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32)
#432화 안녕! (1)
“뭣이? 서기장님께서 방문하신다고?!”
김일성은 깜짝 놀랐다.
예전에도 고르바초프를 어려워하기는 했지만, 최근 도움을 받은 이후로는 더욱 대하기 힘들어진 김일성.
그렇기에 김일성은 꽁지에 불난 망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습니다. 이번 UN 가입과 관련하여 축사를 하기 위해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으윽…, 그렇다면 당연히 시찰도 하시겠지?”
김일성의 의견을 묻자, 김평일은 자신의 의견을 답했다.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주북소군의 기지들도 한 차례 순방하실 수 있으니까요.”
“젠장…, 하필이면 이럴 때….”
김일성은 지금 조작처리를 해놓은 송유관들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그것들도 한번 보자고 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닌 상황.
그렇기에 김일성은 초강수를 던졌다.
“지금 당장, 송유관들을 다른 곳에 숨기라우.”
“알겠습니다.”
김평일은 김일성에게 ‘그래도 될까요?’ 같은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오로지 김일성이 의견을 물어볼 때만 하는 것이 의견 제시.
솔직히 김평일은 김일성에게 도움이 되기 싫었기에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이었지만, 김일성은 김평일이 자신을 받들어 모신다고 생각했다.
“대답이 시원해서 좋구만.”
사실, 김평일의 화법은 사회생활에서도 꽤 좋은 편이었다.
상급자가 무엇인가를 시켰을 때, 하급자가 ‘왜’라는 말을 꺼내지 않고 수행하는 것은 상급자의 로망이니까.
일종의 동상이몽.
실제로 이번 고르바초프의 방북에는 김평일이 연관되어 있었다.
* * *
사실상 김일성의 왕국인 북한에서 김평일이 김일성을 엿 먹이는 방법은 무엇일까?
김일성의 명령을 무시하고, 조작된 송유관들을 그냥 놔뒀을까?
아니다.
김평일은 김일성의 지시대로 조작된 송유관들을 적절한 장소에 숨겨 두었다.
애초에 김평일의 주변에는 이제 김정일의 감시자가 아니라 김일성의 감시자가 붙은 상황이었으니까.
김일성 입장에서는 김정일한테 당한 전적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변론할 수 있겠지만, 김평일 입장에서는 자신을 감시하던 자가 김정일에서 김일성으로 바뀐 기분이었다.
그나마 북한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조금 달라진 점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김평일은 김일성의 지시를 잘 따랐고, 감시자들은 이러한 김평일의 행동을 김일성에게 보고했다.
따라서 지금 고르바초프를 맞이하는 김일성의 표정은 꽤나 밝았다.
당연한 일이다.
꿀릴 것이 크게 없었으니까.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군.”
고르바초프의 말에 김일성이 허리를 숙이며 소련어로 응답했다.
“저야말로 서기장님이 오시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이렇게 방문해 주시다니, 정말 공화국의 영광입니다.”
“허허, 이 사람이, 그렇게까지 말할 것이 있나? 그저 가볍게 한번 들른 것이라네. 주북소군 기지도 좀 보고 싶기도 하고….”
주북소군의 이야기를 듣자, 김일성은 송유관을 치워 버리기를 정말 잘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오늘은 여독을 푸시고, 내일 한번 주욱 순방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음, 그것도 좋겠군.”
고르바초프는 김일성과 함께 주석궁으로 가서 만찬을 즐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주제는 대부분 앞으로 소련과 북한, 대한민국은 서로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는 것으로, 김일성 역시 시종일관 고개와 허리를 굽히며 동의한 부분이었다.
‘역시, 서기장님께서는 대한민국도 소련의 우방으로 생각하시는군.’
김평일이 말했던 소련의 우방.
물론, 같은 글자여도 의미가 전혀 달랐지만, 적어도 김일성은 소련이 북한과 같은 의미로 대한민국을 우대한다고 생각했다.
“자네가 그렇게 긍정적으로 상황을 검토해 주니, 내가 마음이 놓이는구만.”
“서기장님의 말씀이신데, 어떻게 따르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 푹 놓으시고, 그저 편하게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야말로 훈훈한 만찬.
이후,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숙소로 가서 휴식을 청했고, 김일성은 고르바초프를 대접함에 있어서 한 치의 실수도 없어야 한다고 부하들을 닦달했다.
피날레는 기쁨조.
김일성은 고르바초프의 집무실에 기쁨조를 보내서 고르바초프를 기쁘게 하려고 했지만, 돌아온 것은 고르바초프의 호출이었다.
[자네는 도대체 날 뭐라 생각하고 이러는 건가?!]10분 정도 크게 호통을 듣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던 김일성은 애먼 부하들에게 분을 풀었다.
[너희들이 사전에 더 좋은 방법을 제시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결국, 주석궁의 분위기는 만찬 때와는 달리 풍전등화와 같은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을 때.
아니나 다를까, 고르바초프의 기분은 영 좋지 않아 보였다.
* * *
현재 북한에 거주하고 있는 소련군의 숫자는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물론, 많은 편도 아니긴 하지만, 주북소군이 마음만 먹으면 평양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을 정도라고 보면 된다.
만약, 주북소군의 준동에 이어서 2차 공격으로 소련 본진이 북한에 밀고 들어온다면?
아마 북한은 막을 수 없겠지.
물론, 중국이 뒤늦게 개입하려고 하겠지만, 당연히 때에 맞추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릿발이 치는 고르바초프의 태도에 김일성은 속이 타는 기분이었다.
‘후우, 돌겠군.’
이것이 바로 자국의 문제에 외세를 개입시키면 생기는 문제다.
임진왜란의 구세주인 명나라의 만력제 같은, 대단히 특이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외국은 도와주고 나면 당연히 대가를 요구한다.
김일성 역시 마찬가지.
고르바초프는 김일성이 다시 북한의 권력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었지만, 그 대가로 소련에 코가 꿰였다.
예전에도 소련의 눈치를 보았지만, 지금은 예전과 아예 비교가 안 되는 수준.
그렇기에 김일성은 고르바초프의 순방을 따라다니면서 연신 속이 쓰린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음, 주북소군에 대한 순방은 이 정도만 하기로하고….”
고르바초프가 입을 열자, 김일성은 긴장한 상태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송유관 자재들을 어떻게 보관하고 있는지 한번 보고 싶군.”
“아, 그, 그, 그, 그거 말씀이십니까?”
가뜩이나 긴장한 상태에서 가장 아픈 구석을 찔리자 김일성은 과하게 말을 더듬었다.
“왜, 그러나?”
“아, 아, 아, 아뇨, 그게 아니라….”
김일성은 어떻게든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하며, 연신 헛기침까지 했다.
그리고 약 1분 후.
고르바초프가 조용히 기다려준 덕분에 김일성은 겨우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 저…, 이, 일단 가시죠!”
방금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말을 더듬는 김일성.
그도 그럴 것이, 김일성은 고르바초프에게 송유관이 문제가 생겨서 폐기했다는 변명을 댈 작정이었다.
한껏 훈훈해진 분위기 속에서 정말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송유관을 폐기했다고 보고한다면?
아마, 큰 질책을 받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 송유관을 폐기했다고 한다면?
어떤 폭풍이 불어닥칠지, 김일성은 상상조차도 되지 않았다.
“이, 이곳입니다.”
김일성이 안내한 곳은 어떤 공장의 창고.
그런데 당연히 있어야 할 자재들 중 가장 중요한 송유관이 보이지 않았다.
‘휴우, 다행이다. 없구나.’
김평일이 잘 치웠다는 사실에 안도한 김일성.
하지만, 사실 안도해도 될 상황은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조작 자체가 문제였으니까.
“…지금 나한테 전래동화 이야기를 하는 건가? 내가 벌거숭이 임금님인 줄 아나? 문제가 생겨서 버렸다? 그 단순한 말을 말만 듣고 믿으라고?”
미간을 찡그리는 고르바초프를 향해 김일성이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사실……”
김일성은 필사적으로 변명거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분명 여러 가지를 생각해 뒀었는데, 자칫하다가는 자신이 욕을 먹게 될 상황.
그렇기에 김일성은 희생양을 만들기로 했다.
“…여기 공장에서 관리를 잘못하는 바람에 송유관들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솔직히 자재들도 보관을 잘못하면 녹이 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해풍을 맞게 한 것도 아니고, 바닷물에 담가 놓은 것도 아닌데, 불과 며칠도 안 되어서 자재에 문제가 생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
하지만, 김일성은 자신의 뜻을 밀어붙였다.
“그,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공장의 관리 소홀로…, 그러니까, 조만간 공장장을 총살하겠습니다!”
순간 고르바초프와 김일성을 따라다니던 공장장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총살이라니!
이곳 공장장은 정말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김일성이 총살을 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래, 자재를 잘못 보관하는 것은 공산주의에 있어서 엄청난 죄지. 총살은 언제 할 생각인가?”
구체적인 일정을 묻는 고르바초프의 행동에 김일성이 일순 당황했다.
“예?”
“총살을 언제 할 것인지 물었네.”
“그, 그거야 서기장님께서 원하시면 내일이라도……”
순간 고르바초프가 김일성의 말을 잘랐다.
“그렇다면, 총살을 보고 소련으로 돌아가도록 하겠네.”
화투판에 한 번 낸 패는 돌이킬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자신이 욕을 먹지 않기 위해 고르바초프에게 공장장을 총살시키겠다는 패를 던진 김일성.
그리고 고르바초프는 패를 냅다 잡아 김일성이 다시 줍지 못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김일성은 이유가 어쨌든 공장장을 총살시켜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사람이라면 서둘러서 자신의 말을 주워 담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김일성은 자신이 잘못 내뱉은 말을 주워 담는 인간이 아니었다.
* * *
2020년에 들어서는 북한에도 숙청의 바람이 많이 줄었지만, 북한에서 숙청은 그냥 일일 이벤트라고 보면 된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숙청한 이후로는 그래도 대한민국까지 알려질 만한 큰 숙청이 없었지만, 90년대까지는 숙청을 한 번 했다 하면 단위가 몇만은 기본.
따라서 1989년인 지금, 공장장 한 명쯤 총살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그게 억울한 사람을 총살하는 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애초에 북한에서 평양시민을 제외하면 죄다 숙청당했다고 봐도 무방할 수준인데, 과연 착한 사람만 평양에 살고 있겠는가?
멀쩡한 사람이 억울하게 몰려 죽는 것은 그야말로 보편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김일성은 공장장을 총살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나방인 줄 알고 죽였는데, 알고 봤더니 나비라서 잠깐 미안한 감정이 드는 수준?
김일성에게 드는 생각은 딱 이 정도가 끝이었다.
그렇기에 시작된 총살.
공장장은 기둥에 몸이 묶인 채로 눈가리개를 한 채, 최후의 담배를 피우게 되었다.
덜덜 떨리는 몸으로 인해 같이 떨리는 담배에서 재가 털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털어지는 상황.
이윽고, 총살하기 위해 인민군들이 총을 들어 공장장을 겨냥했다.
이제 김일성이 사격 지시만 내리면 모든 것이 끝나는 상황.
그런데 그때, 갑자기 공장장이 필사적으로 외쳤다.
“수령 동지가 송유관을 숨기라고 시켰습니다!”
분명 공장장은 아무것도 몰랐어야 할 인물.
그런데, 공장장은 명백하게 김일성을 이번 일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