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26)
526화 지구촌이 아니라 윤기촌 (3)
그리고 한 줄 더 있었다.
[피부색이 서로 다른 세 사람이 오면 10퍼센트 할인]윤기의 마트의 물건 가격을 굳이 싸게 설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5퍼센트를 할인할 경우 ‘나쁘지 않네’ 소리가 나오는 수준이었고, 10퍼센트를 할인할 경우 ‘좋네’라는 소리가 나오게끔 설정했다.
물론, 마트를 오픈할 때 공개한 규칙이었기 때문에 방문한 사람들은 일단 마트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계산대에 줄을 서는 사람들.
아직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매하려는 물건 숫자도 적고, 규칙을 안 읽어본 사람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의도해서’ 할인을 받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우연히’ 할인을 받는 사람이 드디어 생겨났다.
“5퍼센트 할인은 사진을 찍어야 적용 가능한데 괜찮을까요? 촬영한 사진은 가게 벽에 전시됩니다.”
직원이 한쪽 벽을 가리키자, 그곳에는 사진을 걸어두기 위한 줄과 빨래집게들이 즐비했다.
“오, 상관없어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백인과 흑인 청년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더니 편히 사진 찍으라는 듯 포즈까지 잡아 주었다.
이윽고 나는 ‘찰칵’ 소리.
아무리 인종차별이 있는 곳이라도 지역을, 시대를 초월한 친구는 언제나 있는 법 아니겠는가.
그렇게 둘은 5퍼센트 할인을 받고 가게를 나갔고, 이러한 모습은 마트에 방문한 손님들 중 일부의 이목을 끌었다.
“저희도 받을 수 있는 거죠?”
이번엔 흑인과 황인의 조합.
당연히 5퍼센트 할인이 적용되었고, 이들 역시 사진을 찍었다.
“우와, 우린 10퍼센트야!”
결코 흔하지 않은, 세 색깔 피부의 그룹이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물건을 잔뜩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파티를 하기 위함인지 많이도 산 세 사람.
“물론이죠!”
직원은 환히 웃으며 카메라를 들었고, 이들 역시 사진 촬영과 더불어 10퍼센트의 할인을 받았다.
그렇게 가게의 한쪽 벽에 전시된 세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
이들은 할인을 받은 행운아였고, 당연히 할인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
난데없이 터진 탄성.
20대 흑인 여성 한 명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저기, 우리 같이 가서 계산할래?”
옆에 있던 20대 후반 황인 여성이 잠깐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잠시 후, 계산대에 선 둘은 차례가 되자 살짝 조마조마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계산대 직원들이 혹시 자신들을 본 것이 아닌가 걱정했으니까.
하지만, 계산은 아무 문제없이 끝났고, 촬영 역시 이루어졌다.
벽 한쪽에 걸리게 된 둘의 사진.
아주 친하다고 주장하려는 듯, 흑인 여성이 황인 여성의 어깨에 팔을 올리고 끌어당기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싸, 성공!”
가게 밖으로 나온 흑인 여성은 쾌재를 불렀고, 황인 여성 역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만나면 또 부탁해!”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모아 이마에 대며 경례하듯 인사를 한 흑인 여성은 그대로 떠났고, 황인 여성 역시 마트를 떠났다.
하지만, 이 모습은 마트에 있는 손님 모두가 볼 수 있었고, 당연히 연쇄작용이 벌어졌다.
[우리는 모두 친구!]물론, 낯을 가리는 사람도 있고, 숯기가 없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모든 손님들이 이 방법을 쓴 것은 아니다.
하지만, 딱 봐도 유의미한 숫자의 손님들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고, 이러한 행동은 일종의 신호가 되면서 서로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2인조로.
그러다 사람들은 깨달았다.
[어라? 더 뭉치면 10퍼센트 할인이잖아?]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다.
둘이서 뭉쳤는데, 셋이 뭉치게 되면 한 명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눈치 싸움.
‘누가 나갈 것인가?’, 혹은 ‘누구를 내보낼 것인가?’하는 상황이 되자 마트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묘해졌다.
하지만, 직원들의 대응이 빨랐다.
이런 상황을 예측하는 것쯤이야 윤기에게 있어서 쉬운 일이었으니까.
“그냥 넷이 오시면 됩니다!”
그러자 서로를 애매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이 와르르, 어색하게 웃으며 한 곳으로 뭉쳤다.
마치, ‘야, 내가 너를 버리려고 했겠냐?’같은 표정을 짓는 모두들.
그렇게 4인조, 혹은 3인조로 사람들이 뭉쳐서 계산대에 줄을 서자, 어떻게 보면 알록달록한 느낌이 나기 시작했다.
물론, 계산을 한 번에 다 한다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줄을 뭉쳐서 선다는 것뿐, 계산은 당연히 더치페이.
하지만,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힘을 합치면 이득이 나오게 한 구조는 한 가지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냈다.
“혹시, 마트 자주 와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요?”
“그러면, 혹시 올 때 같이 올래요?”
“아, 그럴까요?”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교환하지 않더라도 서로 힘을 합친 겸, 마트 근처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그쪽도 2달러 받았어요?”
질문을 받은 백인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뭐…, 담배를 사러 나왔는데 지갑을 까먹고 나왔지 뭐예요. 그래서 그냥 받았죠.”
“아, 담배는 못 참죠.”
낄낄거리는 흑인의 말에 백인이 자신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듯 변명했다.
“엇흠! 2달러 받은 만큼, 여기에서 많이 팔아 줄 거예요. 그러면 되잖아요?”
“그렇죠, 그렇죠!”
정말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일탈한 후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기 마련.
그냥 2달러를 받아갔던 사람들 중 일부는 그때의 일을 자책하며 앞으로 이곳을 자주 이용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그나저나 저도 여기 마트 구인광고할 때 지원할 걸 그랬어요. 한인타운 쪽이라 안 될 거 같아서 지원 안 한 건데….”
흑인의 넋두리에 백인도 아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종업원들 보니까 반 이상이 흑인이던데요? 되게 의외예요. 뭐, 마트 운영하는 사람이 최윤기 회장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이 없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의외지 않아요? 당연히 동양인 쓸 줄 알았거든요. 특히 불법체류자들.”
“뭐…, 아무튼 아쉽네요.”
“그러게요….”
낮은 한숨을 내쉬는 두 사람.
사실, 이 시기의 한인타운은 생각보다 매우 큰 문제를 겪고 있었다.
* * *
성업 중인 윤기의 중규모 마트.
7월 내내 꽤 괜찮은 매출이 나왔고, 직원들의 근무 성실도도 꽤 괜찮았다.
그렇기에 윤기는 8월이 되자마자, 마트에 소속된 직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당연히 감격한 직원들.
사실, 미국의 노동시장은 노동자에게 있어서 심각할 정도로 극악하다.
겉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의 법.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틈이 하나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종업원’만 노동관계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
그렇다면, ‘종업원’이 아니라 ‘직원’인 비정규직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노동관계법에 보호받지 못한다.
그리고 기업은 당연히 비정규직을 어지간해선 종업원으로 취급하지 않겠지.
그렇기에 미국에서 직장인들은 사실상 파리 목숨이다.
괜히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상사가 ‘자네 해고야’라고 하면, 직원들이 아무 말도 못 하고 박스를 들고 회사 밖으로 나가는 게 아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 전환이라니.
더군다나 윤기의 직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이 콤프턴에서 거주하고 있는 흑인이다.
당장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여기에 더해서 슬럼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차별을 받고 있었던 상황인데, 정규직으로 전환된 직원들.
그렇기에 직원들의 충성도는 순식간에 사기를 찔렀고, 이들에 대한 소문은 순식간에 주변에 퍼져 나갔다.
따라서 한인타운 근처 흑인사회에서 칭송을 듣게 된 윤기.
하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도 분명히 있었다.
왜냐하면, 한인타운 쪽에서 윤기에게 불만을 토로하러 찾아왔으니까 말이다.
* * *
사람이란 공통점이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러한 공통점에는 한 가지 규칙이 존재하는데, 바로 ‘특별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가령 한국에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한국인이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그냥 ‘지나가는 한국인 1’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한국에서 이러한 조건을 만족시키려면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20대다’, ‘삼겹살을 좋아한다’ 등의 조건이 여럿 겹쳐야 한다.
하지만, 외국이라면 어떨까?
다른 거 다 필요 없다.
한국말만 할 줄 알면 특별한 사람이다.
주변에 죄다 영어, 혹은 외국어를 쓰고 있는데 한국말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니!
한인타운 역시 마찬가지.
타지에서 생존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인 그들은 뚜렷한 목적이 있다 보니 이들은 대표 격이라 할 수 있는 단체가 있었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오늘 윤기를 찾아온 사람들이 바로 L.A 한인타운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
이들은 저자세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상당히 섭섭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저어…, 회장님. 회장님이 이곳에 오시고 나서 하신 일에 대해서는 저희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마트를 여실 때, 다른 슈퍼 주인들과 상생하셨으니까요.”
“계속 말씀하세요.”
상석에 앉은 윤기, 그리고 상석 좌우에 놓인 3인용 소파를 채워 앉은 한인타운 사람들.
이들 중 상석 오른쪽에 앉은 사람인 김정철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습니다만…, 말씀드려도 될까요…?”
윤기는 계속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금 안심하며, 자신의 목적을 말하기 시작하는 50대 중반의 김정철.
이들이 이렇게 부담이 거의 없이 윤기와 만나고, 또 말할 수 있는 것도 다 윤기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정철의 목소리는 나름 안정되어 있었다.
단지, 이마의 얇은 주름살 두 줄이 말을 할 때마다 조금씩 떨릴 뿐.
“이번에 마트 직원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전환하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셨을까요…?”
다소 불안함을 느끼는 듯한 음색.
윤기는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하아….”
그야말로 탄식하는 김정철의 모습.
윤기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김정철은 좀 더 깊은 속내를 입 밖으로 꺼냈다.
“회장님, 그래도 이곳은 한인타운인데, 한국인들을 고용하시는 것이 좀 더 맞지 않았을까요? 어려운 한국인들도 많은데…….”
어떻게 보면 섭섭할 수도 있다.
같은 한국인이니까.
외국에서는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 서로 친해질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윤기는 이미 명분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안타깝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필요했거든요.”
순간 김정철은 할 말을 잃었다.
한인타운의 가장 큰 문제.
그것은 바로 한인타운에서 한국인들끼리 알콩달콩 살다 보니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에서 10년 동안 살다 온 사람이라 영어를 잘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영어를 거의 못 하는 경우가 꽤 된다.
지금 윤기가 지적한 부분도 마찬가지.
아무리 한인마트라 하더라도 한국인들만 오는 게 아닌 이상 영어를 할 줄 아는 것이 당연히 이득.
윤기는 이 부분을 꼬집은 것이다.
더군다나 윤기는 한 가지를 더 이야기했다.
“그리고 딱히 가려 뽑은 것도 아니었어요. 구인 광고는 모두에게 열려 있었지 않나요? 어쩐지 제가 한국인들을 일부러 안 뽑은 것처럼 들려서요.”
잠시 말에 밀려 침묵하던 김정철이 다시 뭔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그게…, 정규직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셨으면 다들 지원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게 되면 부정 청탁이 되지 않나요? 어쩐지 좀 불편하군요.”
윤기가 불편한 느낌을 내자, 김정철이 한숨을 내쉬며, 다소 원색적인 표현이 들어간 말을 꺼냈다.
“회장님, 깜둥이 새끼들은 잘해 줄 필요가 없습니다. 당장, 로드니 킹, 그 깜둥이 자식한테 강도짓을 당한 것이 한국인이거든요….”
1992년 미국을 강타한 L.A 폭동 사건.
그 사건의 시발점이 된 ‘로드니 킹’이 김정철의 입에서 언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