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9)
#49화 나는 경영인이다 (1)
“뭐라구……?”
다소 어이없어하는 페르난데즈를 보며, 윤기가 당연하지 않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유령한테 곤욕을 치르지 않으려면 제 옆에 있어야겠죠. 하지만 저는 미국에 있을 수 없고, 페르난데즈, 당신은 한국에 오기가 싫어요. 그러면 뻔하지 않나요? 평생 이곳 통나무집에서 사는 수밖에.”
페르난데즈의 표정이 좀 더 확연해졌다.
“지금 날 놀리는 거야?”
“놀리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비즈니스를 이야기하는 거죠. 따로 저에게 바라는 게 있나요?”
“그거야 당연히…….”
“다시 말씀드리지만 퇴치는 불가능하다고 말씀드렸어요.”
“거짓말하지 마!”
윤기는 되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종교 단체에도 심취한 적이 있다면서요? 그렇다면 카톨릭, 개신교를 비롯해서 온갖 종교는 다 찾아다녀 보지 않았나요? 정신을 고치기 위해서 말이죠.”
“그건…….”
“그 사람들도 퇴치 못 한 유령을 제가 퇴치할 수 있다고 믿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요?”
“으윽…….”
정론이 나왔기에 페르난데즈는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주먹을 부르르 쥐었다.
‘젠장, 젠장, 젠장!’
일을 하고 싶었다.
겐슬러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 통나무집에서 더 생활하는 것은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고, 눈앞의 소년이 떠나는 순간 또다시 악몽과 환각을 겪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이 소년을 따라 한국에 가는 것이 싫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지만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 자신의 인생을 던지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그런 말에 굴복할 것 같아? 원인을 찾았으니 이제 고칠 수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행운을 빌게요.”
윤기는 검지와 중지를 합쳐 미니 경례를 하고는 통나무집의 문을 열었다.
“여기 계셨네요.”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상병이 권총을 주머니에 넣으면 멋쩍은 웃음을 짓는 것을 보며, 윤기는 하사를 향해 말했다.
“우리는 돌아가죠.”
“네? 이 시간에요?”
“아무래도 환영받지 못할 것 같거든요.”
윤기가 앞장서서 숲길을 걷기 시작하자 군인들은 대경하면서도 곧바로 윤기의 뒤를 엄호했다.
“자세한 얘기를 못 들었는데, 저 사람은 무슨 일로 만나려고 하신 거죠?”
“아아, 제가 한국에 미군들을 위한 백화점을 운영하려고 하는데 거기에 내장 인테리어 전문가가 필요해서요.”
“미군들을 위한 백화점이라고요?”
“네. 주한 미군들은 돈은 있는데 쓸 곳이 없잖아요. 기지촌이라고 해 봤자 제대로 된 가게도 없고요. 그럴 바에야 미국식으로 즐길 만한 곳을 하나 만들려고 하는 거죠.”
“호오……, 그렇지 않아도 저도 조만간 주한 미군으로 발령이 날 것 같은데 잘됐네요.”
하사의 말에 상병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라, 저도 주한 미군으로 조만간 발령이 나는데, 위에서 우리한테 오늘 일을 맡긴 이유가 그건가 보네요.”
“그러게. 한국에 가도 그렇게 심심하지는 않겠어. 그나저나 저나 얘나 둘 다 술을 한 잔씩 마셨는데 운전을 해도 될까요? 어차피 전장에서야 흔한 일이라 상관없기는 한데, 아무래도 저희들만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윤기는 하사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무전기를 가리켰다.
“거리야 조금 떨어져 있겠지만, 이 주변에도 미군 부대가 있지 않을까요? 거기에서 사람 불러서 부대로 데려다 달라고 하죠.”
“일정이 다 끝나신 건가요?”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조만간 절하면서 저한테 고용해 달라고 하게 될 거예요.”
악동과도 같은 미소를 짓는 윤기였지만, 군인들은 그 미소의 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다.
* * *
“으아아아아악!”
페르난데즈는 땀에 전 몸으로 나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
하지만 그 햇살도 페르난데즈의 정신을 맑게 해 주지는 못했다.
‘염병할!’
어제 윤이라는 소년이 다녀간 이후로 환각이 더욱 심해졌다.
[갑자기 접시가 깨졌다고요? 하지만, 깨진 접시는 아무 데도 없는걸요?]집주인에게 건물이 흔들리는 거 아니냐고 불렀을 때, 분명히 깨졌던 접시가 멀쩡해진 것을 보고 페르난데즈는 그야말로 할 말이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환각을 봐도 현실에서는 실제로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악령이 페르난데즈에게 환각을 보게 한 것이지, 실제 현실에 힘을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페르난데즈가 고통을 받기에는 충분.
어제 최덕배에게 줘 터진 귀신은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 더욱 강도 높은 고통을 페르난데즈에게 가져다주었고, 덕분에 페르난데즈의 양쪽 눈에는 핏발이 가득 서 있었다.
‘어, 어떻게든 해야 해.’
페르난데즈는 짐을 챙기더니 창고에서 자전거를 꺼내 덜거덕거리며 숲을 지나, 이어서 네바다주의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탄 후, 곧바로 자신이 투신했던 종교 단체들을 찾았고, 병원들을 찾았다.
하지만 하나같이 자신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종교 단체들은 유령을 퇴치하려면 새로운 기도가 필요하다며 돈을 요구했고, 정신과들은 아무래도 환각이 더 심해진 것 같다며 강도 높은 약물 치료와 입원을 제안했다.
‘빌어먹을 놈들!’
결국, 페르난데즈가 찾은 것은 케임브리지의 리안나였다.
‘리안나가 나를 소개했다고 했지?’
소년의 연락처를 알 방법이 없었기에 남은 희망은 오로지 리안나 하나뿐.
그리고 리안나와 만나기까지 일주일 동안 페르난데즈는 더더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맛봐야만 했다.
“세상에, 페르난데즈 얼굴이 왜 그래?”
땀을 하도 흘리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페르난데즈의 모습은 PTSD에 잔뜩 시달린 미군과 다름이 없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마약 중독자로 보일 여지가 있었다.
“유, 윤. 윤이라는 녀석은 도대체 뭐야?”
핏발이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찾아와 윤기를 찾는 페르난데즈의 모습에 리안나가 다소 공포를 느끼며 사실을 이야기했다.
“우리한테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한국의 아이야. 사업가이기도 하고.”
“뭐? 사업가? 그런 아이가?”
“어. 저번에 널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이야기가 잘 안 됐어?”
리안나는 페르난데즈가 윤을 ‘아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을 토대로 이미 만남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얘기해 봐. 도대체 그 녀석은 뭐야?”
“방금 말한 대로야. 우리한테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는 사업가.”
“후원을 도대체 왜 하는 건데?”
“자기가 성인이 되었을 때 밑에서 일해 줄 인재를 원한대.”
“그러면 장학금의 대가로 다들 무조건 한국에 가야 하는 거야?”
리안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어디까지나 회사에 지원을 한 번만 해달래. 거절하지 못할 조건을 제안할 거라나?”
“그 말을 믿어……? 한국이라는 나라 듣도 보도 못한 곳이잖아.”
리안나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돈이야 확실히 받고 있는 데 뭐가 문제야? 나 혼자만 받는 게 아니라 장학금을 받는 인원이 열 명을 훌쩍 넘어.”
“……?”
“게다가 다들 모여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아보니까 그렇게 일을 못 할 곳은 또 아니더라. 게다가 돈만 제대로 받으면 어디서 일하든 상관없잖아? 이 불경기에. 아, 너는 겐슬러에서 일을 했으니까 불경기를 체감 못 하겠지만…….”
이미 성공한 친구에 대한 질투와 부러움이 섞인 표정에 페르난데즈는 자신이 어쩐지 기회를 놓친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젠장, 나는 한국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고.”
“윤의 제안을 거절한 거야? 안타깝네. 윤이 상대를 아쉽게 할 만한 제안을 할 아이는 아닌데…….”
“제안이고 뭐고 듣지도 못했어.”
“어? 왜?”
의아한 표정을 짓는 리안나를 향해 페르난데즈는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최소한 제안이라도 들어볼 수야 있었지만, 그런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게 한 것은 엄연히 자신이었으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윤의 연락처를 가진 게 있어? 나한테 연락처를 남기지 않아서 말이야.”
“도대체 윤한테 어떤 반응을 보인 거야?”
“시끄러워! 연락처나 내놔!”
“너 아직도 아프구나…….”
“보면 몰라? 그러니까 좀 내놓으라고!”
리안나는 이성을 잃고 총까지 쏘아대던 페르난데즈의 모습을 생각하며 앤드류의 사무실로 가 보라는 조언과 함께 볼일이 있다며 사라졌다.
“젠장, 젠장…….”
이미 떠난 차를 붙잡기 위해 페르난데즈는 빠르게 움직였다.
* * *
“그러니까 모든 귀신이 이 주변에 존재한다는 건 아니란 얘기죠?”
윤기의 물음에 최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 역사 대대로 모든 귀신들이 여기에 남아 있으면 온 세상이 겨울철 새벽 6시 신도림역 지하철이랑 똑같은 상황이 될 거야.>
“어우,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애초에 여기에 남아 있는 귀신은 거의 없어. 솔직히 인간이 100년만 살아도 인생이 지겨운데, 먹지도 못하고, 만지지도 못하고, 제대로 된 대화도 하지 못하는 여기에 남아서 뭐 하냐?>
“그럼, 귀신들은 어디로 사라지는 거예요?”
그냥 진짜 저승으로 가는 거지. 그곳이 어떤 세계인지는 나도 잘……, 아니 몰라. 아무튼, 여기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귀신들은 어디 하나 맛이 가 있는 녀석들이라고 보면 돼.>
“그럼, 그 녀석들 때문에 종종 진짜 귀신을 봤다느니 그런 이야기가 생기는 건가요?”
대부분은 정신병이고, 극히 소수만 진짜 귀신을 본 거겠지. 애초에 나처럼 이렇게 호의적인 귀신은 드물다니까?>
“음……, 그건 인정해야겠네요. 그러면 저번에 놀림 받았다고 하신 건 뭔가요? 그 귀신들도 비정상이에요?”
최덕배가 묘하게 그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녀석들은 세상이 지겹다고 떠났어. 내가 제삿밥에 특히나 미련을 둬서 그렇지, 대부분은 제삿밥도 한두 번이지 그것도 결국에는 지겨워지니까.>
“뭔가 씁쓸하네요.”
씁쓸할 것까지야. 너도 한 200년 살아 봐, 인생이 안 지겹나.>
“저는 지금 무진장 재밌는데요?”
윤기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최덕배가 웃음을 터뜨렸다.
얀마! 너는 지금 엄청 즐거우니까 그렇지. 그리고 넌 두 개의 인생을 합쳐도 아직 60살도 안 먹었잖아!>
“하긴, 그거야 그렇죠.”
아무튼, 슬슬 약속 시간인데 안 일어나도 되냐?>
“슬슬 일어나야죠.”
윤기는 페르난데즈의 만남 요청을 받고 어젯밤 케임브리지로 왔다.
현재 시각은 낮 11시.
11시 30분에 호텔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슬슬 준비해도 될 시간이다.
저 녀석 어지간히 마음이 급한가 보네.>
11시 15분, 카페 창밖으로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는 페르난데즈의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그렇겠죠. 제대로 두들겨 맞은 귀신이 화풀이를 해댔을 테니까요.’
뭐, 가만히 놔둬도 괴로웠겠지만, 요 며칠은 더욱 괴로웠겠네.>
‘그래서 제가 아주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요.’
윤기가 카페에 들어서자 페르난데즈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바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표정이 정말 별 감흥이 없다는 뉘앙스로 바뀌었는데, 이미 창밖에서 페르난데즈의 표정을 본 윤기에게는 통하지 않는 일이었다.
“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한 거죠?”
용건은 만나서 듣겠다고 한 덕분에 ‘표면상’으로는 페르난데즈가 왜 만나자고 하는지 윤기는 몰랐다.
“아아, 다른 게 아니고 그냥 한국에 가서 ‘일을 해 줘도’ 될 것 같아서.”
선심 쓴다는 듯한 페르난데즈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 필요 없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