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21)
#421화 세무 조사는 지겨워 (3)
“혹시 세무 조사로 처리할 계획이니?”
정우호는 바둑판 위에 흰 돌을 두며 윤기를 향해 물었다.
“아뇨, 세무 조사를 하게 되면 해신 그룹에 피해가 가게 되겠죠.”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룹이 박살 나도 전혀 상관이 없어. 어차피 자식한테 물려줄 건 충분하니….”
정우호의 말은 진심이었다.
왜냐하면, 정우호에게는 이전에 JD에게서 빼돌린 수백억에 달하는 재산이 있었으니까.
정서훈과 정난정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기에 건드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사실을 알게 된다더라도 정우호가 그 둘에게 돈을 물려줄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다만, 정우호가 분노하는 이유는 정서훈과 정난정의 태도.
만약 정서훈과 정난정이 새로 태어날 애한테 살가운 반응을 보였다면 정우호는 ‘그래, 얘들이 그래도 완전히 막돼먹지는 않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경영권 자체는 정서훈에게 넘겼을 것이다.
물론, 아내인 최유정과 새로 태어날 자식에게도 어느 정도 지분은 가겠지.
그래도 정서훈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에 대해 이견을 내진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정서훈과 정난정이 새로 태어날 동생에게 명백한 적개심을 보인 데다가, 양아버지를 ‘빨리 죽었으면’이라고까지 표현한 이상, 정서훈과 정난정은 이제 정우호의 명백한 남, 아니 적이었다.
“새로이 태어날 사촌 동생이 해신 그룹을 무난히 물려받게 해야 하지 않겠어요?”
“사촌 동생…? 아, 그렇군, 조카가 아니라 사촌 동생이었지.”
정우호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윤기도 이제 20대.
그런데 정우호와 최유정의 아이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얼핏 생각하면 삼촌과 조카 정도 될 나이 차이였지만, 실제로는 사촌 관계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주책을 떠는 것 같기도 하고….”
“사랑이 있고, 키울 능력이 있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겠어요? 고모부가 하실 일은 이제 오래 사시는 것밖에 없어요.”
“그래, 지금부터라도 보약 같은 것을 잔뜩 먹어야겠어.”
정우호의 다짐에 윤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짜게 드시지 마시고, 맵게 드시지 마시고, 달게 드시지 마시고, 너무 기름진 거 드시지 마시고, 술 드시지 마시고,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세요. 그게 보약보다 훨씬 좋으니까요. 보약도 나이 먹은 사람이 먹으면 독이에요.”
윤기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실제로 보약이란 간과 신장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약을 선호한다.
아주 간단한 이유.
“아니, 그렇게 사는 것보다는 보약을 먹는 게…….”
말을 흐리는 정우호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저었다.
“보약에 들어가는 약초들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효과를 발휘하는 건 아니에요. 때로는 독성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죠. 그러니까 생활 습관을 고치는 게 훨씬 몸에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살면 인생이 너무 재미없지 않을까?”
“밍밍한 맛으로만 먹으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적당히 조절하시라는 거죠. 사촌 동생을 위해서라도 최소 90살까지는 사셔야 하지 않겠어요?”
“으음, 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부터 노력하셔야죠.”
“그래, 네 말이 맞네. 후우, 힘들겠지만, 노력해야지.”
정우호는 어쩐지 맞은편에 최유정이 앉아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순간, 윤기는 바둑판에 검은 돌을 딱 하고 내려놓더니 선언했다.
“자, 이제 끝이에요.”
“응?”
“고모부가 졌어요.”
“에에엥?”
정우호는 많이 채워지긴 했지만, 아직 둘 곳이 나름 남아 있는 바둑판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아직 둘 곳이 많이 남았는데?”
“어떤 방법으로 둬도 못 이기실걸요?”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내가 이길 수 있다니까?”
“그럼, 우리 내기할까요?”
“내기?”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부터 제가 100번까지 무르기 해 드릴 테니까, 한번 이겨 보세요. 만약 제가 지면, 원하사는 거 하나 들어드릴게요.”
100번이나 무르게 해 준다는 말에 정우호가 헛웃음을 지었다.
“너무 자신감이 대단한 거 아니냐?”
“어때요, 해 보실래요?”
“만약, 내가 지면?”
“담배 끊으세요.”
“……!”
80년대에 담배가 몸에 나쁘다는 인식은 그다지 없었다.
그렇기에 정우호 역시 기호품 정도로 애용하고 있던 상황.
“역시 자신 없으시죠?”
윤기의 표현을 조금 강력하게 바꾸면 ‘너 바둑 존나 못 두네’라고 할 수 있겠지.
“해! 하자! 해 보자고!”
2시간 후, 정우호는 반쯤 울면서 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배를 버렸다.
‘자, 정서훈아, 빨리 네 계획을 진행해라. 그래야 내가 움직이니까.’
보람찬 표정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진 담배를 보며, 윤기는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 * *
정서훈의 계획은 아주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룹 내에 있는 모든 비상장 기업에 대한 전환사채 발행.
더불어서 발행한 전환사채를 친부모가 매입하게 했다.
정서훈이 이러한 계획을 시행할 수 있었던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친부모에게 따로 자식이 없다는 것.
따라서 친부모가 죽을 경우, 전환사채를 통한 주식은 전부 정서훈과 정난정이 물려받게 되었다.
물론 상속세는 어쩔 수 없이 내야겠지.
하지만, 그때 가서 편법을 생각해 보면 될 일이고, 이유가 어쨌든 유류분을 물려받을 다른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정우호 쪽에는 최유정과 곧 태어날 아이가 있지만, 친부모 쪽엔 자신들 말고는 물려받을 사람이 없으니까.
‘좋아, 아주 마음에 들어.’
해신 그룹 정도 되는 그룹이 그룹 내 비상장 기업을 상장하자, 대부분 주식의 가치가 엄청나게 뛰었다.
물론, 기대만큼 오르지 않은 기업도 있었지만, 적어도 막대한 이익을 본 것은 확실한 상황.
그리고 이에 따라 정서훈과 정난정의 친부모들은 해신 그룹의 일부 기업들에 대해 제1 주주가 되었다.
물론, 전면에 나서거나 경영권에 간섭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해당 주식의 실제 주인은 사실상 정서훈과 정난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친부모가 순식간에 졸부가 된 것도 어쨌든 사실.
더불어서 정서훈의 그룹 내 영향력도 더욱 막강해졌다.
왜냐하면, 일부 계열사들에 한해 제1 주주가 된 친부모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으니까.
‘흐음, 노친네를 회장 자리에서 밀어내는 걸 시행해도 괜찮을까?’
전환사채 계획을 거의 마무리 지은 정서훈이 고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우호의 퇴진.
이제는 계열사 회장이 아니라 그룹의 회장으로 불리고 싶은 정서훈이었기에 욕심이 커졌다.
‘그렇다고 강제로 퇴진시킬 수는 없어. 그랬다가는 와이케이에서 손을 댈 테니까.’
실제로 전환사채를 추진하면서 정서훈은 와이케이의 동향을 면밀이 체크했다.
고맙게도 와이케이는 침묵.
따라서 정서훈은 와이케이가 해신 그룹 내부의 일에는 참견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느 정도 판단하고 있었다.
‘하긴. 노친네가 경영권에서 손을 뗐으니까, 와이케이 쪽에서도 이쪽이 뭘 하든 딱히 간섭하지 않는 거겠지?’
정서훈의 전략은 기본적으로 ‘티 나는 패륜’을 하지 않는 것.
그렇기에 정서훈은 회장 자리를 물려받기 위해 신사적인 방법을 쓰기로 결정했다.
* * *
정서훈은 먼저 경동시장에 들러 보약부터 지었다.
80년대 후반이 되면 한약상들이 많이 생성되어 보약으로도 유명해지는 경동시장.
특히, 80~90년대에 보약은 그야말로 최고의 효도 상품 중 하나였다.
50~70년대에 힘든 시기를 보냈던 사람들이 슬슬 중장년층이 되어 가던 시기.
더불어서 이들의 자식들이 자라서 취업을 한 시기였기 때문에, 보약은 거의 빨간 내복 수준의 인기를 보였다.
취업을 별로 못한 자식은 빨간 내복, 취업을 잘한 자식은 보약.
특히, 보약에 녹용이나 웅담 같은 것을 넣어서 지으면 한동안 동네에서 자랑하고 다닐 정도였다.
그렇기에 정서훈 역시 아주 최고급 약재들만을 넣어서 보약을 만들었다.
물론, 정서훈이 일부러 노인의 몸에 안 좋은 약재만 골라서 보약을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정우호가 빨리 죽는 것도 그룹의 회장이 빨리 되는 방법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은 아예 물어보지도 않았다.
위험한 수를 썼다가 들키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박살이 날 수 있는 상황.
보약 가격이 비싸 봤자 해신 그룹의 실질적 회장인 정서훈 입장에서는 푼돈이나 다름없었고, 정우호가 퇴진한 후에 얻을 이익을 생각하면 푼돈조차도 아니었기에, 정서훈은 돈을 아끼지 않았다.
‘노친네가 좋아 죽겠군. 진짜 죽으면 어쩌지?’
정서훈의 입이 반쯤 찢어지려고 하자, 한약상이 정서훈을 향해 웃으며 보약을 건네주었다.
“어유, 부모님이 아주 좋아하시겠어요.”
부모님이라는 말에 정서훈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한 번 쳤다.
“아, 그거, 두 명분만큼 더 주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혹여나 정서훈의 마음이 변할세라 한약상은 곧바로 보약을 준비했다.
정서훈이 떠올린 것은 친부모.
같은 보약이지만, 다른 의도를 가진 채로 정서훈은 양아버지인 정우호를 찾았다.
“왔느냐?”
정우호는 정서훈을 향해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라면 분노한 모습을 보여야 맞겠지.
하지만, 윤기는 정우호에게 신신당부했다.
[찢어 죽이고 싶겠지만, 참으세요. 평소처럼 대하세요. 살갑게 대하는 것도 말고, 그냥 평소처럼요.]그렇기에 정서훈은 정우호가 자신과 정난정의 대화를 알고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어유, 아버지. 그동안 그룹의 일이 너무 바빠서 찾아뵙지를 못했네요. 정말 죄송해요.”
“아니다.”
정우호는 정서훈에게 앉으라는 말도 없이 소파에 먼저 앉았다.
지금 이곳은 정우호의 집이었기에 정서훈 역시 자연스럽게 앉아도 되는 상황.
하지만, 지금까지 정우호와 정서훈의 관계를 생각하면, 마음대로 앉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뭐 하냐, 할 말이 있을 텐데. 앉아라.”
정우호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정서훈은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 이거….”
“뭐냐, 그게?”
정서훈이 건네는 것은 딱 봐도 보약.
그렇지만 정우호는 짐짓 모르는 척했다.
“보약이에요. 이제 새로운 동생이 태어날 텐데, 아버지도 오래 사셔야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하는 거짓말.
하지만, 정우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이 말이 진심이었다면 내가 너에게 왜 경영권을 안 주겠느냐…, 이 멍청하고도 천하의 몹쓸 쓰레기 같은 녀석아…!’
정우호는 도대체 자신이 자식 교육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수란이 누나와의 약속을 항상 떠올렸기에 정서훈과 정난정을 어릴 때부터 살갑게 대해 주었다.
그런데, 왜 결과가 이런 것일까?
정우호는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기에 속이 계속 터지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정우호의 심정을 알 리 없던 정서훈은 탐욕이 가득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 채, 양아버지인 정우호를 향해 먼저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아버지, 이제 곧 동생이 태어날 텐데. 이제 가정에 더욱 신경을 쓰시게 되는 걸까요?”
정우호는 정서훈이 무슨 말을 할지 진즉에 눈치채고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나는 절대 일선에서 물러날 생각이 없다!’라고 거절하고 싶은 상황.
하지만, 정우호는 윤기가 내려준 지침대로 어물쩍 대답을 회피하며, ‘그럴 수도 있다’라는 뉘앙스만 풍겼다.
그렇기에 정서훈은 ‘가능성이 있구나!’라고 착각하게 된 상황.
그리고 같은 시각.
윤기는 정서훈과 정난정의 친부모를 만나고 있었다.
정확히는 윤기가 아니라, 나름대로 와이케이의 간부급인 조윤태를 만나고 있는 것이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