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0)
#40화 노가다의 제왕 (1)
윤기는 처음부터 JSD에게 백화점을 만들 것이라는 보고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으니까.
일단 서류를 신청하고 그것이 반려되었을 때 힘을 사용해야지, 처음부터 보고를 하고 일을 진행하는 수순이 되면 추후에 잡아먹힐 가능성만 높아진다.
물론 이 시대에 뇌물 없이 공문서가 처리되기는 힘든 법.
원래라면 정상적인 서류 처리만으로도 상당한 뇌물을 사용해야 했겠지만, 류근태가 윤기에게서 받은 JSD의 명함을 내밀자 말도 안 되는 액수의 뇌물은 ‘하찮은 푼돈’으로 바뀌었다.
더불어서 백화점의 용도 역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백화점의 이사가 다름 아닌 전 미군 대장 거스터의 둘째 아들이었으니까.
[생각 같아서는 맏아들을 이사로 보내 주고 싶은데, 이 녀석은 군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거든. 반면에 둘째 녀석은 단기 복무 후에 일반 기업에서 근무하는 중이었긴 하지만, 내 후광이랑 자기 형의 후광이 있으니 군부에서도 함부로 못 할 거다.]상상 이상의 수확.
거스터의 방계나 친척 정도가 이사로 올 거라 생각했는데, 거스터는 아예 자신의 둘째 아들을 이사로 보내 준 것이다.
물론, 그 대가로 거스터의 손녀인 메릴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몇 곡 해 줘야 했지만, 얻은 것에 비하면 대가라고 하기도 뭣한 수준이었다.
[메릴이 네 바이올린 연주를 좋아해서 말이야. 종종 너에게 연주를 부탁해도 되겠지? 종종이라고는 해도 메릴이 방학일 때 한두 번 정도일 게야.]메릴은 한국 기준 17살의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직까지 부끄러움을 버리지 못했는지 거스터의 뒤에 자신의 몸을 숨겼다.
더불어서 윤기 역시 메릴이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회귀 전에야 여자랑 전혀 연관이 없는 삶을 살았지만, 현생에서는 많은 이성의 호감을 받는 인생을 살고 있었으니까.
‘호의를 이용해 먹을 생각은 없지만, 내가 지금 연애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네.’
아쉬운 마음을 담은 바이올린 연주가 통한 것인지 메릴의 호감은 유지되는 듯 보였고, 거스터와의 만남도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메릴 귀엽지 않냐?>
방 안에서 최덕배는 매트리스에 누워 있는 윤기를 향해 운을 띄웠다.
그러자 윤기는 짐짓 최덕배를 경멸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그런 의도로 말을 한 게 아니잖아!>
“흠……, 지금까지 한 망언들을 생각해 보면…….”
쓰……, 너 지금 선 넘는 거 알지?>
“알았어요. 알았어.”
아무튼, 예쁘냐, 안 예쁘냐?>
최덕배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쁘기야 하죠. 그런데 지금의 저는 몸이 두 개이길 바랄 정도로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다른 일에 투자할 여력이 없어요.”
그렇기야 하지. 더군다나 메릴이 한국에서 너와 접점을 가질 방법도 없고.>
나이를 따져봤을 때 중학교는 물론이고 고등학교도 같이 다니는 것이 불가능하다.
더불어서 윤기는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할 예정이기 때문에 사실상 윤기의 학창 시절 동안 메릴이 윤기와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잘해야 윤기가 대학을 입학한 후?
그때까지 메릴이 윤기에 대한 소녀의 호감을 유지한다면 그거대로 좋은 일이고, 그게 아니라 하더라도 백화점 사업이 일단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한다면 거스터 역시 사업적인 관점만으로도 이쪽을 도와줄 테니 별로 걱정할 건 없었다.
도둑놈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돈을 써댔는데도 이성의 호감을 못 샀는데, 넌 가만히 있어도 이성의 호감을 사는 걸 보면 참 재밌어. 연애하고 싶어도 못 하는 놈이랑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놈이라니.>
“도둑놈이 그랬어요?”
그래. 도둑놈 외모는 사실 정말 평범하잖냐. 아마 거기서 좀만 더 못생겼어도 네 부모가 유전자 검사를 했을 거야.>
“전생의 그놈이 운을 타고 나긴 했나 보네요.”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네.>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윤기와 최덕배의 대화.
그것은 조만간 외할아버지가 오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요한 부탁을 위해 기다리는 만큼 어느 정도의 긴장 해소가 필요했으니까.
똑똑똑!
“윤기야, 할아비가 왔는데 얼굴도 안 비추는 거냐?”
콜슨 준장의 목소리에 윤기가 퍼뜩 정신을 차리며 방문을 왈칵 열고는 외할아버지에게 안겼다.
“죄송해요. 잠시 생각을 하고 있느라고 오시는 소리를 못 들었어요.”
그러자 콜슨 준장이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벌써 이 할아비가 지겨워졌나 했지. 그나저나 무슨 부탁을 하고 싶다는 거냐?”
원래 윤기는 본인이 찾아가겠다고 했지만, 콜슨 준장은 자신이 직접 오겠다고 우겼다. 요즘은 윤기 말고도 다른 경사가 있었으니까.
“아, 방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안 될 이유가 없지.”
콜슨 준장은 방문을 닫고는 윤기의 책상 의자에 앉았고, 윤기는 침대 매트리스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래, 무슨 일이냐?”
“다른 게 아니라 최근 광주에서 큰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걸 네가 어떻게……?”
현재 날짜는 5월 19일.
광주 민주화 항쟁이 벌어진 지 24시간이 지난 상황이었다.
“JSD 대령이 다른 군인과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어요.”
“흐음, 네가 워낙 친근하다 보니 그런 실수를 했나 보구나. 그런데 그것과 관련해서 네가 하고 싶은 부탁이 무엇이냐? 딱히 떠오르질 않는데……?”
윤기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혹시 지금 상황들을 밑의 부하들을 시켜서 계엄군의 행위들을 촬영해 주실 수 있나요?”
“촬영을 해달라고?”
“네. 제 생각으로는 이건 신군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거예요.”
윤기는 콜슨 준장을 설득하기 위해 속마음과 다른 이유를 들었다.
사실 윤기가 지금 콜슨 준장에게 사진을 부탁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람이 가진 최소한의 양심 때문.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알면서도 그냥 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예상 시나리오를 그려봐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JSD에게 이번 일을 막아 달라고 부탁한다?
정보야 외할아버지한테 얻었다고 둘러대더라도 JSD는 이때 이인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건의를 할 깜냥이 없었다.
더불어서 애초에 JD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말을 할 인물도 아니고 말이다.
그렇다면 JD에게 부탁한다?
현재 JD와의 접점이 전혀 없는 상황인 데다가, JD가 정권을 잡은 지금 JD를 설득하려면 콜슨 준장이 아니라 최하 거스터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거스터도 어디까지나 만남 정도나 가능한 거지, 전 미군 대장이 타국의 정점에 이래라저래라하는 것은 내정 간섭인지라 거스터가 도와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백화점 사업이야 서로의 이해가 일치했다지만 이번 광주에서 일어난 일은 거스터에게 있어서 일절 상관이 없는 일이었으니까.
더불어서 최덕배의 조언 역시 생각 없이 영향을 주는 것을 막았다.
너는 전생의 지식이 많은 편이 아니라 잘 모르겠지만, 광주에서 벌어진 항쟁은 하루로 끝나는 게 아니라 꾸준히 지속되다가 추후 1987년에 벌어지는 6월 민주 항쟁으로 완성이 돼. 네가 만약 여기서 어중간하게 영향을 준다? 그랬다가는 6월 민주 항쟁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 독재 정권이 장기화되는 사태가 벌어져서 계속 신군부에 뇌물을 바치는 상황을 맞이하고 싶어?>
윤기는 신군부의 힘을 이용해먹을 생각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신군부를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라 ‘돌발 상황’을 막기 위해 연줄을 만들어 둘 뿐이었다.
넌 이제 겨우 13살이야. 설사 네가 이 시점의 JD가 된다고 해도 독재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이상 이번 일은 절대로 막을 수 없어. 그런데 JD가 독재를 포기하겠냐? 이 사건은 네가 미래를 알고 있었건 없었건 애초에 손을 떠난 사건이자, 역사의 흐름이야. 그러니까 미련 가지지 마. 그리고 네가 잘못되면 내 제사…….>
최덕배와의 대화를 상념하고 있던 윤기의 귀로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기야, 윤기야!”
약간 높은 목소리에 윤기는 정신이 퍼뜩 들며 눈을 몇 번 크게 끔뻑였다.
“왜 말을 하다가 입을 다무는 거냐?”
“아……, 죄송해요. 요새 좀 피곤했나 봐요.”
그러자 콜슨 준장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윤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무 과로하지 마라. 네가 열심히 사는 건, 이 할아비도 잘 알고 있지만, 넌 아직 놀아도 될 나이야.”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부드럽게 미소를 지은 윤기가 말을 이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이 상황은 신군부의 아킬레스건이 될 거예요. 왜냐하면, 집권자의 민간인 학살은 오점으로 남으면 남았지, 절대 장점이 될 수 없거든요.”
“하긴, 너에게만 하는 말이지만, 미국 쪽에서도 너와 비슷한 판단이란다. 이번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JD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판단이니까.”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부탁드리는 거예요. JD를 막는 게 아니라, 이번 일들로 벌어지는 상황들을 사진으로 찍어 주세요. 만약 JD가 나중에 실각하게 된다면, 그 자료들을 통해서 JD가 실각할 때까지 들어간 돈들을 꽤 회수할 수 있을 테니까요. 잘만 하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고요.”
“만약 JD가 실각하지 않는다면?”
“영원한 독재자는 존재할 수 없잖아요?”
잠시 생각하던 콜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은 아니지. 많이는 못 보내고 3~4명 정도 보내 보마. 내일 아침 중으로 내 부하들이 출발할 게야.”
“고맙습니다!”
윤기는 할아버지에게 안기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시대는 군부한테 밉보이면 모든 것을 빼앗기는 시대야. 재산도, 가족도, 본인의 생명도. 군부, 너희들의 힘이 떨어지는 순간 내가 너희들의 등에 칼을 꽂아 주마.’
어렸을 때 서재에서 할아버지가 군부 사람들에게 허리를 숙이던 모습을 떠올린 윤기는 조용히 이를 갈았다.
“아무튼, 이야기가 다 된 것 같으니 이만 나가자꾸나.”
콜슨 준장은 기대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했다.
“얘기는 다 끝나셨어요?”
세 살 정도 된 아이를 안고 있는 윤기의 엄마, 박연지의 모습.
“그래, 정아는 잘 자라고 있지?”
“그럼요. 보세요.”
맑은 피부에 풍성한 머리숱을 가지고 있는 윤기의 동생 최정아의 모습.
콜슨 준장은 외손녀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다가, 이내 주변을 둘러보고는 딸을 향해 물었다.
“사돈이랑 사위는 요즘도 바쁘냐?”
박연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요새 거의 회사에서 살다시피 해요. 정아 보고 싶다고 아버님이나 남편이나 아주 난리라니까요.”
시국이 시국이었지만, 아직 아기인 윤기의 여동생은 엄마의 품에 안겨 근심 하나 없이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진짜 시간이 엄청나게 빠르구나…….’
순수 그 자체인 여동생의 얼굴을 바라보며 윤기는 새삼 세월의 흐름을 체감했다.
어머니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된 것이 벌써 3년 전.
재작년 여동생이 태어났고, 작년에는 여동생의 돌잔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들을 자각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윤기는 바쁜 일상들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벌써 13살이라니, 12년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잘 생각하지 않으면 자각도 안 되는 거 같아. 하지만, 쓸데없이 길게 느껴졌던 옛날의 인생보다는 지금이 훨씬 더 행복해.’
저절로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
“안아 봐도 되겠니?”
외할아버지의 말에 정신을 차린 윤기가 다시 가족들을 바라보았다.
손녀딸을 안고 싶어 하는 외할아버지의 모습.
“그럼요. 얘는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몰라요. 윤기랑은 다른 방식으로 부모를 생각해 준다니까요.”
손녀를 건네받은 콜슨 준장이 따스한 미소로 손녀를 바라보았다.
“윤기가 너를 닮아서 손녀가 태어나면 네 남편을 닮을까 봐 걱정했는데, 둘 다 너를 닮아서 정말 다행이야.”
콜슨의 말에 윤기는 물론이고 박연지와 가정부들까지 입을 가리며 웃음을 참았다.
‘아버지 닮은 여동생이라……, 적어도 엄한 놈이 채갈 일은 없을 것 같네.’
지금의 여동생도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어쩐지 그런 세계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 윤기였다.
* * *
80년 7월.
마침내 공사가 시작되었다.
겨울에는 공사가 힘들기 때문에 더 미뤘다가는 공사 자체를 내년으로 미뤄야 할 가능성이 높았고, 절차상 승인이 떨어진 이상 꾸물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 빨리빨리 움직여! 겨울 오기 전에 최대한 끝내 놔야 해!]잡부 반장들의 외침이 현장 곳곳에 울려 퍼지고, 여름 땅바닥에 현장 인부들의 비지땀이 쏟아져 내렸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도 공사 현장에서 일하려는 희망자는 많았고, 게 중에는 일하고자 했지만 줄 서는 게 늦어 손가락만 쪽쪽 빠는 경우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오중선 일행.
최철민에게 공사 현장을 뭉개 버리라는 의뢰를 받은 지 오래되었지만, 오중선은 끈기 있게 ‘그날’을 기다렸고, 마침내 청계천에서 이루어지는 공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 이거 새벽에 발견했으면 일할 수 있었을 텐데요.”
패거리 동생 중 하나의 말에 오중선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한 2주 있다가 진입하자.”
“2주나 있다가요?”
“어. 지금 당장 들어가 봤자 토대 다지거나 그런 것만 실컷 할 거 아냐. 굳이 그럴 때 힘 뺄 거 없어.”
“그럼요?”
“그러니까 2주 뒤에 들어가자고. 그리고 공사 시작하자마자 우리가 들어가면 괜한 의심을 살 수도 있어.”
“왜요?”
오중선이 패거리 동생의 뒤통수를 강하게 후렸다.
딱!
“윽!”
“얀마, 예전에 우리가 우리 받아 달라고 사정사정했었는데, 공사 현장 시작되자마자 나타나 봐. 누가 봐도 ‘얘네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나타나지?’라고 생각하지. 우리 얼굴 잊어먹었을 수도 있지만, 괜히 위험부담 가지느니 좀 늦게 가는 게 훨씬 낫다고.”
뒤통수를 맞은 동생은 뒤통수를 문지르면서도 비굴한 웃음을 흘렸다.
“에헤헤……, 역시 형님이십니다요. 그나저나 이번 일 잘만 성사되면 정말 형님 말처럼 되는 겁니까?”
오중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너희들 한 사람한테 명당 50석짜리 룸살롱은 무조건 떨어질걸?”
스스로는 500석짜리 룸살롱 열 개를 뜯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오중선은 이러한 보상에 대한 얘기는 동생들에게 최대한 숨기고 있었다.
“크으, 역시 형님. 저희는 그저 형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나만 따라와. 이번 일만 잘되면, 우리 이제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마담들 허벅지나 만지면 되는 거야.”
오중선의 속마음을 꿈에도 모르는 패거리들은 오중선의 말을 들으며 꿈 같은 미래를 상상했다.
그리고 잠시 뒤, 패거리 중 하나가 질문을 던져왔다.
“그런데 형님, 어떻게 공사 현장을 박살 낼 생각이십니까?”
“그 호구가 그랬잖아. 공사 현장을 박살 내는 게 아니라, 공사 그 자체를 박살 내면 되는 거라고.”
“그게 무슨 의미인데요?”
오중선이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나중에 그 건물이 붕괴되게끔 만드는 거지.”
“예? 그게 가능해요?”
오중선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얀마, 뭐가 어려워. 그냥 콘크리트에 불순물들 섞으면 되는 거야. 섞는 것도 대충 섞고, 색깔도 좀 연하게 하고. 그런 것을 건물 곳곳에 해두면 문제없다니까? 그리고 나중에 내부 인테리어 때 몰래 부식시키는 물질도 좀 뿌리고 하면 몇 년 안에 분명히 무너져.”
설명을 들은 패거리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캬, 역시 형님이십니다.]모두가 감탄하고 2주.
오중선 일행은 수백이 넘어가는 일용직 잡부들 틈에 끼어 공사장에 진입하는 데에 성공했다.
* * *
8월.
더욱 더워지는 열기 속에서도 공사는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윤기의 지시로 거의 무한히 보급되는 쭈쭈바 덕에 인부들은 그래도 꽤 만족을 하며 건설에 열심이었고, 덕분에 백화점은 빠르게 지어지고 있었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인부들은 윤기가 아닌 윤기의 옆에 있는 류근태에게 고개를 숙인 뒤,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대내적으로는 윤기가 류근태의 상사이지만, 대외적으로 이 백화점의 사장은 바로 류근태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직 비성실세를 통해 얻을 이익이 훨씬 많았으니까.
‘쭈쭈바 가격 얼마 하지도 않는 걸로 인부들의 충성심이 확 끌어지네.’
류근태는 윤기의 지시에 감탄하면서도 윤기가 공사장을 잘 둘러볼 수 있도록 천천히, 그리고 곳곳을 걸었다.
덕분에 윤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의 것’이 아닌 ‘내 것’이 건설되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윤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여기……, 뭔가 이상한데?’
노가다 인생 25년의 촉이 발동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