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87)
#387화 대학의 의미? (3)
“연기를 하자고?”
회장 이대근은 무언가 촉을 느낀 듯, 구미가 당기는 표정을 지었다.
“네, 회장님. 정리하자면, 우리한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봐.”
이대근의 재촉에 김원효는 이리저리 재지 않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첫 번째는 박영섭이가 가져온 정보에 따라서 최 회장을 공격하는 겁니다. 선동 표어로는 ‘N의 민주 정권에서 재벌 특혜가 웬 말이냐’ 정도가 되겠죠?”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겠다는 거로군?”
이대근의 적절한 요약에 김원효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N의 정권은 신군부와 다르다는 것을 기치로 내건 정권입니다. 다만,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와이케이와 여전히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죠. 물론, 지금까지는 와이케이가 N의 정권에서 특혜를 받은 것이 없지만……”
“이번 일이 특혜를 받은 것이라고 여론을 선동한다면, N도 와이케이도 상당히 난처해진다는 얘기로구만.”
말을 들은 김원효는 씨익 웃었다.
“그렇습니다. 상대 입장에서는 우리가 행동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하고 협상을 하려고 할 겁니다. 본격적으로 여론이 커지기 전에 진화하는 게 좋을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박영섭이를 도우는 연기를 해야한다는 거로군. 좋아, 그러면 두 번째 방법은 뭐야?”
“간단합니다. 첫 번째 방법을 사용하되, 선조치 후보고가 아니라, 선보고 후조치를 하자는 거죠.”
이대근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아! 우리가 행동에 나서고 나서 협상을 해서 얻는 것보다, 협상을 하고 나서 최 회장이 원하는 대로 움직여 주는 쪽이 얻을 게 많다는 얘기로구만?!”
그야말로 기발한 계략이라고 생각한 것인지, 이대근은 잠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앉았다.
“바로 그겁니다. 특히 우리가 최 회장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여 준다면, 최 회장 입장에서도 이득일 겁니다. 박영섭이를 매장하기가 쉬워질 테니까요.”
“과연…! 아주 좋은 생각이야.”
“이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호오?”
어느새 이대근의 표정도 김원효처럼 탐욕에 물든 모습이었다.
“최 회장의 시나리오를 따르는 것은 겉보기로는 박영섭이를 돕는 일이 되겠죠. 그 과정에서 최후의 최후까지 박영섭이를 쥐어짜 내는 겁니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서로 얼굴 볼 사이도 아닌데 최대한 짜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야말로 비정하기 이를 데 없는 이들의 대화.
정치가 괜히 ‘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불리겠는가.
이해득실을 따지는 인간들은 겉으로는 정을 운운하지만, 뒤로는 상대의 등에 칼을 쑤셔 박는 것을 고민하지 않는다.
이대근, 그리고 김원효가 바로 이러한 부류였던 것이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말이야. 이번 일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조건 하나가 필요해.”
이대근의 말에 김원효가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알고 있습니다. 와이케이, 아니 최 회장한테서 확실한 이득을 얻어내야만 의미가 있는 계략이니까 말이죠. 박영섭이도 우리 입장에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이니만큼, 최소한 황금알을 낳는 타조 정도는 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어차피 N의 정권에 합세할 수만 있으면, 돈을 주겠다는 놈들은 얼마든지 나타날 거야. 그러니까, 우리가 노려야 할 것은 N의 정권에 제대로 합류하는 것이야. 알겠어?”
“예, 저만 믿으시죠. 언제 제가 실망시켜 드린 적 있습니까?”
“없지, 없어. 그러니까 내가 재무부장을 맡겼지. 하하핫! 우리 한빛이 두빛, 아니 세빛이 되겠구만!”
권력을 가진 자가 자연스럽게 흘린다는 아재 개그.
이것은 탐욕에 절은 이대근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었다.
* * *
윤기는 사람을 재산이나 권력을 기준으로 차별을 두지는 않지만, 모르는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 주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업무를 처리하는 것만 해도 무진장 바쁜 데다가, 남는 시간은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데 쓰기에도 모자라니까.
그렇기에 원래대로라면 김원효가 윤기와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김원효가 소속된 ‘한빛’이라는 단체는 어쨌거나 운동권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단체.
그렇기 때문에 단체의 힘을 빌어서 N의 정권에서 나름대로 N과 직접적인 연락망이 있는 자에게 소식을 넣었다.
[박영섭과 관련한 부분으로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김원효는 윤기가 자신을 만나 줄 것이라고 100퍼센트 확신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김원효가 아는 한, ‘최윤기’라는 인물은 자신에게 대적하는 자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니까.
물론, 최기현 회장이 뒤에서 조종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없다.
최기현 회장이 조종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최기현 회장은 누군가가 손자에게 도전하는 꼴을 못 본다는 얘기.
결국, 뒷배가 있다는 것의 차이일 뿐, 행동 방침이 달라질 이유는 없었다.
“5분 드리죠.”
이곳은 와이케이 그룹 계열사의 사장실.
윤기는 1인용 소파에 앉은 상태로 김원효를 바라보았다.
앉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은 김원효의 상황.
하지만 김원효는 와이케이 그룹, 아니, 윤기에 대해 자세히 아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대해서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N의 정권, 그리고 와이케이와 연줄을 잡을 수도 있다는 탐욕에 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회장님, 회장님이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하실 때 같은 후보로 박영섭이라는 녀석이 있지 않았습니까?”
“4분 30초 남았네요.”
지독히도 나른한 윤기의 목소리.
이러한 윤기의 태도는 평상시와 정말 완벽하게 달랐다.
아니, ‘박영섭’이라는 키워드가 윤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반응은 확실히 이상함 그 자체.
하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회장님, 박영섭이 친한 후배를 통해 회장님의 출결 상황을 법학과 행정실에서 파악한 정황이 있습니다.]얼마 전, 법학과 행정실 직원은 윤기의 보디가드 중 한 명에게 윤기의 출결을 알아본 사람이 둘 있었다는 것을 알렸다.
현재 윤기의 보디가드들은 옛날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능해진 상태.
그렇기에 보디가드들은 윤기가 귀찮지 않게 알아서 모든 것을 파악한 후 윤기에게 보고한 상태였다.
따라서 윤기는 김원효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윤기가 왜 김원효를 홀대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하면, 윤기는 적을 배신하고 아군이 되는 자들을 환영하는 쪽이었으니까.
이 녀석이 오늘은 왜 이러는 거지?>
최덕배조차도 궁금해하는 상황.
하지만, 최덕배의 이러한 의문은 거의 곧바로 풀렸다.
“회장님, 그 박영섭이라는 녀석이 우리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회장님의 출결을 토대로 회장님의 명성에 금이 가게 하자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회장님에게 피해를 끼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보고를 하러 왔습니다.”
마치 ‘저 잘했죠?’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원효의 모습.
하지만, 윤기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3분 40초 남았어요.”
“예, 예?”
순간 김원효는 당황했다.
상대가 ‘잘했어요’,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봐요’ 등의 말을 할 줄 알았는데, 그저 나른한 표정으로 남은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었으니까.
“3분 30초 남았습니다.”
“아, 아니, 회장님. 우리의 정보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윤기는 딱히 대답하지 않고, 물끄러미 김원효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을 말하기도 귀찮은 듯 손을 한 번 휘젓자, 보디가드 하나가 주머니에서 3분짜리 모래시계 하나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딱히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마치 사라락 사라락 소리를 내는 것 같은 모래시계.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져 내릴수록 김원효는 그야말로 가슴이 답답해졌다.
“회장님, 박영섭이는 회장님의 명성을 금이 가게 할 겁니다. 회장님의 출결이 불완전한 상황에서 박영섭이가 이를 공론화한다면, 회장님은 제대로 된 학점을 받으실 수 없습니다. 전 과목 F가 확정된 상황이라구요.”
나름대로 초강수를 둔 김원효였지만, 역시나 윤기는 반응이 없었다.
“회장님, 이대로 가다가는 와이케이와 정권 간의 유착에 대해서 국민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할 겁니다. 이는 정권의 지지율과 더불어서 와이케이의 이미지에 대한 문제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쥐어짜 내는 박영섭이었지만,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는 순간 윤기는 소파에서 일어나서는 집무실 책상 의자에 앉았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보디가드 중 하나가 김원효의 팔을 붙잡았고, 그대로 건물 바깥으로 공손하게, 그리고 강제로 내쳐졌다.
저 녀석을 그렇게까지 대우할 필요가 있었냐?>
윤기는 보디가드들을 집무실 바깥으로 내보낸 뒤, 궁금해하는 최덕배를 향해 싱긋 웃었다.
“쓸모없는 녀석들이었으니까요.”
응?>
“방금 온 김원효라는 녀석과 한빛이라는 단체요. 그 녀석들은 제 입장에서 하등 쓸모가 없는 녀석들이었어요.”
최덕배는 아까까지 윤기의 별장에서 한창 빨간 책을 보고 있었다.
덕분에 약 2시간의 공백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쓸모가 없는 녀석들이라구?”
“네. 김원효가 가진 정보가 쓸모 있으려면, 제가 학점에 관심이 많다는 전제가 필요하거든요.”
드디어 윤기의 본심이 나왔다.
김원효를 홀대한 이유.
그것은 바로 윤기가 학점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아니, 왜? 너 서울대 엄청 가고 싶어하지 않았었냐?>
“그거야, 대학을 못 가 봤으니 가고 싶어했던 거죠. 그런데 한 학기 다니고 보니까 저한테는 대학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더라구요. 아니, 더 나아가서는 와이케이에서 일할 사람들에게 ‘학력’이라는 것이 필요할까 싶었어요.”
응…?>
“대학에서 배우는 것과 와이케이에서 요구하는 능력은 그야말로 엄청난 차이를 보여요. 그런 만큼, 대학 타이틀을 보는 것이 무엇이 의미가 있을까요?”
윤기의 말은 결코 무능력자를 뽑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와이케이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뽑겠다는 이야기.
더불어서 대학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효용’에 의문을 가지게 된 만큼, 윤기는 어느새 대학에 대한 애정이 다소 식은 상황이었다.
대학에서 만난 인연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이 아니다.
그저 ‘대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한 애정이 식은 상황.
그렇기에 박영섭이 자신의 출결을 이유로 F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담담하게 F를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F를 받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까, 김원효의 정보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정보다?>
아원급제의 수재답게 최덕배는 두뇌 회전이 빨랐다.
“바로 그거죠. 더불어서 한빛이라는 단체는 뒤가 구린 게 너무 많아서 이쪽으로 끌어들일 이유가 없어요. 제가 적을 배신하고 우리한테 오는 자들을 우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쓸모가 있을 때의 이야기잖아요? 뭐, 박영섭이 출결과 관련해서 시비를 걸면 응징이야 하겠지만, 그것은 한빛의 정보가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구요.”
지금까지 윤기의 말을 미루어보면, 김원효는 윤기를 잘못 파악해도 너무 잘못 파악했다.
그리고 윤기를 잘못 파악한 것에 대한 나비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 *
“뭐, 뭣? 실패했다고?”
이대근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박영섭이라는 카드를 버릴 각오로 윤기에게 붙으려고 했다.
나름대로 괜찮은 계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믿었던 김원효가 당연히 성공해야 할 일을 실패한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런 미친! 그러면, 박영섭이라는 거위까지 잃기 전에 빨리 행동에 들어가야 하잖아!”
이대근은 양손에 쥔 떡 중에서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윤기라는 떡을 일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