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노가다의 제왕 (2)
‘여기……, 분명 콘크리트에다가 뭔 짓을 했어.’
노가다에서 잡부로 대부분의 인생을 보내긴 했지만, 오랜 기간 다른 인부들과 교류하면서 귀로 배운 것도 많았다.
그런 만큼 윤기는 자신이 지금 보고 있는 콘크리트가 추후 반드시 어떠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빠득
기껏 야심차게 공사를 진행했는데 ‘누가 봐도 고의적으로 망친’ 콘크리트를 보는 순간 이가 갈렸다.
‘누가 시켰는지 만큼은 너무나 뻔하네.’
현재 제정신을 가진 인물이라면 이 공사장에 이딴 짓을 사주할 수는 없다.
조금만 정보통을 움직여 봐도 최철규와 JSD의 관계를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는 것은 정보통은 거의 없는 인물의 사주라는 뜻.
‘작은아버……, 아니, 최철민, 넌 선을 넘었어.’
할아버지 앞에서 땡깡 피우는 거야 무시해 줄 수 있다.
자기 호의를 받아 주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는 것도 무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거꾸러뜨리려 하는 것만큼은 도저히 참아 줄 수 없다.
‘후우.’
일단 윤기는 끓어오르는 속을 가라앉히며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부들에게 격려의 말을 하던 류근태가 티 나지 않게 말을 마무리했다.
“지금처럼만 열심히 해 주면, 적어도 먹는 거 가지고는 섭섭하게 하지 않을 테니까. 다들 열심히 하라고. 알았지?”
목청껏 대답하는 해당 구간 인부들의 외침을 뒤로한 채 류근태와 윤기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날.
윤기는 여러 곳에서 이상 징후를 보이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 * *
“사장님, 말씀하신 백화점 설계도입니다.”
김정선의 건설 사무소.
하지만 류근태가 사장님이라 부른 것은 김정선이 아니라 윤기였다.
“펼쳐보세요.”
응접 테이블 위를 꽉 채운 큼직한 지도.
지하 2층, 지상 7층을 목표로 하는 프리미엄 백화점의 1층 설계도가 윤기와 김정선, 그리고 류근태와 최철규의 앞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찌익 찌익 찌이익!
밤 10시의 어두운 시각, 형광등 밑에서 윤기가 매직으로 설계도 곳곳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김 사장님, 지금 동그라미 친 곳 보이시죠?”
“예, 그렇습니다.”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는 김정선을 바라보며 윤기가 눈을 마주치며 묵직하게 말했다.
“작업 일지하고 대조해서 여기를 누가 작업했는지 알아내세요. 잡부 반장부터 시작해서 잡부들까지 전부요.”
“알겠습니다. 혹시 그곳에 문제가 있나요?”
김정선의 안색 역시 딱딱하게 굳었다.
눈앞에 있는 이 ‘작은 사장님’이 괜히 이런 것을 시킬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네, 아주 큰 문제가 있어요. 하지만, 지적은 하지 말고 알아내기만 하세요. 그리고 일지랑 일치하는 녀석들을 특정 장소에서 일을 시키세요.”
“색출은 하되, 대놓고 적발은 하지 말라는 말씀이시죠?”
“맞아요. 일단 증거를 모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건 제가 먼저 체크했어야 하는데…….”
“아니에요. 현재 예산이 넉넉한 편이 아니라서 그만큼 바쁠 테니까요. 이런 건 제가 얼마든지 도울 수 있어요.”
현재 지어지고 있는 백화점은 분명 프리미엄 백화점이기는 했지만, 현대의 백화점에 비해서는 확실히 규모가 작고, 시공법에 있어서도 손이 덜 갔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들어가는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하루 투입 인부 숫자 450명 이상.
이 시대 노가다 잡부 임금이 만오천 원 선이었는데, 450명을 전부 잡부로 계산해도 하루에 약 700만 원의 비용이 소모되었다.
여기에 자재비와 장비 임대비의 합이 인건비보다 근소하게 높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하루 소모 비용은 1,500만 원에 달했다.
현대 기준으로 하루 공사비용은 대략 7천만 원.
그나마 윤기가 사전에 토지를 싸게 매입해 놔서 다행이지, 백화점 부지를 선정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면 토지비용 역시 엄청나게 들었을 것이 뻔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장님, 이게 빨리 처리되지 않으면 문제가…….”
김정선이 말을 흐리자 류근태가 그 말을 이어받았다.
“사장님, 이 부분을 재공사해야 한다고 치면, 현재 자본 운용에 차질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상당히 빡빡한 상황인데, 경우에 따라서는 공사를 잠시 휴식하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 윤기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얻은 배당금은 40만 달러가 조금 넘는다.
한화로 2억 6천만 원이 조금 넘는 돈.
원래대로 따지자면 공사를 20일도 유지하기가 힘든 액수다.
그만큼 백화점을 짓는 데에 들어가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하니까.
그래도 윤기가 기존에 서울 알싸라기 땅들만 저가에 매입해 둔 결과, 해당 토지에 지어진 건물들에게서 상당한 임대 수익을 거두고 있었고, 돈을 굴려놓았기 때문에 그래도 9월 말까지는 공사를 할 여력이 있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분 방어가 절실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일단은 진행하세요. 어차피 이곳을 재공사한다 해도 9월 말까지 운용 가능한 공사가 9월 중순 정도로 줄어드는 정도잖아요? 그건 제가 어떻게든 할 수 있어요.”
“알겠습니다.”
주인에 대한 의심이 없었기에 류근태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건설 사무소에서의 4인 회의는 끝이 났다.
백화점 공사가 생각보다 돈이 엄청나게 드는구먼.>
“솔직히 말해서 저도 좀 놀랐어요.”
불을 끈 윤기의 방에서는 최덕배의 푸르스름한 모습만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너는 그 방면의 프로 아니었냐?>
“그냥 현장의 숙련자에 가깝지 실제로 지어 본 것은 아니니까요. 그나마 공부를 하지 않고 막연한 기억으로만 지금의 인생을 살아왔다면 전 말 그대로 파산했을 것 같네요.”
그나저나 나머지 비용들은 어떻게 준비할 거냐? 9월 말에 공사가 스톱되면 거기서 뭘 어쩌게? 그냥 내년에 배당금 받으면 그동안 모인 임대료랑 합쳐서 공사 다시 진행하려고?>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야, 너 지금 얼굴 표정 진짜 무서워…….>
귀신조차 무서워하는 윤기의 표정.
빠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윤기가 서슬 퍼렇게 입을 열었다.
“작은아버지가 내게 만들어야겠죠.”
* * *
“꺼억-!”
패거리 동생 중 한 명이 배를 두들기며 허공에 트름을 쏟아 냈다.
이러한 광경은 비단 오중선 패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윤기의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대부분의 모습이었다.
“여기가 일급은 조금 짜긴 한데, 밥만큼은 진짜 인정해야 할 거 같아요.”
말을 들은 오중선이 쯧 소리를 내면서도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이 공사장 함바집 음식은 맛이 있었으니까.
윤기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아슬아슬한 선에서 임금을 맞췄고, 대신 다른 부분에서 매력적인 부분을 만들어 냈다.
물론 돈 그 자체를 원하는 인부들은 하루 일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도 했지만, 따뜻한 밥을 원하는 인부들은 이곳 공사장에 자리 잡은 것이다.
이것은 건설 사무소 측에서도 좋은 일이었고, 인부들에게서도 좋은 일이었으며, 오중선 패거리들한테도 좋은 일이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사람이 잘 안 바뀌어서 좋네요. 우리가 계속 몰려다닐 수 있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무튼, 오늘도 계속 똑같이. 알았어?”
오중선의 말에 패거리들이 지금까지 이 공사장에서 해왔던 작업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콘크리트를 티가 잘 나지 않게 망치고, 이미 시공이 완료된 곳에 부식성 물질들을 뿌린다.
물론 추후 점검이 이루어지면 대부분 들키겠지만, 오중선은 해당 업무를 하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뿌릴 작정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믿었다.
‘500석 룸 10개랑 비교하면 남는 장사지.’
콧노래까지 부르며 공사를 망치고 있는 오중선 일행은 자신들이 들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작업 구역은 조별로 나누어져 있었고, 덕분에 보안 엄수가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이들은 세상에 귀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끝났네.>
심증이 확신으로 바뀐 순간, 최덕배는 오중선 패거리의 미래를 확신했다.
* * *
이 시대는 뇌물을 쓰지 않으면 공사가 이루어지기 굉장히 힘들었다.
현대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서민들이 훨씬 더 체감하기 쉬웠다고 해야 할까?
당장 근처에 경찰이 어슬렁거리며 잡부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심한 경우 사무소의 직원들을 심심풀이로 경찰서로 연행하곤 했다.
관공서의 공무원들 역시 마찬가지.
자신들이 허락을 해 줬음에도 불구하고 툭하면 와서 규정 미준수 운운해가며 그날 술값을 따냈다.
공무원과 경찰이 이럴진대, 근처에 있는 조폭들은 어련할까.
조폭들을 비롯한 시정잡배들 역시 툭하면 각목을 들고 찾아와 치안 비용을 운운하며 돈을 뜯어 갔으니 이러한 손해는 고스란히 잡부들의 일급과 하청들에게 전가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윤기의 공사장은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만큼은 잘 줬다.
당장 한여름에 쭈쭈바 하나씩 입에 물고 일하는 인부들의 표정에는 ‘그래도 살 만하다’라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으니까.
이것은 오중선 패거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배은망덕한 일을 하는 주제에 쭈쭈바를 쪽쪽 빨고 있는 모습은 공중에서 구경하고 있는 최덕배로 하여금 혀를 차게 만들었다.
최후의 만찬이 되겠구나, 이 녀석들.>
아니나 다를까.
군복을 입은 험상궂은 군인 열 명이 공사장에 나타나더니 오중선 일행이 시공하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철컥 철컥!
심지어 단독 군장까지 하고 있어서 걸을 때마다 등에 멘 총기에서 쇳소리가 울려 퍼졌고, 이는 현재 공사장에 있는 인원들에게 공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끌고 가!”
다이아몬드 3개가 빛나는 대위의 목 핏줄이 손가락 굵기만큼 굵어졌고, 동시에 목소리가 공사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야말로 올 스톱.
시야가 닿는 인부들은 고개를 돌렸고, 닿지 않는 인부들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나타났다.
“뭐, 뭡니까?”
오중선의 말에 대위가 곧바로 오중선의 뺨을 후려갈겼다.
“이 자식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콘크리트에 불순물을 섞어?”
순간 오중선은 눈앞이 아찔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들킨 거지?’
오중선은 패거리 동생들을 바라보았지만, 동생들 역시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 오해십니다. 저희는 그런 짓을…….”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오중선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다 피를 토하듯이 내뱉었다.
단순한 싸대기였을 뿐인데 한 움큼의 피와 이 조각들이 섞였고, 덕분에 오중선은 더 이상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여기 공사 일지를 보면 너희들이 시공한 장소만 골라서 콘크리트를 비롯한 곳에 문제가 생겼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너와 네 뒤에 있는 새끼들은 한미 동맹의 붕괴를 시도한 빨갱이 새끼들이다. 끌고 가!”
오중선은 순간적으로 오줌을 지렸다.
‘빠, 빨갱이?’
하지만 입안이 헝크러져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저 빨갱이 아닙니다. 저 빨갱이 아니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