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12)
512화 나비효과 (2)
교회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교회에서 전도사의 파워는 그야말로 막강한 법.
그렇기에 질문을 했던 신도는 찔끔하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아, 아뇨…, 저는 혹시나 해서 말씀드린 거라….”
자고로 채찍 다음에는 당근을 주라고 했다.
그렇기에 전도사는 방금과는 다르게 푸근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런 걱정할 수도 있는데, 이번 시위는 그냥 시위가 아니라 우리 교회의 미래가 걸린 일이잖아. 당연히 하나님이 보듬어 주실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와.”
“그, 그렇겠죠? 하나님이 보듬어 주시겠죠?”
“그러엄~!”
그야말로 호언장담하는 전도사의 태도.
심지어 전도사는 한술 더 떴다.
“주변에 데리고 나올 사람 있으면 최대한 데리고 나와. 꼭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니어도 돼. 이번에 지인 많이 데리고 오는 사람은 내가 목사님한테 잘 말씀드릴 거야.”
학창 시절, 모두의 앞에서 선생님한테 칭찬받고 싶어 했던 시절을 기억하는가?
이것은 어른이 된다고 해서 사라지는 기분이 아니다.
단지 어른이 되면 그 기회가 줄어들 뿐.
당장 직장인들도 ‘우수사원’이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보면, 교회라고 해서 딱히 다를 이유가 없었다.
만약 이번에 지인들을 잔뜩 데리고 광화문에 나타난다?
그러면 100퍼센트 추후 예배 시간에 목사가 교인들 앞에서 아주 폭풍 칭찬을 해 줄 것이다.
“예, 예! 최대한 많이 모아 볼게요!”
“그래, 그래. 그게 다 교회를 위하는 일이고, 나라를 위하는 일이고, 자기 자신을 위하는 일이야. 주님께서 열심히 사는 사람을 굽어보시지, 안 굽어보시겠어?”
“그렇죠, 그렇죠!”
얼굴에 화색이 돋으며 돌아간 아폴로 눈병에 걸린 신도.
시위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은 신도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의는 계속해서 들려왔고, 전도사는 방금 했던 대응과 똑같은 응대를 무수히 반복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비단 이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고, 시위에 참석하는 절들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 * *
“성공입니다!”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김홍균 목사의 말.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광화문에는 무려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 아니겠습니까. 이번 법안은 절대로 통과될 수 없을 겁니다.”
자신감 넘치는 윤병조 목사의 말이 주변에 있는 타락한 종교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그나저나 이번 시위가 금지되지 않다니, 솔직히 놀랐습니다. 만약 군부 시절이었으면 이런 시위도 절대 불가능했을 텐데 말입니다.”
윤병조 목사의 근처에 있던 50대 주지 스님의 말에 윤병조 목사가 큭큭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군부 시절에는 이런 시위가 있을 필요가 없었지요. 애초에 우리 밥그릇을 건드리지는 않았잖습니까?”
“아!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역시 N도 그렇고, 최윤기 회장도 그렇고, 빨갱이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감히 종교를 건드리다니요.”
스님의 입에서 빨갱이 소리가 나오다니.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지만, 타락한 종교인인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
“자, 그러면 슬슬 시작해 보겠습니다.”
윤병조 목사는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단상에 올라서서 좌악 늘어서 있는 20만 명을 향해 외쳤다.
“여러분! 군부 독재 시절에도 종교의 자유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군부조차도 하지 않았던 종교 탄압을 하고 있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광화문 전역에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20만 명의 함성.
이 함성에 힘입은 윤병조 목사가 더욱 크게 목청을 돋우었다.
“정부는 종교 탄압을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 중단하라!]]]]]“민주주의의 탈을 쓴 정부 독재,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 물러가라!]]]]]윤병조 목사가 주장하는 ‘군부 시절에도 종교 탄압은 하지 않았다’라는 말.
정말일까?
당연히 아니다.
군부 시절에 종교는 사실상 어용단체가 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었다.
일제강점기를 떠올려 보면 아주 간단한 이치.
그때도 일제에 협력하지 않으면 교회가 유지될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군부 독재라고 해서 다를까?
특히 종교계 인사의 발언은 신도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에 독재자들 입장에서 권력에 굴종할 줄 아는 종교계 인사는 당연히 대우해 줘야 할 존재들이었다.
따라서 군부 시절에 탄압받은 적이 없다는 표현 자체가 군부와 결탁했던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꼴 아니겠는가.
물론, 일제강점기나 군부 시절에도 독재에 저항했던 건실한 종교인들 역시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무수히 많은 탄압을 받아 세력이 쪼그라들었을뿐더러, 소리를 내야 할 때 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날에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타락한 종교인들만 잔뜩 모이게 된 광화문.
온종일 울려 퍼지는 ‘정부 독재’라는 단어와 ‘종교 탄압’이라는 단어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주었다.
[흐음…, 그리고 보니 갑자기 종교를 건드리는 것 같네.] [진짜로 종교 탄압하는 거 아닐까?]원래 사람이라는 존재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법.
분명 둘이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하는데, 주변에서 ‘저 남자랑 결혼하기에는 네가 너무 아까워’, ‘저 여자랑 결혼하기에는 네가 너무 아깝지’ 등의 말로 파혼하는 경우가 흔한 세상이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
무려 20만 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였다는 사실 덕분에 광화문 주변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조금이나마 정부의 진심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위의 효과.
물론, 진실을 꿰뚫고 있는 자들도 일부 있긴 했다.
[아니야, TV에서 종교 단체들이 탈세한 액수 못 봤어?]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었던 만큼, 윤병조 목사를 비롯한 타락한 종교인들은 본인들의 목적을 이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의외의 나비효과가 발생하기도 하는 법.
저녁이 되어 종료된 20만 명의 시위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남겼다.
* * *
사람이 20만 명이나 한 곳에 모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 번째로는 위생 시설에 문제가 생긴다.
상식적으로 20만 명이 한 번씩만 화장실을 사용해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평균 3분으로 잡으면 60만 분이고, 시간으로 나누면 1만 시간이다.
즉, 근처에 화장실이 1만 개가 있어도 화장실 한 개에 1시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은 2020년도 아니고, 1991년.
당연히 광화문 주변에 화장실이 많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이들은 군부 시절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타락한 윗선에 의해 철저히 이용당한 존재들.
당연히 시위 질서가 좋을 수 없었다.
착한 사람들이 모인 시위는 기본적으로 시위 뒤처리도 깔끔하고, 시위 장소 주변에 대한 매너가 뛰어나다.
괜히 촛불시위를 할 때, 쓰레기 정리를 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본인들의 탐욕에 의해 발생한 시위 같은 경우 이러한 뒷정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애초의 시위 목적부터가 탐욕에 쩔어서 이루어지는 건데, 타인의 시선을 얼마나 신경 쓰겠는가?
따라서 어제 광화문에 모인 20만 명의 시위대들은 주변 상권의 화장실을 그야말로 초토화시켰고, 거리를 쓰레기장으로 만들었다.
오전부터 저녁까지 시위가 이어졌으니 간식도 먹고, 식사도 해야 했는데, 당연히 쓰레기가 발생했겠지.
하지만, 윤병조 목사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뒤처리를 생각하지 않았기에 근처 상인들과 공무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뒷정리를 해야만 했다.
특히, 화장실이 초토화된 상인들은 그야말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시위대들을 욕했다.
“미치겠어. 청소 업체를 불렀는데 도망갔다고!”
“박 사장도 그래? 하아, 나도 그래서 내가 치웠어. 아니, 씨팔 수세식 화장실이 어떻게 푸세식 화장실처럼 변하냐고. 그 새끼들 제정신이야?”
“말도 마, 나도 군대 말고 그런 꼴은 처음 봤다니까?”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한 광화문 주변의 상인들.
물론, 통신이 발달하지 못한 1991년이었기에 이러한 일이 국민들을 향해 퍼지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윤병조 목사는 이들을 확고하게 적으로 돌리게 된 것이다.
물론, 윤병조 목사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하나.
윤병조 목사가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면 다소 의아하게 생각할 상황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쓰레기들에 대한 뉴스 기사.
시위대들이 남기고 떠난 쓰레기들을 TV 뉴스나 신문 기사로 내보낸다면 응당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텐데, 그 어떠한 매체에서도 쓰레기 관련 기사를 다루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윤병조 목사는 그저 시위가 성공했다고만 생각했지만, 하루가 더 지나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 * *
‘뭐지…?’
예배를 시작하려던 김홍균 목사는 아주 큰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는 예배를 시작하기 전, 단상에 서서 교인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아…!’
김홍균 목사가 느낀 위화감.
그것은 바로 신도들 중 상당히 많은 숫자가 한쪽 눈에 안대를 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이다.
안대를 낀 이유는 당연히 아폴로 눈병.
‘급성출혈성결막염’이라고도 불리는 이 아폴로 눈병은 전염성이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이렇게 전염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물론, ‘상식적으로 그 정도 전염이 가능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1991년은 가능할 여지가 분명히 있었다.
아폴로 눈병은 기본적으로 환자와 비환자의 접촉으로 인해서 전염되는데, 다른 사람과의 신체 접촉이 적은 2020년과 달리 1990년대는 모르는 사람과의 신체 접촉이 꽤나 흔한 일이었다.
30대 중반이나 그 이상의 나이라면 아마 기억하지 않을까?
2020년에 그랬다면 큰일 나겠지만, 1990년대에 애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환자복을 입은 어른들이 애의 얼굴이나 몸 여기저기를 만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떤 병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담배 피우던 손으로 만지는 일도 잦았고, 무언가 더러운 게 묻어 있어도 대충 옷에 슥슥 닦거나, 심하면 그냥 만졌다.
간단히 말해서 2020년에 비해서 1990년대의 위생 관념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부족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시위에는 이런저런 지인들을 다 끌고 왔고, 당연히 어린 아이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자연스럽게 어른들은 아이들이 귀엽다고 여기저기 만졌고, 아이들이 전염된 것 역시 당연한 사실.
더군다나 잠복기가 대단히 짧아 하루 만에 발병하는 아폴로 눈병 특성상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던 교인들마저도 전염되어, 그야말로 교회에는 안대를 쓴 사람이 안 쓴 사람보다 많을 정도였다.
심지어 안대를 안 쓴 눈도 빨간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아폴로 눈병은 양쪽 눈에 발병하는 법정 전염병이었으니까.
하지만, 김홍균 목사는 예배를 중단하지 않았다.
“여러분, 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예배에 나오시다니, 여러분들은 정말 독실한 신자입니다. 주님께서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겁니다.”
신도들이 하루 교회에 안 나오면 그 손해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그렇기에 김홍균 목사는 예배를 진행했고, 이것은 눈병의 확산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김홍균 목사의 교회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한국개신교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6목사의 교회 전부, 그리고 시위에 참석한 교회와 절 전부!
그렇기에 아폴로 눈병은 원래 역사까지도 통틀어서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전염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확산은 당연히 종교를 믿지 않는, 무교 집안에도 피해를 불러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