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24)
#424화 싸지름의 끝 (2)
현대 사회는 부모와 자식이 절연하더라도 서로 찾는 게 어려운 편은 아니다.
왜?
실종된 것이 아닌 이상 가족 관계 증명서를 떼면 주소가 떡 하니 나타나니까.
물론, 등록지에 살지 않는 경우도 있겠지만, 적어도 단서는 찾을 수 있다는 게 어딘가.
더군다나 일반인 대부분은 위장 전입 같은 것을 하기 힘드니, 사실상 가족 관계 증명서 하나면 대부분 끝난다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1989년인 이 시대는 어떨까?
‘호적’ 제도라는 것을 사용했다.
200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거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호적을 파 버린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요즘 말로 비유하면 ‘가족 관계 증명서에서 제외해 버린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물론, 가족 관계 증명서에서 가족 구성원을 임의로 제거하는 건 불가능한데, 이것이 바로 호적과의 결정적인 차이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서훈과 정난정은 친부모의 호적에 들어가 있을까?
당연히 그럴 리 없었다.
“빌어먹을!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정서훈이 테이블을 쾅 하고 내리치자 테이블의 유리가 쫙 하고 갈라졌다.
“윽!”
유리가 깨지면서 손에 생채기를 입게 된 정서훈.
하지만, 이제는 반창고를 붙여 줄 비서들이 없었다.
아니, 비서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이 부서진 유리를 다시 살 돈도 생각하면서 써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회사에서 축출되면서 당연히 퇴직금은 받았다.
하지만, 정서훈은 회사에서 축출되었다는 분노로 인해 받은 퇴직금을 유흥업소에서 전부 써 버렸다.
한 2주 정도를 정말 황제처럼 보냈고, 2주가 지나고 1주 정도는 외상으로 즐겁게 보냈다.
하지만, 딱 3주까지.
외상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자, 유흥업소 주인은 정서훈을 밖으로 쫓아냈고, 정서훈은 온갖 쌍욕을 했지만,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넓기는 넓은 집.
하지만, 1989년의 서울 집값은 그다지 비싸지 않았을뿐더러, 가뜩이나 윤기가 부동산 조절을 아주 세심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집을 판다고 해서 오랫동안 버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떻게, 인력 업체에라도 의뢰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정난정의 말에 정서훈은 휴지로 대충 손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빽 소리를 질렀다.
“내가 돈이 어디 있어!”
“너…, 돈 없어?”
미간을 찡그리는 정난정의 모습에 정서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없어. 그러니까 누나가 돈 좀 써.”
하지만, 정난정은 세차게 도리질을 쳤다.
“나, 나도 돈 없어.”
“뭐? 무슨 소리야. 왜 돈이 없어.”
자기는 돈을 다 써 놓고, 정난정을 향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정서훈.
이것은 마치 학창시절에 ‘야, 500원만 빌려줘’라면서 돈을 빌리려다가 상대가 없다고 하면, ‘븅신 500원도 없냐?’라고 하는 모습과 똑같았다.
“아니…, 그게….”
정난정은 말을 흐렸다.
왜냐하면, 정난정은 정서훈과 달리 명품과 귀금속을 사는 데 퇴직금을 전부 썼으니까.
정서훈이 유흥업소를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었다면, 정난정은 스트레스를 쇼핑으로 풀었다.
당연히 돈을 거의 다 쓴 것은 둘 다 똑같은 상황.
하지만, 정난정은 명품이나 귀금속을 처분할 수 있었기에 동생 정서훈에게 시원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어차피 돈이 없어도 누나가 가진 것 좀 팔면 되잖아. 일단 팔고 의뢰해. 어?”
“아, 안 돼! 절대로 안 돼! 그냥 이 집을 팔면 되는 거 아냐? 네가 써!”
밥을 굶어도 자기가 산 명품은 팔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연히 정난정은 여기에 포함되는 부류.
그렇기에 정서훈과 정난정은 서로에게 돈을 쓰라고 할 뿐,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기 바빴다.
그리고 이러는 동안 성진구와 김정자 역시 자신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일을 겪고 있었다.
* * *
“아이구, 좋아라.”
김정자는 주식 증서를 품에 껴안고는 아주 좋아라 웃었다.
“어유, 그렇게도 좋아? 아주 닳겄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안는 건지 모르겠네. 애도 그렇게는 안 안아 줬겠다.”
킥킥 웃으며 하는 성진구의 말에 김정자가 어이없다는 듯 성진구를 쏘아보았다.
“아니, 애를 키우면 돈이 나와? 괜히 돈만 아깝지. 하지만, 이거는 가만히만 있어도 떼돈을 벌어다 줄 텐데 당연히 이뻐해야지!”
세상에는 부성애와 모성애가 없는 부모도 당연히 존재한다.
가끔 TV에서는 ‘어쩔 수 없이 버렸다’라는 스토리를 내보내기도 하지만, 세상에 어쩔 수 없이 자식을 버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정말, 자기가 일을 할 수가 없는 몸이 되어서 버리는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당장 진동기만 하더라도 피를 팔아가면서까지 자식들을 건사하려고 했으니, 이게 바로 부모의 자식 사랑 아니겠는가?
사실, 9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는 TV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들이 부모를 찾으려고 하는 특집 방송을 자주 했었다.
하지만, 2010년대는 왜 안 하는 걸까?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의외로 찾고 보면 ‘꼭 버려야 했던 이유’가 없었으니까.
자식이 여럿 있는데, 그중 첫째는 대를 이어야 하니 둘째를 버린다든가 하는 식이 많았기에, 이러한 이야기들이 많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자식 버린 부모는 그냥 자식을 버린 것뿐이라고 말이다.
더군다나 부모를 찾으려는 자식이 돈이 없는 경우엔 부모가 재회를 거부하는 경우까지 있어서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점차 종영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자식보다는 돈이 훨씬 낫지. 그런 면에서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아. 인생 박복한 줄 알았는데 정말 살맛 난다니까. 나도 한번 안아 보자!”
성진구의 말에 김정자는 주식 증서를 넘겨주었고, 성진구 역시 주식 증서를 품에 안고는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돈에 미친 60대의 노인들.
이들은 조윤태에게 제안을 받자마자 정서훈, 정난정과의 연락을 끊었다.
[정서훈, 정난정을 통해 구매한 주식 대신 와이케이 그룹 내의 비상장 주식을 드리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어떤 게 더 이득인지는 아시겠지요? 이건 극비입니다만, 와이케이는 곧 상장할 예정입니다.]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함정이 아닐까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함정을 생각하기보다는 ‘리스크’를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내가 주식을 교환했는데, 와이케이가 상장을 시키지 않으면 어쩌지?]이런 생각 말이다.
더군다나 정서훈, 정난정 남매가 친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진짜.
그렇기에 둘과 관계를 끊는 것은 사실 우량주이자 안전주를 버리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판단할 지식이 없었기에 성진구와 김정자는 자신들이 가졌던 주식을 조윤태에게 넘기고, 대신 와이케이 그룹에 속해 있는 비상장 기업의 주식을 넘겨받았다.
“이제, 이것들이 상장되기만 하면 우리는 말 그대로 억만장자가 된다 이거지?”
실제로 상장만 한다면 해신 그룹의 소속으로 상장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장만 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자기 생각대로만 흘러가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신들이 누구를 건드렸는지 전혀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둘에게 TV가 아주 재밌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속보입니다. 와이케이 그룹의 최윤기 회장이 그룹 내의 비상장 기업 두 개를 부도 처리했습니다. 이 두 기업은 이전부터 사실상 명목상으로 유지되던 기업으로……]성진구는 구르다 말고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자신이 들고 있는 주식 증서를 확인했다.
“…….”
성진구의 시선이 뉴스와 주식 증서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마치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것처럼 빠르게 성진구의 고개가 움직이자, 김정자 역시 성진구의 옆에 달라붙었다.
“…….”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윤기는 두 사람이 산 주식 증서를 순식간에 휴짓조각으로 만들어 버렸다.
* * *
“아니, 엄마, 아빠!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됐던 거예요!”
정난정의 말에 김정자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 아, 아니…, 우리가 쇼핑을 좀 좋아하잖니.”
말은 이렇게 했지만, 김정자의 심장은 그야말로 쿵쿵 뛰고 있는 중이었다.
왜냐하면,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돈이 사라졌으니까.
조윤태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와이케이 그룹과 관련된 회사에 전화해도 무슨 헛소리를 하냐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렇기에 성진구와 김정자가 할 수 있는 건, 자신들이 연락을 끊었던 정서훈과 정난정을 만나는 것이었다.
“어휴, 쇼핑하는 것도 좋지만 연락은 받으셔야죠.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딱 이 말만 들어 보면 여러 가지로 정이 있는 말.
하지만, 이들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 사이엔 결코 정이라는 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물론 정서훈, 정난정 남매에겐 친부모에 대한 애착이 있긴 하겠지.
하지만, 이들은 결코 애착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오로지 돈으로 이어진 관계.
그렇기에 허공에서 이들을 바라보던 최덕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그냥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아, 일단 지금은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니에요.”
정서훈이 끼어들면서 말을 이었다.
“아빠, 주식 증서 좀 주세요. 그거 가지고 할 일이 있어요.”
정서훈은 며칠 전에서야 그나마 상황을 파악했다.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종잣돈으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로 망한다는 것을 말이다.
정우호의 자식이 되고 나서 좋은 음식, 좋은 옷, 좋은 집에서 살았던 정서훈이 과연 싸구려 음식을 먹으면서 버틸 수 있을까?
물론, 버틸 수는 있겠지.
하지만 정신적으로 굉장히 피폐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정서훈은 아버지인 성진구를 향해 손을 뻗어 주식 증서를 달라는 듯한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불안감에 덜덜 떨리고 있는 정서훈의 손.
하지만, 성진구는 아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뭐 해요? 지금 안 가지고 있어요? 그러면, 빨리 아빠랑 엄마 집으로 가요.”
“아니, 저기…, 그게….”
“아빠, 빨리 줘요.”
정난정의 재촉이 있었지만, 성진구는 역시나 땀을 뻘뻘 흘릴 뿐이었다.
“아빠! 빨리 달라고요! 지금 급해요! 저랑 누나 해신 그룹에서 쫓겨났다고요! 이제 그 주식으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진짜 큰일 나요!”
정서훈과 정난정이 축출된 것은 성진구와 김정자 역시 알고 있다.
왜냐하면, 조윤태에게서 계획을 들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성진구와 김정자는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했다.
자식들에게 미안한 게 아니라, 잘못된 선택을 해서 돈을 싹 다 잃은 자신들의 행동을 슬퍼하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아빠!”
마침내 정서훈이 화를 낼 것처럼 소리를 버럭 지르자, 성진구가 눈을 질끈 감고 외치듯이 말했다.
“없어…!”
“예?”
“뭐라구요?”
정서훈과 정난정이 순간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뜨악한 목소리를 냈다.
“없다고….”
“아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설마 그거 팔아서 쇼핑에 다 썼어요?”
정서훈의 말에 정난정이 바로 가능성을 없앴다.
“그럴 리가 없어. 그게 어디 한두 푼이야? 내가 쇼핑 엄청 다녀 봐서 아는데, 그거 절대 지금까지 못 쓸 돈이라고. 아빠,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정난정의 말에 결국, 김정자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정자의 속마음은 그야말로 갑갑했다.
[아…, 진짜 도움도 안 되는 것들….]그냥 급해서.
급해서 아들과 딸을 다시 찾아왔는데, 지금 보니 둘 다 쭉정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어떡하지? 그래도 얘네한테 비벼야 하나…?’
김정자는 자식들에게 얹혀살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내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니지. 얘네 딱 봐도 생활력 전혀 없어 보이잖아. 자칫하다간 우리가 먹여 살려야 한다고. 그냥 조용히 있다가 조용히, 가지고 있던 물건들도 처분해서 어디로 사라져야 돼. 그래야 코가 안 꿰일 수 있어.’
김정자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는 정서훈과 정난정은 아버지인 성진구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다.
“아니, 그거 꼭 가지고 있으라고 했는데 파시면 어떡해요!”
“그게 우리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건데!”
하지만, 화를 내는 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우호가 발송한 등기가 하나 왔으니까.
바로 ‘파양 청구 소송’과 관련한 등기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