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스노우볼 (3)
“와…….”
조기문은 김원효가 알려 준, 박영섭 아버지 회사의 본사 건물 앞에 서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후반을 기준으로는 정말 으리으리한 건물.
그렇기에 조기문은 김원효의 말을 아직 쉬이 믿을 수 없었다.
‘에이, 설마. 분명 그 사람이 잘못 알고 있는 걸 거야. 영섭이 형이 만약 이런 회사 사장님의 아들이라면 그런 하꼬방만도 못한 자취방에서 살겠어?’
하지만, 김원효의 말이 영 설득력이 없는 것까지는 아니었기에 조기문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야, 빨리 옮겨!] [저거 어디로 가져가는 거야! 못 가져가게 해!] [야! 저거 파쇄된 종이 아냐? 저거 빨리 뺏어!]건물 안은 그야말로 전쟁으로 한창이었다.
그야 당연한 일.
국세청의 압수수색이 막 시작된 참이었으니까.
행정의 처리에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박영섭 일가는 국세청의 압수수색이 시작되기 전까지 여러 가지 일을 진행했다.
일부 서류를 파쇄한다거나, 빼돌린다거나, 없애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워낙 촉박했고, 또 모든 서류를 무작위로 파쇄하는 것 역시 엄청난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해내지는 못했다.
그것은 곧 국세청 공무원들이 도착하는 순간까지도 은닉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
그렇기에 건물 내부는 직원들과 국세청 직원들의 전쟁으로 한창이었다.
‘뭐지…? 무슨 일이지…?’
안내데스크에 안내 직원이 없었기에, 조기문은 한창 바쁘게 움직이는 30대 직원 하나를 불렀다.
“저기요.”
당연한 일이지만, 30대 직원은 조기문의 말을 듣지 못했는지 빠르게 자신의 갈 길을 갔다.
‘뭐야….’
괜히 기분이 나빠진 조기문은 이번엔 30대 후반의 직원을 불렀다.
“저기요!”
마찬가지로 그 직원도 자신의 갈 길을 가기에 바빴다.
“저기요!”
이번에 부른 것은 20대 중반의 직원.
딱 봐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했거나, 전문대를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직원임이 분명했다.
“예, 예?”
확실히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어수룩한 느낌이 가득하게 대답하는 직원.
그렇기에 조기문은 질문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저기…, 지금 여기 무슨 일이에요?”
“네? 아…, 지금 국세청에서 사람들이 와서…,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수룩한 직원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황급히 말을 흐렸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국세청’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사실상 전부 말한 거나 다름없었다.
“국세청…? 국세청이 왜요?”
“아,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튼 수고하세요.”
빠르게 자신이 갈 길을 가려는 직원의 모습에 조기문은 다급하게 자신의 진짜 용건을 꺼냈다.
“자, 잠깐만요! 여기 혹시 영섭이 형 있나요?”
“영섭이 형이요…?”
“네, 여기 회장님 아들이라던데….”
“아, 아! 네, 있어요. 그런데 무슨 사이세요?”
“학교 후배예요. 영섭이 형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학교 후배라는 말, 그리고 누가 봐도 대학생처럼 보이는 조기문의 외모.
그렇기에 직원의 경계심이 조금 허물어졌다.
“아, 그러셨구나. 그러면, 엘리베이터 타고 8층으로 올라가세요. 비서실인데 아마 거기에 계실 거예요.”
“아, 감사합니다!”
국세청 직원들이 이곳에 있든 없든 조기문에게는 상관없는 일.
그렇기에 조기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으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이미 국세청 공무원들과 직원들로 인해 연신 만석인 상황.
그렇기에 조기문은 8층 계단을 뛰듯이 올라 비서실에 도착했다.
“후우, 후우.”
8층은 높은 층은 아니지만, 그래도 빠르게 뛰면 확실히 숨은 조금 차는 높이.
그렇기에 조기문은 숨을 고르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 박영섭을 찾았다.
“아, 형!”
박영섭을 발견한 조기문이 반색을 하며 박영섭을 향해 뛰었다.
박영섭이 금수저인지 아닌지에 관해서는 아직 조기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기문은 한빛에 취직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한 상황이었으니까.
“형! 형! 영섭이 형!”
박영섭이 자신을 눈치채지 못하자, 조기문은 연신 박영섭을 부르며 박영섭 가까이로 향했다.
“어, 어, 응?!”
한창 은닉할 서류를 고르던 박영섭은 반갑지 않은 손님의 등장에 심히 당황하며 뜨악한 표정으로 조기문을 바라보았다.
“형, 못 들었어요? 계속 불렀잖아요.”
“어? 아…, 아니, 내가 지금 좀 바빠서….”
박영섭은 어떻게든 조기문을 돌려보내고 싶었다.
지금 대화하고 있는 시간 1분 1초가 낭비로 느껴졌으니까.
하지만, 조기문 역시 박영섭과 대화를 나눠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형, 제가 형을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요? 열흘이나 찾아다녔어요.”
“뭐? 왜?”
세상이란 게, 원래 급할 때일수록 상대가 본론을 꺼내지 않는다.
박영섭은 상대가 본론을 꺼내 주길 원했지만, 조기문은 조기문대로 박영섭이 너무나 반가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
그리고 이러한 대화는 박영섭이 조기문과의 약속을 잊어버렸다는 증거가 되었다.
만약 기억하고 있었다면, 조기문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게끔 박영섭이 화두를 조절했을 테니까.
“아, 진짜. 매일 형네 집에 가서 형 오는 거 기다렸잖아요. 그리고 며칠 전부터는 아침부터 밤까지는 오지도 않고…. 그나저나 형, 이 회사에서 일해요? 보니까 한빛에 있던 어떤 아저씨는 형이 이 회사 회장 아들이라고 하던데, 아니죠? 그러면 형이 그런 하꼬방에서 살 리가 없지.”
김원효의 말이 절대 아닐 거라 생각하던 조기문은 인턴으로 일하는 박영섭을 김원효가 회장 아들로 착각한 것이라 믿고 킥킥거렸다.
반면, 박영섭은 속으로 경악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차!’
국세청의 압수수색 때문에 경황이 없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박영섭 본인은 흙수저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상황.
그리고 눈앞에 있는 조기문은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녀석이었다.
‘절대로 들키면 안 돼!’
그나마 박영섭은 조기문이 방금 한 말을 떠올리며, 최적의 변명을 생각해냈다.
“다, 당연하지! 나는 그냥 인턴이야.”
청년들의 골수를 빼먹는 인턴 제도는 8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박영섭이 이곳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별로 이상하지 않은 일.
그렇기에 조기문은 ‘역시 그렇구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본론을 꺼냈다.
“이야. 이 회사 외관 되게 괜찮던데, 엄청 부럽네요. 그나저나, 형. 저한테 저번에 한빛에 일자리 소개해 주시기로 하셨잖아요. 그런데, 한빛이 부도났다고 하던데, 그럼 저는 어떻게 해요?”
현재 조기문이 박영섭에게 친근하게 굴 수 있는 이유.
그것은 바로 ‘박영섭이 다른 일자리를 소개해 줄 거야’라는 근거 없는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약 박영섭이 일자리를 소개해 주지 못한다면?
“어? 그, 그게……”
박영섭은 대단히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박영섭은 현재 조기문에게 일자리를 알선해 줄 능력 자체가 없었으니까.
“왜요? 형, 인맥 많잖아요. 저 형만 믿고 휴학계 냈는데, 설마 아무것도 못 해 주신다는 건 아니죠?”
조기문의 말투에 서서히 날이 서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조기문은 박영섭만 믿고 휴학계를 냈는데, 박영섭이 일자리를 주지 못한다면 뒤통수를 맞은 것이 되니까.
“아니, 저…, 그게…, 저기…, 기, 기문아! 내가 나……”
박영섭은 ‘나중에 연락 줄게’라는 말로 일단 조기문을 집으로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운이 없으면 역시 뭘 해도 없는 법이다.
“도련님! 이 문서들 파쇄해도 되겠습니까?”
비서 중 하나가 박영섭을 찾아와 서류가 가득한 상자를 들고는 물었다.
현재 비서실 서류 파쇄의 책임자는 박영섭.
그렇기에 비서가 물어본 것이지만, 타이밍이 너무나 나빴다.
“도련님…?”
조기문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박영섭이 다급하게 변명했다.
“아니, 김 비서님, 그런 별명으로 부르지 말라니까요. 저 인턴인데 계속 그런 별명으로 불려서 박 대리님도 저 놀리잖아요!”
어색하게 외치듯이 말하는 박영섭의 태도에 비서는 빠르게 눈치를 채고는 박영섭의 말에 맞춰 주었다.
“일이 이렇게 바쁜데 가끔 이렇게 농담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나저나 사장님 어디 계시는지 봤어? 보고를 받아야 하는데, 통 어디 계시는지 알아야지.”
“사장님은 지금 아마 6층에 계실 거예요.”
“그래? 고맙다.”
비서의 빠른 눈치로 어떻게든 얼버무릴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애석하게도 불행은 단타로 오는 게 아닌 법.
“박영섭 씨! 당신 아버지 어디 계십니까?”
박영섭을 찾아온 국세청 공무원.
그렇기에 박영섭은 그야말로 식겁한 표정을 지으며 눈알을 굴렸다.
“박영섭 씨! 이 회사 회장님 어디 계시냐고요!”
“회장님…?”
조기문이 비서와 공무원을 번갈아 바라보며 혼란에 빠진 표정을 지었다.
“박영섭 씨! 박 회장님 어디 계시냐고요!”
공무원의 일갈에 조기문이 공무원에게 물었다.
“아저씨, 영섭이 형 아버지가 이 회사 회장님이에요?”
“예? 아니, 당연한 걸 왜 물어요? 박영섭 씨가 이 회사 도련님이잖아요.”
개인정보 보호법은 2011년에 발효되었기 때문에, 1989년의 공무원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아주 자유로웠다.
그 덕분에 조기문은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박영섭은 더 이상 변명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6층에 계세요….”
공무원에게 거짓말을 했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올지 몰랐기에 박영섭은 일단 진실을 알려 주었다.
“아, 그리고 이 서류는 제가 가져갑니다.”
비서가 들고 있던 서류도 그대로 압수한 공무원은 자신의 갈 길을 향했다.
사실 압수수색 중에 서류 파쇄 같은 걸 하는 건 201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영상 장비가 부족한 이 시대에는 이렇게 대놓고 파쇄를 해놓고 ‘증거 있음?’이라고 우길 수도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와이케이에서 대놓고 표적 압수수색을 들어왔는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은 것 아니겠는가?
“으으윽…, 죄송합니다. 도련님.”
비서는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는 사죄를 하며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자리에 남은 것은 박영섭과 조기문, 두 사람.
물론, 주변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둘의 주변은 마치 침묵에 잠긴 듯했다.
“형, 이 회사 회장님이 형 아버지 맞죠?”
“으응….”
박영섭의 대답에 조기문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한빛은 부도가 난 것도 맞죠?”
“그렇지….”
“그러면, 제 일자리는요?”
“…….”
“하아…….”
조기문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형, 저 이 회사에 취직시켜 줘요.”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너도 상황을 보면 알겠지만…. 조금만 기다리면 내가……”
조기문은 박영섭의 말을 잘랐다.
“그럼, 돈이라도 줘요. 아니, 빌려줘요. 형이 일자리 소개해 주면, 거기에서 번 돈으로 갚을 테니까.”
조기문은 정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양보를 했다.
당장 돈이라도 구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조기문의 상황이었으니까.
하지만, 박영섭은 현재 그럴 능력이 없었다.
집안의 통장이 모두 정지당한 상황인데, 어디서 돈을 구하겠는가.
“영섭아, 진짜 조금만 기다려 봐. 조금만 기다리면……”
계속해서 변명하는 박영섭의 모습에 조기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아, 형! 저 형만 믿고 휴학계 냈는데 이렇게 되면 저 보고 어쩌라고요! 당장 최윤기 회장 자퇴해서 등록금 공약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형까지 이러면 저 보고 어떡하라고요!”
조기문의 이러한 짜증에 마침내 박영섭도 꼭지가 돌았다.
평상시 박영섭이었다면 어떻게든 연기를 했겠지만, 박영섭은 지금 정신이 극한에 몰린 상황이었기에 조기문을 보듬어 줄 여유가 없었다.
“야 이, 시발아! 내가 지금 할 수 있는데 안 해 주는 거냐?! 지금 나도 급하다고! 여기 상황 안 보여? 누구 신경 써 줄 수 있을 거 같아? 제발 눈치 좀 챙겨! 아, 존나 짜증 나네. 김 비서! 이 새끼 좀 건물 밖으로 쫓아내요!”
눈이 반쯤 돌아간 박영섭의 명령에 김 비서를 비롯한 사람들이 억지로 조기문을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형! 지금 뭐 하는…, 야! 야! 야, 이 새끼야!”
조기문은 건물 밖으로 끌려나가면서 박영섭과 완전히 관계가 틀어졌다.
이후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회사 직원들로 인해 그것마저 불가능해진 상황.
그렇기에 조기문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 내가 이대로 가만있을 줄 알아?’
조기문은 박영섭만 믿고 일을 했다가 엄청난 인생의 손해를 보았다.
이렇게 된 이상 박영섭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노릇.
“아……!”
무언가 깨달은 조기문은, 박영섭이 윤기의 출결에 대해 왜 관심을 가졌는지 추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