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27)
#427화 상상도 못 한 채용 방법 (2)
“예?”
당연하게도 사회자의 입에서 반문이 튀어나왔다.
방청객들 역시 본심을 숨기지 못하고 술렁이기 시작했다.
“추첨으로 뽑을 거예요. 입사 시험만 통과한다면 말이죠.”
“어…, 그렇게 하면 제대로 된 인재를 뽑을 수가 없지 않을까요?”
사회자의 이러한 반응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논술고사로 줄을 세워서 대학에 가고, 대학 서열로 줄을 세워서 취직해 온 것이 사회자가 살아온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추첨이라니.
정말 생각해 본 적조차 없는 방식이었다.
“음, 제가 서울대를 다녀 보고 느낀 건데 말이에요.”
윤기의 말에 모두가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법대를 나오면, 서울대학교 인문학과를 나온 사람보다 일을 잘할까요?”
“그거야…, 그래도 법대가 일을 더 잘하지 않을까요?”
그야말로 판에 박힌 듯한 대답.
윤기는 그 판을 드릴로 뚫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신가요?”
“예? 그거야….”
사회자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일순 말문이 막혔다.
그렇기 이어진 침묵.
현재 방송은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자의 침묵은 전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었다.
‘계속 놔두면 안 되겠지?’
윤기는 방송의 진행을 위해 더 기다리지 않고 대신 말을 이었다.
“높은 점수의 대학을 나오면 성실한 학습 활동을 했다는 이야기겠죠. 더불어서 교육에 대한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그, 그렇습니다.”
윤기의 동아줄을 잡은 사회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침묵이 더 길어졌으면 생방송 사회자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뻔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을 갖췄다고 볼 수는 없는 거예요. 애초에 대학은 학문을 위한 곳이잖아요? 하지만, 기업은 일부 분야에서는 학문이 필요하지만, 모든 분야에 학문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아…,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물론, 대학이 취업을 위한 등용문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은 윤기 역시 안다.
하지만, 이런 공개된 장소에서는 ‘공적인 명분’이 설득력을 얻는 법.
그렇기에 윤기는 자신의 주장을 유려하게 밀고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와이케이는 대학 간판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상식과 능력을 보려는 거예요. 상식 수준과 그 사람이 가진 자격증. 이 두 가지면 기업이 요구하는 역량을 가졌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같은 수준의 상식과 같은 자격증을 가졌다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물론, 별도의 시험이 존재해요. 지원하는 직무에 따라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들이 있으니까요. 경영기획실에서 일하고 싶으면서 재무제표도 볼 줄 모른다면 문제잖아요?”
“하지만, 그 시험에 대한 점수까지도 똑같다면요?”
사회자의 물음에 윤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추첨으로 뽑을 생각이에요.”
“그래도, 다른 방법으로 둘 중 좀 더 나은 사람을 뽑는 게 낫지 않을까요?”
만약, 지금 이 대화가 토론이었다면 윤기는 조금 공격적인 화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TV에서 사회자와 일종의 잡담을 나누는 상황.
더불어서 전 국민이 보고 있었기에 윤기는 일부러 유쾌한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했다.
“어라? 더 나은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나요?!”
굉장히 호기심이 가득한 윤기의 표정에 방청객들이 까르르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사회자 역시 당황하면서도 자신이 어려운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이런, 잘 생각해 보니, 둘을 분류할 방법이 딱히 없겠군요.”
솔직한 인정에 윤기는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아는 방법으로는 없어요. 솔직히 말해서 직무와 관계없는, 기업이 요구하지 않는 자격을 더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수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죠?”
동의를 구하는 윤기의 모습에 사회자가 잠깐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회장님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당장 용접공을 구하는데, 도내 달리기 대회 입상 성적이 따로 있다고 그 사람을 고용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겠죠?”
다시 한번 방청객에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이렇게 웃긴 일이 2010년대에는 무수히 벌어졌다.
도대체 취직을 위해서, 한국도 아닌 외국까지 가서 봉사 활동을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외국과 거래를 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할 이유가 없는 기업인데 외국어 자격증을 왜 우대한단 말인가?
평범한 사무직인데 왜 박사 학위를 우대하는가? 심지어 문과인데?
한국어와 한국사 자격증이 직무 어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인가?
실제 직무와는 전혀 관계없는 자격증을 그저 이력서에 한 줄 더 올리기 위해 년 단위의 시간을 투자한다.
차라리 그 시간에 기업에서 업무를 배운다면?
그게 훨씬 더 나은 일이겠지만, 기업들은 인재를 날로 먹으려고 하지, 잘 키우려고 하지 않는다.
[어차피 키워 봤자, 다른 데로 이직할 텐데 뭐.]키운 인재에게 제대로 된 대접을 한다면 인재가 다른 데에 갈 이유도 없을 텐데 말이다.
“지금 방송을 보고 계신 국민 여러분. 와이케이는 상식과 직무와 관련한 적정 수준의 능력을 갖추신 분이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자신의 능력과 운을 한번 시험해 보세요!”
사회자와 방청객들은 물론이고 방송을 보던 국민 모두가 윤기의 말에 사로잡혔다.
출신 지역, 학벌, 성별, 나이,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직원을 선발하겠다는 와이케이 그룹.
중형 태풍이었던 광풍이 초대형 태풍으로 변한 순간이었다.
* * *
1989년 와이케이 그룹의 하반기 공채에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지원자들이 모여들었다.
나이 제한이 무려 만 40살.
신입 사원임에도 만 40살까지 지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숫자의 경쟁이 예정되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부담스럽지 않은 경쟁.
와이케이는 입사 시험을 치기 전에 평균 80점 밑으로는 탈락이라고 공지했다.
과목별 과락은 70점.
쉬워 보였지만, 대신 문항 수가 대단히 많았기 때문에, 와이케이가 요구하는 상식의 폭은 넓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묵묵히 OMR카드에 정답을 적어 내려갔다.
어떤 의미로는 OMR 혁명.
만약 OMR카드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면, 윤기는 이러한 개혁을 미뤘어야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많은 인원을, 이 많은 문제를 OMR카드가 아닌, 개별 채점으로 분류하기는 어려웠으니까.
“와,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네.”
과목 하나가 끝나고, 중간 쉬는 시간.
몇몇 사람들은 혼잣말을 하며 누군가가 자신과 대화해 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다.
물론, 떡밥을 던지면 미끼를 받아먹는 사람도 나오기 마련.
“그러게 말이에요. 아는 문제는 진짜 쉬운데, 내가 전혀 모르는 부분이 있어요. 내가 이렇게 상식이 없는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고, 참 와이케이가 별종은 별종이에요.”
실제로 문제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아니, 쉬운 축에 속했다.
하지만, 상식이라는 것은 범위가 참 넓었기 때문에 80점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또 아니었다.
“뭐, 덕분에 내가 이렇게 신입 사원 시험을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그나저나 나는 37살인데, 댁은 몇 살이에요?”
“저는 39살이요.”
“어이구, 형님이시네. 무슨 일을 하다가 이렇게 시험을 다 치러 왔어요?”
“그냥, 작은 식당 하나 하고 있었는데, 요새 장사도 안 되고 해서 한번 지원해 봤어요. 잘 되면 와이케이 들어가는 거고, 안 되면 그냥 장사 계속하는 거고.”
“캬, 사장님이시네. 저는 중소 다니다가 사장이 회사 자금 들고 튀어서 회사가 망했어요. 그래서 막막한 상황인데, 와이케이가 신입 사원을 만 40살까지 모집한다지 뭐예요. 그래서 냉큼 지원했죠.”
“허어, 안 됐네요.”
“뭐, 어쨌거나 우리 둘 다 합격했으면 좋겠네요.”
“그래요, 같이 힘냅시다.”
37살과 39살의 지원자들.
이들 말고도 시험장의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로, 시대를 감안했을 때, 대단히 높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이들을 안심하게 해 주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나이가 많은 지원자들이 왔는데도 이번 시험의 감독으로 나온 와이케이의 직원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합격하면 나도 와이케이 직원이야!]그야말로 희망에 찬 시험장.
하지만, 절망에 찬 시험장도 있었다.
[아니, 진짜 미치게 어렵네. 문제 낸 사람 미친 거 아니야?]고연봉을 희망하는 자들이 풀고 있는 시험지의 난이도는 그야말로 살인적이었다.
왜냐하면, 이들은 경제 분석이나, 기술 연구 등, ‘일반 상식’이 아니라, ‘분야 상식’이 필요한 사람들이었으니까.
심지어 이들은 일반 상식 시험 역시 치러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합격해야 해. 와이케이만큼 연구직에 돈을 퍼주는 곳은 없다고…!’
난이도가 미치게 어렵다?
그럼 그 난이도를 합리화할 수 있을 만큼의 대우를 해 주면 된다는 것이 윤기의 지론이었다.
* * *
와이케이의 입사 시험은 서울에서만 치러진 것이 아니었다.
서울과 광역시, 그리고 일정 인구 이상의 시까지.
한마디로 전국에서 시험이 이루어진 것이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게 얼마나 귀찮은데요.]회장이 시키는 데 부하 직원들이 어떻게 반항할까.
덕분에 지원자들은 수월하게 시험을 치렀고, 그들 중 합격자들은 다시 공지된 장소로 모였다.
시험을 본 곳이 학교라면, 이번에는 학교에 딸린 강당.
애초에 시험장으로 선정한 곳은 모두 강당이 있는 학교들이었다.
“자, 여러분. 이 상자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습니다. 보시죠.”
윤기가 큼직한 상자를 들어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혹시 직접 확인하고 싶으신 분?”
몇몇 사람이 손을 들자, 윤기는 그들에게 나오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고, 그들은 헐레벌떡 뛰어 상자를 확인했다.
“어때요, 확실히 비어 있죠?”
윤기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고, 방송국 카메라들까지 상자 내부를 확인했다.
“자, 지금부터 나눠 드리는 종이에 자신의 수험번호를 적으시고, 잘 접어서 이 상자 안에 넣어 주세요. 그러면 제가 무작위로 꺼내서 합격자를 발표할 겁니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의 지원자들이 시험을 보았지만, 이 학교에 있는 자들의 숫자는 생각만큼은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러 학교에 시험 통과자들을 분산시켰으니까.
그래도 수백 명은 넘었기에 모두가 상자에 종이를 넣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잠시 후.
“15번!”
“아싸! 엄마! 나 와이케이 붙었어!”
윤기가 번호를 부르기가 무섭게 갓 20살이 된 것 같은 남자가 환호성을 치며 사전에 예고된 대로 단상 위로 뛰어올랐다.
심지어 윤기에게 뛰어가 안기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경호원들에 의해 막혔다.
“김손환.”
경호원의 입에서 나온 세 글자의 이름에 바로 납득한 청년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합격자들이 대기할 의자에 앉았다.
“192번.”
“엄마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단상 위에 올라갔다.
그야말로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상황.
“317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거의 아슬아슬하게 신입 사원 나이를 채운 것 같은 남자가 감격한 표정으로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이러기를 수십 차례.
이 학교에서 선발하는 인원이 모두 선발되자, 추첨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탄식했다.
“이번 추첨에 성공하지 못하신 분들은 꼭 다음에도 우리 와이케이에 지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나가실 때, 약소한 기념품을 받아가 주세요.”
윤기의 위로와 더불어 기념품이라는 말에 추첨에 떨어진 사람들은 우울해하면서도 화는 내지 않은 상태로 출구를 통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받은 기념품은 나름 고급인 초콜릿.
그리고, 일종의 훈장이었다.
[89년 합격자]와이케이의 1989년 하반기 입사 시험에 합격했다는 증표.
이것은 떨어진 사람들에게 그래도 큰 위로가 되었다.
[나, 와이케이 입사 시험 통과했던 사람이야!]사람 기분 좋게 하는 방법이 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윤기의 생각.
덕분에 우울한 표정을 지었던 사람들도 쓴웃음이나마 지으며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의자에 앉아 ‘혹시 거짓말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에 불안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
하지만, 이들 역시 곧 환히 웃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윤기는 아예 근로계약서를 준비해 왔으니까.
더불어서 이러한 모습은 다른 지역에서 류근태, 최철규 등을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와이케이가 그런 식으로 공채 방식을 바꿀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다네.”
N의 말에 윤기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꽤 재미있지 않으셨나요?”
“물론이지. 참으로 신선했어. 그런데 앞으로도 공채는 그렇게 할 생각인가?”
“네.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이 방식을 쭉 밀고 갈 것 같아요.”
“호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네.”
“무엇이신가요?”
N은 잠시 고민하다가 살짝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서 자네가 얻는 이득이 뭔가? 분명 신선하기는 해. 하지만, 그렇게까지 노력을 투자할 필요가 있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저는 우민화의 반대 노선을 탈 생각이라서요.”
윤기는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