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30)
530화 저만 믿으세요 (4)
순간 얼어붙는 실내 분위기.
하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왜냐하면, 김정철을 비롯한 사람들은 이번 일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회, 회장님…….”
“안 돼요.”
윤기는 김정철이 머뭇거리느라 하지 못한 말을 미리 단호하게 잘랐다.
그것은 바로 ‘계속 우리를 지켜 주십시오’라는 말.
하지만, 윤기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애초에 이곳 마트도 미국과의 관계가 어그러지기 전까지만 운영할 생각인데, 어떻게 지켜 준다는 약속을 하겠는가.
“무슨 말을 하시려는 것인지는 알겠는데, 상식적으로 제가 이곳을 계속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김정철을 비롯한 사람들은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그리고, 이곳에 정말 순수하고 착한, 지켜 줄 가치가 있는 사람들만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들은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애초에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은 착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다.
괜히,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라는 속담이 있겠는가?
당장 한인타운만 해도 불법체류자가 잔뜩 있었고, 그들을 헐값에 고용해 이익을 보는 자들 역시 다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윤기가 그들을 무작정 도와준다?
명분도 없고, 실익도 없는 일이다.
“그, 그렇다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다급한 김정철의 질문.
윤기는 그런 김정철을 향해 딱 하나, 원론적인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한인타운에서 불법체류자가 사라져야죠.”
아주 원론적이면서 제일 확실한 해결법.
순간 김정철은 자신도 모르게 행복회로를 돌리고 말았다.
“그, 그러면, 회장님께서 불법체류자들이 영주권을 얻을 수 있도록 힘을 써 주시는 겁니까?!”
말을 듣기가 무섭게 윤기는 혐오스럽다는 감정을 가득 담아 김정철을 바라보았다.
“제정신이세요? 제가 방금 뭐라고 말했는지 까먹었나요?”
윤기가 방금 한 말.
그것은 ‘지켜 줄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불법체류자들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미국 영주권자로 만들어 준다?
윤기가 절대로 실행하지 않을 하책 중의 하책이었다.
“아, 아닙니다. 죄, 죄송합니다. 그저, 순간적으로 마음이 달아올라서 그만….”
“솔직히, 지금 여기 오신 분들 중에서 불법체류자 싼값에 고용해서 이익 보시는 분들도 분명 있을걸요?”
그러자 몇 명이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제가 굳이 조사하지 않는 것은 그 착취 당하는 불법체류자도 착한 사람이라고 보기 힘들어서 그런 것뿐이에요. 그리고 지금 이곳의 분위기를 나쁘게 만들고 싶은 마음도 없구요.”
불법체류자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매우 간단하다.
여행 목적으로 와놓고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그대로 눌러앉는 것이다.
애초에 여행 목적으로 온 것도 아니다.
방문 목적에 여행이라 기입해 놓았지만, 실제로는 취업 목적.
하지만,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아메리칸드림이라는 말 자체가 ‘미국은 살기 좋은 나라’라서 생긴 말이 아니라, ‘미국에서는 크게 성공할 수 있어서’ 생긴 말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그만큼 소득 양극화가 어마어마하게 심각하다는 말.
실제로 아메리칸드림을 꿈꾸고 온 사람 중에 성공한 사람도 있지만, 한 명의 성공한 사람이 있다면, 천 명의 불법체류자가 있는 수준이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불법체류자들이 선량하고 착한데 핍박받는 사람들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미국 입장에서 세금을 내지도 않으면서 치안만 망가뜨리는 좀도둑일 뿐이니까요.”
2020년의 한국 사람들 역시 불법체류자들을 비슷하게 보지 않을까?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TV 감성팔이 때문에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동정여론이 확산되었지만, 2020년 한국은 그런 여론이 거의 없다.
불법체류자들은 한국에 적응할 생각이 없고, 법을 지키지 않아 치안만 악화시키는 존재들이니까.
미국인들 입장에서 보이는 한국인 불법체류자들 역시 마찬가지.
윤기는 이런 부분에서까지 ‘우리가 남이가’라는 느낌으로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한 번의 기회는 줄 생각이었다.
“회장님,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그러면…, 회장님이 생각하시는 해결책이 혹시 있는지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어쩐지 군대가 떠오르는 화법.
그만큼 지금 김정철이 윤기를 어렵게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저는 불법체류자들에게 미국 영주권을 줄 생각이 없어요. 애초에 그럴 능력도 없구요.”
1991년을 기준으로 미국에 있는 한국인 불법체류자들의 숫자는 무려 15만 명 이상.
이들 모두에게 영주권을 준다?
주는 순간 다른 인종 불법체류자들에 대한 차별인 데다가, 애초에 윤기라 할지라도 부시에게 이런 것을 요청할 능력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차라리 누구 하나 죽여 달라고 부탁했는데, 부시가 그걸 들어주는 것이 현실성이 있을 정도겠지.
“다만, 불법체류자들 중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소련으로의 귀화를 추진해 줄 수는 있어요.”
“소, 소련 말입니까? 그, 그곳은 공산주의 아닙니까?”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 입장에서 소련은 그야말로 공산주의의 화신.
더군다나 6·25 전쟁이 끝난 지 불과 38년밖에 되지 않은 1991년이다.
40대 후반 이상의 사람들은 소련 하면 자연스럽게 공포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뇨, 소련은 수정 자본주의를 도입했어요. 단지, 외국에 거의 개방을 하지 않을 뿐이죠.”
“으으음…….”
김정철을 필두로 사람들은 모두가 불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좋은 방법 생각나시는 분?”
이들이 바라는 좋은 방법이란 아까 김정철이 말한 ‘불법체류자들에게 영주권 주기’.
하지만, 누구 좋으라고 윤기가 그런 행동을 하겠는가?
애초에 윤기가 L.A 한인타운에 마트를 연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이것이었다.
불법체류자들을 ‘자연스럽게’ 소련으로 데리고 가기.
인구는 곧 국력이기에 데려가려고 한 것이다.
사실, 한국에 데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불법체류자들은 일단 ‘법을 밥으로 아는’ 인물들.
실제로 뉴스에 ‘브로커를 통해 미국에 왔지만 사기당해~’라면서 감성팔이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왜 브로커를 쓴 것일까?
할 수 없는 일인데 하려다가 당한 거다.
그런데, 이런 감성팔이가 통한다.
왜?
같은 한국인이니까 팔이 안으로 굽는 거다.
물론, 윤기는 팔이 안으로 굽긴 하지만,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자.
그렇기에 한국으로 데려갈 수가 없었다.
불법체류자들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사고를 친다면?
그걸 법적으로 제대로 처벌했다가 괜히 동정 여론이 생기면 귀찮아진다.
하지만, 소련은 다르다.
그들이 사고를 치더라도, 소련 사람들은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아주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겠지.
따라서 소련에 도착한 불법체류자들 역시 자연스럽게 현지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노력이란 다름 아닌 재사회화 교육.
그 무엇보다도 재사회화 교육을 중요시하는 윤기였기에 그들에게 어울리는 장소는 한국이 아니라 소련이라고 판단했다.
“저…, 회장님.”
다시 입을 여는 김정철.
“예, 말씀하세요.”
“한국은 안 됩니까?”
“한국에는 15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없거든요.”
“아…, 그렇군요.”
“그런데 불법체류자가 아니시지 않나요?”
“네? 당연히 저는 불법체류자가 아닙니다. 다만, 어쨌든 그 사람들도 한국인이라….”
당장 김정철부터가 불법체류자에게 동정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윤기는 더더욱 그들을 한국으로 데려가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국으로 돌아간 불법체류자들이 동정 여론에 힘입어서 활개 치기 시작하면 참 더러운 상황이 발생할 거야. 역시 소련이 답이야.’
물론, 소련으로 가서 착취하겠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소련에서 일을 하고, 소련에서 잠을 자고, 소련에서 여가를 즐기는 인생을 살게 할 뿐이다.
“아, 혹시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하지 못해서 그런 건가요?”
윤기의 말에 김정철이 화들짝 놀랐다.
“아, 아닙니다! 정말로 아닙니다!”
김정철의 말은 진심.
그렇기에 윤기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는 혹시나 했죠. 물론, 본인은 불법체류자를 고용하지 않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고용하지 못하게 각별히 주의해야 해요. 지역에 불법체류자 비중이 높아질수록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질 거예요. 당장, 갱단들이 총 들고 이곳으로 들어왔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원래 역사에서도 L.A 한인타운은 L.A 폭동 이후로 당국과 세금 관련해서 긴밀한 협조를 벌이고, 흑인들과도 제대로 교류한다.
단지, 윤기의 역사에서는 윤기가 주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그 차이일 뿐.
“으음…, 어이, 박 사장! 자네, 세탁소 직원 영주권 없지?”
김정철의 말에 ‘박 사장’이라고 불린 사람이 찔끔하며 항변했다.
“아, 아니, 그 사람 자르면 난 어떻게 하라고.”
“종일 바둑이랑 장기만 두면서 몸뚱이는 어디다 쓰려고! 자네가 일해!”
“아니…, 그게….”
“쓰읍!”
김정철이 눈을 부라리자, 박 사장은 목을 웅크리며 고개를 숙였다.
물론, 박 사장이 바로 불법체류자들을 정말로 자를지 안 자를지는 모른다. 이 자리만을 모면하기 위해서 입을 다문 것일 수도 있으니까.
“회장님,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단, 우리 한인타운은 더 이상 불법체류자를 고용해서는 안 됩니다.”
“네, 맞아요.”
“그러면 불법체류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겠군요.”
“그렇지요.”
“그런 사람들을 회장님은 소련으로 데려가실 생각이십니다.”
“정확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강제가 아니겠지요?”
“네.”
“그렇다면 따라가지 않을 불법체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주 논리정연한 데다가 깔끔한 정리.
따라서 윤기 역시 아주 간결한 답을 내어놓았다.
“그걸 왜 제가 신경 써야 하죠?”
“…네?”
“불법적으로 세금도 내지 않는 사람들은 국민이 아닙니다. 그저 기생충이죠.”
세금이 부과되지 않아서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국민이 맞다.
하지만, 세금을 내기 싫어서 꼼수를 부리는 사람은 기생충이다.
이런 확고한 지론이 있는 윤기였기에 자신의 선택권을 따르지 않기로 한 불법체류자들을 신경 써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어…, 음….”
“불법체류자들이 세금을 안 내면, 결국 세금 부담은 멀쩡히 세금 내는 사람한테 돌아옵니다. 왜,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지나요? 단순히 한국말을 할 줄 알아서? 한국말 할 줄 아는 나쁜 놈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요.”
“어, 음…, 그렇긴 한데….”
연신 당황하는 김정철과 그를 따라온 사람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윤기의 논리에 질 수밖에 없었다.
* * *
윤기의 역사에서 L.A 폭동은 최종적으로 81명의 사망자, 2,193명의 부상자가 나왔고, 16,412명이 체포되었다.
물론, 윤기 입장에서 그다지 상관없는 일.
오히려 윤기는 이득을 보았다.
[빈곤층을 보호해 준 한국의 대부호] [최윤기 회장이 멋지게 발휘한 기지가 빈곤층을 살렸다] [피부색을 가리지 않는 아시아의 의인] [최윤기 회장의 마트, 밀착 취재 예정]이러한 이미지 메이킹 역시 윤기의 의도 중 하나.
그렇기에 윤기는 아주 만족하며 부시를 만났다.
“정말 걱정했습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마샬을 통해 올라온 보고서를 읽은 부시였기에 굳이 쓸데없이 알고 있는 것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단지, 윤기의 무사함에 아주 안심할 뿐.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각하를 뵐 수 있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네요.”
“그렇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는데, 그걸 예지할 수가 없으니 참 아쉽네요.”
“어라? 미국 대통령이면 그런 초능력쯤은 가지고 있는 것 아니었나요?”
윤기의 너스레에 부시는 픽 웃었고, 나름대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지금 L.A는 아직도 복구로 한창인데, 윤기의 무사를 확인한 것만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부시.
그만큼 윤기가 부시에게 가치 있다는 증거다.
“그나저나 저도 이번에 놀랐습니다. 한인타운을 비롯해서 미국 전역에 불법체류자들이 정말 많더군요.”
말을 들은 부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습니다. 불법체류자들이 너무 많아요. 게다가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 드는 행정력 낭비가 너무나 심각합니다. 이걸 어찌해야 할지….”
그런 부시를 향해 윤기가 한 가지 제안을 내밀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선물을 하나 드릴까요?”
“선물 말인가요?”
뜬금없는 선물이란 말에 부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기를 바라보았다.
“최근 유전 거래로 각하께 도움을 받았으니, 저도 각하의 지지율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하나 해 보려구요.”
“오, 그게 무엇입니까?”
“미국에 있는 한국인 불법체류자 숫자를 몇만 명 정도는 줄여 드릴게요.”
분명 요청해야 할 일이었지만, 윤기는 교묘하게 선물로 포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