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7)
#47화 식스 센스 (1)
“내장 인테리어?”
앤드류의 반문에 윤기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외장까지 커버하기에는 주변 건물들과 동떨어질 가능성이 커서 외장은 한국 평균으로 했거든요. 하지만 내장은 미국인들을 토대로 영업을 할 방침이기 때문에 다소 미국적인 인테리어를 원해서요. 제 밑에도 건축 디자이너나 인테리어 전문가가 있지만, 아무래도 미국 현지인 인테리어 전문가가 한두 명 정도 있으면 좋겠죠.”
“일단 인테리어 전문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거야. 요즘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니까.”
앤드류의 말처럼 80년대의 미국은 실업으로 인해 곤욕을 앓던 시기였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앤드류가 콕 집어서 인테리어 전문가를 알고 있기는 힘든 노릇.
하지만, 앤드류는 다른 방도를 찾아냈다.
“나는 아는 사람이 없지만, 네가 후원하는 다른 녀석들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인테리어는 아무래도 건축 쪽이니까 리안나에게 물어보면 될 것 같은데?”
“불러 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하지. 아마 신나서 달려올걸? 우리가 누구 덕분에 계속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앤드류는 전화기를 집어 들더니 리안나가 소속된 사무실로 전화했다.
그리고 잠시 뒤, 복도 쪽에서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오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리안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윤이 왔다고?”
리안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윤기를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 눈을 껌뻑였다.
“와……, 많이 컸네.”
어릴 때의 윤기를 생각하며 안아 주기라도 하려던 모양이었던 듯, 리안나는 굉장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요즘 공부는 잘돼요?”
아주 매끄러운 영어.
덕분에 리안나는 당황한 기색을 빨리 사그라뜨리고 대화에 나설 수 있었다.
“진짜 윤 맞아?”
“맞아요. 어릴 때는 원래 빨리 자라잖아요.”
“내가 10년만 젊었어도…….”
입맛을 다시는 리안나를 바라보며 앤드류가 눈을 찡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저 정도면 동양계가 아니라 백인들도 점 찍어 놓을 만한 수준이니까.”
“동양인은 동양계랑 결혼해야지.”
약간 아쉬운 듯한 리안나의 발언에 앤드류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잘생긴 남자는 예쁜 여자랑 결혼하게 되어 있어.”
“죽을래?”
앤드류의 말에 담긴 ‘너 못생겼잖아’라는 속뜻을 깨달은 리안나가 도끼눈을 떴고, 앤드류는 자기보다도 작은 윤기의 등 뒤로 숨었다.
“리안나 누나도 지금 공부하느라 안 꾸며서 그렇지, 꾸미면 엄청 예쁠 것 같은데요? 오히려 저는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여요.”
윤기의 칭찬에 리안나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실제로 리안나의 외모는 그리 모나지 않았다.
대만계 미국인인 리안나는 얇은 검은 눈썹과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 그리고 긴 말총머리가 특징이었는데, 공부에 찌들어서 그렇지 꾸미면 충분히 ‘예쁘장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런 소아성애자 같으니……, 끄아아악!”
앤드류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리안나가 앤드류에게 달려들어 양쪽 구레나룻을 지그시 잡아당겼고, 그 사이에 윤기는 둘 사이에서 빠져나와 리안나에게 말을 걸었다.
“리안나 누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응?”
한창 앤드류의 양쪽 구레나룻을 잡아당기던 리안나가 고개만 돌린 채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으아아아악! 좀 놔, 놔 달라고!”
“다음에 또 그러면 아주 그냥 뽑아 버릴 줄 알아.”
서슬 퍼런 리안나의 말에 앤드류는 구레나룻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이윽고 리안나와 윤기만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미안, 미안.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
“혹시 주변에 인테리어 공부를 했는데 취직을 못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나요?”
“엄청 많지. 요즘 불경기잖아. 나도 처음에 너한테 장학금 받으면서 공부할 때는 더 좋은 곳에 취직할 자신감이 넘쳤는데, 요새는 그냥 무조건 네가 운영하는 곳으로 취직할까 생각 중이야. 진짜 취직할 곳이 없다니까?”
“오죽하면 빌 형도 창업을 했겠어요.”
“하……, 나도 이야기 들었는데 엄청 부럽더라. 요새 엄청 잘나간다던데…….”
입맛을 다시는 리안나를 향해 윤기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 ‘엄청 많은’ 사람들 중에서 백화점 내장 인테리어 관련해서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한 명 내지, 두 명 정도로요.”
“고용하려고?”
“네. 추천해 준 사람들 중에서 면접을 보고 결정해야겠죠?”
리안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친한 사람을 추천해 줘야 하나, 아니면 능력 있는 사람을 추천해 줘야 하나…….’
불경기인 요즘, 리안나와 친한 사람들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솔직히 리안나는 조금 욕심이 났다.
하지만, 이내 현실적인 판단이 친분이라는 감성을 가로막았다.
‘지금 나한테 추천을 해달라고 하는 것은 결국 그 사람의 평가가 나한테도 온다는 얘기잖아. 가뜩이나 요새 일자리 구하기 힘든데 나중에 윤의 직장에 취직을 못 하게 된다면…….’
결국, 리안나는 능력을 토대로 추천하는 것을 결정했다.
“네 명 정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윤기는 손바닥을 쫙 펼치며 리안나의 말을 살짝 가로막았다.
“경력이 없으면 안 되고, 예술성보다 상업성을 따지는 사람이어야 해요. 더불어서 인종 차별을 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네요. 한국에서 생활을 해야 할 테니까요.”
“어……, 그럼 한 명밖에 안 남네.”
“누구죠?”
“음, 그런데 추천하기가 좀…….”
약간 저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리안나를 향해 윤기가 반 발짝 앞으로 다가섰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그게……, 정신적인 문제가 조금 있거든.”
“정신적인 문제요?”
“응. 원래 겐슬러라는 회사에서 7년 정도 근무했었던 사람인데, 어느 순간 성격이 확 바뀌었거든. 직장 내에서 끊임없이 트러블 내고, 갑자기 종교 단체에 빠지고……. 능력만큼은 진짜 확실한데, 어느 순간 사람이 변해서 추천해도 될지 모르겠어.”
겐슬러는 2018년 기준으로 L.A 1위가 되는 건축사이자, 2015년에는 세계 최고의 순익을 내는 회사다.
물론 윤기가 이것을 알고 있을 리는 없었지만, 리안나가 정말 능력 그 자체를 생각해서 인재를 추천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나머지 세 명은 그 사람보다 못 한가 보죠?”
리안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 명은 인종 차별주의자고, 또 한 명은 경력이 없고, 나머지 한 명은 예술주의자거든.”
“그럼, 네 명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요?”
리안나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실력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내 지인들이라서 큰 문제는 없는 사람들이야.”
하지만 리안나의 기대가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다.
“돈을 벌려면 역시 능력이 최고죠. 그 정신 쪽에 문제가 있다는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약간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던 리안나가 살짝 고개를 저었다.
“나도 소개를 해 주고 싶지만, 다리를 놔주는 건 좀 힘들 것 같아. 왜냐하면, 정신이 나간 이후로는 만난 적이 없고, 연락을 해도 안 받거든. 대신 주소랑 전화번호랑 이름을 알려 줄게. 직접 가 보는 게 어떨까?”
‘이것도 소개인가?’라고 생각을 하던 윤기가 리안나를 향해 되물었다.
“그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가요?”
“회사에서 그 사람의 정신 치료를 위해 병원비를 꽤 썼다고 들었어.”
“아, 그럼 인정할 수 있죠.”
병원비가 더럽게 비싼 미국에서 회사가 직원의 병원비를 신경 써 줬다는 것 자체가 보증 수표였기에 윤기는 바로 납득했다.
막노동판에서조차도 미국의 병원비는 아주 유명했으니까.
“그럼, 알려 줄까?”
“부탁드릴게요.”
“응, 근데 고생 좀 할 거야.”
“어디까지나 만나만 보는 거니까요. 제가 커버 가능하겠다 싶으면 고용하는 거고, 힘들겠다 싶으면 다른 사람 추천받아야죠.”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리안나의 표정은 정신과는 또 다른 문제가 있음을 내포하고 있었다.
“다른 문제가 또 있나 보죠?”
“응. 그 사람 지금 네바다주에서 살고 있거든.”
* * *
하버드 대학은 케임브리지라는 미국의 가장 동쪽에 있는 지역에 위치한다.
반면 네바다주는 미국의 거의 서쪽이라고 할 만한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윤기는 사실상 미국의 끝에서 끝으로 미군기를 타야만 했다.
가장 서쪽인 샌프란시스코 바로 옆에 있는 것이 네바다주였으니까.
그나마 외할아버지가 미군 준장인데다가 거스터가 전 미군 대장이었기 때문에 윤기는 아무런 문제없이 공짜 노임으로 네바다주에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시간이야 조금 더 걸렸지만 말이다.
[뭐? 네바다를 혼자서 가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미국은 한국처럼 치안이 좋은 동네가 아니야. 콜슨 말을 들어. 까짓것 서로 주고받는 관계인데 그 정도 힘도 못 써 줄까?]류근태를 비롯한 측근들이 한국에서 워낙 바빴기 때문에 이번 미국행은 할아버지인 최기현의 비서실 인원 중 한 명이랑 같이 온 윤기였다.
하지만 비서라고 해서 네바다주에서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기에, 윤기는 현재 미군의 호위를 받아 리안나가 소개해 준 ‘페르난데즈’라는 사람의 집을 향해 가고 있었다.
물론 군용 지프가 아니라 일반 자가용에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는 두 명의 군인들 역시 군복이 아니라 사복을 입고 있었지만.
‘어마어마하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 지형을 보며 윤기는 혀를 내둘렀다.
예전 외할아버지와 함께 옥수수 밭을 보았을 때도 놀라기는 했지만, 이 사막 지형은 그보다도 한술 더 떴기 때문이다.
옥수수 밭은 주변에 옥수수, 하다못해 풀이라는 먹을 게 있었지만, 사막 지형인 이곳은 고립되는 순간 그야말로 끝장이 날 것만 같았다.
나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엄청나게 놀랐어. 높은 건물에 끝없이 늘어진 대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지.>
최덕배의 말에 윤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볼 때마다 새로운 나라에요.’
오페르트 녀석이 흥선군 부모 묘만 도굴하지 않았어도, 흥선군이 좀 더 개방적인 정책을 취했을 텐데 아쉬워. 그 도굴 때문에 흥선군이 꼭지가 돌아서 쇄국을 한 거였거든.>
입맛을 다시는 최덕배를 향해 윤기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기야 한데, 어차피 당시 조선의 대미 교역량이 0.1퍼센트도 안 되어서 별 의미가 없었을 거 같아요. 상업을 그렇게 천시했으니 교역할 거리가 있을 수가 없죠.’
그것도 그렇긴 하지. 아무튼, 귀신이 되고서는 딱히 미국에 다시 가 볼 생각을 안 했었는데, 네 옆에 붙어 있고 나서 미국 구경은 자주 하는 거 같네.>
‘이따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사 주게?>
‘해외여행이잖아요?’
입맛을 다시는 최덕배를 보며 윤기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차는 주유를 비롯하여 잠시 휴식을 위해 휴게소에 멈추어 섰고, 최덕배는 서양식 미니 제사상에 만족하며 윤기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휴게소에서 꿀맛 같은 휴식도 잠깐, 차는 또다시 주소를 향해 맹렬히 달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밤이 늦은 시각이 되어서야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휴우,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살 줄은 몰랐네요.”
네바다주는 사막뿐만이 아니라 산지도 많은 지형인데, 페르난데즈라는 사람은 고산지대의 바로 밑, 그러니까 산 바로 밑에서 통나무집을 지어 살고 있었다.
그나마도 통나무집 주변에 도로가 없어 윤기와 군인들은 몇십 분 정도 걸어서 이곳에 와야만 했다.
“여기 사람이 살고는 있는 거야?”
수염이 아주 덥수룩하다 못해 풍성한 하사의 말에 수염이 없는 상병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불도 꺼져 있고…….”
불빛이 전혀 나오지 않는 통나무집 창문을 보며, 하사, 상병, 윤기가 모두 문을 두드리지 않고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하지만 윤기는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최덕배를 향해 생각을 전달했다.
‘하, 할아버지. 저……, 귀신이 보여요.’
지금까지 실컷 봐놓고 새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