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지류는 바뀔 수 있다 (1)
“네 외할아버지면……, 콜슨 준장님?”
“맞아요. 조만간 작은아버지를 면회 오시게끔 말씀드릴 생각인데, 가능하시겠어요?”
최철재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런데 대충 어떤 관계로 이해를 하면 돼? 너한테는 외할아버지이신 분이지만, 나하고는 사실상 거의 남이잖아.”
“별로 어려울 것 없어요. 그냥 작은아버지가 어려서부터 노래를 좋아했고, 외할아버지 역시 작은아버지의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보니 친분이 있었다고 하면 되겠죠?”
최철재는 잠시 내용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면회는 언제쯤 오시게 할 예정이야?”
“2주 안에는 오시게 될 거예요.”
“알았어. 너무 과하게 티를 낼 필요는 없는 거지?”
“맞아요. 그냥 평범한 친척처럼, 하지만 낯설지는 않게. 그 정도면 충분해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최철재를 바라보며 윤기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한 욕심이 없어서 좋네.’
둘째 작은아버지가 넷째 작은아버지와 적당한 친분을 유지한 이유를 실감하며, 윤기는 거실로 나갔다.
* * *
9월 초순.
윤기는 콜슨 준장과 함께 벤츠에 탄 상태로 JSD의 공관에 향했다.
“미국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선택하더니, 한국에서는 JSD가 우량주인 거냐?”
콜슨 준장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정확히는 JSD가 아니라 JD가 우량주인 거죠.”
“그런데 JSD에게 접근한 이유가 뭐냐? 네가 원한다면 내가 JD와 다리를 놔줄 수도 있었을 텐데. 뭐, 하나회의 실질적 일인자라서 힘을 꽤 써야 하겠지만,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야.”
할아버지의 배려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잠시 뒤,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빠른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는 그런 위화감 가득한 만남을 원하는 게 아니라서요. 아직 제가 어리긴 하지만, 인맥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할아버진 안 그런가요?”
“하긴, 내가 사돈 녀석이랑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어디까지나 지옥을 함께한 전우이기 때문이니까. 그냥 인맥을 통해서 만난 사이였으면 내 인생에 너라는 존재가 없었겠지.”
외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자 윤기는 기분이 좋은 듯 미소를 지었다.
“저는 나이를 먹어도 외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게 참 좋네요.”
“걱정 마라. 네가 20대가 되어도 쓰다듬어 줄 테니.”
“나중에 제 자식들 머리도 쓰다듬어 주셔야죠.”
“당연하지! 증손주들 대학가는 모습까지는 봐야 하지 않겠어?”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 주던 콜슨이 아까의 질문을 이었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접근이라고 친다면 JSD가 JD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거냐?”
“맞아요. 류 비서를 통해 알아보니까, JSD는 JD의 최측근이 될 가능성이 높거든요. JSD가 베트남 전에서 부상으로 요양 중일 때, JD가 문병을 간 적이 있었다는데, 괜히 문병을 갔겠어요? 현재로서는 ‘신경 좀 쓰는 부하’지만, 저는 가능성에 투자하는 거죠.”
윤기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JSD와 JD의 실제 관계였지만, 콜슨 준장을 설득하기에는 딱히 부족함이 없었다.
“하긴, 아플 때 찾아와 주는 사람이 가장 고마운 법이지. 그것도 상관이라면 더더욱. 그러면 JSD랑 친해진 게 JD에게 자연스럽게 접근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어째서 JD를 선택한 거냐?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얘기일 텐데.”
윤기는 타고 있는 차량의 운전석과 뒷좌석 사이에 시공되어 있는 방음벽을 잠시 바라보고도 목소리를 살짝 낮게 깔았다.
“알아보니까, P가 집권했을 때 JD가 P의 집권을 지지하는 가두시위를 했었더라고요.”
“아, 생각해 보니까 그런 일이 있었지.”
“이후로 P는 하나회 내부에서 JD를 팍팍 밀어줬대요. 할아버지도 방금 JD가 일인자라고 하셨잖아요? 나중에 P가 나이를 먹어서 후계자가 생긴다면 JD가 될 가능성이 크겠죠.”
“P한테는 아들이 있을 텐데?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아무튼 있었어.”
확실히 독재국가에서 후계가 생긴다면 아들일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어려요. P의 아들은 지금 겨우 22살이니까요. 한 8년 뒤에는 슬슬 P의 아들과 친분을 다져도 좋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너무 많은 곳에 문어발식으로 연줄을 잡느니, 지금은 안정적인 하나가 더 낫다고 보거든요.”
마이크로소프트의 78년 매출과 79년 상반기 매출을 이미 확인한 콜슨이었기에 손자의 이러한 예상에 별다른 의문은 가지지 않았다.
‘만약 이번에도 윤기 녀석이 성공한다면 사돈 녀석도 안심할 수 있겠지.’
최기현을 생각하자 떠오른 또 하나의 생각에 콜슨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보니 왜 기현이 녀석한테는 JD와 연줄을 만들라고 하지 않은 거냐?”
“이미 할아버지는 P쪽에 약간이나마 연줄이 있고, 외할아버지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JD쪽에 줄을 대는 것은 나중에 잘못되더라도 어린아이의 선망으로 끝낼 수 있어요. 하지만 할아버지가 선택했다가 실패하면 삼우의 부도라는 결말이 다가오겠죠.”
반쯤은 지어낸 말이었지만, 이 역시도 설득력이 차고도 넘쳤다.
“사돈 녀석이 네 말을 들었다면 참 뿌듯해했을 거 같구나.”
“저기, 친할아버지 아직 살아계시잖아요?”
“그래, 그렇지. 크하하핫!”
호탕하게 웃는 콜슨 준장의 목소리와 함께 벤츠가 부대 게이트를 브레이크 없이 통과했다.
* * *
“충!!!성!!!”
JSD의 성량이 공관을 쩌렁쩌렁하게 울릴 정도로 퍼지자, 콜슨 준장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국군은 이래서 좋아. 미군도 경례 구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공통 구호가 없어서 좀 밋밋한 편이거든.”
콜슨 준장의 손이 내려가자, JSD 역시 손을 내리며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차 한 잔 주겠나?”
“물론이지요. 그런데 면회는 어떻게 하실 것인지……?”
조심스러운 JSD의 물음에 콜슨 준장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핫! 공관에서의 면회까지 허락해 줬는데 잠시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을까. 그렇지 않아도 내 손주가 한국군의 귀감인 사람이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서 한번 볼까 생각했었다네.”
유창한 콜슨 준장의 말은 JSD의 귀에 쏙쏙 박혔고, 동시에 JSD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집에서 나를 그렇게 칭찬했단 말이야……? 이렇게 고마울 데가…….’
윤기를 바라보는 JSD의 시선에는 호감을 제외한 감정은 일절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여보, 여기 커피, ‘그거’로 가져와.”
“예.”
원래 공관병인 최철재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현재 최철재는 JSD의 지시로 아예 방에서 대기하고 있을뿐더러, 콜슨 준장이 아니더라도 공관의 업무에서 완전히 배제되도록 배려를 받고 있었다.
이 모두가 윤기 덕분이었고, 윤기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에 임경자 역시 웃으며 스스로 공관 일을 해내고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이건 처음 타보는 거라 잘 탔는지 잘 모르겠네요.”
조심스럽게 커피를 내려놓은 임경자를 향해 고개를 숙인 콜슨이 천천히 잔을 들어 한 모금 목으로 넘겼다.
“호오, 이거 굉장히 좋은 커피 같군. 한국에 이런 커피가 있었나?”
감탄하는 콜슨 준장의 모습을 보며 JSD와 임경자 모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국에 이런 고품질의 커피가 아직 있을 리 없지요. 오늘 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마련한 ‘루왁’입니다.”
“호오, 이게 바로 그 루왁인가? 그나저나 나는 면회를 하러 왔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환대를 해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
너무도 좋아하는 콜슨 준장의 모습에 JSD는 속으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야말로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한 1년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만남이 이루어지다니……!’
이러한 JSD의 생각은 표정을 통해 거의 드러나는 수준이었고, 그것을 본 윤기 역시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애썼다.
‘실제로 급했던 것은 이쪽인데, 저렇게까지 좋아하니 이거 웃음을 참기가 힘드네.’
일종의 동상이몽.
이 상황은 시너지를 이루어내서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보였다.
“그러면 슬슬 철재를 좀 만나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아, 물론이죠! 저 방이 철재 군의 방입니다.”
“안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고, 그냥 여기로 부르지.”
말을 들은 JSD가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괜찮겠습니까? 가족끼리의 면회인데…….”
“윤기가 인정한 사람인데 무슨 상관인가? 그리고 앞으로 철재를 부탁할 사람인데, 이럴 때 조금이라도 같이 시간을 더 보내야지.”
인정받는 느낌이 가득한 말에 JSD는 손수 자리에서 일어나 최철재가 있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철재 군, 잠시 나올 수 있나?”
문이 열리며 최철재가 밖으로 나왔다.
“충성!”
“그래, 경례는 되었고, 자네 사장어른이신 콜슨 준장님께서 오셨어. 안에서 이야기는 대충 들렸지?”
“예, 그렇습니다!”
최철재는 콜슨 준장을 향해 몸을 돌리더니 다시 우렁찬 경례를 하려고 했다.
“됐어, 됐어. 네가 군대에 갔다고 해서 내가 네 상관이 된 것은 아니지 않느냐? 나는 네 사장어른이야.”
따스함이 가득한 콜슨 준장의 목소리에 최철재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경례 대신 입을 열었다.
“사장어른,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종종 네 노래를 듣다가 한동안 못 들으니 감질이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어떻게 할까 했었는데, 여기 있는 JSD 대령이 전적으로 도와주더구나.”
최철재는 JSD를 보더니 약간 혼란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아, 편히 말해. 편히. 편히.”
JSD의 허락이 떨어지자 최철재가 약간 긴장이 풀린 표정을 지으며 멋쩍게 웃었다.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장님.”
JSD의 직급이 경비 대장이었기에 최철재는 JSD를 직급으로 불렀다.
그러자 JSD가 살짝이지만 핀잔을 주었다.
“그냥 대령님이라고 부르는 게 낫겠어.”
한국말이 유창한 콜슨 준장에게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함이었다.
“뭐, 어떤가. 그나저나 철재야, 오랜만에 왔는데 네 노래를 듣고 싶구나. 대령, 여기서 괜찮을까?”
JSD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요. 물론이지요.”
잠시 뒤, 최철재의 노랫가락이 공관에 울려 퍼졌고, 상상 이상의 실력에 JSD도 콜슨도 윤기도 눈을 크게 떴다.
‘재능이 부족해서 포기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가수 기준이지 일반인 기준으로는 거의 범접이 불가능할 정도였네.’
최철재의 노래로 하여금 한껏 더 좋아진 분위기 속에서 대화는 무르익었고, 자리가 파했을 때, 콜슨 준장이 JSD에게 악수를 청했다.
“아……!”
콜슨 준장의 손을 맞잡으며 관등성명을 복창하는 JSD의 모습.
“오늘 정말로 고맙군. 혹시 내가 도울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연락하게. 이 녀석들이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능히 믿을 수 있지.”
“감사합니다!”
콜슨 준장과 윤기가 떠난 뒤, JSD는 홀로 안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이야, 한 달만 늦었어도 절대 못 볼 장면이었네. 이거 녹화해 두면 나중에 유튜브 조회 수 1천만은 우습게 찍을 거 같은데.>
아쉽다는 듯한 최덕배의 목소리가 공관에 홀로 울려 퍼졌다.
* * *
1979년 10월 26일.
마침내 P가 죽는 날이 다가왔고, 잠시 자리를 비웠던 최덕배가 윤기의 방 마루에서 스르륵 하고 솟아났다.
“끝났나요?”
나지막한 윤기의 물음.
이 목소리에는 딱히 흥분도, 그렇다고 해서 절망도 없었다.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나요?’하고 묻는 단조로운 어조.
비슷하게 최덕배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사는 반복됐어.>
“당연한 일이겠지요. 어차피 재규어가 없더라도 제2의 재규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게 독재의 끝이니까요. 세계를 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독재인 국가는 없잖아요?”
윤기는 역사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자각한 듯,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뒤, 윤기의 눈이 떠졌을 때 표정은 방금과는 조금 달랐다.
이해가 안 된다는 듯한 표정.
“P의 죽음은 반드시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라고 치죠.”
그거야 그렇지.>
“그런데 제가 이해할 수 없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