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7)
#37화 비성실세 (2)
길게 말하지 않는 꼿꼿한 모습.
여기에 JSD는 큰 신뢰를 얻었다.
‘이 녀석이 10년만 나이가 많았어도 군인을 하라고 꼬셨을 텐데 말이야. 아까워, 정말 아까워.’
JSD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윤기는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 * *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겠냐?>
최덕배의 말에 윤기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읽던 책을 내려두고 책상 쪽을 바라보았다.
현재 윤기의 위치는 침대.
그리고 들고 있던 책은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였다.
“뭐가요?”
아니, 조만간 네 학생이 시험을 보잖냐. 그거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겠어?>
“도와주실 방법이 있나요?”
최덕배의 코가 쑥 하고 위로 올라가는 듯 보였다.
당연히 있지. 예를 들어서 교무실에 들어가서 선생들이 시험 문제를 어떤 것을 내는지 말해 준다거나…….>
“필요 없어요.”
윤기가 다시 교과서를 집으려 하자 최덕배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야, 야, 야. 네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인 계획인지 아니까 내가 선심 쓰는 거라구. 내가 시험문제만 알아내서 오면 100점은 그냥 따 놓은 당상 아니냐?>
윤기가 누운 상태로 책 140페이지에 시선을 고정하며 귀찮다는 듯 입을 열었다.
“필요 없다니까요.”
예상치 못한 윤기의 반응에 최덕배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야, 내 기억력 못 믿어서 그래? 내가 늙었어도 기억력 하나는 끝내준다고. 그냥 아주 복사기처럼 말해 줄 수 있어. 내가 괜히 아원 급제 했겠어?>
“필요 없다니까요. 원희 보면 모르세요?”
야, 원희랑 얘랑 똑같이 효과 있다는 보장 있어?>
“제가 가르친 원희가 진수를 가르쳤죠. 지금 진수의 성적은 어떻죠?”
윤기는 원희와 꽤 오랜 기간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윤기의 부탁으로 원희는 진수를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까지는 평범한 곳에 갈 거지만, 고등학교는 경기고등학교에 갈 생각이야. 그러니까 둘 다 공부에 전념해 줬으면 좋겠어. 너희들과는 평생을 함께하고 싶거든.]학교 최고의 인기남인 윤기가 자신들을 특별히 생각한다는 사실에 원희와 진수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르는 수준이었다.
원희는 윤기와 오래 공부한 덕분에 이대로 공부한다면 무난히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할 실력을 갖추게 될 것이고, 진수는 다소 아슬아슬하지만 그래도 막차를 탈 수준은 된다고 윤기는 판단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노력이 계속 이어져야 하겠지만.
거참,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일세.>
최덕배가 이토록 애달파하는 이유는 먹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이다.
속으로 ‘이런 눈치 없는 우라질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윤기는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그저 눈치가 없는 척을 할 뿐.
‘그저 커닝하는 데 쓰자고 기회를 낭비하는 것은 아깝지.’
최덕배는 윤기를 도와주는 편이긴 하지만, 종종 변덕도 부리고 말을 안 들을 때가 있다.
그렇기에 적절한 제어가 필요한데, 윤기는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지금은 최덕배의 말을 들어줄 타이밍이 아니었다.
“저는 재준이를 믿어요.”
의외로 진심인 윤기의 말.
윤기의 말처럼 재준은 밤늦게까지 스스로 공부하고 있었다.
* * *
‘윤기 형이랑 떨어지고 싶지 않아.’
재준은 책상에서 교과서를 끊임없이 읽고, 문제집을 풀어 나갔다.
이미 코 한쪽에는 휴지가 틀어박혀 있는 것이 어린 나이임에도 코피를 경험한 얼마 안 되는 아이가 바로 재준이었다.
‘반드시, 반드시 아빠를 만족시켜야 해. 그래야만 윤기 형이랑 계속 만날 수 있어.’
재준은 최근 3개월,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감을 느꼈다.
그동안은 아빠가 집으로 퇴근하면 너무 무서웠고, 툭하면 자신을 혼내는 아빠를 볼 때마다 오줌을 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윤기 형이 나타나고서는 완전히 달라졌다.
캐치볼을 할 때 자신을 향해 웃어 주는 아빠, 밥 먹을 때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는 아빠, 학교생활은 할 만하냐고 수더분하게 물어봐 주는 아빠.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아빠의 모습은 너무나도 따뜻했고, 잃기 싫었다.
‘형이랑 떨어지게 되면 아빠는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거야.’
약간의 공포가 섞인 이유였지만, 이는 어떻게든 재준에게 있어서 자극제가 되었다.
사실 JSD 본인이 바뀌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지만, 이것은 일종의 차선책.
하지만, 그 차선책의 효과는 매우 좋았다.
최소한 윤기와의 접촉이 이루어지는 한 재준은 스스로 노력할 테니까.
더불어 윤기에게 있어서 최적의 결과이기도 했다.
“내가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던 녀석이 지금은 아주 늠름하게 변한 것 같아.”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JSD의 말에 임경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게 제가 항상 말했잖아요. 애들은 그렇게 강하게 키우면 안 된다고요.”
그러자 JSD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긴 하지만, 당신의 교육법도 선생의 교육법이랑은 달랐잖아? 마냥 부드럽게 키워서 되는 것도 아니고, 마냥 강하게 키워서 되는 것도 아닌 거지.”
“그건 그렇지요.”
“재준이 녀석이 저렇게 노력을 하니 재석이 녀석도 본을 받아서 그것도 참 좋단 말이야.”
“맞아요. 요새 애들이 집에서 싸우지도 않고, 교육이 한결 편해졌어요.”
웃고 있던 임경자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여보.”
“응?”
“그……, 만약에 이번 학기 재준이 성적이 별로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JSD는 대답을 하지 않고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제가 재준이 교과서를 보니까 닳다 못해 떨어질 지경이더라고요. 애가 저렇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저것만으로도 윤기 선생님을 계속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더군다나 당신 말마따나 콜슨 준장이라는 분과 연줄을 이으려면…….”
“약속은 약속이야.”
단호하게 대답하는 남편의 모습에 임경자는 그만 입을 다물고 그저 아들이 좋은 성적을 받아오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
* * *
방학식.
모든 아이들이 기다리는 꿈 같은 날이다.
성적표.
방학식과 반드시 함께 찾아오는 방학식의 악마.
아이들은 선생님이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앞으로 나가며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아, 나 엄마한테 죽었다!”
1분단 중간 자리에 앉은 아이가 머리를 감싸 쥐며 책상에 엎드렸고, 이어서 3분단 뒷자리의 아이도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대부분이 집에 가서 혼날 일을 걱정하고 있을 때, 재준 역시 손에 땀을 쥐며 자신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장재준.”
선생님에게서 이름이 호명된 순간 재준은 드르륵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경직된 동작으로 교탁에 향했다.
“뭘, 그렇게 긴장하냐? 자신감을 가져도 돼.”
선생님이 웃으며 성적표를 건네주었는데도 재준은 바로 확인하지 못하고 뒤집은 채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성적표를 뒤집은 순간…….
“이야!!!”
성적표에 적혀 있는 학급 석차.
그것은 바로 3이라는 숫자였다.
점수 성적과 등급 성적이 공존하는 재준의 학교에서는 학급 석차를 알려 주었는데, 무려 반에서 3등을 한 것이다.
“재준아, 너만 그렇게 좋아하면 되겠냐?”
담임 선생님의 느긋한 핀잔에 재준이 상황을 깨닫고는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해요.”
“알면 됐다. 오명재.”
다음 이름을 부르는 선생님의 소리를 들으며 재준은 자신의 성적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3등, 3등, 3등, 3등, 3등…….’
순간 재준의 표정에 불안감이 어리기 시작했다.
‘3등으로 될까?’
아빠가 3등으로 만족하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과 함께 자책에 빠지기 시작하자 재준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갔을 때, 군복을 입은 아빠가 거실에 있는 것을 본 재준은 자신도 모르게 기절하고 말았다.
* * *
“재준아!”
임경자가 깜짝 놀라 아들을 향해 뛰어가 안았고, 이어서 JSD 역시 다소 놀라 운전병을 불러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그냥 잠시 기절한 겁니다. 혹시 최근에 체력적으로 부담이 큰일을 했나요?”
의사의 말에 임경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요새 애가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말을 들은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푸근하게 웃었다.
“하하하, 아주 좋은 기절이네요. 어린아이가 벌써 노력할 줄 알고, 정말 장한 아들을 두셨습니다. 그렇지만, 체력이 부족한 게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니 적당히 쉬게도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리잖아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재준이가 언제쯤 깨어날지…….”
“한 2시간 정도면 깨어날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의사가 나가자 임경자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고, 이어서 남편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일단 부대로 돌아가 보세요. 오늘은 잠깐 집에 들른 거잖아요.”
“그래야 하긴 하겠지. 혹시 재준이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네, 그럴게요.”
자리를 뜨려던 JSD의 눈길이 순간 재준의 병상 옆에 놓인 가방에 향했다.
“여보, 왜요?”
“아니, 온 김에 확인은 하는 게 좋지 않나 싶어서.”
임경자는 ‘애가 아픈데’라고 말을 할까 하다가, 설마 성적표 보고 애에게 바로 화를 내진 않을 거라는 생각에 묵묵히 남편의 행동을 바라보았다.
“아, 여기 있구먼.”
가방에서 나온 성적표.
결과를 본 JSD는 가타부타 말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왜요, 결과가 별로예요?”
임경자 역시 일어나 성적표를 확인하고는 남편을 향해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3등이면 잘한 거 아니에요? 정말 잘한 거 같은데…….”
마음을 졸이며 묻는 아내의 말에 JSD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입을 열었다.
“뭐……, 과외를 끊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 난 이만 부대로 가리다.”
JSD는 아내의 대답도 듣지 않고 병실을 나섰고, 동시에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3등이라…….’
아들이 3등을 받았다는 기쁨, 그리고 윤기와의 접점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다는 기쁨이 담긴 미소였다.
‘콜슨 준장과 연줄을 가지려면 시간이 필요했는데 말이야.’
만약 재준의 성적이 좋지 않았다면 JSD는 정말로 과외를 끊을 생각이었다.
자식 교육에 그만큼 열성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콜슨 준장과의 연줄을 가질 기회를 포기해야만 했는데, 다행히도 아들인 재준이 좋은 성적을 가져와 주었다.
‘최소한 과외 선생의 막내 작은아버지가 내 손길이 닿는 부대에 입대해야 해. 그래야, 추후 연줄을 만들 자리를 마련할 때 위화감이 들지 않을 거야.’
부대에 돌아간 JSD는 최철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불러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대령님.”
3개월 만의 부부 만남.
이번에는 JSD의 집이 아니라, JSD가 예약한 고급 식당에서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연락을 자주 못 드려 죄송합니다. 공사가 다망해서 말이죠.”
JSD의 말에 최철규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인맥의 세계란 이렇다는 것을 최철규 역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만에 만날 때 긁어 부스럼을 만들면 안 된다는 것 역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과외 효과는 잘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제 아들내미 말로는 재준이가 요새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말을 들은 JSD가 빙그레 웃으며 최철규를 향해 말했다.
“혹시 생각해 둔 부대가 있으십니까?”
‘됐다!’
최철규는 그림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파악했지만, 겉으로는 그저 축하의 의미를 담아 화색을 띄웠다.
“축하드립니다. 한동안 걱정이 없으시겠군요.”
그러자 JSD 역시 재차 미소를 지었다.
“걱정이라니요. 애초에 과외 선생님이 워낙 능력이 뛰어나서 그런 것이지요.”
최철규의 앞에서 ‘과외 선생님’이라고 존중을 하는 JSD의 목소리에는 윤기에 대한 신뢰, 그리고 좋은 선생님을 소개해 준 최철규에 대한 감사가 들어 있었다.
“이거는 변변치 않은 것입니다만, 이따가 인기에게 가져다주십시오. 인기 덕분에 ‘우리 재준이’가 좋은 성적을 받은 셈이니까요.”
사과박스 정도의 너비지만, 그보다는 조금 납작한 상자.
더불어서 약간 묵직한 기분도 드는 것이 ‘변변치 않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감사합니다. 인기가 아주 좋아할 것 같네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만……. 아무튼, 막냇동생을 보내고 싶으신 부대가 있으십니까? 가능하면 제가 힘써드리겠습니다.”
최철규는 일부러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글쎄요……. 저는 행정병 출신이라서 솔직히 어떤 부대로 보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행정병이 편해 보였지만, 중대에서 행정 일을 했다 보니 생각보다 힘들더라고요. 대대 행정병은 좀 편해 보이긴 하던데…….”
“대대 행정병도 나쁘지는 않죠.”
“그럼, 대대 행정병이 괜찮을까요?”
JSD가 고개를 저었다.
“어디까지나 나쁘지 않다는 정도입니다. 행정병이라면 연대, 그리고 사단으로 올라갈수록 더 편해지니까요.”
“그렇다면 사단 행정병을 추천하시는 건가요?”
역시나 JSD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기준으로 편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큰 힘을 써 주셨는데, 고작해야 그 정도로 만족하시면 안 되지요. 누구 동생인데요.”
“어떤 보직을 추천하시고 싶으신지 기대가 되네요.”
기대감이 가득한 최철규의 표정에 JSD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헛, 동생 사랑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이런 부탁을 받을 때는 대부분 요청받는 보직이 정해져 있습니다. 당번병이지요.”
“당번병이요?”
“네. 일종의 비서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대장 CP병은 아시고 계시겠죠?”
“아, CP병이 당번병이었군요. 그러면 아시는 대대장의 CP병으로……?”
JSD는 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JSD가 고개를 저을 때마다 최철규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고심하면서 보직을 정해 준다는 것은 그만큼 JSD가 이번 일에 만족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혹시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야 대령님이 제안을 주신다면 당연히 들어야죠. 분명히 신경을 써 주셨을 테니까요.”
협조적인 최철규의 태도에 JSD는 자신이 생각했던 계획을 제안인 양 말하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은 일반 자택에서 살고 있지만, 공관을 신청하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막냇동생을 제 공관병으로 들이는 게 어떨까요?”
“공관병이라면……, 죄송합니다. 제가 보직을 잘 몰라서 말이죠.”
“일종의 가정부 역할을 하는 병사입니다.”
JSD는 최철규의 표정을 유심히 보다가 살짝 실망하는 듯한 표정이 포착되자 황급히 양손을 휘저었다.
“아니, 아니. 막냇동생을 파출부로 부리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저 어디까지나 소속을 그렇게 하겠다는 거지요.”
“소속 말인가요?”
“예. 원래 공관병은 공관 옆에 따로 숙소가 있긴 합니다만, 아예 그냥 방 하나를 떼어서 내어주겠습니다. 막냇동생은 그냥 군 생활하는 동안 저희 집에서 하숙한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 됩니다. 학원을 다니고 싶으면 운전병이 태워 줄 거고, 집에서 공부를 하고 싶으면 공부를 하면 되는 거죠.”
“오…….”
굉장히 괜찮아하는 최철규의 반응에 JSD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종의 인질.
최철규의 막냇동생을 3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의 바로 옆에 둘 수 있다면, 그 시간 안에 콜슨 준장과의 연줄을 만들 가능성이 굉장히 커진다.
‘과외 선생이 이 사람을 끔찍하게 아낀다고 하고, 이 사람은 막냇동생을 굉장히 아끼고 있으니, 잘하면 과외 선생이 막내 작은아버지를 면회할지도 몰라.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함께 와서 아예 외박을 부탁해올지도 모르지.’
만약 윤기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공관병이 된 막내 작은아버지에게 호의를 산 후, 자리를 부탁해 볼 요량이었다.
3년이란 시간은 그렇게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니까.
“어떠십니까. 군 자체를 면제시켜 줄 수 있는 권한이 저에게는 없지만,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지 않을까요?”
최철규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JSD는 순간 미간을 꿈틀거리며 최철규를 바라보았다.
비록 다른 생각이 조금 섞이긴 했지만, 자기 입장에서 정말 최고의 예우를 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상대는 다짜고짜 자리에서 일어나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불편함은 3초도 되지 않아 말끔히 사라졌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리를 90도로 정중히 숙이는 최철규의 모습.
“앗, 어이구,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까지야…….”
“아닙니다. 대령님이 이렇게 제 막냇동생을 신경 써 주실 줄은 저도 정말 몰랐습니다. 아마, 제 막냇동생도, 그리고 윤기도 정말 좋아할 겁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이 끝나고 나서야 허리를 핀 최철규는 감사한 마음을 얼굴에 가득 두른 채 JSD를 바라보았고, 덕분에 JSD는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얼굴을 붉혔다.
“너무 과하게 감사를 해 주셔서……. 아무튼, 정말 제대로 신경 써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네. 윤기한테도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각별히 말해 두겠습니다.”
마지막 남은 걱정마저 깨끗이 일소해 주는 최철규의 말에 JSD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최철규와 연줄을 만들어 두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과외 선생을 붙잡으려면 이 사람과 꾸준한 교류를 해야겠어.’
하지만 JSD는 꿈에도 몰랐다.
눈앞에 있는 최철규가 본체가 아니라, 11살밖에 되지 않은 윤기, 윤기가 미성년 실세인 ‘비성실세’라는 사실을.
* * *
JSD 자택의 거실.
과외가 시작되기 전, JSD와 윤기, 그리고 임경자는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년 초쯤에 공관으로 이동을 할까 하는데, 혹시 과외하는 데에 부담이 생기거나 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묻는 JSD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다만, 제가 듣기로 부대를 왔다 갔다 할 때, 증명 같은 것을 해야 한다고 하던데 제가 그것을 할 수 있을까요? 그쪽에 대해 잘 몰라서요.”
“그런 걱정은 일절 할 것 없지. 전부 내가 해결해 줄 테니까.”
윤기는 처음엔 재준을 자신의 집으로 통학시킬까 고민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고민 끝에 자신이 군부대를 출입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 여겼다.
‘나중에 JSD가 신군부의 황태자가 된다면, 다른 장군들과 접촉할 기회가 생길 테니까.’
이러한 윤기의 계산을 알 노릇이 전혀 없었기에 JSD는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윤기에게 명함 하나를 내밀었다.
“할아버님이 워낙 뛰어나신 분이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밖에서 생활을 하다가 시비가 붙는 일이 생기거나, 누가 괴롭히거나 하면 이 명함을 사용하면 될 거란다.”
굉장히 우호적인 어투는 이 명함이 어떤 용도인지 명확히 알려 주고 있었다.
“확실히 명함을 아무한테나 주시진 않을 것 같으니, 굉장한 힘이 될 것 같아요.”
JSD는 어린아이의 추리력치고는 굉장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빙긋 웃었다.
“뒤집어 봐라.”
윤기가 명함을 뒤집자, 그곳에는 JSD의 군용 직인이 찍혀 있었다.
“이건…….”
“그 도장을 보고서도 너에 대한 태도가 변하지 않는 녀석이 있다면, 하나는 나보다 까마득히 높은 선배, 그것도 아니라면 세상 물정 모르는 멍청이겠지?”
두 유형을 만나면 알아서 처신해야 할 거라는 속뜻에 윤기가 고개를 숙이며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주한 미군 통관을 통해 미국에서 직접 가져온 고가의 명품 지갑.
명품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닌 JSD가 봐도 절대 만만치 않은 금액의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이 아이와 연줄을 이으려면 돈이 아니라 내 힘이야. 아무리 할아버지가 미군 준장이라고 해도 한국군에 직접적인 연줄이 있는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겠지.’
콜슨 준장의 힘과 삼우 그룹의 재력을 간접적으로 확인한 JSD는 속내를 숨기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나갔다.
* * *
1979년.
최기현의 5남이자 윤기의 막내 작은아버지인 최철재는 6월에 군대를 갔고, 훈련소 기간이 지나 JSD의 공관에 안착했다.
같은 공관 소속이지만, 운전병과는 비교도 안 되는 특별 대우.
이 모든 것이 바로 방에 들어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조카, 윤기 덕분이었다.
“군 생활은 좀 어떠세요?”
윤기의 말에 최철재가 곰살궂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가 들었다.
“이게 전부 네 덕분이지. 진짜 고맙다……. 형이 군대 빨리 갔다 오라고 해서 일단 왔는데, 솔직히 막막했거든. 여기 오고 나서 대령님이 내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설명해 주셨을 때, 솔직히 감동했다니까?”
실제로 윤기와 최철규는 최철재에게 이번 일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때아닌 행운에 최철재는 JSD에게 사실을 전해 들은 후로 배정받은 방에서 조카와 형이 사는 방향으로 절을 했고, 며칠 후, 과외를 하러 온 조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저보다는 둘째 작은아버지한테 감사하셔요. 막내 작은아버지 군대 생활 좀 편하게 해 주면 안 되겠냐고 저한테 많이 말씀하셨거든요.”
“당연히 형한테도 고마워해야지. 아무튼, 나는 대학에서 교련을 받은 것도 아니라서 쌩으로 군 생활해야 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게다가 대령님이 낮에 사모님 허락만 받으면 음악 연습 계속해도 된다고 하셨거든. 원한다면 학원도 보내 준다고 했고……. 하여튼, 난 지금도 꿈을 꾸는 거 같아.”
최철재는 음악을 하겠다는 이유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25살까지 음악계에서 생활한다.
성격 자체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인맥을 쌓았지만, 재능이 워낙 부족했던지라 만 5년을 채우고 대학에 돌아가 절치부심하여 삼우 그룹의 중진이 된다.
물론 도둑놈에게 밀려 기존 주주들의 지원을 받아도 회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것이 최덕배가 말해 준 회귀 전 세상의 최철재였고, 현재 세상의 최철재는 음악 생활을 한 지 6개월 만에 셋째 형에게 등을 떠밀려 입대를 하게 되었다.
음악 생활에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해 주겠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니 손해는 보지 않겠다 싶어서 입대를 한 것이다.
물론 손해가 아니라 엄청난 이득으로 다가왔지만.
“만족하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랑 둘째 작은아버지는 조금 고민했었거든요. 혹시나 괜히 참견했다고 화내실 수도 있으니까…….”
윤기의 말에 최철재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니야! 진짜 만족하고 있어. 앞으로도 이런 서프라이즈가 있다면 난 얼마든지 환영이니까 더 부탁할게.”
최철재의 말에 윤기가 미소를 지으며 목소리를 살짝 낮췄다.
“그렇다면 혹시 저도 작은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부탁? 당연히 들어줘야지.”
최철재 역시 목소리를 한껏 낮추며 고개를 여러 번이나 끄덕였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타이밍.
만약 윤기가 최철재에게 편한 군 생활을 조건으로 걸며 부탁했다면 이런 반응까지는 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기는 최철재에게 일단 꿀을 맛보게 했기 때문에 아주 순응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나중에 잘해 주는 게 아니라, 일단 지금 잘해 주는 게 중요하지.’
윤기의 생각대로 최철재는 자기가 좋은 관계만 유지하면 또 좋은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의식 밑바닥에 깔았고, 윤기의 다음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제 외할아버지하고 평상시에 친분이 있는 것처럼 연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