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5)
#45화 스트레스 해소도 경영적으로 (1)
“철규야, 제발 하루만 재워 줘. 응?”
최철민은 자신의 동생을 향해 간절하게 부탁했다.
하지만, 최철규는 형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일절 없었다.
이미 윤기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형을 도와줘서 얻을 이득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니까.
“형, 진짜 미안한데 아버지가 어떤 모습 보이시는지 봤잖아. 도와줬다가 나도 무슨 일을 겪을지 몰라서 못 도와주겠어. 미안해…….”
굉장히 미안한 표정을 짓는 최철규의 모습에 최철민은 다시 한번 애원했다.
“제발……, 이 더운 날씨에 바깥에서 잘 순 없잖아…….”
“미안해……, 나 진짜 아버지가 무서워서……, 진짜 미안…….”
최철규는 대문을 닫고 아예 잠가 버렸고, 최철민은 닫힌 문을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철규조차도 나를 안 도와주나…….’
최철규가 워낙 대처를 잘했기 때문에 최철민은 최철규를 야속하게는 여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노하지는 않았다.
물론, 나중에 철규가 윤기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목덜미를 잡게 되겠지만 말이다.
“여보, 이러다가 정말 길거리에서 자겠어요.”
이미 곤히 잠든 아들 최정기를 업는 것은 박경자의 몫이었고, 박경자의 목소리 역시 피로감에 절어 있었다.
“시끄러워! 나라고 속이 편한 줄 알아?”
“소리 지르지 말아요. 애가 또 깨면 어떻게 하려고…….”
“끄응!”
아들인 정기가 깨는 순간 또다시 귀찮은 일이 더해질 것이기 때문에 최철민은 신음을 하며 입을 닫았다.
“일단 더 돌아다녀 보자.”
결국 최철민은 둘째 여동생에게서 통장을 대가로 통장에 든 액수를 받게 되었다.
고작해야 2주 치 봉급 수준.
이 돈으로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고급 숙소는 어림도 없었고, 이들은 난생처음으로 싸구려 여인숙에서 묵어야만 했다.
“아니……, 이게 무슨……, 군대도 아니고…….”
지금까지 군대를 제외하면 고생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최철민은 방을 바라보며 절망에 빠졌고, 이것은 박경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 내가 이런 곳에 다시 오다니…….”
박경자는 뜨지 못한 가수였기에 이러한 곳에서 생활하는 데에 이골이 났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혼하기 전의 일일 뿐, 결혼한 이후로는 남편 집안의 힘으로 꽤 호강하면서 살아왔다.
그런 만큼 지금 퀴퀴한 곰팡내가 나는 손바닥만 한 방은 그야말로 충격적일 수밖에.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뭐야! 난 이런 데서 자기 싫어!”
아들인 정기가 잠에서 깨자마자 엄마의 등을 두드리며 생떼를 부리기 시작했고, 덕분에 박경자는 업은 아들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하아…….”
한숨만 나오는 상황.
하지만 최철민은 한숨보다는 더 빠른 방법을 택했다.
쫙!
“으아아아앙!”
자신의 볼을 부여잡고 우는 아들을 바라보는 최철민의 표정은 그야말로 ‘부들거린다’는 것이 적절했다.
“여, 여보!”
깜짝 놀란 박경자가 아들의 볼을 살피며 남편을 바라보았지만, 최철민은 전혀 후회하는 기색이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언제까지 생떼를 받아 줄 거야! 차라리 이렇게라도 해야 해!”
“우리도 이렇게 힘든데, 애는 얼마나 받아들이기가 힘들겠어요. 당신은 도대체 아빠가 되어 가지고는…….”
“전부 당신이 교육을 잘못 시켜서 그런 거 아냐!”
“뭐라고요?”
박경자도 사실 잘한 게 있다고 보긴 어렵지만, 최철민은 그냥 자식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
결국, 둘은 일어서서 서로를 향해 고성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이내 방문을 발로 차는 소리와 함께 들려온 소리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문 부숴 버리기 전에 조용히 해라. 앙?]누가 봐도 건달의 목소리.
최철민과 박경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으로 자신들의 입을 막았고, 서로의 분을 삭이며 잠이 들었다.
천장과 벽에서 이런저런 소리가 들리는 열악한 방은 이들에게 최악의 기억을 안겨다 주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기억’에 한해서였지만.
* * *
“저기, 부장님……. 제발 20만 원이라도 빌려주세요…….”
최철민은 삼우 물산에 취직하고 나서 처음으로 부장에게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물론 지금은 해고되어서 삼우 물산의 직원이 아니지만 말이다.
“아니, 그게……, 위에서 이야기가 내려와서…….”
부장의 쩔쩔매는 목소리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고, 다른 직원들 역시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현재 상황을 관망했다.
[회장님이 최 대리랑 어울리다가 걸리면 큰일 날 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비서들의 전달을 이미 받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상대는 회장의 둘째 아들.
혹시나 지금 매몰차게 대했다가 나중에 복귀라도 하게 되면 큰일 나기 때문에 부장은 그야말로 퇴로가 막힌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몰래 빌려주시면 되잖아요. 제가 아무 말도 안 할 건데 누가 말을 하겠어요.”
부장은 ‘사무실에 지금 사람이 몇인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말은 못 하고 다시 말을 돌렸다.
“20만 원이 적은 돈도 아니고, 좀 힘들 것 같은데…….”
80년 기준 대기업이나 공기업 신입 사원 월급은 대략 30~40만 원 선.
부장에게 있어서도 20만 원은 함부로 턱턱 빌려줄 수 있는 액수는 아니었다.
“저 못 믿으세요? 진짜 좀 부탁드릴게요. 당장 지낼 곳도 없어서 그래요.”
목구멍 끝까지 ‘못 믿어!’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부장은 어쩔 수 없이 다시금 말을 돌리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아, 제발 꺼져 줬으면…….’
그러기를 30분, 갑자기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최기현이 나타났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아, 아버지.”
놀란 토끼 눈으로 자신을 보는 둘째 아들을 바라보며 최기현이 다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내가 어울리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이 실장! 내 말 사무실들에 전달 안 한 거야?”
옆에 있던 이성원 비서실장이 최기현을 향해 고개와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다시 교육하겠습니다.”
“당장 끌어내! 저 녀석이랑 한 번만 더 어울리는 모습 보이면 이 사무실 공중분해 시켜 버릴 줄 알아! 너! 부장, 이 새끼야. 넌 모가지야!”
비서들이 최철민을 사무실에서 끌어냈고, 부장은 최기현에게 싸대기까지 맞을 뻔했다.
“같은 소속이었으니까 이번은 봐주는데, 한 번만 더 그러면 그때는 진짜로 귀싸대기를 후려갈길 줄 알아!”
잔뜩 흥분한 상태로 돌아가는 최기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장은 공포에 떨다 자리에 앉았고, 사무실 직원들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겨우 업무에 들어갔다.
하지만 4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저어……, 부장님…….”
어떻게 들어온 건지 다시 사무실로 기어들어 온 최철민을 바라보며 부장이 외쳤다.
“아, 꺼지라고! 이 눈치 없는 새끼야!”
* * *
“오, 어떻게든 취직은 했다고요?”
공부를 하던 윤기가 최덕배의 말에 굉장히 흥미로운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니까. 쌀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고 있던데? 그런데 힘이 없어서 잔소리 엄청 당하고 있더라고. 그냥 놔둬도 되지 않을까?>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잔소리를 듣더라도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그냥 두고 보면 안 될 일이죠. 더 고생해야 해요. 쌀가게 이름이랑 위치가 뭐였죠?”
어? 아, 이름이 아마 ‘만덕 쌀집’이었을 걸? 위치가…….>
최덕배는 윤기의 심기를 많이 거스르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지금 윤기의 모습을 보았을 때, 수틀리면 자신에게 하루에 대추 수백 개를 먹여 버릴 것 같았으니까.
“어디 보자, 전화를 해야겠네요.”
윤기는 거실로 나가서 전화기의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작은아버지, 저 윤긴데요.”
[오, 윤기야. 무슨 일이야?]“이야기 들으셨어요? 첫째 작은아버지가 취직했다네요.”
[뭐? 어디에?]“쌀가게요.”
[쌀가게? 이야, 되게 힘들 텐데.]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윤기는 입가에 진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첫째 작은아버지가 취직을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 무슨 뜻인지 알겠어. 어디에 취직한 건지 알려 줄래?]윤기는 만덕 쌀집이라는 이름과 함께 위치를 말해 주었고, 최철규는 확실히 처리하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걸었다.
‘들으셨죠?’
거실이었기에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오는 윤기를 향해 최덕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뭘?>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다녀와 주세요.’
아이고……, 늙은이를 이렇게 부려먹다니. 이놈의 집안은 정년퇴직도 없나…….>
앓는 소리를 하는 최덕배를 향해 윤기가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얀마, 대추 꺼내지……!>
‘어? 이거 싫어요?’
윤기의 주머니에서 나온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자주색 자두에 최덕배가 침을 꼴깍 삼켰다.
‘싫은가 보다.’
자두를 자신의 입으로 가져가는 윤기의 모습에 최덕배는 아주 난리가 났다.
얀마! 먹지 마! 먹지 마! 먹지 말라고!>
그 모습에 윤기는 픽 웃으며 방으로 들어간 뒤, 자두를 책상에 올려놓고는 절을 올렸다.
크아!>
자두의 맛에 취한 최덕배의 귀에 윤기가 귓속말을 속삭였다.
“다음번에는 냉장고에 차갑게 했다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최덕배는 남은 자두들의 영혼을 싸 들고 집을 떠났다.
‘정말 가성비가 좋다니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산 사람도 먹을 수 있게 될 자두를 바라보며 윤기 역시 군침을 삼켰다.
* * *
“거, 힘이 그렇게 없어서 쌀가게에서 일이나 할 수 있겠어?”
일제강점기 때의 조선 사람들은 항구에서 일을 하려면 지게로 쌀 2가마, 그러니까 160kg 정도는 너끈히 옮겨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고용조차 해 주지 않았으니까.
1980년인 현재, 예전에 비해 몸 쓸 일이 많이 사라져서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근력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쌀가게에서는 그래도 40kg 정도는 무난히 날라야 했다.
물론 최철민도 나를 수는 있었다.
부들부들거려서 문제지.
이런 이유로 최철민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욕을 먹었지만, 겨우 구한 일자리를 고작 이틀 만에 때려치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
‘젠장, 일주일 전만 해도 나랑 눈도 못 마주쳤을 녀석이…….’
속으로 욕지거리를 하며 쌀을 옮기는 최철민의 귀에 주인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 씨, 요즘 장사는 잘돼?”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최철민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경찰복을 입고 있는 경장의 모습이었다.
“어유, 요새 사람들이 쌀을 잘 안 사 먹어서 그런지 쉽지 않네요. 그나저나 이 경장님은 요새 좀 마르신 걸 보니까 잘 못 드시는 거 아니에요? 이런 더울 때일수록 잘 드셔야죠.”
가게 사장은 작은 자루에 쌀을 수북하게 담더니 이 경장에게 건넸다.
“내가 이 맛에 여기 온다니까. 혹시 건달들이 괴롭히면 연락해. 내가 아주 박살을 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이 경장님 덕분에 다른 왈패들이 제 가게에는 전혀 못 온다니까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나저나 저 녀석은 직원이야?”
이 경장의 말에 가게 주인의 약간 의아한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 네.”
“김 씨, 귀가 좀 어두운 편인가 봐? 저 녀석 저번에 군인한테 빨갱이 관련해서 들어갔다 나왔거든. 나 같으면 엮일까 봐 무서워서 못 쓸 텐데.”
“예? 빠, 빠, 빠, 빨갱이요?”
“그렇다니까? 아무튼, 조심해. 나도 당분간 여기 오면 안 될 거 같아지려고 해서 말이야.”
이 경장은 손은 흔들며 자리를 떠났고, 동시에 가게 주인은 최철민을 쏘아보았다.
“이런 빨갱이 자식이 여기가 어디라고 일을 해!”
가게 주인이 발로 걷어차자 자루를 옮기려고 하던 최철민은 그대로 쌀이 잔뜩 들어 있는 큼지막한 대야에 엎어졌다.
“어이쿠!”
“꺼져! 내 가게에서 나가라고!”
최철민의 목덜미를 잡아가게 밖으로 던진 주인은 아예 몽둥이까지 집어 들었다.
“사장님! 어, 어제 일한 봉급은…….”
“봉급은 무슨! 먹여 주고 재워 주면 됐지. 빨리 안 꺼져?!”
몽둥이를 휘두르는 가게 사장의 행동에 최철민은 눈물을 흘리며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주.
최철민은 어떻게든 취직을 해 보려고 했지만, 어디에 취직을 해도 경찰들이 금방 나타나 자신을 빨갱이라 운운했기에 거의 곧바로 쫓겨났다.
덕분에 봉급 2주 치의 현금은 금세 똑 떨어졌고, 여인숙에서도 쫓겨날 지경이 되었다.
“철규야, 제발 나 한 번만 도와주라. 응? 나 진짜 어떻게든 살아 보려고 하는데 이러다가 죽겠어.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고…….”
눈물을 글썽이는 최철민은 그나마 옆에 붙어 있는 것이 가족이다 보니 가족에 대한 애정이 조금은 생기기도 했다.
물론, 그런 애정이 생기거나 말거나 최철규에게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슬슬 괜찮겠지?’
최철규는 딱히 최철민을 동정하진 않았지만, 윤기의 지시를 떠올리며 약간의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형은 좀 힘들겠지만, 형수님한테는 일자리를 소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뭐? 진짜?”
아내인 박경자 역시 자신과 똑같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철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응. 거기 공사장에 있는 함바집에서 일을 해 보는 건 어때? 내가 거기 일 ‘처음부터’ 도와주고 있잖아.”
최철규는 처음으로 남과 척을 질 만한 말을 윤기의 지시로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