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2)
#42화 분재 가지는 잘린다 (1)
오중선의 외침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패거리들의 외침은 똑똑히 들렸다.
[저희 빨갱이 아닙니다! 아니에요! 오해입니다! 다 저 새끼가 시킨 거예요!]80년대까지만 해도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운이 좋아야 반병신, 운이 나쁘면 죽기까지 했다.
그런 만큼 오중선의 패거리들은 무언가 엄청난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하고는 바로 오중선을 버렸다.
그들이 똘똘 뭉친 건 우정 때문이 아니라 서로 뭉치는 게 이득이었기 때문이니까.
“시끄러워! 끌고 가! 새끼들아, 빨리 안 움직여?”
대위가 옆에 있던 중위의 정강이를 군홧발로 걷어찼고, 이는 내리 갈굼으로 휘하 병사들에게까지 이어졌으며, 종래에는 오중선 패거리에게까지 이어졌다.
“끄악!”
“아악!”
소총 개머리판으로 머리, 몸통 할 것 없이 구타를 당한 오중선 패거리들은 그야말로 곤죽이 되고 나서야 다리를 붙잡힌 채 땅에 상체를 끌며 끌려 나갔다.
그 모습은 작업을 하던 인부들에게 그야말로 공포였지만, 김정선이 빠르게 나타나면서 공포의 불길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자, 자! 다른 사람들은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지금 우리가 짓고 있는 백화점이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한미 동맹을 위한 백화점이다, 그거지. 그런데 저 녀석들이 무슨 짓을 했느냐? 바로 이 중요한 건물에 불순물을 섞었어. 다들 당장 이 콘크리트를 봐봐!”
인부들은 김정선이 가리킨 작업 중인 콘크리트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자, 여기서 뭐가 나오는지 보라고.”
김정선이 긴 삽으로 아직 굳지 않은 콘크리트를 떠서 땅바닥에 뿌렸고, 삽 머리로 땅에 뿌려진 콘크리트를 파헤쳤다.
그러자 그곳에서는 나뭇가지들을 비롯한 불순물들이 잔뜩 나왔고, 이를 본 인부들은 기겁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일용직으로 근근이 먹고사는 사람들이지만, 최소한 인간성을 버리지는 않았다.
[미친놈들이었네.]이 콘크리트가 미래에 무슨 결과를 불러오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부들은 방금 잡혀간 오중선 패거리에 대한 동정심을 말끔하게 버렸다.
“다들 봤지? 이런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야. 그 부분들에 대한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고. 원래대로라면 거기들 우선 작업해야 해서 한동안 인부 숫자를 반의반의 반으로 줄여야 했는데, 우리 류 사장님이 그러면 기껏 우리 공사장만 믿고 일하는 인부들 힘들다고 동시에 진행하라고 하셨어. 그러니까 다들 힘 좀 내줘. 알았지?”
[예!]당장 이곳이 작업량을 줄이면, 이곳에 온 인부들 중 300명 이상이 한동안 손가락을 빨아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적절한 과장이 들어간 김정선의 말은 인부들의 의욕을 자극했고, 결과적으로는 작업의 효율을 불러왔다.
“마음에 드네요.”
공사장의 사무소 직원용 휴게실에서 윤기가 김정선의 행동을 칭찬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김정선의 연설 모습.
그 주변에 서 있는 인부들 중에서 예전의 자신이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은 윤기였다.
“저렇게 삼촌이 능력이 있으니까 제가 사장님한테 추천을 드릴 수 있었던 거죠.”
“그러게요. 류 비서도 쭈쭈바 하나 어때요?”
“그럴까요?”
군인들에게 끌려가 고문 풀코스를 받게 될 오중선 패거리와는 달리 윤기 일행은 한없이 평화롭기만 했다.
* * *
톡! 톡!
분재에서 쓸모없는 가지들이 잘리며 작은 소리를 냈다.
“철민아.”
아버지의 말에 최철민이 화색을 띠며 입을 열었다.
“예, 아버지!”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분재에 대해 많이 말하지 않았니?”
정말 부드러운 말투.
거의 박연지나 윤기와 대화할 때의 수준으로 부드러운 최기현의 어체는 잘 아는 사람이 본다면 확연한 위화감을 드러냈다.
“예, 덕분에 저도 많이 배웠어요. 집에서도 하나를 기르고 있고요.”
그러나 최철민은 최기현이 어떤 의도인지 생각하지 않고 분재 그 자체에만 집중했다.
“그래, 네가 생각하기에 분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정성이 중요하지요. 죽지 않게 하는 정성 말이에요.”
최기현의 눈과 눈 사이에 세로로 주름이 생겼다.
“아니, 그것 말고 말이다.”
“정성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재차 이어지는 둘째 아들의 말에 최철민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게 아니라 자를 가지를 잘 솎아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쓸모없는 가지는 이렇게 싹둑.”
다시 한번 잘린 가지가 바닥에 떨어지며 툭 소리를 냈다.
“아, 그런 소리도 하셨었죠. 제가 까먹었네요. 헤헤…….”
어색한 웃음을 짓는 최철민의 모습은 어벙해 보일 뿐 남에게 호감을 주지는 않았다.
“하아, 철민아.”
“예?”
“그러니까 이걸 인간 사회로 비교를 해 보자꾸나. 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쓸모없는 가지를 자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니?”
“아버지도 참. 제가 그것도 모를 줄 아세요?”
“깨달은 거냐?”
최기현의 얼굴에 드디어 웃음이 떠오르려고 했다.
저번에 둘째 아들은 ‘쓸모없는 부하를 빨리 내치라는 말씀이시지 않나요?’라는 답을 했고, 당연히 혼났다.
그러니 이번에는 다른 답을 찾아오리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손해를 보는 사업은 빨리 접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허!”
어처구니없어하는 아버지를 보며 최철민이 목을 살짝 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버지, 왜, 왜요?”
결국, 최기현은 들고 있던 분재 가위를 바닥에 던졌다.
딱 소리를 내며 튕긴 분재 가위는 바닥에 한 번 더 튀고는 최철민의 발 앞에 도달했고, 눈치 없는 최철민은 그것을 또 주워서 아버지에게 가져다주었다.
“아버지, 왜 이걸 던지고 그러세요. 뭐,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이런 멍청한 놈아!”
분재를 산 이후로 최기현은 아들인 최철민에게 안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좋게, 꾸준히 이야기하면 이 녀석도 알아먹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드디어 최기현은 아들에 대한 기대감을 정말로 완전히 버렸다.
“아, 아버지. 왜…….”
어안이 벙벙해 하는 최철민을 향해 최기현이 자신의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말로 모르겠는 것이냐? 내가 분재를 산 이유를, 내가 쓸모없는 가지를 자르는 이유를, 그것을 너에게 말해 주는 이유를 말이다!”
“그, 그건 아버지가 저랑 같은 취미를 하시고 싶으셔서…….”
“아니다! 아니라고!”
최기현은 분재를 집어 들고는 바닥에 던졌다.
그러자 우지끈 소리와 함께 분재가 그야말로 박살이 났고, 흙을 잃은 분재가 바닥을 굴렀다.
“헉! 아버지, 그렇게 소중히 아끼시던 분재를 왜…….”
“너는 진짜로 못났다. 진짜로 못났어! 그리고 멍청해! 이놈의 자식아! 내가 자른 가지는 바로 너를 의미하는 것이었어! 너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그게 무슨……, 아니, 아버지, 저를 자른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상황 파악이 잘되지 않는 아들을 향해 최기현이 아예 구체적으로 바라는 바를 이야기했다.
“나는 너에게 절대로 기업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야!”
“아버지!”
폭탄선언을 들은 최철민이 깜짝 놀라 몸을 마치 놀란 새우처럼 세웠다.
“너는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특출난 것이 단 하나도 없어! 너는 철호가 아니면 너한테 차례가 올 줄 아느냐? 너한테 물려주느니 철규에게 그룹을 물려줄 거다!”
“이이익!”
몸을 부들부들 떠는 둘째 아들을 향해 최기현이 절박한 눈을 하며 걸어간 뒤, 어깨에 양손을 올렸다.
“철민아, 정신 차려라. 네가 기업을 물려받아 봤자, 절대 유지할 수 없어. 애초에 형인 철호가 있는데, 왜 그런 헛된 꿈을 가지는 것이냐? 그냥 윤기의 밑으로 들어가거라. 윤기의 밑으로 들어가면 최소한 삼우 물산의 사장 직함은 얻을 수 있을 거야.”
“놓으세요!”
최철민은 아버지의 팔을 거칠게 뿌리치더니 바닥을 한번 쾅 찼다.
“철민아! 이 아비의 진심을 이렇게도 알아주지 않을 생각이냐?”
최기현은 둘째 아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정말 고스란히 드러냈다.
만약 자신이 죽는다면 둘째 아들이 다른 가족들한테 어떤 취급을 받을지 뻔히 보이는 상황.
그렇기에 최기현은 가면을 완전히 벗고 둘째 아들에게 애원하다시피 설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철민은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릴 만큼 지혜롭지 않았다.
“두고 보세요. 저는……, 저는 반드시 그룹을 물려받을 겁니다.”
최철민이 아버지의 말을 끝끝내 거부한 이때, 오중선은 자신의 배후를 말하고 있었다.
* * *
“어지간하면 배후가 누구인지 말하지?”
“저……, 저는, 지, 지, 지짜……, 빠, 빠갱이……, 아, 아니……에요…….”
오중선은 어떻게 해서든 버텨 보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500석 룸살롱 10개라는 꿈은 최철민에게 의뢰를 받은 이후로 오중선의 꿈이자 희망이 되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인들의 고문은 그야말로 악랄한 수준이었다.
자신들이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경찰서에서 전직 프로를 데려와서 사람을 담그는데, 오중선조차도 3일 차에 들어서자 제정신을 못 차릴 정도가 되었으니까.
“이야, 이 녀석 독하네. 이 새끼 진짜 빨갱이 아냐?”
종로 경찰서의 한정수 경위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있던 구로 경찰서의 김경구 경위를 향해 말했다.
“에이, 설마. 그쪽으로는 뒤가 아주 깨끗한 놈인걸?”
“뒤가 깨끗해도 혹시 모르지. 고정간첩일지도.”
재차 이어지는 한정수 경위의 말에 김경구 경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봐. 딱 봐도 이 자식 뭔가 대가 크게 받기로 한 거 같은데, 그냥 우리가 진심으로 해 보자고.”
“에휴, 이 새끼도 참 복 없네. 동생들처럼 빨리 말했으면 그냥 어디 하나 박살 나고 풀려났을 텐데.”
양손에 라텍스 장갑을 낀 한정수와 김경구가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자 오중선은 마침내 까무러치다시피 하며 백기를 들었다.
“제, 제, 제, 제, 배후는 최, 최, 최, 최철미, 민, 입니……다…….”
“방금 최철민이라고 했지?”
한정수의 말에 김경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걸?”
“좋아, 그러면 계속해 보자고.”
실성하기 직전인 와중에 ‘계속한다’라는 말을 들은 오중선이 기겁을 하며 정신을 퍼뜩 차렸다.
“마, 마, 말했지 않, 않습니까!!”
쥐어 짜이는 듯한 비명과도 같은 외침.
하지만 한정수의 입에서 절망적인 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이 진짜인지 지금부터 확인해야지. 안 그래?”
환히 웃는 악마의 모습에 오중선은 자신의 아래에 노란색 웅덩이를 만들었다.
* * *
최기현의 자녀는 5남 3녀로 삼우 중공업의 사장인 최철호부터 시작해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막내딸까지, 직업이 다양했기 때문에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오늘.
시베리아보다도 더 쌀쌀하게 변한 최기현의 저택에서 실로 오랜만에 자녀들을 비롯한 자녀들의 배우자까지 전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형, 도대체 무슨 일이야?”
JSD의 배려로 특박을 나와 있던 최철재가 셋째 형인 최철규를 향해 물었다.
“그럴 일이 있어. 일단은 조용히 해.”
“으응, 미안…….”
아버지는 아직도 서재에서 나오질 않고 있고, 둘째 형과 둘째 형수가 거실에 무릎을 꿇고 석고대죄하고 있는 상황.
모두가 누가 잘못했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짐작조차 못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끼익
서재의 문이 열리며 최기현이 지금까지 보여 준 것 그 이상의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왔다.
“다들 왔느냐.”
아버지 혹은 시아버지, 그리고 장인어른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자리가 부족하니 앉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앉든 서 있든 알아서들 하거라.”
최기현이 상석에 앉자 그 앞에 최철민과 박경자가 무릎을 꿇은 모습이 되었고, 그 주변을 다른 가족들이 둘러싼 형국이 되었다.
“오늘 너희들을 내가 부른 것은.”
최기현이 잠시 말을 자른 뒤, 감정하나 없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오늘부터 내 눈앞의 이 녀석들을 호적에서 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