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31)
#431화 푸틴의 꿈(3)
순간 김평일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니, 제정신이야? 소련이 지금 신나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에 빨대를 꽂아 보겠다고? 아니, 이건 빨대도 아니지. 사실상 도둑질을 하겠다는 거잖아.’
하지만, 김평일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아니지, 차라리 잘 됐어. 이걸 그대로 놔두는 게 나한테는 이득이 될 테니까.’
생각을 정리한 김평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합니다. 원유를 비롯해서 액화된 천연가스 등은 충분히 빼낼 수 있으니까요.”
실제로 송유관에 도둑들이 달라붙는 것은 꽤 있는 일이다.
송유관의 원유를 훔치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는 바로 ‘도유’.
당장 멕시코만 하더라도 도유가 연간 1만 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단순 도유 문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마을 주민들이 집단으로 도유를 하다가 구멍을 뚫은 송유관에 화재가 발생해서 폭발하는 사례까지 있을 정도로, 도유는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
한국조차도 툭하면 도유 사례가 적발되고 있을 정도니, 김일성이 도유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문제는 김일성이 북한의 통치자라는 것.
상식적으로 북한 주민 개인이 아니라, 북한의 통치자가 주도적으로 도유를 하겠다고 하는 게 정상일까?
정말 정신 나간 짓거리지만, 김평일은 일부러 김일성의 생각을 바로잡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하면 안 된다고 해도 할 양반인데, 뭐.’
아니나 다를까, 김일성은 김평일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고 답하자마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그 일을 같이 추진하라우. 소련에서 남조선으로 보내는 자원의 양이 장난 아닐 텐데, 그걸 우리가 좀 쓴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일이 있갔어?”
그야말로 탐욕에 번질거리는 김일성의 모습이었지만, 김평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키신 대로 하겠습니다.”
북한의 통치자는 김정일에서 다시 김일성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하는 짓거리는 딱히 바뀌지 않았다.
어차피 둘 다 똑같은 수준이었으니까.
* * *
당연한 말이지만, 송유관이라고 하는 건 만들자고 한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더불어서 윤기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사안 역시 아니다.
그렇기에 고르바초프가 보낸 대표 푸틴, N의 대행자 YS, 그리고 윤기까지.
이렇게 셋이 모여서 몇 가지 안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중국을 경유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푸틴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번 송유관 건설은 오로지 북한만 경유해서 건설되어야 해요.”
“하지만, 그래서는 효율이 많이 떨어질 텐데요…?”
“효율이 얼마나 떨어질지는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죠?”
지금 셋은 입식형 사각 탁자를 두고 각자 한쪽씩 자리를 잡은 상황.
그렇기에 윤기는 자와 볼펜을 들고는 지도 위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시베리아에서 하바로프스키까지 거리가 대충 2,800킬로미터죠?”
나름대로 길고 굵직한 선이 하나 그어졌다.
대한민국 위에 북한이 있고, 북한 위에 중국이 있고, 중국 위에 몽골이 있고, 몽골 위에 러시아가 있다.
그리고 시베리아는 러시아의 북부 지방.
그렇기에 시베리아에서 하바로프스키까지 그어진 선은 시베리아를 기준으로 오른쪽 하단을 향해 그어진 직선이었다.
“그리고 하바로프스키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거리가 600킬로미터 정도예요.”
방금보다는 훨씬 짧은 선이 하바로프스키를 기준으로 왼쪽 하단을 향해 그어졌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위치는 북한 우측 상단 끄트머리의 바로 옆.
그렇기에 윤기는 그곳에서 평양을 향해 선을 그었고, 평양에서 서울까지 다시 선을 그었다.
“이렇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900킬로미터잖아요?”
알기 쉬운 명확한 설명에 푸틴과 YS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명확하구만.”
둘의 대답에 윤기는 종이 위에 네 자리 숫자를 적었다.
[4,300km]“이게 바로 필요한 송유관의 길이에요. 물론, 10퍼센트 정도 더 길어질 수도 있긴 하죠. 시베리아는 넓으니까요. 자, 그렇다면 중국을 경유하는 선을 그어 볼까요?”
이번에는 훨씬 간결한 직선이 그어졌다.
시베리아에서 러시아 국경과 거의 맞닿은 중국의 땅 후룬베이얼시까지 그어진 직선.
이것도 마찬가지로 시베리아를 기준으로 우측 하단이었지만, 하바로프스키보다는 훨씬 가까웠다.
“그리고 직선은 하나 더……, 오케이!”
후룬베이얼시에서 서울까지 다이렉트로 그어진 직선.
자를 내려놓은 윤기는 종이에 다시 네 자리 숫자를 적었다.
[3,300km]푸틴도 YS도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때요. 생각보다 큰 차이가 안 나죠?”
중국을 경유한다면 3,300km, 경유하지 않는다면 4,300km.
불과 1,000km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기에 푸틴도 YS도 예상과 많이 달랐다는 반응이었다.
“흐음…, 솔직히 저도 1,000km밖에 차이가 안 날 줄은 몰랐습니다. 중국을 거치지 않으면 두 배 이상 돌아야 할 줄 알았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별생각이 없었고.”
YS의 우스갯소리에 환기된 분위기 덕분에 푸틴도 윤기도 큭큭 웃으며 편안한 마음을 가졌다.
“어때요, 1,000km 정도면 굳이 중국을 경유할 필요가 없지 않나요?”
“하지만, 송유관 건설에 드는 비용을 생각한다면 1,000km도 결코 적지 않은 수치 아닐까요?”
푸틴의 의견도 타당성이 있기는 했다.
2013년, 대한민국의 건설사가 송유관 건설과 관련하여 수주했던 계약이 1,700km에 30억 달러.
이걸 토대로 단순히 계산한다면 송유관 1km에 176만 달러라는 금액이 필요했다.
2013년의 환율을 기준으로 30억 달러는 약 3조 1,650억 원.
지금 윤기의 의도대로 중국을 경유하지 않고 송유관을 건설하려면 4,300km가 필요하니, 2013년의 가치를 기준으로 약 8조 원의 비용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건설사의 이익이 포함된 금액이기 때문에 실제 건설 비용은 이것보다 조금 많이 낮겠지.
그래도 단순히 계산한다면, 8조 원을 기준으로 중국을 경유할 경우, 약 2조 원에 가까운 금액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윤기는 이러한 2조 원의 가치를 높게 치지 않았다.
“그래봤자 비용의 20퍼센트를 절감하는 수준이죠.”
“음…, 20퍼센트면 유의미한 수치 아닐까요?”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송유관을 건설했는데, 중국과 불화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소련이라면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아….”
푸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련은 천연가스의 판매가 대단히 중요한 국가.
그렇다 보니 송유관으로 인한 트러블 역시 존재했다.
실제로 원래 역사를 기준으로 소련과 우크라이나가 반목하면, 우크라이나를 통과하는 송유관에서 천연가스를 받는 국가들은 자원 불안에 시달렸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가 송유관을 차단할지도 몰랐으니까.
마찬가지로 이번 송유관에 중국을 경유하게 될 경우, 추후 중국이 송유관을 툭하면 차단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당장, 미래의 대한민국이 중국과 관련해서 얼마나 많은 무역 보복을 당하는지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부분.
그렇기에 윤기는 아예 중국이 손을 댈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건설비 20퍼센트를 절약하는 대신에 가스관이 가동하는 내내 자원 불안에 시달려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일까요?”
상황을 정리한 윤기의 말에 푸틴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중국을 경유하지 않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윤기는 푸틴과 이야기가 결정되자, YS를 향해 방금의 이야기를 정리해 주었다.
YS는 러시아어를 할 줄 모르니 당연히 필요한 행동.
“어떤가요? 총리님의 생각은 어때요?”
“당연히 경유하면 안 되지. 내 인생 내가 결정해야 하는데, 국가도 마찬가지 아니야? 남이 결정할 여지는 최대한 줄이는 게 맞는 거야. 그깟 돈은 어떻게든 되지 않겠어?”
참으로 YS다운 말에 윤기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러면 송유관 건설 방침은 이것으로 확정 짓죠.”
나중에는 강의 지류처럼 송유관에도 지관이 생길지 모르지만, 적어도 한국으로 향하는 송유관이 중국을 경유할 일은 없게 되었다.
* * *
이번 송유관 건설에서 북한은 사실상 들러리.
주인공은 대한민국과 소련이었다.
윤기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돈으로 송유관을 건설할 수는 없는 법.
애초에 소련과 대한민국을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개인 소유로 할 수는 없었다.
물론, 이점도 있었다.
어차피 송유관의 건설은 와이케이에도 도움이 되지만, 대한민국 입장에서 꼭 필요한 상황.
그렇기에 송유관 건설에 대해 윤기의 개인적인 돈은 들어가지 않았다.
도리어 건설과 관련해서 와이케이가 수주를 받게 될 예정이었다.
물론, 가격은 최대한 싸게.
일종의 윈윈이랄까?
소련 쪽 역시 와이케이 그룹을 통해 ‘노동 의욕’을 깨달은 소련 인민들이 공사를 담당할 예정이었기에 이번 송유관 공사는 매우 순조로울 것처럼 보였다.
북한만 제대로 협력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김일성은 송유관을 짓기야 하겠지만, 적극적으로 협력할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왜냐하면, 원유 도둑질, 즉 도유를 할 생각에 그야말로 싱글벙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김일성은 가스관에 관한 공부까지 하며 효율적인 도유를 자체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평일아.”
“네, 수령 동지.”
“소련에서 송유관은 언제 보내 준다고 하든?”
이번 송유관 건설의 공사 기간은 약 4년에서 7년 정도로 예정되었다.
소련 지역은 소련이, 대한민국 지역은 대한민국이, 그리고 북한 지역은 소련과 북한이 담당하게 된 상황.
그렇기에 북한 쪽은 소련 공장에서 송유관 배관 등을 제작해서 보내면 조립해서 설치하는 방식이었다.
“예, 한 달 안에 1차 생산분이 도착할 것입니다.”
1차 생산분은 어디까지나 소량.
하지만, 김일성은 1차 생산분이라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호오, 그래? 그렇다면 그 송유관들에 미리 구멍을 뚫어 놓으라우.”
순간 김평일은 김일성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비꼬는 의미.
김평일은 김일성이 도유를 하려고 할 때, 송유관이 완성되고 나면 거기에 구멍을 뚫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일성은 아예 제대로 빨대를 꽂을 작정이 분명했다.
송유관에 사전 조작을 해 놓은 다음 조립한 후 아주 안정적인 도유를 하려는 것이다.
그야말로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천재적인 머리였다.
“아, 송유관 자체에 우리의 밸브나 꼭지 같은 것을 달아 둔다는 생각이십니까?”
“그렇지! 바로 그거라우.”
“역시 영명하십니다. 시키신 대로 하겠습니다.”
김평일은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 *
소련은 송유관 건설을 꾸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1차 자재를 보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9월 말.
소량이지만, 1차 자재들이 북한에 도착했고, 김일성은 그것들 중 일부를 빼돌려 조작을 시작했다.
이 정도 기술은 북한 자체적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소련이 모든 지역을 관리, 감독은 할 수 없을 테니, 이 송유관들은 추후 후미진 곳에 사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김일성이 도유를 통해 이득을 볼 생각으로 젖어 있을 때, 뜬금없이 고르바초프가 방북하겠다는 의사를 알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