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식스 센스 (2)
‘아니, 할아버지 말고 다른 귀신이 보인다고요. 저기 침대에서 끙끙거리고 있는 사람 배에 앉아 있는 귀신이요.’
나 말고 다른 귀신이 보인다고?>
최덕배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윤기 주변을 부유했다.
만약 침대와 자고 있는 사람을 언급하지 않았다면 윤기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유령 특유의 푸르스름한 불빛을 확인했다는 얘기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귀신이 있는 것은 사실인데, 네가 나 말고 다른 귀신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네.>
‘귀신 있는 거 맞아요?’
맞아. 양놈 귀신 하나가 있어.>
최덕배의 말을 들은 윤기가 예전에 최덕배와 나눈 대화들을 떠올리며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가만, 할아버지 말고 다른 귀신들도 있는 거죠?’
옛날에 말했잖아. 제사상 못 받아서 놀림 받은 적 있다고.>
‘그런데 저는 왜 다른 귀신들을 못 본 거죠?’
보고 싶어? 길거리 돌아다닐 때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보고 싶지는 않죠.’
날 봤다고 해서 다른 귀신들을 전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귀신들을 보는 게 결코 축복이라고 할 순 없어. 나 같은 귀신은 정말 흔치 않거든.>
윤기는 속으로 ‘나잇값 못하는 귀신’이라는 표현을 하려다가 가까스로 참아 냈다.
너, 방금 나 욕했냐?>
‘아뇨.’
얼굴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윤기를 바라보며 최덕배가 조금 미심쩍은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네가 봐도 알겠지만, 저기 있는 귀신은 정상이 아니야. 굳이 표현하자면 악령에 가깝지.>
‘왜 악령이 저 사람한테 달라붙은 거죠?’
귀신을 볼 수는 없지만, 귀신의 영향은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거든. 여러 가지 우연이 겹치면 저렇게 되는 거지.>
‘불쌍하네요.’
그나저나 너 저 녀석이랑 이야기할 거 아니냐?>
‘그렇죠. 고용 여부를 확인하러 온 거니까요.’
옘병.>
최덕배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왜요?’
저 녀석 옆에 총 있잖아. 지금 문 두드리면 백 퍼센트 피해망상 걸려서 문 쪽에 총 쏠 거다.>
‘그럼, 어떻게 하죠?’
어떻게 하긴, 밥값 해야지.>
최덕배는 통나무집의 벽을 그대로 통과하더니 안으로 들어갔고, 동시에 페르난데즈의 배 위에 앉아 있던 귀신과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노인네가 무슨 깡으로…… 어?’
놀랍게도 최덕배는 자신보다 체구가 현격히 큰 190센티의 백인 귀신을 그야말로 두들겨 패고 있었다.
백인 귀신도 맞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는지 최덕배에게 반항을 하려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반란’은 제압되었고, 순식간에 최덕배는 백인 귀신을 바닥에 두고 그 위에 깔고 앉았다.
이게 바로 흥선군이랑 같이 투전판에서 익힌 싸움법이다. 야, 뭐 해? 안 들어오고. 이제 들어와도 될 거야.>
최덕배의 말에 윤기가 속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의 하사를 향해 말했다.
“아무리 봐도 안이 안 보이는데, 일단 노크라도 해 볼까요?”
마냥 이렇게 서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윤기의 말에 하사가 고개를 끄덕였고, 동시에 상병이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고는 윤기를 뒤로 물러나게끔 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하사의 행동과 동시에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고, 20초 정도 지나자 통나무집 창문 안쪽에서 약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누구시죠……?”
피곤이 가득한 목소리.
그러자 하사가 조심스럽게 답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리안나 님께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만,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리안나라는 이름 덕분인지 통나무집의 문이 천천히 열렸고, 그러자 페르난데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젊네?’
끽해야 20대 후반 정도나 되었을까? 리안나가 말한 경력을 생각해 보면 성인이 되자마자 겐슬러에서 일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염을 제외했을 경우로, 페르난데즈의 덥수룩한 수염은 나이를 10년 정도는 더 먹어 보이게 만들었다.
“리안나의 소개를 받고 왔다고요……? 그런데 그 총은…….”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페르난데즈의 모습은 산 바로 아래인 이곳에서 적절한 모습은 아니었다.
“아, 죄송합니다. 안에 불이 꺼져 있기도 하고, 혹여나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서…….”
하사와 상병은 권총을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고, 페르난데즈는 피곤한지 큰 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잘하셨어요. 어쩌다 보니까 오늘은 제가 총을 안 들었는데, 평상시였으면 문을 두드리시는 순간 제가 총으로 문 쪽을 쐈을 거예요.”
“어……, 음……, 어떤 의미로는 다행이네요.”
하사의 말에 페르난데즈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문을 좀 더 많이 열었다.
“일단은…… 들어오세요.”
통나무집 중앙 천장에 매달려 있는 전구가 켜지면서 내부가 그래도 꽤 많이 밝아졌다.
“발전기를 쓰시나 보죠?”
상병의 말에 페르난데즈가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 없다고 했는데, 친구들이 달아 주더라고요. 그때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요.”
“이런 곳에서 생활이 되시나요?”
“한동안 신경이 엄청 곤두서 있어서 도시에서는 집에서 총 쏘다가 복도 지나가던 사람도 죽일 뻔했거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여기서 생활하고 있어요. 먹는 거야 친구들이 통조림 같은 걸 사다 주니까…….”
페르난데즈의 말을 듣던 윤기가 픽 웃으며 끼어들었다.
“저는 사냥을 해서 살아가시는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수염도 덥수룩하셔서 완전 상남자 느낌이 나잖아요.”
자신들에 비해 어린아이가 무언가 낭만 섞인 상상을 표현하자 세 사람 모두 얼굴에 웃음을 떠올렸다.
“그렇게 생활하면 좋겠지만, 사냥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라서 말이야. 게다가 난 도축하는 방법도 모른다구.”
“그러면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여기에서 불편함을 감수하고 생활하시는 건가요?”
페르난데즈가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 그래도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정신이 좀 편하네. 손님이 와서 그런가……. 손님이 와서 그렇다고 하기에는 친구들이 와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여러모로 생각에 잠기던 페르난데즈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오셨는데 아무것도 안 내놓고……. 보드카라도 한 잔씩 드릴까요? 차라도 끓이고 싶지만, 없어서 말이에요.”
하사와 상병은 윤기의 눈치를 보며 고개를 저으려고 했지만,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종일 고생하셨으니까 한 잔 정도야 괜찮잖아요?”
어물쩍 큰 컵으로 보드카를 한 잔씩 받게 된 하사와 상병은 땅콩을 안주 삼아 페르난데즈와 잔을 부딪쳤고, 한동안 즐거운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꽤 오랜 시간 운전을 해서 피곤했던 하사와 상병은 알코올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페르난데즈는 모처럼 정신이 건강할 때 손님이 찾아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윤기가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30분 정도만 바깥에서 기다려 주실 수 있을까요?”
* * *
타이밍을 잡은 윤기의 말에 하사와 상병이 조금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그건 좀……. 강력하게 지시를 받아서 말입니다.”
“총이랑 위험하다 싶은 것들은 일단 따로 들고 나가셔도 좋아요. 뭣하면, 창문으로 보고 계시다가 들어오시면 되잖아요?”
“음…….”
“부탁드릴게요.”
창문으로 봐도 된다는 조건 덕분인지, 하사와 상병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위험하다 싶은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의 발걸음 중 한 사람의 발걸음이 문 앞에 멎은 것으로 봐서는 무언가 사태가 벌어졌을 때, 한 명이 바로 진입할 생각으로 보였다.
“왜 갑자기 다른 사람들을 내보낸 거야?”
페르난데즈는 호위인 듯한 둘의 행동으로 보았을 때, 눈앞의 동양인 아이가 무언가 지체 높은 신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들은 믿기 힘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요.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바보가 된 경험은 이미 충분히 하셨을 거잖아요.”
“어……?”
페르난데즈는 설마설마하는 표정을 지으며 윤기의 입을 계속 바라보았다.
“계속 헛것이 보이고, 집 안의 물건이 움직이고, 툭하면 악몽을 꿨죠?”
“그걸 어떻게……?”
순간 페르난데즈가 피식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리안나한테 들었나 보네. 리안나도 쓸데없이 장난이 심하다니까.”
하지만 이어진 윤기의 말에 페르난데즈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어디 보자……, 정확히 87일 전에 벽에 설치한 위쪽 선반에서 세 번째 접시가 바닥에 떨어졌고, 몇 초 후에는 아래쪽 선반에서 다섯 번째 접시가 바닥에 떨어졌죠?”
“그, 그걸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상세하게 말한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페르난데즈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혹시 몰라 달력을 가져와 87일 전이 언제인지 날짜를 체크해 보니, 수첩에 적어 둔 일기에는 정확히 동일한 내용이 쓰여 있었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현재 최덕배는 백인 귀신을 상대로 마운트 자세를 한 채,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고럼, 감사해야지. 뭐, 내 스트레스 푸는 데도 이만한 게 없지만.>
‘그렇게 때려도 돼요?’
이 녀석 과거 기억을 더듬어 보니까, 일제강점기 때 일본 편을 든 놈이야.>
‘아, 그럼 마음껏 패세요.’
윤기와 최덕배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페르난데즈는 수첩의 확인을 마쳤고, 동시에 의심 절반 불안 절반이 섞인 눈으로 윤기를 바라보았다.
“너……, 정체가 뭐야……?”
“음, 저는 한국에서 온 최윤기라고 해요. 리안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저를 윤이라고 부르죠.”
“그래, 윤. 너는 무엇 때문에 나한테 온 거지?”
“당신을 고용하고 싶어서요.”
페르난데즈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지금 일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지만,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야. 저걸 보면 알잖아?”
통나무집 안쪽에는 페르난데즈가 디자인을 위해 준비한 종이들이 잔뜩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이들이 백색인 것으로 보았을 때, 정신이 몰려 있어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겐슬러로 돌아가는 게 맞겠지. 굳이 한국이라는 들어본 적 없는 나라로 내가 갈 이유는 없잖아?”
“아마 저를 따라오실 수밖에 없을걸요?”
“그게 무슨……?”
페르난데즈의 미간이 찡그려졌고, 순간 창문을 약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윤기는 창문을 향해 손바닥을 보이며 괜찮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동시에 페르난데즈를 향해 말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아시죠?”
“재팬? 당연히 들어본 적 있지.”
“일본 사람들은 신기한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죠?”
“닌자나 사무라이 같은 거? 당연히 있지.”
일본이 어떠한 식으로 외국에 자신들의 나라를 선전하는지 알고 있는 윤기는 일본을 이용하기로 정했다.
“옆에 있는 한국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그중에서도 유령을 보고,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죠. 뭐, 이건 비밀이지만요.”
순간 페르난데즈는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핫! 이거 완전 걸작인데? 거짓말도 좀 그럴듯하게 꾸미는 게 좋지 않아?”
윤기는 어깨를 으쓱였다.
“만약, 제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 87일 전에 있었던 일을 어떻게 알았겠어요? 다른 것도 이야기해 볼까요?”
윤기는 최덕배를 통해서 들은 내용을 페르난데즈에게 읊기 시작했고, 페르난데즈는 말을 들을 때마다 수첩을 보며 표정이 심각해졌다.
“너 진짜…… 볼 수 있는 거야?”
“진짜라니까요. 당신도 꿈에서 유령으로 추정되는 존재를 볼 거 아닌가요? 제 옆에 있는 한은 유령이 당신을 괴롭히지 못할 거예요. 그러려면 저에게 고용되어야 하겠지만요. 실제로 지금도 정신이 매우 편안하지 않나요?”
그건 그렇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페르난데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서 일을 할 수는 없어.”
“그럼, 결정됐네요. 평생 이 통나무집에서 사시는 게 말이죠.”
윤기는 싱긋 웃으며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