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58)
#458화 반군과 정부군 사이에서 (2)
“반갑습니다.”
넓은 이마와 묘하게 선한 눈.
상대적으로 얇은 윗입술 대비 매우 두툼한 아랫입술.
여기에 앙골라에 거주하고 있는 아프리카 민족 특유의 적당히 까만 피부까지.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가 윤기를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이며, 손을 내밀었다.
“빠르게 일정을 잡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윤기 역시 산토스가 내민 손을 잡으며 정중한 태도를 취했다.
“아닙니다. 다른 분도 아니고, 소련 최고의 인기인인 최윤기 회장님의 부탁인데 당연히 만나 뵈어야 하지요.”
1982년에 앙골라 제2대 대통령이 되었고, 국정을 운영했어야 할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속칭 산토스는 내전으로 인해 사실상 대통령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하지만, 1990년인 지금도 앙골라 정부군의 중심인 것은 분명한 사실.
그렇기에 윤기의 부탁에 고르바초프는 산토스와의 접점을 놓아주었다.
현재 앙골라 정부인 ‘앙골라 인민 해방 운동’, 통칭, ‘MPLA’는 소련과 쿠바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산토스는 절대로 윤기의 부탁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
“저야 평범한 기업인일 뿐이죠. 하지만, 현재 산토스 님은 앙골라의 안정을 위해 직접 싸우시는 분 아니겠습니까?”
윤기가 기분 좋은 말을 해 주자, 산토스의 입가에도 엷은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윤기는 이미 CIA와 KGB의 정보력을 통해서 산토스가 결코 선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산토스는 절대로 선한 인물이 아니었다.
만약 윤기가 2020년의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산토스를 바라볼 때, 속으로 혀를 끌끌 차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산토스는 앙골라의 내전이 끝난 후 안정화된 앙골라를 운영하면서 엄청난 비리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산토스의 딸인 ‘이사벨 도스 산토스’는 앙골라 최고의 부자.
이사벨이 최고의 부자가 된 데는 아버지인 산토스가 딸에게 온갖 특혜와 편의를 봐주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서 앙골라는 내전이 끝났음에도 2020년 역시 여러모로 진통을 겪게 되었다.
누군가가 부의 대부분을 가져간 이상, 그 고통은 고스란히 서민들과 빈민이 봐야 하는 것이니까.
물론, 윤기는 이러한 미래 정보까지는 모른다.
하지만, 산토스가 절대 선인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윤기는 산토스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방침을 정한 상황이었다.
‘누구는 착하고, 누구는 나쁘면 일이 어렵지. 하지만, 둘 다 나쁜 놈이라면? 그러면 일이 쉬워.’
이미 사람을 만나고, 다루는데 이골이 난 윤기였기에 앙골라의 수장을 만나면서도 전혀 긴장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동네 오락실에 가는 청년의 모습이랄까?
아니, 애초에 동네 오락실에 가는 청년이면 주머니에 돈이 넉넉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으니, 오히려 지금 윤기보다 조금은 더 긴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저를 그렇게 봐주신다니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윤기의 아부는 산토스로 하여금 윤기를 다소 우습게 보는 긍정적인 결과도 만들었다.
‘역시 어린아이로군’ 하는 생각을 하게끔 만드는 효과.
윤기 입장에서는 아주 환영할 만한 착각이었다.
“차는 어떤 것을 드시겠습니까?”
“커피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커피라면 자신 있지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커피가 나오고. 윤기는 가볍게 칭찬했다.
“향이 좋군요.”
“그렇습니다. 내전만 아니라면 좀 더 좋은 커피를 드렸을 텐데…, 조금 아쉽군요.”
“그거야 자연스럽게 해결될 일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당신이 해결하지 않겠습니까?’라는 간접적인 칭찬.
그렇기에 산토스 입가에 걸린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혹시 현재 우리 앙골라의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십니까?”
“네, 어느 정도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반군인 ‘유니타(UNITA)’ 때문에 골치라죠?”
유니타가 언급되자 산토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글로 바꾸면 ‘앙골라 전면 독립 연맹’으로 부를 수 있는 유니타.
이 유니타의 수장은 ‘조나스 사빔비’라고 하는 인물로, 산토스의 관자놀이를 항상 지끈거리게 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렇습니다. 이게 도대체 몇 년이 지속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아….”
되게 재미 있는 사실은, 산토스의 MPLA 역시 유니타를 욕할 처지가 못 되었다.
왜?
원래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승리한 것은 MPLA가 아닌 유니타였으니까.
사실, 1990년을 기준으로 MPLA가 앙골라의 정부군을 표방할 수 있는 이유에는 ‘군사력’이 있었다.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해방된 앙골라는 민주적인 투표를 통해서 정부를 구성하기로 하는데, 이때 유니타는 앙골라 국민 45퍼센트의 지지를 받아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군사력이 우월했던 MPLA는 이에 승복하지 않았고, 군사력을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하게 된다.
이때는 ‘FNLA’라는 단체가 하나 더 있었는데, 이들은 이후 MPLA와 합의하여 내전에서 이탈하므로 사실상 앙골라 내전은 MPLA와 유니타의 역사라고 보면 될 것이다.
“아직도 미국과 중국, 그리고 남아공이 유니타를 지원하고 있나요?”
MPLA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친 소련 행보까지 보였다.
따라서 소련과 쿠바는 MPLA를 지원하였는데, 이에 따라 유니타의 수장은 반 사회주의·반 소련을 주창했고, 더불어서 미국과 중국, 남아공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사실, 고르바초프의 입김이 없었다면 윤기는 산토스를 만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왜?
윤기는 미국에서도 상당한 인기인이었으니까.
하지만, 고르바초프의 개인적인 입김을 통해 산토스는 윤기가 소련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에 따라 만남을 결심한 것이다.
그야말로 잇속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드러낸 산토스.
덕분에 윤기는 산토스와 대화하는 게 너무나도 수월했다.
“그렇습니다. 그 국가들이 지원만 하지 않았어도 정말 수월하게 앙골라가 안정될 텐데 말입니다…. 반군이 조금만 있어도 국가가 안정될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크게 체감됩니다.”
자기들이야말로 무력을 통해 국민들의 투표를 무시했건만, 산토스의 입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피해자 코스프레가 흘러나왔다.
“결국에는 안정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산토스 대통령님을 통해서 말이지요.”
“말만으로도 정말 힘이 나는군요.”
씨익 웃는 산토스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소련의 유력자가 자신을 지지하는데, 당연히 엄청난 힘이 될 것이 분명하지 않겠는가?
이렇듯,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윤기는 조금 더 뜸을 들이고 나서야 본론을 꺼냈다.
“사실 오늘 이렇게 만남을 요청한 데는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오, 무슨 부탁입니까?”
소련의 유력자가 자신에게 부탁을 한다고 하자, 산토스는 큰 흥미를 느꼈다.
왜냐하면, 유력자에게 빚을 하나 만들어 두는 것은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조금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앙골라의 국토 일부를 사고 싶습니다.”
“예…?”
산토스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인가 싶어 귀를 기울이는 시늉까지 하며 눈을 깜빡였다.
“앙골라의 국토를 사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어…, 부동산 소유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뇨, 저는 완전한 매매를 원합니다. 앙골라 정부의 승인에 따른 완전한 토지 매매를 말이죠.”
만약 앙골라의 부동산을 구매하는 거라면, 나중에 앙골라 정부가 우격다짐으로 땅을 회수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 승인하에 아예 국토의 개념으로 매매한다면?
나중에 앙골라 정부가 땅을 회수하고 싶다면 전쟁을 불사해야 하겠지.
그렇기에 산토스는 그저 눈을 끔뻑거리며 할 말을 잃었다.
“물론, 그에 따른 충분한 대가는 지급할 생각입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스스로 말씀하시면서도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으십니까?”
아무리 앙골라가 내전 중인 국가라고 해도, 국토의 매매는 쉽게 나올 수 없는 이야기.
그렇기에 산토스는 미간을 찡그리면서까지 윤기를 바라보았다.
“그걸 아니까 ‘서기장님’에게 부탁까지 해서 자리를 마련한 것이지요. 저는 어려서부터 저만의 나라를 갖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참에 그 꿈을 이루어보려고 합니다.”
윤기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자신의 인맥을 과시함과 동시에 자신의 천진난만함을 보였다.
‘자신의 나라를 가지고 싶다’라는 건 어린이나 할 법한 발상.
그렇기에 산토스가 가졌던 긴장감이 약간이지만 풀어졌다.
“하하…, 솔직히 말해서 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입니다. 나라를 가지고 싶다니….”
“사실, 산토스 대통령님과 저는 다른 부분이 없지 않을까요? 산토스 님은 오롯한 앙골라의 대통령이 되고 싶어 하시고, 저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저는 산토스 님처럼 될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허무맹랑한 방법을 써서라도 제 나라가 가지고 싶은 거죠.”
“에이, 지금도 전 세계적인 인기를 가지고 계신 분이지 않습니까.”
“그런 인기와 산토스 님의 인기는 다르죠. 산토스 님의 인기는 앙골라 국민들이 진심으로 지지하는 것이라면, 저는 그냥 연예인일 뿐이랄까요?”
레이건도 허물어뜨렸던 윤기의 혓바닥인데 산토스를 못 허물어뜨릴까.
그렇기에 산토스는 계속되는 윤기의 기름칠에 그만, 다시 미소를 지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이런….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말씀을 하셔도 국토의 매매란 쉽게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부탁드리는 땅은 딱히 기름진 땅이 아닙니다.”
“예?”
산토스의 반응에 윤기는 기회를 잡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일단 말씀이라도 들어주시려는 것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어…, 뭐…, 일단 들어나 보죠.”
“제가 원하는 땅은 중심지 같은 비옥한 땅이 아닙니다. 그저 면적을 제시하면, 그 면적에 걸맞은 땅을 한 부분 떼어서 거래하면 되는 거죠.”
순간 산토스는 다시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어…, 그러니까, 면적을 지정하면 그에 맞는 땅을 우리 정부에서 결정해도 된다는 겁니까?”
“네, 물론이죠.”
“그곳이 어떤 땅이라 하더라도?”
“네, 전혀 상관없습니다. 설사 그곳이 지뢰로 가득한 지뢰밭이라 할지라도요.”
순간 산토스의 머리에 떠오르는 지역이 한 곳 있었다.
바다와 인접한 지역 하나.
그곳의 땅이라면 앙골라 정부 입장에서도 정말 골칫덩이인데, 그곳을 윤기가 사 준다면 어찌 보면 이득일 수도 있었다.
“금액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산토스는 미끼를 물어 버렸고, 윤기는 낚싯대를 당기는 낚시꾼이 되었다.
“시세를 따르겠습니다.”
“으음….”
현재 내전 중인 앙골라 부동산의 시세는 절대 높을 수가 없는 상황.
그렇기에 산토스는 다시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윤기 역시 양보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앙골라의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의 12배 이상.
이러한 앙골라의 땅을 나름대로 유의미하게 사려고 하는데, 가격을 시세 이상으로 쳐 주면 윤기의 재산으로도 절대 살 수가 없었으니까.
‘지뢰밭으로 변한 그곳의 땅이라면 솔직히 말해서 헐값에 넘겨도 상관없기는 한데 말이야….’
산토스는 미국의 알래스카 매매를 떠올렸다.
1867년, 720만 달러를 주고 160만 제곱킬로미터의 땅을 구매한 미국의 결정.
이는 2010년대의 가치로 한화 2조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다면 앙골라의 지뢰밭은 얼마일까?
같은 면적이라면 알래스카보다 싸면 쌌지, 비쌀 수는 없었다.
이것이 현재 산토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하지만, 산토스는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명분이 없었으니까.
‘돈이 부족하지도 않은데, 단순히 소련 유력자에게 빚을 지우자고 땅을 파는 것이 내게 이득일까?’
당연하지만, 이러한 산토스의 두뇌 회전은 윤기에게 뻔히 들어오는 부분.
그렇기에 윤기는 산토스가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던졌다.
“만약 이번 거래에 힘을 써 주신다면, 유니타에 대한 미국의 지원이 끊어지도록 저도 힘 한번 써 보겠습니다.”
“예? 예에?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산토스의 눈이 퉁방울만 하게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