허튼소리를 하거나, 김평일에게 접근한 자가 이상한 말을 할 경우, 그 순간 숙청의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윤기는 왜 김평일의 주변에 있는 것일까?
김평일과 만나려고?
아니다.
“정말 좋은 날씨 아닌가요?”
나름대로 유창한 한국어.
그런데 이 한국어가 몸이 탄탄한 40대 대머리 흑인에게서 나왔다.
“무, 무슨 일이시죠?”
선글라스를 끼고 신문을 보고 있던 카페 손님이 흑인 사내를 향해 당황하며 반문했다.
“아, 별거 아니에요. 단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저는 당신에게 해를 끼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 정도?”
흑인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빌이었다.
소련에서 윤기를 경호했었고, 미국으로 2차 유전을 개봉하러 갔을 때 따라갔던 빌.
그 빌이 자신의 스포츠카를 도로변에 세운 상태로 선글라스의 사내에게 말을 건 것이었다.
꾸욱
선글라스의 손님이 순간 몸에 힘을 넣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허리띠에 걸어 놓은 총을 뽑기 위한 준비.
하지만, 빌의 말이 더 빨랐다.
“진짜로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다니까요. 그냥 저한테 2분의 시간만 주시면 됩니다.”
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님의 가슴팍에 빨간색 점 여러 개가 나타나면서 서서히 움직였다.
그러자 손님은 익숙한 듯, 점의 각도를 따라 건물들을 바라보았다.
“으으윽…….”
주변에 있는 건물들에서 저격수들이 자신을 향해 저격 총을 조준하고 있는 상황.
이 상황에서 허튼짓을 했다간 100퍼센트 죽겠지.
그렇기에, 사내는 일단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몸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
“좋아요. 이제 대화를 할 수 있겠군요. 저는 빌이라고 합니다.”
“리, 리철진이라고 합네다.”
“좋아요, 리철진 씨. 김평일을 감시하는 자들을 감시하는 일은 재밌나요?”
순간 리철진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선글라스로 인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빌은 리철진에게서 느껴지는 기색의 변화를 통해 리철진이 당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왜요? 제가 김평일을 감시하는 게 재밌냐고 묻지 않은 게 대단한가요?”
빌이 어깨를 으쓱이자 리철진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30대 중반의 리철진.
불가리아에 와서 이렇게 놀란 적은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세상에, 2차 첩자의 존재를 알고 있다니…….’
김정일은 김평일을 편집증적으로 싫어하는 자.
그렇기에, 김평일이 혹시라도 첩자들과 친분을 쌓아서 자신에게 잘못된 정보가 들어올까 봐 두려워했다.
따라서 첩자들을 감시하는 이차 첩자를 두었다.
하지만, 그 2차 첩자들의 존재는 윤기에게 파훼되었다.
[내가 김정일이라면 김평일을 단순하게 감시하지는 않을 거야.]혹시나 해서 3차 첩자의 존재까지 조사해 봤지만, 그 정도의 인력 동원은 무리였는지 2차 첩자가 끝이었다.
김평일의 주변을 감시하는 1차 첩자가 7명.
1차 첩자를 감시하는 2차 첩자가 각 7명.
따라서 56명이나 되는 인력을 김평일 하나를 감시하기 위해 쓰고 있는 셈이다.
“리철진 씨, 그게 본명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 생활에 만족하시나요?”
놀랍게도 리철진은 본명이 맞았다.
리철진은 일부러 본명을 말해서 상대에게 혼동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빌은 애초에 리철진 그 자체를 조사할 생각은 딱히 없었다.
자신이 부여받은 임무는 그것이 아니니까.
“대, 대답하지 않갔소.”
“뭐, 당연히 그렇겠죠.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숙청을 당할 테니까요. 그리고 가족들이 조국에 있고 말이죠.”
리철진이 다시 침을 삼켰다.
실제로 리철진은 현재 8살 된 딸이 하나 있었다.
딸이 6살이 된 순간 불가리아로 발령이 났고, 보위부의 간부는 리철진의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리철진에게 보냈다.
[네가 잘못된 행동을 하면 가족들이 어떻게 될까?]이러한 의미를 담은 사진.
그렇기에 리철진은 자신의 행동을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는 처지였다.
6살 된 딸.
딸이 가장 귀엽고 사랑스러울 시점에 홀로 불가리아로 발령받은 상황.
거기에 아내까지.
빌이 무슨 말을 하든 리철진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제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은 별거 없습니다. 박동환, 손현규, 김성제……”
갑자기 빌의 입에서 이름이 줄줄 나오자 리철진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선글라스의 어두운 시야로는 너무나 답답했던 것이다.
“그, 그것을 어떻게?!”
절대 말해서는 안 될 말.
하지만, 상대가 너무나 명확하게 다른 48인의 이름을 읊자,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방법은 알려 드릴 수 없지요.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제외한 48명에 대한 설득을 끝낸 상황입니다.”
“말도 안 돼! 불가능해! 말도 안 된다고!”
당연한 일이다.
리철진을 포함한 56명은 모두, 6살에서 10살 정도 된 자식들과 아내를 북한에 두고 온 상황이다.
북한에서 간첩들을 컨트롤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그런데 그들을 모두 설득했다니.
절대 가능할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시한 조건은 별것 없거든요. 그냥 사흘. 딱 사흘만 조용히 있어 주시면 됩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사흘 동안만 김평일 대사가 누구를 만나든 평소와 똑같다고 보고해 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는 당신들이 어떠한 보고를 해도 우리는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하, 하지만, 김평일 대사가 불가리아에서 탈출한다면…….”
빌은 쯧쯧 소리를 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김평일 대사를 탈출시킬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와의 만남을 원할 뿐이죠. 만약 김평일 대사가 어디론가 탈출할 낌새가 보인다면, 바로 행동에 돌입하십시오.”
“그리고 사흘 후에는 우리가 김평일 대사가 누구와 만났는지 보고해도 신경 쓰지 않겠다…?”
빌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빙고! 바로 그거예요. 하지만, 당신들은 사흘이 지나고 나면 보고할 생각이 사라질걸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건 사흘이 지나면 알게 될 겁니다. 자, 그러면 당신의 대답을 들려 주시죠. 48명과 같은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길을 걸으시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있을까?
하지만, 리철진은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이런, 대답하기 힘드시다면 도움을 드려야겠군요.”
리철진은 순간 딸의 사진을 떠올렸다.
보위부 간부와 사진을 찍고 있는, 천진난만한 미소의 딸.
만약, 눈앞의 있는 자가 비슷한 것을 보여 준다면?
그러나 빌이 리철진에게 보여 준 것은 두툼한 노란 봉투였다.
“1만 달러입니다. 사흘 동안 입을 다무는 대가로는 괜찮겠죠? 김평일 대사가 사흘 전에 사람을 만났는지, 사흘 후에 사람을 만났는지. 그 정도의 정보 조작은 당신들에게 있어서 쉬운 일 아닙니까? 애초에 조장도 이미 콜 사인을 보냈는걸요?”
1만 달러.
리철진에게 있어서 절대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특히, 1989년의 북한은 서서히 ‘장마당’이라고 하는, 공산주의에 있어서는 안 될 사설 시장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북한 화폐는 거의 가치가 없었다.
반면, 달러는 대단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만약, 이 1만 달러를 아내에게 전달해 줄 수만 있다면, 북한 당국의 배급을 제외하고서도 나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겠지.
“으으윽…….”
리철진의 덜덜 떨리는 손이 노랑 봉투를 향해 갈팡질팡했다.
“후우, 마지막 도움입니다.”
빌이 녹음기를 들어 재생 버튼을 눌렀다.
[알겠습니다. 6일 후까지는 모든 것을 함구하겠습니다.]명백한 감시 조장의 말.
“헉!”
잠시 놀랐던 리철진이 무언가 이상함을 깨닫고 물었다.
“왜, 6일입니까?”
“55명을 하루 만에 전부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빌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당신들의 위치를 모두 파악하고 나서 설득을 시작했는데, 당신 순번까지 설득하는 데 3일이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사흘이 남은 거지요.”
“아…….”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으면 당장 죽는다.
동의한다고 한 다음 이 자리를 모면한다고 해도, 나머지 48명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녹음기의 목소리가 조작되었을 가능성은 현재까지의 정황으로 보았을 때 제로.
그렇기에 리철진은 조용히 봉투를 자신의 상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사흘 후에는 바로 본국에 연락을 넣을 겁니다.”
마지막 자존심을 위해 리철진은 서슬 퍼렇게 말했지만, 빌은 전혀 분위기를 바꾸지 않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신은 절대 신고하지 않을 겁니다.”
빌은 ‘못 할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안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 * *
한때 김정일과 후계 구도를 두고 다퉜던 김평일.
그런데 김평일은 김정일이 사실상의 전권을 잡자마자, 정말 쥐 죽은 듯이 살았다.
대적했던 자라면 한 번쯤은 반발할 법도 한데, 김평일은 그저 김정일이 시키는 대로 동구권에서 외교 대사 역할을 할 뿐, 단 한 번도 반기를 들지 않았다.
왜?
이유는 리철진과 똑같았다.
가족들이 인질로 잡혀 있으니까.
대적할 때는 방어할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김일성조차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된 이상, 김평일을 보호해 줄 존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김평일은 외국에서 정말 고독한 삶을 살아야만 했다.
방금까지는 말이다.
“누, 누구요?”
불가리아의 외교 대사인 김평일.
김평일은 자신의 숙소에 돌아왔을 때, 가면을 쓴 누군가가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걱정 마세요.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온 사람이니까요.”
사내는 가면을 벗고, 상대를 향해 씨익 웃었다.
“헉!”
가면을 쓴 사내는 다름 아닌 윤기.
윤기는 다른 사람도 아닌 김평일에게 자신의 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