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56)
#456화 구호 단체의 민낯 (3)
백번 양보해서 레나가 부유한 국가에서 다른 부유한 국가로 입양이 된 거라면 그나마 위화감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나는 아프리카에서 입양된 아이.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그나마 부유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도 아니고, 지금 한창 내전이 벌어져서 국민들이 신음하는 앙골라 출신의 입양아였다.
그런데, 입양 직전의 사진에서 이렇게 영양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윤기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메르시는 앙골라 난민들에게 확실한 지원을 해 주나 보군요.”
윤기는 에둘러서 자신의 궁금증을 물어보았다.
하지만, 워낙 돌려서 물어보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루악은 윤기가 무엇을 의심하고 있는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표면적인 대답만 해 주었다.
“물론이지요. 비록 부족한 부분은 분명 있겠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리고, 더 많은 지원을 위해서는……”
윤기는 일부러 루악의 말을 잘랐다.
“알고 있어요. 제 지원이 중요하다는 말이죠?”
짐짓 씨익 웃어 보이는 윤기의 모습.
덕분에 루악은 별다른 의심 없이 윤기와 대화를 이었다. 물론, 정곡을 찔린 탓에 조금 난처한 웃음을 지었지만 말이다.
“아하하…, 그, 그렇겠…죠?”
“그나저나 저도 곧 아이를 가지고 싶은 입장이라서 그런지 레나가 정말 귀엽네요. 레나랑 잠시 같이 놀아도 괜찮을까요?”
셀레브리티, 즉, 유명인이 자신들의 딸에게 관심을 가진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루악은 물론이고 샘과 베라 역시 웃으며 윤기가 레나와 함께 마당에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마당에 그네와 시소가 놓여 있는 샘과 베라의 집.
마당이 있는 정도야 미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샘과 레나는 서민 수준은 확실히 넘는 건실한 가정이었다.
하긴, 그러니까 메르시를 통해 앙골라의 여아를 입양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레나.”
그네를 밀어주며, 윤기는 레나를 불렀다.
그러자 레나는 엷은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자고로 아이들과 친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외모.
아이들은 순수해서 외모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사실 아이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외모를 바라본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레나는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거실에서와 달리, 다소 편안한 표정을 윤기에게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어진 윤기의 말에 레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니?”
윤기의 입에서 나온 포르투갈어.
아프리카에 진출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만큼, 윤기는 아프리카에서 주로 쓰이는 언어들을 확인했다.
물론 영어를 주로 쓰긴 하지만, 영어 말고도 공용어로 쓰이는 언어가 여러 개 있는 상황.
그중에서 윤기는 일단 포르투갈어를 확보했다.
서구 열강들에 의해 식민지 생활을 오랜 기간 했었던 만큼, 아프리카의 지역들은 자신들을 지배했던 국가의 언어들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윤기가 포르투갈어를 선택한 이유?
간단하다.
앙골라가 소련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그런 앙골라가 포르투갈어를 쓰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 덕분에, 지금 윤기는 레나를 이렇게 깜짝 놀라게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말, 할 줄 알아요?”
레나의 입을 통해 명확하게 표현되는 ‘우리나라’라는 표현.
거실에 있을 때의 레나는 숫기 없는 귀여운 여자아이로 보였다.
아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왜?
말이 안 통했을 테니까.
말이 안 통하는데 뭐하러 입을 열겠는가?
입을 열어서 무언가를 요청할 때마다, 상대는 ‘오구, 오구!’ 하면서 대충 등이나 두드려 주고, 맛있는 것을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레나는 드디어 자신의 나라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것도 처음 보는 피부색을 가진 오빠를 말이다.
“응, 이 오빠가 너희 나라 말을 꽤 잘하는 편이거든.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랑은 말이 잘 안 통하니?”
“네…….”
약간 침울해지는 레나를 보며, 윤기는 일을 좀 더 빠르게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루악을 잡아 두지 않으면 상당히 위험할 것 같아. 내가 레나를 두고 자리를 떠난 다음에 일을 진행하면, 메르시 쪽에서도 분명 대비를 하겠지?’
이미 윤기는 레나가 어떤 상황인지 완벽한 추론을 마친 상황이었다.
이제 확인만 하면 되는 상황.
물론 틀릴 가능성도 소수점 정도로 있기야 하겠지만, 윤기는 메르시라는 단체가 어떤 방식으로 레나의 입양 절차를 밟았는지 확신하고 있었다.
“레나야, 앙골라에 있는 부모님이 보고 싶지 않니?”
순간 레나의 눈에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윤기의 귓가로 들려오는 ‘끄윽, 끄윽’ 소리.
애써 울음을 억누르려고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4살짜리 아이가 참아봐야 얼마나 참을 수 있을까.
결국, 마당에는 울음소리가 크게 퍼졌다.
“으아아아아앙!”
레나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황급히 뛰쳐나오는 샘과 베라의 모습.
비록 입양아지만 레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친자식 못지않은 것이 확실했다.
“레나,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
베라는 레나를 안아 들어 등을 두드려 주었고, 샘은 윤기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애가 아직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런지, 가끔 이렇게 울더라고요. 놀라시진 않으셨죠?”
“어유, 놀랄 리가요.”
윤기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마찬가지로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샘과 베라한테는 좋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는 없어. 메르시를 이대로 그냥 놔뒀다간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볼 테니까.’
샘과 베라가 레나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간 후, 윤기는 경호원 한 명을 불러 FBI의 수장인 조슈아에게 어떠한 사항을 전달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들어간 윤기는 시간을 끌기 위해 가짜 본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레나가 이렇게 행복한 가정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니, 메르시라는 단체의 여력이 느껴지는군요.”
“역시 그렇게 느끼셨습니까? 믿고 맡겨만 주십시오. 와이케이 그룹이 앙골라에서 어떤 활동을 하려고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메르시의 이름을 앞세운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을 겁니다.”
“혹시 정부 측하고도 접점을 만들 수 있을까요?”
윤기의 은근한 물음에 루악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물론입니다! 당연히 가능한 일이지요!”
정부군과의 접점.
이것은 와이케이가 큰 사업을 하려는 것이 분명했기에, 루악으로 하여금 메르시가 엄청난 지원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끔 했다.
‘만약 와이케이 그룹이 메르시에 큰 지원을 해 주기만 한다면, 조직 내에서 나의 위상도 대단히 올라가겠지…!’
연봉이 대폭 오르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부패한 단체에는 당연히 부패한 돈 역시 들어오는 법.
그 액수를 생각하자 절로 엉덩이가 들썩이는 기분을 느끼며, 루악은 연신 윤기의 비위를 맞춰 주기 바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군요. 혹시 반군 측하고도 접점이 있을까요?”
루악은 그야말로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고 싶었다.
왜냐하면, 반군과의 접점 역시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루악은 초인적인 노력으로 표정을 관리하는 데 성공했다.
“음…, 그건 솔직히 말해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여러 가지 위험을 동반해야 하는 일이라서….”
“불가능하다는 건가요?”
“아뇨, 불가능하다는 게 아니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지원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나오고 나서 확답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약하자면, ‘성의를 보여라’라는 루악의 말.
그렇기에 윤기는 이 말 역시 받아 주었다.
“그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기부가 필요하시죠? 천만 달러면 될까요? 물론, 이건 시작일 뿐입니다.”
“처, 천만 달러!”
루악은 물론이고, 옆에 있던 샘과 베라마저 깜짝 놀랐다.
심지어 이게 시작이라니.
하지만, 윤기는 애초에 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공수표를 던질 수 있었다.
‘애초에 정부군은 소련 쪽에서 접점을 만들면 되고, 반군은 CIA를 통해서 접점을 만들면 되는데, 뭐하러 너희 단체를 통해서 접점을 만들겠니?’
윤기에게 있어서 메르시의 가치는 ‘앙골라 국민들이 느끼는 우호’였다.
하지만, 메르시라는 단체의 민낯을 본 이상 메르시를 쓸 수는 없는 상황.
그렇기에 윤기는 일단 메르시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레나의 문제도 문제지만, 애초에 자신들이 선택받지 않으면 어떤 꼬장을 놓을지 모르는 일이니까 말이다.
“부족한가요?”
일부러 고개를 기울여 갸우뚱거리는 윤기를 향해 루악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아닙니다! 부족하다뇨!”
“좋아요, 그렇다면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윤기의 말에 루악은 신나서 이것저것, 주절주절 떠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15분.
갑자기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불이라도 났나?”
샘이 고개를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보자, 베라와 루악 역시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여기 치안은 괜찮지 않나요?”
“네, 상당히 괜찮은 곳인데…….”
점점 가까워지는 사이렌 소리.
치안이 괜찮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샘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예 마당으로 나갔다.
원래 치안이 안 좋은 지역이면, 사이렌이 울릴 때 해야 하는 행동은 문과 창문을 잠그고 커튼을 내린 뒤, 더블 배럴 샷건을 장전하는 것.
하지만, 샘은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어? 뭐, 뭐야!”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지는 수준을 넘어 경찰차들이 집 앞에 멈추자, 샘은 깜짝 놀라며 양팔을 번쩍 들었다.
“쏘, 쏘지 마세요! 저는 백인입니다! 아무 짓도 안 했어요!”
미국에서 공권력에 살아남는 방법을 잘 아는 샘은 경찰들이 총을 꺼내지 않았음에도 화들짝 양손을 들었다.
“루악! 너를 아동 납치 및 불법 입양 등의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순순히 투항하라!”
순간 샘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거실 방향을 바라보았다.
“루악, 경찰들이 차, 찾는데요?”
살짝 당황한 샘의 목소리.
‘아동 납치’와 ‘불법 입양’이라는 단어가 있었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이 두 단어와 루악을 결부시키기에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루악은 일반인이 아닌 범죄자.
‘미친!’
루악은 깜짝 놀라 윤기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능글맞게 웃고 있는 윤기의 얼굴에 눈에 들어오자 루악은 현관이 아닌 뒷문을 통해 도주를 시도했다.
“10, 9, 8, 7……”
천천히 카운트다운을 시작한 윤기의 모습에 샘과 베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3……”
[끄아아아아악!]“역시 10초도 못 가네.”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 쪽으로 향한 윤기는 한 가지 재미있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미국 공권력이야.”
전기총에 맞아 온몸을 경련하는 루악의 모습은 참으로 일품이었다.
* * *
미국과 유럽 사회는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비록 지금은 ‘레나’라는 여자아이 한 건뿐이었지만, FBI 국장인 조슈아의 ‘다른 사례 역시 충분히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라는 발표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시작된 메르시 미국 지부의 압수수색.
더불어서 인터폴과의 공조를 통해 메르시의 본부를 포함한 모든 지부가 동시에 압수수색을 당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유괴 입양’에 관한 전말이 드러나겠지.
더군다나 메르시가 아닌 일부 자선단체들도 갑자기 수뇌부들이 잠적하는 등 진통을 겪기 시작했다.
“참…, 내가 이래서 자선단체를 믿기가 싫다니까. 예전에 유선녀라는 인간도 그랬잖아.”
희망재단 초창기 때, 자기 뒷주머니를 채우려다가 거하게 망한 유선녀가 언급되자 윤기는 쓴웃음을 지었다.
“규제가 없다면 반드시 틈을 찾는 인간이 생기기 마련이죠. 심지어 규제가 있다고 해도 안 걸릴 생각으로 일을 저지르는 녀석들도 많잖아요?”
“에효…, 그렇지. 그나저나 메르시가 앙골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은 단체였는데, 이제 어쩌지? 딱히 앙골라에서 힘을 쓸 단체가 남아 있지 않을 거 같은데?”
“아뇨, 전혀 문제없어요.”
애초에 다 대비책이 있으니 메르시를 조진 윤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