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9)
#39화 지류는 바뀔 수 있다 (2)
아, 뭘 물어보려는지 알겠다.>
최덕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기의 말이 이어졌다.
“박경자는 왜 안 죽는 거죠?”
1979년.
최고의 경영인이 되기 위해 P의 죽음에 맞춰 계획을 차근차근 시행해나갔지만, 윤기가 가장 고대하던 것은 P의 죽음이 아니었다.
윤기가 그토록 기다리던 것은 박경자의 죽음.
최덕배의 말로는 34살에 죽는다고 했지만, 첫돌부터 12살이 된 지금까지, 10년이란 세월이 지났는데도 박경자는 죽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박경자의 34살이 끝나기까지 불과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박경자의 죽음이 별 볼 일 없다는 거지.>
“원래대로라면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별 볼 일 없는 거라서 그런 거 같다고.>
최덕배는 연신 물어보는 윤기가 답답하면서도 어느 정도는 그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하긴, 나였어도 이 녀석 입장이었으면 비슷한 기분이었겠지.’
최덕배야 100년도 더 넘는 기간을 귀신으로서, 그것도 관조자의 입장으로만 살아왔기에 현실 세상과 독립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윤기는 다르다.
분명히 현실 세상에 살고 있기에 그동안 기다리고 있던 일이 벌어지기를 원했다.
“아직 두 달 정도 시간이 더 남긴 했지만, 솔직히 두 달 안에 박경자가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왜냐하면, 3월에 죽었어야 하거든. 게다가 누가 사주해서 죽은 게 아니라 우연한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거라 외부요인이 개입할 여지도 적지.>
“그러니까, 결국 역사는 박경자가 살아 있기를 바란다는 얘기겠네요?”
글쎄. 역사라는 게 감정을 가질 것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굳이 표현한다면 박경자에 대해 신경조차 쓰지 않고 있다는 쪽이 가깝겠지?>
최덕배의 말을 들으며 윤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건 할아버지의 삼우가 최고의 기업이 되는 거지.’
정확히 말하면 할아버지의 핏줄인 자신이 세계 최고의 경영자가 되는 것이 현재의 목표였다.
최기현에게도 윤기 본인에게도 가장 중요한 건 ‘가문’이지 ‘삼우’라는 이름 자체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박경자에 대한 복수심이 없는 건 아니야.’
윤기는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LED 전구가 아닌 형광등이 매달려 있는 천장.
상념에 빠져 풀어진 동공은 따가운 불빛을 적당히 풀어헤쳐 윤기로 하여금 더더욱 생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박경자의 죽음일까?’
천천히 복수심을 되새겨 본 결과, 윤기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윤기는 매트리스에 걸터앉고는 더욱 진한 미소를 지었다.
뭐야, 왜 그런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그래?>
“제가 생각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생각을 잘못했다고?>
“네. 그냥 죽게 놔두는 건 너무 쉬운 복수더라고요.”
그럼?>
“천천히 옆에 두고, 평생에 걸쳐서 조져야죠. 지금까지 왜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조지면 더 확실하게 복수할 수 있는데.”
사악한 미소가 걸린 윤기를 바라보며 최덕배는 속으로 예전 임금을 떠올렸다.
마치 옛 전하인 순조를 보는 것 같구먼. 신하들이랑 냉면 먹을 때 신하 중 한 명이 혼자 먹을 수육만 사 왔다고 그 신하를 평생 옆에 두고 조졌었는데…….>
* * *
윤기가 최철규와 JSD에 대한 접촉을 시행하고 있는 동안에 류근태는 건설 사무소의 지원을 비롯하여 윤기의 자산관리를 하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몇 달 전부터는 윤기가 독학에 대한 개념을 잡으면서 특별히 보고할 사항이 없으면 따로 일 처리를 하기에 바빴다.
그리고 10월 27일인 오늘.
윤기는 모처럼 류근태를 불렀다.
“부탁한 자료들은 가지고 왔나요?”
P의 죽음이 대중에게 공표되는 것은 내일인 10월 28일.
전날 오전인 지금, 류근태는 이러한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네, 사장님. 여기 쓰여 있는 것들이 현재 사장님의 자산 상황입니다.”
빼곡하지만 잘 정리되어 있는 자료.
그중에서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관련된 자료가 가장 눈에 띄었다.
[78년 매출 240만 달러79년 3분기까지의 매출 650만 달러]
78년을 기준으로 두고 보더라도 원래 역사와 비교해서 무려 2.4배의 매출을 기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순익률은 현재 15퍼센트 정도로 올해 초 윤기는 약 12만 6천 달러의 배당을 받았고, 내년 초에는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족히 40만 달러 이상의 배당금을 받게 될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지불하는 이자나 용산과 강남 등의 땅을 구입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나요?”
류근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하버드를 비롯한 미국 최상위 대학의 대학원생들에게 지불하는 장학금 역시 충분히 지급되고 있고요. 다만…….”
“다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유상 증자에 대한 신주를 구매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특약 사항대로 우선권인 49퍼센트를 전부 매입해야 하는데, 빌 게이츠의 부모와 할아버지가 계속해서 투자를 하는지라, 현 자산으로는 전부 매입하는 데에 무리가 따르고 있거든요.”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래 역사 대비 급격한 매출 상승.
이것은 윤기의 투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뒤늦게 투입된 빌 게이츠 부모와 할아버지의 자산이 들어간 영향도 굉장히 컸다.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류근태가 생각하기에 윤기의 자산으로 지분 방어를 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 투자되고 있었다. 벌써 윤기의 지분이 90퍼센트 아래로 떨어져 내렸으니까.
“아아, 그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최종적으로 제 지분은 50퍼센트 이하로 떨어져야 하니까요.”
“네……?”
류근태는 윤기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아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연한 일이에요.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 어마어마한 속도로 성장 중이죠. 이미 인재들에 대한 검증은 끝났다는 얘기에요. 이 상황에서 모든 파이를 제가 독점한다? 만약 저라면 회사를 나가서 새로운 회사를 창립하겠어요. 빌 형과 폴 형, 그리고 스티브 형은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아!”
자신의 착각을 깨달은 류근태를 바라보며 윤기가 좀 더 말을 이었다.
“저의 지분은 점점 줄어들지 몰라도 절대 수익은 계속해서 오를 수밖에 없어요. 제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원하는 건 그거인 거죠.”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유 자금은 신주 구매를 통해 지분방어에 쓰는 전략을 구사해야 하겠죠?”
“그거야 당연하죠. 마이크로소프트가 상장하기 전까지 최하 40퍼센트는 지키는 것이 목표예요. 언제 상장할지는 모르겠지만요.”
윤기는 49퍼센트를 목표로 할까 하다가 류근태가 지나치게 압박받을 것을 고려하여 40퍼센트로 설정했다.
이 정도만 해도 원래 역사에서 빌 게이츠가 가졌을 지분과 동일한 수준이다.
‘내가 아는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상장은 1986년. 그때까지 나는 호랑이가 되어 있어야 해. 마이크로소프트가 나에게 날개를 달아 줄 테니까.’
기존의 지시 사항들이 잘 이루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윤기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건설 사무소 쪽은 어떻게 되었죠?”
“제 삼촌을 비롯해서 기존 6명이던 직원이 현재 15명까지 늘었습니다. 내년 초에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배당금을 받으면 인원을 배 이상으로 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중장비 기사들을 비롯한 주요 인력들에 대한 인맥 관리는요?”
“그 역시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좋아요. 아마 내년 중순쯤부터는 실질적인 공사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네요.”
드디어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된다는 소리에 류근태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 말씀을 해 주시는 건 아마 삼촌에게도 적당히 언질을 주라는 의미이시겠지.’
류근태가 생각하고 있을 때, 윤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제가 둘째 작은아버지와 함께 JSD쪽에 줄을 대고 있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죠?”
“예, 여러 번 말씀해 주시기도 했고, 최 대리님과도 종종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2주일의 시간을 드릴 테니까 250만 원 상당의 명품 시계, 그리고 이 화랑으로 가서 비슷한 금액대의 그림을 한 점 사세요.”
250만 원이면 현대의 가치로 대략 2천만 원.
주소를 적은 종이를 받은 류근태는 ‘화랑’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JSD쪽을 통해서 JD에게 연줄을 대실 생각이시로군. 하긴, JD 정도라면 굳이 P에게 보고하지 않고도 백화점 건설과 관련해서 적당하게 편의를 봐줄 수 있겠지.’
그러나 류근태가 잘못 생각하는 게 P의 죽음 말고도 하나 더 있다면, 해당 화랑은 P의 관계자가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JD의 관계자가 운영하는 곳이라는 점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2주일 안에만 해 주시면 돼요. 그러면, 다음 연락은 시계와 그림이 완료되었을 때 하도록 하죠.”
“예.”
류근태는 윤기를 향해 고개를 숙인 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내일모레 저 녀석이랑 네 작은아버지 표정이 아주 볼 만하겠어.>
“둘뿐이겠어요. 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겠죠. 최소한 대한민국의 사람이라면 말이에요.”
* * *
몇 달이라는 시간이 정말로 빠르게 지나갔다.
통일 주체 국민 회의의 표결을 거쳐 10대 대통령이 급하게 당선되었고, P가 죽고 나서 생긴 뒤처리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곧이어 JD가 1212 군사 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10대 대통령은 사실상 꼭두각시가 되어 버렸다.
이 과정에서 JSD 역시 위세가 굉장히 올라갔는데, 그럼에도 윤기, 그리고 최철규와의 관계는 돈독했다.
“요즘 군인분들을 만나면 대령님에 대한 칭송이 아주 자자합니다.”
최철규의 말에 JSD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상석에서 최철규를 향해 커피를 한 잔 마시라는 듯 손바닥을 보인 상태로 손을 슬쩍 위로 들어 올렸다.
“아,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제가 뭐 별거 있겠습니까. JD께서 대단하신 것이지요. 저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실제로 원래 역사에서도 JSD는 대통령 경호 실장을 자청한 게 아니라 JD가 불러서 간 것이었기에, 80년 3월인 지금은 아직 자신이 이인자가 되었다는 자각도 없었고, 실제로 이인자도 아니었다.
현대에서 JSD에 대한 이야기가 워낙 자자하다 보니 윤기는 1212 군사 반란 이후 바로 JSD가 이인자가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JSD가 실질적인 이인자가 되는 것은 대통령 경호 실장이 되는 1981년의 일이다.
“그래도 P님의 빈자리로 인해 생긴 사회 혼란을 이렇게 빨리 잠재울 수 있던 것은 수도 경비 사령부의 힘이 크지요. 제 아버지께서도 덕분에 사업의 흐름이 깨지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허허……,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칭찬이 싫은 사람은 없었기에 JSD는 웃음을 참으려 했지만, 표면에 드러나는 것을 잘 막지는 못했다.
“아, 그리고 이거…….”
최철규는 들고 왔던 가방에서 작고 고풍스러운 상자 하나를 꺼내 JSD에게 건넸다.
“이건 무엇입니까?”
“이번에 영전하신 대령님을 위한 약소한 선물입니다.”
“저에게 말입니까?”
JSD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보고는 탄성을 터뜨렸다.
“이건……!”
하나회 고참들이 종종 손목에 두르고 다니는 명품 시계.
그것을 직접 자신이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JSD의 탄성은 한 번 더 이어졌다.
“허……, 이런 귀한 것을 저에게…….”
“제 아들이 대령님의 아들과 친구가 되어 생긴 인연이기는 하지만, 저는 대령님과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이것은 그 증표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제가 이걸 받아도 될 정도의 인물이 아닌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월남에서 JD께서 손수 문병을 갔던 게 바로 대령님이신데, 분명 JD께서는 대령님을 더욱 영전시키실 것입니다.”
JD가 자신을 총애한다고 굳게 믿고 있던 JSD였기에 최철규의 말에 차마 겸양적인 말을 하지는 못하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
“한번 차 보시지요. 자고로 시계란 주인의 손목에 있어야 가장 빛나는 법이지 않겠습니까?”
“그래 볼까요?”
JSD는 손목에 시계를 차고는 아내에게 자랑했고, 이러한 거실의 대화는 방에서 재준을 가르치던 윤기의 귀에도 들어왔다.
‘아직 JSD가 이인자가 되진 못했지만, 슬슬 백화점 공사 관련한 서류 작업은 시작해도 될 것 같네.’
윤기의 첫째 작은아버지 최철민, 그리고 첫째 작은어머니 박경자의 몰락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