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0)
#50화 나는 경영인이다 (2)
“에?”
순간 페르난데즈가 자신도 모르게 멍청한 소리를 내어 버렸다.
“뭘, 그렇게 놀라시나요. 그때 거절을 하셨으니까 저는 이미 대체 인력을 구하고 있었죠.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벌써 면접을 예약해 둔 사람들이 있어요.”
“자, 잠깐만. 나를 쓰지 않겠다고?”
“네. 싫다는 사람 억지로 일을 시키는 취미는 없거든요.”
“나만한 사람은 찾기 힘들 텐데?”
“어차피 역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을 세울 것도 아닌 데다가, 외장이 아니라 내장 인테리어에요. 대체 인력이야 널리고 널렸죠.”
“아니, 잠깐만…….”
페르난데즈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스스로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더 할 말이 없으시면 이만 일어나 볼게요.”
“잠깐, 잠깐만!”
하지만 윤기는 일어나려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가면 나보고 어쩌라고! 나는 평생 이렇게 유령한테 괴로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해?”
“그거야 제 알바가 아니죠. 그렇게 따지면 당신은 아프리카의 굶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나요? 제 주변 사람들도 건사하기 바쁜데 생판 남한테 신경 써 줄 만큼 전 인격자가 아니라서요.”
“다른 애들한테는 장학금도 주고 그랬잖아!”
“그거야 나중에 제가 고용할 사람들이라서 그런 거죠.”
“왜 나한테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거야. 왜!”
페르난데즈는 눈앞의 소년이 사라지는 순간 평생을 고통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말을 할 기회라도 줬나요? 아무튼, 저는 굳이 당신을 고용해야 할 이유가 없어요.”
윤기가 등을 돌리자, 페르난데즈는 무릎을 꿇고 윤기의 무릎을 붙잡았다.
“일할게! 일을 하게 해 줘! 아니, 일을 하게 해 주세요!”
카페가 소란스러워지자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필연이었다.
“하아, 일단은 앉아 봐요.”
윤기는 영 마뜩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훌쩍이던 페르난데즈 역시 겨우 자리에 앉았고, 이야기가 본론으로 진입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고용해야 할 이유가 뭐죠?”
페르난데즈는 다시 말문이 턱 하고 막혀 버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모습.
산타 할아버지 수준으로 덥수룩한 흑갈색 수염의 남자가 질질 짜기 시작하니 윤기의 입장에서도 보기가 참으로 곤혹스러웠다.
‘슬슬 당근을 줘야 할 때인가?’
사실 윤기 입장에서도 페르난데즈를 고용하는 것이 무조건 이익이었기에 무조건 채찍만 후려치는 것은 절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너무 고민하지 마요. 그냥, 내가 당신을 고용해야 할 이유를 잘 생각해서 말하면 돼요.”
잠시 고민하던 페르난데즈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그건 방금 제가 대답했잖아요. 그 정도 능력까지는 필요 없다고 말이죠.”
페르난데즈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설마 하는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싸게 일하면……?”
“그거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네요.”
윤기는 아까부터 메시지를 던졌다 ‘굳이 비싸게 당신을 쓰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말이다.
하지만, 페르난데즈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쨌든 페르난데즈는 겐슬러에서 꽤 촉망받던 인재였으니까.
“어, 얼마나 줄 수 있는데……?”
79년 기준으로 미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 12,000달러 정도, 반면 한국의 GNP는 5,500달러 정도로 얼추 2배 정도의 차이가 났다.
이러한 1인당 국민 소득은 묘하게 1위 기업의 신입 사원 연봉이랑 얼추 비슷한 편인데, 그런 만큼 겐슬러에서 일하고 있던 페르난데즈라면 최하 2만 달러 이상은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윤기는 절대 그렇게 줄 생각이 없었다.
“5,500달러 정도라면 생각해 볼 수 있죠.”
“월급으로……?”
반문을 들은 윤기가 환하게 웃자, 페르난데즈의 얼굴 역시 밝아졌다.
“미쳤어요?”
“야, 아무리 그래도 5,500달러는……. 내가 마지막으로 겐슬러에서 일했을 때도 연봉이 1만 달러는 넘었는데…….”
73년 이전에 연봉이 1만 달러가 넘었다는 얘기는 그만큼 페르난데즈가 촉망을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윤기는 굳이 페르난데즈에게 지금부터 대우를 잘해 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페르난데즈.”
“응……?”
“그래서 사람은 처음에 선택을 잘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당신을 찾아갔을 때 바로 수락했더라면 다른 사람을 찾지도 않았을 테죠. 하지만 당신은 저를 거부했어요. 그러니 지금 상황이 된 거죠. 당신을 찾으려고 저는 네바다까지 가야 했고, 지금은 또 당신이 불러서 여기까지 와야 했어요. 이러는 데에 들어간 시간과 비용은 생각하지 않나요?”
“그건…….”
페르난데즈는 전혀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입을 다물었다.
“그러니까 선택하세요. 일을 할지, 안 할지. 그게 당신이 가진 유일한 선택권이에요.”
“끄응…….”
페르난데즈가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윤기가 두 번째 당근을 내밀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주거 비용은 이쪽에서 부담할 예정이에요. 그러니까 실질적인 연봉은 좀 더 높다고 생각해도 되겠죠.”
“아, 진짜?”
페르난데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실제로 미국 실리콘 밸리 같은 곳에서 일을 하는 근로자들은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지만, 살인적인 집세 때문에 실질 소득이 생각보다 무척 낮은 경우가 꽤 된다.
페르난데즈 역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에 주거 제공이라는 말에 꽤 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평생 그렇게 박봉을 받으면서 일해야 해?”
“능력만 잘 보여 준다면 제가 성인이 된 이후에 제대로 된 협상을 다시 해 보도록 하죠.”
“그게 언젠데?”
“7년 남았네요.”
“7년…….”
“그것조차도 싫다면 할 수 없고요.”
결국, 페르난데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네……. 하지만, 네 옆에서 다시 악몽을 꾸게 된다면 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올 거야. 네 밑에서 일하는 이유는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니까.”
“걱정 마세요.”
싱긋 웃는 윤기의 표정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페르난데즈는 이날, 숙면으로 윤기를 신뢰하게 되었다.
* * *
같은 비즈니스호텔에서 묵게 된 윤기는 낮이 되어서야 페르난데즈를 호텔 내부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잘 잤어요?”
머리도 감지 않은 채 내려온 페르난데즈는 그야말로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푹 잠을 잔 적은 정말 오랜만이야. 정말 기분 좋은 꿈도 꿨고.”
“유령을 두들겨 패는 꿈이요?”
“어떻게 알았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 페르난데즈를 향해 윤기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제 밑에서 일해야 하는 이유를 알겠죠?”
“젠장……, 그때 통나무집에서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봐야 했어……. 한국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저평가하는 바람에…….”
“뭐, 기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잖아요? 7년 뒤를 기대해 보자고요.”
“그래……, 내가 아는 사람들도 그때쯤 너한테 면접을 볼 테니까…….”
그나마 페르난데즈가 박봉(?)에 동의를 한 것은 지인들이 윤기의 밑에서 일을 할 때 연봉에 대해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가 되면 최소한 다른 애들보다 낮게는 안 주겠지.’
미국인을 고용하는 데 미국 임금에 맞춰 주지 않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만큼, 페르난데즈는 자신의 박봉이 ‘유령 퇴치 비용’이라 생각하기로 하며 테이블 위에 점원이 두고 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젠장, 그동안 유령을 본다고 해도 아무도 믿어 주지 않았는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애가 보다니…….”
“저도 본다고 해 봤자 아무도 믿질 않으니까 입 다물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페르난데즈, 당신도 가능하면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세상은 남들과 다른 사람들을 이상하게 보니까요.”
“뭐, 그건 인정해. 빌어먹을 왜 하필이면 나한테 유령이 붙어서는…….”
“혹시 모르죠? 세계 최고의 대우를 저에게서 받게 될지?”
윤기는 반쯤 진심을 섞었지만, 페르난데즈는 반쯤 농으로 받아들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아무튼, 오늘같이 편히 잘 수 있다면 7년쯤이야 얼마든지 버틸 수 있어.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뭔데? 백화점 내장 인테리어라고 들었는데 말이야.”
“그전에 한 가지 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요.”
“뭔데?”
“면접이요.”
윤기의 말에 페르난데즈는 자신이 ‘당했다’는 생각을 조금은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악동 같은 녀석.’
* * *
페르난데즈와 만나기 며칠 전, 윤기는 리안나에게서 6명을 더 추천받았다.
능력이야 조금 떨어지지만, 리안나와 친한 인물들로 말이다.
물론, 전원 다 고용할 생각은 없었기에 면접을 예정해 두었지만, 페르난데즈가 일을 하기로 결정한 덕분에 면접에 있어서 좀 더 전문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참, 윤. 애들 연봉은 어떻게 해?”
면접 시작 30분 전, 페르난데즈의 물음에 윤기가 은근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어……, 솔직하게 말해도 돼?”
“얼마든지요.”
페르난데즈가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보다 많이 받는 건 좀…….”
이래서 인간이 재미있다니까. 남 잘되는 꼴을 못 봐.>
최덕배의 말에 속으로 큭큭 거리며 고개를 끄덕인 윤기가 페르난데즈를 향해 말했다.
“그러면 여섯 명 중에 그 돈을 받고도 일을 할 만한 사람을 잘 판단해 봐요. 오늘은 어디까지나 일을 할 생각이 있는지에 대한 면접이지, 임금과 관련해서는 면접 이후에 추후 협의할 거니까요.”
“그러면 나야 좋지.”
“아, 그리고 면접 전에는 상관이 없는데, 면접 시작하고부터는 저를 사장님이라고 불러 줬으면 좋겠네요. 어쨌든 고용 관계잖아요?”
“아, 그렇지. 이게 아무래도 외견상 인식 때문에……. 면접 시작부터는 확실하게 주의할게.”
잠시 뒷머리를 긁적인 페르난데즈가 수염을 쓰다듬는 것을 보고 윤기가 물었다.
“수염 안 깎아도 돼요? 원래 안 길렀다고 들었거든요.”
“예전에는 신경 쓸 수가 없었던 건데, 지금은 자르자니 조금 아까워서 말이야. 그냥 기르지 뭐.”
“흐음, 카페에 안 씻고 내려왔기에 관리 잘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때는 내려오라는 전화 받고 부랴부랴 내려가서 그런 거지. 실제로 나 되게 깔끔하고 부지런한 편이야.”
“……믿어 보죠.”
“진짜라니까?”
실제로 냄새가 나지는 않았기에 윤기는 그러려니 하고 면접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면접 시간이 되기가 무섭게 페르난데즈는 꽤 날카로운 눈으로 면접자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윤기는 옆방에서 최덕배를 통해 면접을 실황으로 들었다.
“데리고 일을 할 만한 사람들이 있던가요?”
“두 명은 솔직히 영 아닌 거 같아요.”
확실히 사회 물을 먹어 본 덕분인지, 페르난데즈는 아까 말한 대로 윤기에게 말을 높이기 시작했다.
물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한국말로서의 존댓말과는 다소 달랐지만.
“그러면 네 명이네요.”
“네 명 다 고용할 생각이신가요?”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네 명에 대해서 제가 따로 검토를 해 봐야죠. 오늘 면접 내용을 토대로요. 누구랑 같이 일하기를 원하죠?”
“아, 이 사람들이요.”
페르난데즈는 서류 네 장을 골라 윤기에게 넘겼고, 윤기는 그 서류를 받아 자신의 호텔 객실로 돌아왔다.
뭐야, 왜 나를 봐. 또 무슨 일 시키려고?>
백인 귀신에게서 어깨 마사지를 받던 최덕배가 무언가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윤기를 바라보았다.
“당연하죠. 그 귀신한테도 일을 시킬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