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490)
#490화 서민에게는 너무 먼 민사 (2)
‘으, 으잉?’
정대기는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변호사 조청우라고 합니다. 사장님 소유의 주택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김성하 의뢰인의 의뢰를 받아 연락드렸습니다.]어제 정대기가 받은 전화.
정대기는 어제 전화를 받자마자 표정을 와락 구겼다.
‘아니, 돈도 없을 놈들이 돈이 어딨다고 변호사까지 고용했어?’
정대기 입장에서 전세나 월세를 사는 녀석들은 모두 거지다.
자기가 거지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받아 집을 산 것이었으면서도 이리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전세금이 묶인 세입자들에게 변호사를 고용할 돈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는데, 세입자 중 한 명이 변호사를 고용해 온 것이다.
그래서 전화를 받은 직후, 정대기는 그냥 해당 세입자에게는 전세금을 무리해서라도 돌려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잠시 접어 두었다.
‘일단 만나 보고 결정하면 되잖아? 변호사가 성골인지, 6두품인지, 아니면 쌍것인지는 일단 만나 보고 판단하면 되겠지.’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변호사 조청우라는 녀석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상대는 자신이 ‘싫다’라고 대답하기가 무섭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경우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상대가 굳은 표정을 짓거나, 화난 표정을 짓기라도 했으면 조금이라도 이해가 갔겠지.
그런데 상대는 전혀 화를 내지 않을뿐더러, 아예 순수한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원래 이럴 때는 으름장을 놓아야 정상인 거 아냐?’
상식적으로 이럴 때는 변호사가 민법 몇 조, 몇 항을 들먹이며 겁박을 줘야 정상.
그런데 눈앞의 조청우라는 변호사는 아예 그럴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자, 잠깐만요!”
막 등을 돌리려던 조청우가 다시 몸을 돌리며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그냥 가는 겁니까?”
정대기의 질문을 받은 조청우는 도리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
“그냥, 가시는 거냐고 물었는데요…?”
“어…, 그럼, 제가 무엇을 해야 하죠?”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조청우의 모습.
그렇기에 정대기는 더더욱 아리송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럴 때는 법을 들먹이면서 저한테 말을 들어주라고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면 전세금 주실 건가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조청우를 향해 정대기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진…, 않겠죠……?”
“그러면, 제가 그런 말을 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더 이해가 안 간다는 조청우의 모습.
그렇기에 정대기는 더더욱 당황스러웠다.
‘뭐야, 이 사회성이 전혀 없는 멍청한 녀석은?’
정대기 자신이 아는 한, 사회생활은 절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위협도 하고, 협박도 하고, 거짓말도 하는 것이 정대기가 알고 있는 사회생활.
그런데 상대는 누가 봐도 천둥벌거숭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할 말 다 하셨죠? 그럼, 다시 가 보겠습니……”
조청우가 다시 나가려고 할 때, 종업원이 오렌지주스를 가져왔다.
“아, 맞다.”
조청우는 오렌지주스를 단숨에 들이켠 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제 건 제가 내고 갑니다.”
조청우는 동전을 꺼내 700원을 내려놓고는 그대로 카페를 떠났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정대기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뭐야, 병신이었잖아? 안심해도 되겠어.’
이래서 정보의 비대칭성이 무서운 것이다.
* * *
“자, 내가 시킨 것들 기억하죠? 그대로 진행하면 돼요.”
조청우의 말에 조청우의 비서가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비서가 법무팀에 전달할 명령.
그것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했다.
1. 정대기에게 내용증명 보내기
2. 전세금 반환 청구 소송 걸기
3. 사해행위 취소 소송 걸기
4. 임차권 등기명령 신청하기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이 내용들을 보면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최대한 쉽게 해석할 수는 있다.
1. 정대기한테 ‘네가 한 나쁜 짓’을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전하기
2. 내 전세금 내놓으라고 소송 걸기
3. 재산 다른 곳에 못 빼돌리게 소송 걸기
4. 내가 다른 곳에 이사 가더라도 정대기가 다른 사람한테 세 못 주게 하기
사실 법률 용어라는 게 워낙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들을 그대로 쓰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일반인들이 보면 ‘뭔 소리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그렇기에 현대사회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법 전문가의 도움이 더 필요한 것.
그런 의미에서 김성하라는 세입자는 엄청난 이득을 본 것이었다.
왜냐하면, 정대기 같은 자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윤기가 조청우를 출격시켰으니까.
1990년 대한민국 최고의 법무팀인 와이케이 법무팀.
그곳의 수장인 조청우 법무 이사가 직접 나섰으니까 말이다.
“아, 그리고 김성하 의뢰인 말고도, 내가 말했던 다른 사람들 있죠? 그 사람들한테도 가서 위임장 받아 오세요.”
“현재 법무팀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른 일들이 있는데, 그 일들과 병행할까요, 아니면 이 일에 집중할까요?”
“이 일에 집중하세요. 회장님의 직권 지시니까요. 불만 있는 사람들은 저한테 전부 전화 돌리라고 하고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조청우도 윤기의 밑에서 꽤 오래 일한 편이다.
류근태나 최철규 같은 개국공신급까지는 아니어도 그것에 준하는 수준은 되니까.
그렇다 보니, 나름대로 사람 다루는 방법도 본능적으로 체득하고 있었고, 또 윤기의 스타일을 답습한 것도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조청우의 지시.
불만이 들어오면 자신에게 전화를 돌리라고 한 것이다.
원래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의 지시로 인해 다른 곳에 불만이 생기면 부하들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하는데, 윤기도, 조청우도 자신의 지시로 인해 생긴 문제는 철저히 자신이 처리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서의 대답을 시작으로 와이케이 그룹의 법무팀 대부분이 정대기를 비롯한 투기꾼들을 때려잡는 데 전력을 다하게 되었다.
당연히 법무팀의 공백에 따라 불만이 생기는 자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고, 조청우는 자신의 말대로 그 전화들을 자신이 받았다.
“아, 그렇군요. 그런 문제가 있군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에 조청우는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면서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리고….
“제가 회장님한테 직접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떠한 불만이 있으시다고 말이죠. 그러면, 회장님께서는 분명 해결해 주실 겁니다.”
정말 다른 뜻이 전혀 없는 순수한 표현.
조청우는 진심이었지만, 말을 듣는 상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예, 예?! 뭐, 뭐라구요?]“예? 아, 전화 상태가 안 좋아서 잘 안 들리셨나 보네요. 여러 가지로 불만이 있으신 것 같으니, 제가 회장님께 보고 드리면서 직접 전달해 드리겠다는 말이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저에게 따로 지시를 내리신다면, 그 일을 바로 처리해 드릴 수 있으니까요.”
환한 기운까지 담겨 있는 조청우의 목소리.
여기까지 오면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 아,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이번 일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어? 급하신 거 아니었나요? 기다리실 수 있으시겠어요?”
[어유, 기다려야죠! 기다릴 수 있습니다!]전화가 끝나자, 조청우는 상대가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수화기를 전화기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뜨개질…, 이 아니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법무팀의 공백 메꾸기.
분명 엄청난 업무량이지만 조청우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직까지는…….
* * *
12월 23일.
정대기를 비롯한 투기꾼들은 빠른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
그것은 내용증명을 비롯한 수많은 법원등기.
조청우가 서류 봉투 하나에 다 넣는 것이 아니라, 개별로 보낼 것을 지시했기에 정대기가 받은 법원등기는 50개가 가볍게 넘었다.
왜냐하면, 정대기가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은 세입자는 이미 10명이 넘었으니까.
여기에 와이케이 그룹의 법무팀은 아직 기간이 남은 세입자들도 찾아가 정대기의 진실을 폭로하고, 위임을 제안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연말까지 족히 100통이 넘는 등기를 받아야 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죠? 어떻게 법원등기를 50개나 넘게 받아요?”
뜬금없이 등기를 50개나 넘게 배송해야 하는 우체부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을 맛.
정대기도 난데없는 등기 폭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다 뭐야……?’
처음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정대기였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아, 조청우!’
최근에 변호사를 만났었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이거 미친 거 아냐? 등기를 50개나 넘게 보내?’
하지만, 정대기의 표정은 어느 순간 굳을 수밖에 없었다.
등기를 몇 개 뜯어 확인하는 순간, 김성하 세입자의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세입자의 것들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미친! 뭐, 뭐야?!”
만약, 지금이 2020년이었다면, 그리고 정대기가 2020년의 악인이었다면 바로 조청우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그리고 물어보았을 것이다.
[아니, 당신! 내 세입자들에 대해서 어떻게 안 거야?]그리고 조청우가 개인정보보호법과 관련하여 말실수를 하길 바라겠지.
하지만 지금은 1990년.
개인정보보호법은 당연히 없다.
따라서 조청우가 어떤 방식으로 정대기의 세입자 명단을 구했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개인정보보호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딱히 문제는 없다.
‘그 사람들이 의뢰했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그만이니까.
원래 법이라는 건 모르면 당하는 거지, 알면 당하기가 힘들다.
그렇기에 사기꾼들이 2020년까지 대한민국에서 활개 치는 거고 말이다.
사기꾼들은 자신들이 사기를 치기 전에 아주 섬세하게 관련 법률들을 확인하니까.
심지어 판례까지.
하지만, 1990년 정대기의 상대는 너무나도 나빴다.
대한민국 최고의 법잘알 조청우와 조청우가 이끄는 와이케이 법무팀 사단이 상대였으니까 말이다.
‘빌어먹을, 어, 어쩌지?’
일단 내용증명이 도착했으니 나중에 법원에다가 ‘몰랐어요’라고 발뺌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임차권등기명령 관련한 내용으로 보아하니, 지금 가지고 있는 건물을 처분하거나 세를 놓을 수도 없었다.
거기다 재산 처분도 힘든 상황.
어떻게 보면 이래서 서민들이 악질 건물주를 이기기가 힘들다는 거다.
‘내 돈 돌려줘’라는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 필요한 ‘최소’ 서류만 해도 무려 네 가지.
심지어 이 네 가지가 전부 충족된다고 해도 돈을 돌려받기는 쉽지가 않다.
상대가 배 째라고 하거나, 재산을 미리 은닉해 놓았으면 어떻게 방법이 없으니까.
실제로 정대기는 이대로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빌어먹을 이판사판이다.’
지금까지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마지막’에만 불법을 쓸 생각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처음부터 끝까지 불법을 쓰기로 마음먹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