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4)
#44화 분재 가지는 잘린다 (3)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재산을 한 푼도 물려주지 않을 것인데, 그 녀석이 무슨 수로 분탕을 피워……?”
어처구니없어하는 최기현의 표정은 윤기에게 실로 보여 준 적이 없는 표정이었다.
“이게 아직 잘 안 알려서 그렇지만, 지금은 ‘유류분’이라는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요. 한 푼도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더라도 법원에 양식을 가지고 신청하면 원래 받을 수 있었던 상속분의 절반을 받을 수 있는 제도죠.”
“아니, 그게 무슨……. 그딴 법안이 도대체 왜 생긴 거야!”
최기현은 진노하여 고함을 쳤지만, 이 법안 자체는 사실 생길 만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장자의 재산 독식이 아주 흔한 일이었고, 유류분 제도를 몰라서 평생을 거지꼴로 사는 차남 이하의 아들, 딸들이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 시점에서 유류분은 최기현을 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사실이었다.
“할아버지의 자식은 총 8명이니까, 이걸 나누면 12.5퍼센트. 그러니까 그 사람은 6.25퍼센트를 나중에 받아 가겠네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허락 못 해!”
“법이 허락하고 있으니까요. 뭐, 군부의 힘을 쓴다면 전혀 문제없이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윤기가 목소리를 낮춘 뒤 말을 이었다.
“만약 군부가 망한다면 그 연줄이 말짱 황이 될 수도 있으니까 확신은 못 하겠네요.”
“난 그 녀석에게 절대, 단 한 푼도 물려줄 생각이 없다! 절대로! 그 녀석은 내가 그토록 오랜 기간 설득을 했는데도 기어코 내 의사를 배반한 놈이야!”
끝까지 보듬으려고 했던 자식이 마지막 순간까지 아비의 뜻을 저버렸다.
그런 만큼 최기현이 최철민에게 느끼는 배반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이건 최철민이 그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법이 그걸 보호해 준다는 얘기지요. 사실, 이 법도 그리 나쁜 건 아닌 게 그 사람이 문제인 거지 다른 사람들은 꽤 괜찮잖아요? 할아버지라는 이름의 분재에서 모난 가지는 하나뿐이었다는 이야기에요.”
가장 총애하는 손자가 자신을 인정하자, 최기현의 흥분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끄으응…….”
“뭐, 저 역시 돈 한 푼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어요. 실제로 방법도 있고요.”
“방법이 있다고?”
지금까지 절망하고 있던 최기현의 목소리에 화색이 돌았다.
이건 할아버지가 진정으로 아들과의 연을 끊어 버렸다는 뜻이었기에 윤기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가 생각하시기에도 그 사람이 나중에 유류분을 청구할 거 같죠?”
으득 거리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확실히 내가 할아버지를 닮았다니까. 역시 난 이 집 핏줄이야.’
속으로 웃으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최기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놈이라면 분명 그렇게 하겠지. 지금이야 내가 물산에서도 쫓아내고, 다달이 주던 생활비도 끊어 버리고,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도 내쫓으라고 명령을 내려 뒀지만, 나중에 여지가 생기면 분명 그럴 놈이야.”
정을 버린 지금 최기현은 아주 정확한 판단을 내렸고, 덕분에 윤기는 편하게 서류가 담긴 가방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삼우라는 이름이 중요한가요. 아니면 삼우라는 이름 자체는 사라지더라도 할아버지의 자식들이 삼우를 기반한 기업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한가요?”
“당연히 내 자식들이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하지만, 삼우의 이름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은 씁쓸할 것 같구나.”
“삼우라는 이름이 어디 한 군데에 남아 있기만 하면 되나요?”
“그 정도면 아쉬운 대로 만족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건 그룹의 규모가 지금보다 더 커졌을 때의 이야기냐?”
최기현의 본심을 파악한 윤기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렇다면 해결법이 명확하게 생겼어요. 제 법인이 삼우를 흡수하면 그 사람이 삼우에 개입할 여지는 거의 없어진다고 보면 돼요.”
“네 법인이 삼우를 흡수한다고……?”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의 삼우를 제가 밑에서부터 장악하는 것은 사실상 전혀 메리트가 없어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방법도 한계가 있죠. 하지만 제가 세운 법인이 거대화되어서 삼우를 흡수한다면 사실상 삼우가 제 것이 돼요. 제가 오롯이 삼우를 물려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리고 이후에 할아버지의 재산에 어울리는 금액을 고모부나 고모들에게 줄게요. 물론 할아버지의 바람대로 삼우 물산의 명칭은 그대로 놔두면 삼우의 뿌리는 영원히 남게 되겠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손자의 계획에 최기현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다.
‘삼우를 흡수하겠다고? 이 큰 삼우를? 이 녀석의 법인은 아직도 규모가 얼마 되지도 않는데……?’
현재 윤기는 자신의 자본이 100퍼센트 들어간 주식회사들을 운영하고 있다.
류근태가 사장이 될 백화점, 김정선이 운영하는 건설 사무소, 박연지를 대표로 세운 미국의 농장들까지. 여기에 현재 다른 주식회사마저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해당 회사들의 자체 규정인 ‘정관’에는 윤기가 추후 그룹 회장으로 선정되게끔 안배를 해놨으니 현재 윤기는 ‘꼬마 그룹’의 회장이라고 불려도 사실상 손색이 없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JSD가 조만간 신군부의 황태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어. JD가 JSD를 그렇게 총애한다지. 거기에 윤기는 거스터와의 연줄도 잡았지. 윤기 녀석의 능력과 현재의 인맥, 거기에 나와 부모의 지원까지 합쳐지면…….’
긍정적으로 이어지던 최기현의 사고가 여기에서 멈췄다.
아무리 생각해도 삼우를 흡수한다고 장담하기가 힘들었다.
이제 삼우는 국내 100위 안에 드는 그룹이었으니까.
‘차라리 유류분이고 나발이고 다 무시하고 윤기를 회장 자리에 앉히는 것이 더 위로 올라가기에 좋을 거 같은데…….’
손자인 윤기는 삼우를 흡수하는 것만으로 끝나서는 안 되었다.
기필코, 자신의 능력에 걸맞은 자리에 올라가야만 했다.
그 자리가 우리나라 1위가 될지, 10위가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삼우만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고 최기현은 확신하고 있었다.
“걱정되시면 이걸 보세요.”
윤기는 지금까지 자신이 구매한 장소의 땅값 차트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 차트를 보여 주었다.
“땅은 앞으로 30년 후, 주식은 6년 후에 대박이 터질 거예요. 특히 이 주식……, 6년 뒤에 할아버지는 한국 제일의 부자를 손자로 두시게 될 테고, 아버지랑 어머니 역시 한국 제일의 아들을 두게 되겠죠.”
말도 안 되는 윤기의 말에 최기현이 푸흐흐 하고 웃으며 차트를 집어 들었다.
당돌한 손자이기는 했지만, 지금의 말은 자신감을 보여 주기 위한 뻥카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트를 보는 순간 최기현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 상승도는 도대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
“이 상태로 몇 년 더 성장하고, 추후 상장을 하게 된다면 제 주식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요? 현재 저는 이 회사 주식을 90퍼센트 조금 안 되게 가지고 있거든요.”
최기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로 삼우를 흡수하겠다는 거냐?”
윤기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삼우를 최고의 기업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의 손자로서, 아버지의 아들로서, 어머니의 아들로서 세계 최고의 경영자가 되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저는 삼우에 연연해선 안 돼요. 그리고 돈조차도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이지 최종 목표가 아니죠. 전 세계가 할아버지의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을 알게 될 거예요. 제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현실감을 아득히 초월한 공약이었지만, 최기현과 최철호, 그리고 박연지는 어쩐지 이 공약이 사실적으로 들려왔다.
불과 3년 만에 자신의 자산을 어마어마하게 늘린 자식이었으니까.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개인 재산을 저에게 투자해 주세요. 지금까지처럼이 아니라, 전부를요.”
윤기는 고개를 돌려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재산을 저에게 투자해 주세요. 씨감자 하나에서 드넓은 감자밭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나중에 저와 정아가 재산 때문에 싸울 일은 전혀 생기지 않을 정도로 성공해 보일게요.”
최철호가 먼저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이내 평상시의 순박한 표정이 아니라 남편으로서의 표정을 지으며 박연지를 바라본 뒤, 이어서 아버지로서의 표정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혹시 모를 사태도 있고 하니, 정아를 위해 5퍼센트만 남겨 두마.”
“좋아요.”
윤기는 이번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최기현은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대로 결정을 한 아들을 바라보며 뿌듯하다는 미소를 짓더니 이내 윤기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더욱 환히 웃었다.
“난 전부를 투자하마. 왜냐하면, 난 늙어서 돈 쓸 일이 없으니까.”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할아버지와 부모님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나중에 ‘내가 손자 하나는 제일 잘 뒀어.’, ‘내가 자식 하나는 제일 잘 뒀어.’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시도록 할게요.”
자신감 넘치는 윤기의 표현에 긴장이 많이 풀린 최기현이 장난기 있는 어조로 말했다.
“이 녀석, 뻔히 자본이 부족한데 백화점 공사를 강행한 이유가 결국 우리한테서 뜯어낼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 거구나?”
“최선책과 차선책이 있었는데, 이건 최선책이었어요.”
“호오, 그럼 차선책은 무엇이었길래?”
“마이크로소프트의 신주 우선 구매권을 타인에게 파는 거였죠. 이것마저도 안 된다면 은행에 대출을 받을 생각이었어요. 삼우 그룹의 맏손자라는 후광과 JSD 대령의 힘을 빌린다면 좋은 조건의 대출쯤이야 어려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윤기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날 즈음, 살던 집으로 돌아간 최철민과 박경자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대문을 가로막고 있는 아버지의 경호원과 비서들.
그리고 그 앞에 아무렇게나 놓인 박스 하나와 가방 몇 개.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최철민은 온몸에 생채기가 난 모습 그대로 대문을 막은 경호원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최철민의 양손은 간단하게 제압당했고, 볼썽사납게 박스 쪽으로 던져졌다.
“으윽!”
그나마 박스 덕분에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최철민은 자신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왜, 왜 이러는 거야! 여긴 내 집이라고!”
경호원 중 가장 고참이 고개를 저었다.
“오늘 아침, 회장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삼우 물산의 대리도 아니고, 회장님의 아들도 아닙니다. 따라서 오늘부터 어떤 지원도 없으며, 지금까지 이루어졌던 지원을 전부 회수하라 하셨습니다.”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악을 쓰며 경호원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두드리던 최철민이었지만, 말하는 본인도 이게 사실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으흐흐흐흐흑.”
볼썽사나운 눈물.
최철민은 자신이 걸릴 것이라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고, 군인들에게 잡혀갔을 때, 팬티에 오줌을 몇 방울 지렸다.
만약 자신의 앞에 있던 군인이 ‘야, 건드리지는 말라는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 팬티가 아닌 바지를 노란색 액체로 적셨을 것이다.
‘그게 미군 전용 백화점이었다니…….’
최철민은 과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지만, 그 후회마저 선택적 후회였기에 윤기나 아버지에게서 최소한의 용서조차도 받지 못했다.
“비켜! 비키라고! 제발!”
“계속 이러시면 군인을 부를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도 아닌 군인.
최철민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
“가요……. 우린……, 망했어요…….”
아내인 박경자의 말에 최철민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던 박경자는 한숨을 내쉬며 박스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비싼 옷은 하나도 없고, 옛날에 입었던 허름한 옷들만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다.
이어서 가방을 뒤져보자, 그곳에는 최철민의 2주 봉급도 안 되는, 그러니까 자신이 심심풀이로 들어 둔 적금 통장 하나만 그나마 가치 있을 뿐, 나머지는 순 싸구려 잡동사니뿐이었다.
주르륵.
박경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냥 가수 생활이나 계속할 걸,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노리고…….’
박경자마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아들인 최정기가 자신의 엄마 다리를 발로 찼다.
“엄마! 나 배고프다니까!”
싸구려 옷, 푼돈만 들어 있는 통장, 막되어 먹은 아들.
형님의 자식을 남의 자식과 바꿔치기하는 데에 성공한 역사에서 60년 정도가 지나고 나서야 박경자는 제대로 된 벌을 받았다.
아직 윤기가 만족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