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나는 경영인이다 (4)
‘이 문제의 답을 못 맞히면 큰일 난다!’
류근태는 진심으로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윤기 주변에 인재들이 하나둘 모이고 있는 지금, 류근태는 자칫하다간 자신이 비서 자리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당장 최철규만 하더라도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능력자였으니까.
그나마 선점 효과로 인해서 아직까지 윤기의 곁에 머물 수 있었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인간 세상은 경쟁 사회였으니까.
‘죽어도 맞히자.’
윤기는 대수롭지 않게 문제를 냈지만, 류근태는 그야말로 죽을 각오와 함께 서류들을 다시 자세히 체크하기 시작했다.
[37살의 자녀 둘을 둔 백인 가장] [45살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26살 흑인 무직] [35살의 독신 생활 중인 라틴계 백인] [52살의 인테리어 경력만 20년인 동양계 미국인]얼핏 봐서는 누구를 고용해도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혹시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한 내용은 서류에 다 적혀 있어요. 생각보다 엄청 자세하게 적혀 있을 텐데요?”
윤기의 말처럼 서류에는 개인에 대한 신상이 상당히 자세히 적혀 있었다.
‘어디 보자…….’
일단 류근태는 자신의 생각을 먼저 정리해 보았다.
‘백인 가장은 자식들이 있으니까 책임감을 느끼고 일을 할 것 같아. 흑인 무직은 직장이 급하겠지. 그리고 20년 경력인 사람도 일을 아주 잘할 거야.’
일단 라틴계 미국인이 후보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백화점 공사에 사장님이 신경을 아주 많이 쓰시고 계시니 책임감이 있는 사람을 원하시겠지? 그렇다면 무직보다는 역시 가장일 거야.’
여기까지 생각했을 때, 류근태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 맞아.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판단일 뿐, 사장님의 판단이 아니지.’
류근태는 최대한 생각을 확장해 보았다.
단순히 고용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이들을 고용함으로써 후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하는 데까지 생각을 뻗친 것이다.
‘내 답을 내놨으면 큰일 날 뻔했네.’
류근태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윤기를 올려다보았다.
“일단 한 명은 확실히 결정했습니다.”
“누구죠?”
“파이크를 선택하겠습니다.”
26살의 흑인 무직.
류근태의 대답에 윤기가 두 번째 합격자를 물었다.
“두 번째는 누구를 선택할 건가요?”
“그전에 한 명은 확실하게 제외하려고 합니다.”
“누군가요?”
“자녀 둘이 있는 백인 가장……. 이 사람은 일단 확실히 탈락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나머지 둘 중 합격자는 누구인가요?”
“그전에 딱 하나 대답해 주셔야 하는 게 있습니다.”
“필요한 건 서류에 다 적혀 있다고 했을 텐데요?”
“아뇨, 한 가지 적혀 있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뭔가요?”
“겐슬러 출신의 디자이너가 경력이 몇 년인가요?”
류근태의 물음에 윤기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7년이요.”
“그렇다면 결정했습니다. 라틴계 미국인인 애런을 선택하겠습니다.”
윤기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에요. 둘을 고른 이유가 뭔가요?”
“혹시 문제가 하나 더 있지 않으신가요?”
윤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완벽해요.”
“그 문제가 제가 생각하는 문제가 맞다면, 일단 가장은 제외해야 합니다. 한국에서 일을 해야 할 테고, 굳이 한국까지 와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연봉을 미국에 맞춰서 줄 필요는 없거든요. 처음이야 어쨌든 취직이 된다고 하니 만족할지 몰라도, 나중에 가면 ‘집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무언가 착복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요.”
“맞아요. 그런데 미국에서 고용하는 건데, 왜 연봉을 한국에 맞춰서 줄 거라고 생각한 거죠?”
류근태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스카우트로 고용한 것은 어디까지나 한 명뿐이었을 테니까요. 나머지 인원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 한국에서 일을 하겠다고 자원한 사람들이니까 현재 미국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경력자를 제외한 이유도 급료 때문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나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해도, 업무를 할 때 경력까지 신경 쓰지 않기는 힘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메인 디자이너 경력이 7년이라면, 20년 경력의 디자이너와 의견 충돌이 될 가능성이 커지겠죠.”
윤기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테이블과 함께 배치되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앉으시는 것을 보니 확실히 만족하셨구나.’
류근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윤기가 류근태 역시 자리에 앉으라고 말하며 두 번째 문제를 냈다.
“두 번째 문제는 별로 어렵지 않아요. 둘에게 연봉을 어느 정도로 챙겨 주는 게 좋을까요?”
류근태는 아주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1인당 국민 소득보다 다소 낮게 책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경력이 없는 것도 있고, 한국에서 숙소를 제공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임금을 낮출 수 있겠지요.”
“메인 디자이너의 생각도 그래요. 사실 메인 디자이너의 연봉이 우리나라 1인당 국민 소득이랑 같거든요.”
윤기의 말을 들은 류근태가 깜짝 놀랐다.
“예? 유망한 디자이너의 몸값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었나요?”
“말을 해 줄 순 없지만, 다른 거래가 있었거든요. 그 메인 디자이너의 말로는 자기보다 연봉을 높게 주는 것은 좀 싫다더라고요.”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네요.”
“뭐, 이번에 고용한 세 사람은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엄청 장기적으로 그리고 무진장 굴릴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셋 다 연봉이 매우 빠르게 올라가겠지만요.”
혀를 내두르는 류근태를 바라보며, 윤기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지금 고용의 형태가 앞으로의 제 행보예요. 무슨 의미인지 알겠죠?”
“알겠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슬슬 한국으로 돌아가 볼까요?”
“일은 다 끝나신 건가요?”
류근태의 말에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 옆에는 역시 류 비서가 있어야 해서 불렀죠.”
류근태는 자신이 다시 한번 비서의 자리를 공고히 했음에 안심하며 윤기와 함께 일등석에 올랐다.
* * *
“이것 참…….”
윤기는 류근태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었던 윤기의 표정.
얼핏 혐오감이 섞여 있을 정도로 윤기가 류근태를 바라보는 표정은 심각했다.
“죄송합니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류근태의 모습에 윤기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죄송할 일은 아니죠. 하지만, 이렇게까지 버티면서 생활할 줄은 정말로 몰랐네요.”
윤기가 바라보고 있는 것은 류근태의 옥탑방.
사람이 살 수는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되는 옥탑방의 모습에 윤기는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의외로 살 만하긴 합니다. 안에 텐트도 쳐져 있고…….”
“아니……, 집에 텐트를 치고 살 거면 집이 필요가 없는 거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이런 집에 사는 것은 진짜 아닌 것 같네요. 나중에 제 비서로서 손님을 맞이할 때도 이런 곳으로 초대할 건가요?”
류근태는 자신이 놓치고 있는 점을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호텔 같은 곳으로 초대해서…….”
“호텔 방이 꽉 차 있으면 어떻게 할 건가요? 그리고 호텔이 아니라 집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죄송합니다. 제 불찰입니다. 바로 제대로 된 집을 구하겠습니다.”
류근태는 집을 구하는 데에 돈이 나가는 것이 조금 뼈아프기는 했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윤기의 입에서는 의외의 말이 나왔다.
“아뇨, 류 비서가 집을 구할 필요는 없어요.”
“네?”
“어차피 숙소가 필요한 직원들 숙소를 보려고 나왔다가 류 비서의 집으로 온 거니까, 류 비서의 숙소도 겸사겸사 같이 구하자고요.”
“아, 아닙니다. 제가 받는 월급도 있는데…….”
“주는 게 아니라 무상 대여예요. 그러니까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류 비서는 그럴 자격이 있어요.”
윤기는 류근태와 함께 부동산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동시에 부동산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류근태는 그동안 윤기의 지시를 받아 상당한 수준의 부동산 거래를 해 왔고, 이를 통해 업자들에게 ‘노다지’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아니, 그곳에서 살았던 게 류 사장님이셨어요?”
분홍색 립스틱을 짙게 바른 40대 중개업자의 말에 류근태가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저도 투자에 욕심이 좀 있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어유, 투자 좋죠. 한 10년 정도 고생하면서 살다가 한 방 크게 터지면 그게 정말 최고 아니겠어요?”
중개업자의 말을 들으면서 윤기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확실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지.’
43세 시절의 윤기는 젊을 때 고생해서 나이 먹어서 호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집을 수십 년간 팔지 않고 버티다가 졸부가 된 지역 사람들을 봐도 그러했고, 국내 1위 기업의 주식을 봐도 그러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이미 겪어 봤지 않은가.
43살까지 고생하다가 부모가 바뀐 것을 알게 되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생이 완전히 뒤바뀔 수가 있었다.
‘젊어서 아무리 고생한다 하더라도 그게 노년에 보답으로 돌아온다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야.’
물론 지금이야 인생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살을 통해 시간축을 이동해서 그런 것일 뿐, 그냥 현실에 안주하고 살았다면 보답을 받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었다.
‘40살까지 허리띠 졸라매고 살다가 41살에 불의의 사고로 죽으면 그게 무슨 의미야. 그 사람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 주지? 쓸 수만 있다면 적당한 선에서 소비를 해야 해. 늙어서 돈을 쓰는 것과 젊어서 돈을 쓰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일이니까.’
이러한 생각은 윤기의 경영 철학과도 일치했다.
만약 윤기가 정말 독하게 돈만 벌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이렇게 백화점을 지을 이유 자체가 없었으니까.
모든 돈을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이름을 확실히 기억하는 기업에 투자했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돈을 버는 사람들은 결국 또 미래를 바라보지.’
버텨서 대박 터뜨릴 기회가 꾸준히 있을 텐데, 그걸 끊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숫자에 인생이 좀 먹히게 된다.
10대부터 70대까지 재산을 불리는 일만 생각할 테니까.
‘뭐, 중개업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인가?’
대신 류근태와 같은 측근들이 숫자에 인생이 좀 먹히는 일이 없게는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윤기는 집을 몇 채 계약했다.
그 과정에서 류근태가 속으로 놀란 것은 덤.
‘사장님의 철학이 무엇인지 이제야 확실히 알겠네.’
자신이 살게 될 집이랑 다른 사람들의 숙소가 등급이라 할 만큼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달은 류근태가 윤기를 향해 속으로 감사했다.
심지어 메인 디자이너의 집조차도 자신보다 아래 수준.
일반 디자이너의 집은 그보다도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다.
물론 자신의 옥탑방 같은 쓰레기 같은 집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주인이 측근을 확실히 우대한다는 것을 깨달은 류근태는 다시 한번 충성심을 다졌다.
‘지금도 이 정도인데, 나중에 사장님이 더욱 부자가 되면 상상을 초월하는 혜택을 가져다주시겠지.’
내일부터는 집에서 텐트를 안 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류근태는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오늘도 공사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최철민과 박경자의 모습을 즐겁게 감상한 윤기는 최철규와 독대를 했다.
“윤기야, 너는 철민이 형이 얼마나 싫은 거야?”
“사실 첫째 작은아버지는 싫다기보다는 밟아 놔야 한다는 쪽에 가깝고, 제가 정말 싫어하는 건 박 씨 아줌마죠.”
윤기는 박경자를 숙모가 아니라 아예 아줌마라는 표현까지 써 가면서 거리를 벌렸다.
“하긴, 자칫했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테니까. 만약 못사는 집이랑 부모가 바뀌었어 봐. 그야말로 인생 박살 나는 거지.”
가려운 데를 확실히 긁어 주는 최철규의 말에 윤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거죠.”
“평생 저렇게 쓸 생각이야?”
“글쎄요……. 할아버지도 아직은 별말씀이 없으셔서 딱히 특별한 생각은 없어요. 한 10년 정도는 두고 볼 생각이에요.”
“뭐, 그 정도 고생 좀 하고 나면 철민이 형도 노동의 가치가 뭔지 좀 알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최철규를 바라보며, 윤기가 이야기의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무튼, 오늘 작은아버지를 부른 것은 백화점 2차 계획에 들어가려고 부른 거예요.”
“응……? 설마 두 번째 백화점을 지으려고? 예산이 안 될 텐데…….”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건 아직 무리죠. 2차 계획은 다른 거예요. 제가 왜 백화점 주변의 땅까지 광활하게 사 놨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