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74)
#474화 테러리스트와는 협상이 없다고? (3)
자고로 소문이란 상상 이상으로 속도가 빠른 법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1990년.
아무리 아프리카라 할지라도 무선으로 무언가 메시지를 송신할 방법이야 나름대로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자선단체들을 통해 퍼진 소문들은 어느새 해적들에게까지 퍼지기 시작했다.
선박을 나포한 해적들에게 퍼진 것이 아니라, 지금 발로 방바닥을 긁고 있는 해적들에게 말이다.
와, 세상에 이런 사악한 놈이 다 있나?>
그야말로 혀를 내두르는 최덕배.
윤기가 쓴 방법은 독을 독으로 제압하는 방법이었다.
한화 20억 원을 손에 넣은 해적이 안전하게 자신의 종점까지 도착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오쓰만이 윤기에게 말했지만, 절대 쉽지 않다.
내분도 내분인데, 협상을 성공적으로 끝냈다는 소식이 다른 해적들의 귀에 들어간다?
다른 해적들 입장에서 이건 잘 차려 놓은 밥상이나 다름없겠지.
되게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몸값을 성공적으로 받아낸 해적들 사이에서 내전이 벌어졌다.
그래서 소수의 인원이 거액의 돈을 독점할 수 있었는데, 이들이 안전하게 목표를 이뤘을까?
아니다.
폭풍우로 인해 이들이 탄 배가 좌초되었고, 이들이 몸값으로 받아 냈던 거액의 돈들은 그대로 바다에 수장된 상황.
그러던 중, 한 어부가 그들이 받아냈던 몸값 중 일부를 바다에서 우연히 건져냈다.
그 액수가 무려 수십만 달러.
해당 어부는 그 돈과 함께 조용히 소말리아를 탈출했고, 지금은 전설로 남았다.
결국, 인생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것은 이천혁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 * *
시간은 저녁 9시.
2010년대의 어린아이들이야 잘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9시 뉴스’는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그날, 전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 주는 국민들의 소식 창구.
그렇기에 8시에 저녁밥을 먹고, 9시에 13인치에서 19인치 정도 되는 TV 앞에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TV를 보는 일은 꽤나 흔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리모컨은 다름 아닌 자식들.
6번, 혹은 7번, 그것도 아니면 11번을 틀라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이나 딸들이 쪼르르 달려가서 채널을 돌리는 가정의 광경.
되게 익숙하지 않을까?
하지만, 대단히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 TV에서 벌어졌다.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오늘은 긴급 속보가 있으니, 본 뉴스를 시작하기에 앞서, 긴급 속보부터 알려 드리는 것에 양해를 부탁드립니다.]미묘한 앵커의 말.
긴급 속보면 그냥 앵커가 진행하면 된다.
그런데, 앵커가 진행하는 것이 아닌 긴급 속보라니?
처음 있는 광경에 국민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는 좀 더 TV에 집중했다.
그 순간.
화면 바깥에서 윤기가 몸을 조금씩 드러내더니 뉴스 앵커를 향해 귓속말하는 자세와 함께 평범한 크기의 목소리로 한마디를 건넸다.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 귓속에 도청장치가 들어 있…, 앗, 이게 아닌가?”
2020년을 기준으로 이걸 안다면 아재의 반열에 들었거나, 사회 상식에 관심이 꽤나 있는 인물 아닐까?
윤기는 방금 한 말과 함께 씨익 웃으며 앵커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각 가정에서는 빵 하고 웃음이 터졌다.
2년 전인 1988년에 있었던 일이 유쾌한 방식으로 반복되었으니까.
만약, 잘 모르는 인물이 이랬다면 ‘뭐야?’ 이런 반응이었겠지.
하지만, 윤기는 기본적으로 인기가 대단히 많은 인물.
더군다나 스크린에 잘생긴 얼굴이 떡 하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무언가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와이케이 그룹의 회장, 최윤기입니다. 여러분들에게 꼭 알려 드려야 할 소식이 있어서 모처럼 관심 좀 끌어 보기로 했습니다!”
굉장히 활기찬 윤기의 목소리.
그렇기에 어쩐지 방송사고 같은 느낌이 나지 않고,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여러분, 소말리아 해역에서 우리나라 선박이 나포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윤기의 말에 TV 앞에 앉아 있던 국민들의 표정이 살짝 심각해지며,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참견 좀 하기로 했죠!”
윤기가 참견하기로 했다는 말에 국민들의 안색이 꽤 밝아졌다.
“사실, 대통령 각하께서 어련히 잘하시겠지만, 제가 대한민국 국민들이 피해 보는 꼴을 못 보는 성격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후다닥! 이번 일을 처리했죠. 그렇습니다,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7분 52초 전, 아니 53초 전, 아니 54초 전, 아니, 하여튼 8분 전! 선원들은 모두 구출되었습니다!”
순간 대한민국 전체에 ‘우와아앗!’ 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최윤기!’, ‘최윤기!’, ‘최윤기!’ 하는 함성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오죽하면, 방송국 경비가 깜짝 놀라 주변에 시위대가 왔나 싶어 방송국 건물 밖으로 나갔을 정도였으니까.
“쉬이~.”
윤기가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막자, 국민들은 다시 TV에 집중했다.
“그런데 여러분, 한 가지 슬픈 일이 있어요.”
짐짓 슬픈 표정을 짓는 윤기.
하지만, 윤기는 국민들이 슬픔의 정서에 빠지지 않게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인질들의 몸값만 해도 무려 20억 원이 들었거든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제 주머니에서 20억이라는 돈이 나갔어요!”
20억.
상상만 해도 아찔한 금액에 국민들이 눈을 크게 뜨고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뿐만 아닙니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을 상황을 대비해서 배도 사야 했고, 병력도 파견했는데, 그것에 든 비용을 따지면 어후…. 20억의 몇 배나 되는 돈이 더 들어갔어요. 아흐흑…!”
사람들은 어쩐지 윤기가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다.
남을 위해 수십억이 넘는 돈을 쓰다니.
이만저만한 배포도 아니고, 이만저만한 씀씀이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여러분! 사람의 목숨이 중하지, 돈이 중합니까? 저는 그 돈, 하나도 안 아깝습니다! 그냥, 여러분이 저한테 관심 좀 주셨으면 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윤기는 씨익 웃었고, 국민들도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약 1초 후, 윤기가 순간 정색한 표정을 짓자 국민들은 깜짝 놀라며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처럼 사람의 목숨은 소중한 법이죠.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원래 해적한테 선박이 나포되면, 선박이 소속된 회사에서 몸값을 지불하는 게 보편적이라는 사실을요?”
전혀 몰랐던 사실에 국민들이 깜짝 놀랐다.
“성환해운, 참 나쁜 회사에요. 자기 돈 쓰기 아까워서 정부한테 책임 돌리고, 신문을 통해서 국민을 속인 거 보세요. 솔직히 공무원들 일 처리 속도 느린 건 여러분도 아시지 않습니까? 인질을 살리려면 시간이 생명인데, 공무원한테 일을 떠넘긴 거예요! 성환해운은 말이죠. 그야말로 돈에 미친 회사 아닙니까?”
여기까지 말한 윤기는 이내 다시 씨익 웃으며 마지막 말을 이었다.
“그냥, 이 말씀 드리려고 했어요. 여러분! 그럼 모두 즐겁게 하루 마무리하시길!”
나타났을 때처럼 빠르게 사라진 윤기의 모습.
그리고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TV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앵커까지도.
하지만, 역시 프로는 프로.
앵커는 원래 뉴스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뉴스입니다……]물론, 국민들의 눈과 귀에 이미 뉴스는 들어오지 않았다.
[[[[[성환해운 이거 아주 순 개새끼네!!]]]]]아마 몰랐겠지만, 윤기를 상대로 언론 플레이를 하려고 한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 * *
“이런, 썅!”
이천혁은 홧김에 자신의 사무실 책상을 걷어찼다.
“악!”
철제 책상을 힘껏 찼으니 당연히 아플 수밖에.
발가락은 물론이고 무릎까지 삔 이천혁은 눈물까지 쏙 빼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아흐윽! 씌앙!”
아파하든가, 화내든가, 둘 중 하나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이천혁은 둘 다 하느라 그야말로 여념이 없었다.
‘빌어먹을 새끼가 왜 끼어들어서는!’
막대한 보험금이 코앞까지 다가왔었다.
해적들에 의해 인질들이 다치고, 배가 가라앉았다면 얼마나 많은 보험금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보험금은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왜냐하면 인질들이 모두 구출되었고, 배 역시 안전하게 돌아왔으니까.
이렇게 되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에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 버린다.
더군다나 은퇴를 얼마 안 남겼던, 많은 퇴직금을 받아야 하는 직원들도 그냥 퇴직해 버리겠지.
그야말로 얻었어야 할 이익은 사라지고, 없어졌어야 할 손해는 그대로 남은 것이다.
그렇기에 이천혁은 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천혁 정도의 녀석은 윤기에게 대항하고 싶어도 대항하지 못하는 것을.
내로라하는 재계 순위권의 인물들도 윤기에게 덤벼들었다가 박살이 났다.
이 상황에서 이천혁이 할 수 있는 것?
없다. 아무것도 없다.
더불어서 이천혁은 윤기에게 감히 도전할 깜냥도 없었다.
그저 상황에 대해 분통을 터뜨릴 뿐.
하지만, 이천혁이 윤기에게 대항할 생각이 없더라도, 상황은 이천혁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천혁이 가입한 보험사로 이번 선박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가 제공되었으니까.
물론, 보험사는 지금 당장 이천혁에게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일단 보험금을 지급하고, 후에 불법 수령으로 소송을 걸겠지.
거기에 나포되었던 직원들이 이천혁의 의도를 알게 된다면, 과연 그냥 놔둘까?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랜 기간 배를 탄 뱃사람들이?
이천혁은 분명 머리가 뛰어나긴 했지만, 뱃사람들의 생태에 몰라도 너무나도 몰랐다.
그리고 조만간 그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물론, 지금 당장 대가를 치러야 할 녀석들도 있었다.
“크하하핫! 이게 다 돈이다! 돈이라고!”
무려 70명으로 이루어진 해적단.
소규모 해적단들은 10명에서 20명 사이로 구성되어, 보트를 통해 해적질을 한다.
하지만, 지금 소말리아 태생인 무함마드가 이끄는 해적단은 규모가 무려 70명이었다.
심지어 보트가 아니라 선박까지 이용한 해적단.
그렇기에 이들은 이번에 번 돈을 통해 그야말로 환호했다.
“분배는 걱정하지 마라. 지금까지 내가 너희들을 걱정하게 한 적이 있느냐?”
[[[[[없습니다!!]]]]]규모가 이 정도가 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선장의 리더십도 어느 정도 필요한 법.
그렇기에 의외로 내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인원이 많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다른 선박들을 나포해야 하지. 이틀의 휴식을 가진 후, 다시 활동한다. 알았나?!”
[[[[[알겠습니다!!]]]]]그야말로 우렁찬 대답.
이들은 휘파람까지 불며 항해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향해 다가오는 보트들이 있었다.
어째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실제로 최덕배가 살짝 당황할 만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름대로 규율이 잡혀 있는 70명의 무함마드 해적단.
그런 무함마드의 해적단이 번 돈에 눈이 벌게져서 달려오는 다른 해적들의 연합.
하지만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무함마드의 해적단은 다른 해적들이 접근하기도 전에 그냥 수장시켜 버렸다.
물론, 일부 인원이 죽었지만 말이다.
거의 50명에 가까운 인원이 무함마드의 배를 습격했지만, 무함마드의 해적단이 입은 피해는 고작해야 13명.
오히려 해적들은 좋아했다.
“우리의 몫이 늘었구나!”
[[[[[우와아아아앗!]]]]]어떻게 보면 윤기의 계획이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
하지만, 애초에 이 방식은 소말리아 해역의 해적을 동족상잔을 시키려는 방법이었고, 윤기가 세운 진짜 계획은 따로 있었다.
“서, 선장!”
망원경으로 정찰을 담당하는 선원이 몸을 덜덜 떨며, 자신이 들고 있던 망원경을 무함마드에게 넘겨주었다.
“오, 지저스…….”
무함마드의 눈에 보인 것은 어느새 자신들의 배를 포위하고 있는 군함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