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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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화 훈수 (4)
[[[[[으응?]]]]]당연히 해설자, 캐스터는 물론이고 객석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까지 의아하게 바뀌었다.
“스미마셍, 스미마셍.”
일본어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한 기사는 심판을 바라보더니 허락이 떨어지자 황급히 자리를 비웠다.
어처구니없다는 듯 콧방귀를 한번 뀐 최덕배.
하지만, 이내 신경을 끄고 자신의 수를 두었다.
어차피 첫수.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두는 데 오래 걸릴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3분 정도가 지났을까?
“스미마셍, 스미마셍.”
돌아온 일본의 기사.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초시계의 흐름.
일본 기사가 돌을 놓고 초시계를 누르고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최덕배는 그 사이에 돌을 놓았다.
그렇다면 최덕배가 돌을 놓고, 일본 기사가 화장실에서 돌아왔을 때까지의 시간이 존재한다.
이 시간이 과연 일본 기사의 공제시간인 4시간에서 제외될까?
놀랍게도 대답은 ‘아니오’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의 중국은 아예 바둑에서 화장실을 금지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2010년대에 들어서기까지 이 룰에 대한 개정이 없었다.
한마디로 개인의 도덕성에 맡긴 것이다.
그리고 지금, 해당 룰로 인해 이득을 본 것은 전적으로 일본 기사였다.
화장실에 다녀온 몇 분이 공제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탁-
상당히 빨리 두 번째 수를 놓은 일본 기사.
최덕배 역시 일본 기사에게 질세라 나름 빠른 속도로 돌을 놓았다.
물론, 실제로 돌을 놓는 것은 윤기지만.
“흐음~.”
일본 기사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하더니 이내 다시 돌을 두었다.
그런데 어쩐지 고심하지 않는 듯한 표정.
여유로운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뭐지…?’
윤기 특성상 이런 위화감을 눈치채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윤기는 최덕배에게 무어라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최덕배는 그야말로 초집중인 상태였으니까.
한 판만 더 이기면 일본 기사 4명, 그것도 일본 최고 수준의 기사들을 전부 박살 낼 수 있는데, 당연히 최덕배 입장에서는 가슴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윤기는 위화감을 느꼈음에도 일단은 추이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대국 시간이 35분 정도 흘렀을 때.
일본 기사는 오른손 검지로 머리를 톡톡 두드렸고, 이내 긁듯이 문지르다가 다시 초시계를 눌렀다.
“스미마셍, 스미마셍.”
마찬가지로 일본 기사의 목적은 화장실.
35분이란 시간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바둑이라는 경기의 입장에서 보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짧은 축.
그런데 일본 기사는 시작하자마자, 그리고 35분이 되었을 때, 또 화장실에 가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썩을 놈이 방광에 후쿠시마 오염수를 담았나.>
물론, 1991년의 일본에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가 있을 리는 없지만, 상대 기사의 행동이 최덕배에게 상당히 거슬린다는 것을 보여 주는 방증이었다.
그리고 다시 몇 분 후.
이번에도 일본 기사는 돌아오기가 무섭게 자신의 수를 두었다.
‘역시 뭔가 이상한데…?’
윤기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일본 기사는 미지근해진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화장실에 자주 가시는 것 같은데 음료는 좀 자제하시는 게 어떨까요?”
일부러 한국말로 내뱉은 윤기.
이것은 통역을 거쳐 전달되었고, 일본 기사는 쓴웃음과 함께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갈증을 좀 자주 타서 말이죠. 죄송합니다?”
오늘따라 자주 듣는 ‘스미마셍’이라는 말.
자기가 마시겠다는데 막기도 뭣하고, 규정에도 화장실과 관련된 제한이 없으니 뭐라 할 수가 없다.
결국, 일본 기사는 대국 시간 62분에 또 화장실로 향했다.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아요?’
마침내 윤기가 최덕배에게 말하자, 최덕배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봐도 이상해. 화장실에 다녀오자마자 두는 수가 너무 빠르단 말이지?>
‘혹시 무언가 부정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요? 확인해 보시는 게 어때요? 아까도 그렇고 이번도 그렇고, 화장실 가기 전에 유난히 머리를 문지르던데.’
사내놈 오줌싸러 가는 모습을 구경하러 가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지. 만약 이번에도 다녀오자마자 빠른 돌을 두면 그때는 진짜로 확인해 봐야겠어.>
아니나 다를까, 일본 기사는 또다시 화장실에 다녀오기가 무섭게 수를 두었다.
오죽하면 해설자와 캐스터도 의아한 반응을 보였을까.
“문득 든 생각인데, 유키오 9단의 수가 조금 빠르지 않습니까?”
캐스터의 말에 해설자 역시 바로 반응을 보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화장실에 다녀온 후의 수가 빠르다고 봐야겠죠.”
“역시, 이것이 바둑의 문제 같습니다.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에는 제한 시간이 줄어들지 않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이걸 규정으로 제한하기도 애매하긴 합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것을 참고 대국을 두게 되면 결과적으로 대회를 시청하는 관중들에게도 피해가 갈 테니까요. 하지만, 규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데는 저도 동의합니다.”
2020년에 이 상황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십중팔구 부정을 의심할 것이다.
왜냐하면, 체스나 장기, 바둑 등의 대회에서 화장실에 가서 휴대폰을 통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심심찮게 뉴스를 타니까.
휴대폰이 아니더라도 양복 앞섶에 볼펜형 카메라를 달고, 귀에는 초소형 송신기를 달아서 지시를 받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1991년.
일반인이 이러한 부정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군다나 유키오 9단의 앞섶에 무언가 볼펜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시대의 기술로 귀에 쏙 들어갈 송신기를 넣는다는 것도 딱히 상상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역시 무언가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
일단 이 자식 귓속에는 아무것도 없긴 한데…….>
위화감으로 인해 마음이 콩밭에 있다 보니 최덕배는 대국에 쉬이 집중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유키오는 지금까지 대국을 두었던 기사들에 비해서 분명 실력이 좋았다.
그렇다 보니, 대국이 시작된 지 97분.
대국의 초반은 확실히 지났다고 말할 수 있는 시점에서 바둑판 위의 형세는 묘하게 최덕배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으음….>
그리고 다시 대국 109분째.
또다시 유키오가 ‘스미마셍’을 연발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물론, 아까처럼 머리를 문지르다가 말이다.
안 되겠다. 혹시 모르니 확인하고 올게.>
이번에는 최덕배 역시 유키오의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씨발롬이!>
유키오보다 빨리 돌아온 최덕배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역시 뭔가 꼼수를 저지르고 있었죠?’
윤기의 물음에 최덕배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키오가 어떤 꼼수를 썼는지 말해 주었다.
‘아아, 그래서 우리가 추측을 못 한 거네요.’
나도 진짜 상상도 못 했다니까? 진짜 이 빌어먹을 새끼들 이기려고 아주 발악을 하는구만.>
어느새 화장실에서 돌아온 유키오.
아까와 달리 유키오는 빠르게 돌을 놓지 않았다.
“이번에는 돌을 빨리 두지 않는군요.”
“흐음…, 초반부와 달리 대국이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이상할 일은 아니긴 합니다.”
캐스터와 해설자의 대화.
하지만, 윤기와 최덕배는 유키오의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유키오의 행동이 더욱 괘씸하게 느껴졌다.
‘이길 수 있겠어요? 솔직하게 생각해서요.’
윤기의 물음에 최덕배가 1분 정도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것 같다. 내가 아슬아슬하게 지는 미래가 보여.>
그러자 윤기가 최덕배에게 제안했다.
‘우리 같이 두죠.’
응?>
‘비록 제가 할아버지보다 실력이 딸리긴 하지만, 머리 하나 보태는 수준은 될 수 있을 거예요. 제 아이큐와 할아버지 아이큐를 합친다고 해서 단순 덧셈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시너지 효과는 낼 수 있겠죠.’
으음….>
혼자서 이기고 싶었던 최덕배였기에 쉬이 결정할 수 없는 고민.
하지만, 이어지는 윤기의 말에 최덕배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한테 질 거예요?’
그래, 꼼수를 쓰는 녀석들한테는 비슷한 방법으로 대응해 줘야지. 좋아, 우리 같이 둬 보자.>
마침내 윤기가 바둑에 본격적으로 참전했다.
비록 윤기의 실력이 서창환 9단에 비해서 근소하게 딸리긴 하지만, 한국 전체를 따져도 10위 안에는 거뜬히 들 실력.
그렇기에 윤기와 최덕배가 동시에 머리를 굴리자, 마치 CPU가 싱글코어였던 컴퓨터가 듀얼코어 CPU를 장착한 컴퓨터로 변한 듯, 맹렬한 연산이 시작되었다.
여기다!>
‘이번엔 여기 어때요?’
좋아. 다음은 여기!>
‘거기는 23수 후에 위험할 거 같은데요?’
기본적으로 윤기와 최덕배는 경우에 따라 생각 그 자체를 공유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머릿속에 떠올리는 바둑판의 이미지를 서로가 확인할 수 있었고, 이는 엄청난 시너지를 가져왔다.
원래 바둑이란 나와 상대의 수를 예측하는 것.
그렇기에 유키오가 어떤 꼼수를 쓰든 윤기와 최덕배는 서로의 이미지를 공유하며 유키오의 수를 차근차근 분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드디어 유키오의 표정에 초조함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얼굴에 ‘고심’이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유키오.
그런데 지금은 바둑판의 고심과는 다른 의미의 고심, 그리고 초조함이 얼굴에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대국이 시작된 지 257분 후, 대국은 중반을 달렸고, 관객 중 일본 관계자들의 표정이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윤기와 최덕배는 이러한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둘은 지금 바둑판의 수를 계산하느라 그야말로 초월적인 집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동안 유키오는 대략 30~40분을 주기로 계속 화장실을 다녀왔고, 이는 바둑이 종반부에 접어들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이상 얼굴에 웃음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유키오 9단이 아까와 달리 얼굴에 웃음이 전부 사라졌군요.”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한 캐스터의 말에 해설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형세는 유키오 9단이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아직은 예측이지만, 집을 계산할 경우, 몇 집 정도로 끝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분명 초중반까지는 유키오가 유리했고, 중반까지는 박빙이었다.
그런데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윤기에게로 전세가 기울었고, 후반에 들어선 지금 ‘왜 돌을 던지지 않는가’라고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사실상 승부가 났다.
하지만, 유키오는 지금 돌을 던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돌을 던지느냐, 마느냐는 유키오에게 걸린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사색이 된 일본 관계자들의 자리.
반면 한국 관계자들의 자리는 그야말로 웃음바다였다.
대국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소리만 내지 않을 뿐, 얼굴에 희열을 감출 수 없는 상황.
단, 조용일 9단과 서창환 9단, 이상범 4단만은 희열과는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세상에 저런 수를 둘 수 있다고?] [스승님은 나를 천재라고 하셨는데 천재는 따로 있었구나….]경악하는 조용일 9단과 이상범 4단.
반면 서창환 9단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한 판만 남겨 주지…, 내 1억….]그리고 잠시 후.
결국, 대국이 종료되었고, 집계 결과 윤기가 유키오 9단에게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승리! 승리입니다! 대한민국의 최윤기 회장이 일본의 최강자들을 전부 꺾고 한국에 승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캐스터의 외침.
더불어서 한국 관계자들이 모두 환호성을 치며 난리를 쳤다.
하지만, 이때.
윤기가 어떻게 보면 대단히 무례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유키오 9단의 머리를 확 잡아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