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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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화 아름다운 만남 (1)
순간 가족 모두가 동작을 멈췄다.
“괘, 괜찮아?”
가장 먼저 호들갑을 떤 것은 윤기였다.
“아가!”
박연지가 벌떡 일어나 메릴을 향해 다가갔고,
“언니!”
정아가 쪼르르 메릴을 향해 뛰었다.
“드디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단말마를 외치는 최기현과.
“우와!”
뒤를 이어 감탄사를 내지르는 최철호가 있었다.
하지만, 메릴은 이러한 반응을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손으로 입을 막은 채, 화장실을 향해 뛰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 집은 매우 넓다는 것.
일반적인 집이면 우욱 하고 소리를 내고, 5초 안에 화장실에서 구역질을 할 수 있지만, 이 집에서는 그게 절대로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본능적으로 바닥에 엎드려 헛구역질을 시작하는 메릴.
“우욱! 우웨엑!”
바닥이 더러워질 수도 있었지만, 메릴은 행운(?)의 25퍼센트에 속했다.
입덧할 때, 구역질만 나온다는 바로 그 25퍼센트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메릴은 자신의 시야에 들어오는 윤기의 양손을 확인했다.
“으, 응…? 뭐야, 이거…?”
“어? 아, 아니, 그냥 본능적으로 손이 가더라구.”
“진짜로 토했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그러면 손에 좀 묻는 거지, 뭐.”
씨익 웃는 윤기의 모습에 메릴은 솔직히 감동했다.
하지만, 윤기는 더 감동한 상태였다.
“나 한국으로 온 지 5주 정도 지났지?”
“어? 으응….”
“그럼, 이번에는 진짜 아닐까?”
환히 웃고 있는 윤기의 모습처럼 메릴의 얼굴 역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 * *
“축하드립니다!”
붉게 상기된 의사의 말.
대한민국 최고 재벌의 임신 사실을 당사자에게 직접 알려 줄 수 있다니, 이건 의사 입장에서 엄청난 기회였다.
자고로 좋은 소식을 전달해 주는 사람은 그게 자신의 힘이든, 아니든 무언가 쏠쏠한 것이 생기는 법.
그렇기에 의사는 오늘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에 감사하며, 진심으로 윤기와 메릴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진짜예요? 진짜, 저 임신이에요?”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상태로 연신 되묻는 메릴의 모습.
“네! 임신 확실합니다. 임신 아니면, 제 손에 장을 지…, 아니, 의사 면허 반납하겠습니다!”
“으아아아앙!”
메릴은 흡사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아, 아니, 이렇게 좋은 날, 왜, 왜 울어.”
윤기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 뒤, 메릴을 안아 주었다.
의자에 앉은 상태로 윤기의 품에 얼굴을 묻고는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메릴.
“불…, 불안했단 말이야! 나 실은 불임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실제로 윤기와 메릴은 불임 검사까지도 받았다.
하는 노력에 비해 정말 생길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으니까.
하지만, 검사로 밝혀진 것은 둘 다 혈기왕성한 부부라는 것뿐.
그리고 메릴은 30대를 그야말로 목전에 두고 있었다.
2020년에야 30대 초반에 임신하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 되지만, 1990년대는 전혀 다르다.
20대 중반에 임신하는 것이 보통이고, 늦어도 20대 후반에는 임신하는 것이 기본.
30대가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이 커져 가던 메릴에게 있어 드디어 희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의사는 씨익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윤기와 메릴을 향해 한 가지 희소식을 더했다.
“쌍둥이입니다!”
* * *
2020년에는 많은 여성들이 임신 2주 차에 자신들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임신테스트기’라는 희대의 발명품 덕분에, ‘조금 위험성 있는’ 관계를 맺었다면 2주 후에 거의 대부분이 임신테스트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90년대 초반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이때는 임신테스트기가 상용화되지 않은 상태.
따라서 대부분의 여성들이 임신 2개월에서 3개월 즈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빨라도 5주 정도에나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입덧이 빠르면 5주 즈음부터 시작되었으니까.
그렇기에 메릴의 임신 5주 차.
윤기의 집안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내가 증손주를 보고 죽겠구나!”
“나도!”
서로의 한 손을 붙잡고 덩실덩실 춤을 추는 최기현과 콜슨의 모습.
박연지는 메릴의 옆에 앉아 메릴의 배를 자신의 손으로 쓰다듬어 보고 있었다.
“아가, 앞으로는 절대 화내지 말고, 슬퍼하지 말고, 큰 움직임을 하면 안 돼.”
“어유, 어머니, 제가 집에서 몸을 움직일 일이 뭐가 있겠어요.”
“밤일도 조심하라는 얘기야.”
“아이, 어머님도 참….”
메릴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고, 윤기는 ‘아, 맞다, 한동안 참아야겠네’라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냐?>
‘풀장에 대추즙 가득 채워 놓고 절 한 번 올릴까요?’
감동의 순간에 괜히 쓸데없는 말을 했다가 본전도 못 뽑은 최덕배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운동도 조심하고. 아니다, 전문가를 부르는 게 좋겠어.”
건강한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그야말로 필수.
지금이야 일선에서 거의 손을 뗀 메릴이었지만, 아직도 종종 촬영 제의가 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윤기 역시 마찬가지.
윤기가 메릴에게 부끄럽지 않은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다 나름의 노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 그렇게까지 하는 게 맞을까요? 다른 사람들 보면 그냥 평범하게 임신하고, 평범하게 출산하는 거 같던데….”
“그건 그럴 여건이 안 돼서 못 하는 거지, 여건이 되면 하는 게 좋은 거란다.”
자신의 말에 동의를 구하려는 듯 최기현을 바라보는 박연지.
“그래,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구나. 남들이 다 평범하게 임신하고, 평범하게 낳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만큼 안타까운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단다. 옛날에 괜히 ‘산파’라는 게 있었겠니?”
만약 누구나 쉽게 애를 낳는다면, 출산을 도와주는 ‘산파’라는 직업이 존재하지 않았겠지.
괜히 출산 후 산파한테 돈과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다.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그야말로 열 달 동안의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리는, 아니, 아예 집안을 풍비박산 내는 일이 적지 않게 발생했으니까 말이다.
“어…, 저는 잘 모르니까 어머님이 시키시는 대로 할게요.”
지금까지 박연지의 말을 따라서 손해 본 일이 없었던 만큼 메릴은 믿음을 보였고, 박연지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메릴의 배를 쓰다듬었다.
“언니, 애기들 이름은 어떻게 지을 거야?”
정아의 질문.
“그게, 아직 애들 성별을 몰라서 좀 기다려 보려구.”
태아 성별은 임신 12주에서 16주 즈음이면 알 수 있다.
의사가 로봇 장난감이나 인형 장난감을 준비하라고 하거나, 파란색 인테리어 혹은 분홍색 인테리어를 하라고 알려 주니까 말이다.
하지만, 지금 메릴은 임신 5주.
아직 태아 감별을 하기에는 일렀다.
“그렇구나…, 그럼, 언니는 애들이 남자였으면 좋겠어, 여자였으면 좋겠어? 아니면 남자 하나, 여자 하나?”
“어…, 글쎄…? 주변 사람들은 아들이면 좋아하긴 하던데….”
한국에서 그래도 몇 년 살긴 했지만, 이것과 관련한 인식이 좀 얕았던 메릴은 윤기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는데?”
윤기는 노가다 시절, 미래의 삶을 살던 인물.
아들이 둘이건, 딸이 둘이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다 필요 없고, 그냥 부모한테 살가운 자식이면 좋겠어.’
노가다 시절, 고독사가 예상되던 중년 동료들처럼만 안 되면 만족하는 윤기였다.
* * *
헨드릭과 거스터는 며칠 늦게 한국에 도착했다.
아무리 기쁜 일이라 하더라도, 한국에 없다면 바로 올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장하다!”
메릴의 양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환히 웃는 거스터의 모습.
거스터는 최근 윤기가 본 모습에 비해서 엄청나게 정정한 모습이었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환히 웃으며 그런 거스터에게 안기는 메릴.
그리고 잠시 후, 메릴이 거스터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군복을 입고 계세요?”
비록 예비역 마크가 찍혀 있긴 했지만, 오늘 거스터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아, 이거 말이냐? 최근에 걸프 전쟁이 끝난 건 알고 있지?”
메릴이 고개를 끄덕이자, 거스터는 말을 이었다.
“그곳과 관련해서 업무가 너무 늘어나서 그런지, 나에게 잠시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위에서 부탁이 들어왔단다. 그래서 도와주기로 했지.”
“하, 할아버지. 이제 나이도 있으시고, 건강도 그렇게 좋진 않으신 것으로 아는데….”
대단히 걱정스러워하는 메릴의 모습에 거스터는 호탕하게 웃으며 몸을 뒤로 젖혔다.
“하하하핫! 내가 최근에 건강이 안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다 놀아서 그런 거더라고. 내가 할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렇게 힘이 날 수가 없어. 걱정하지 말거라, 난 아직도 마음만 먹으면 현역에게도 지지 않아.”
실제로도 그래 보였다.
불과 얼마 전에 윤기가 만났을 때는 혈색도 별로 좋지 않고, 활기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던 거스터.
하지만, 오늘의 거스터는 몸에 활력이 넘쳐 보였다.
더군다나 혈색마저도 돌아온 피부.
그렇기에 가족들 모두가 말은 안 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최근 거스터는 정말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모습을 보였었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구나.”
거스터는 입맛을 다시더니 메릴의 오른쪽 어깨에 다시 손을 올렸다.
“네가 출산할 때까지 옆에 있어 주어야 하는데, 이번에 내가 맡은 임무가 비밀 임무라서 1년 정도는 연락이 안 될 게야.”
“예? 1년이나요?! 아니, 할아버지, 아무리 그래도 1년은….”
“그만큼 내가 미국이라는 국가에 큰 힘이 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느냐? 안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서 너무나 미안하구나.”
“제가 부시 대통령한테 말을 좀 해 볼까요?”
불쑥 끼어든 윤기의 말에 거스터가 눈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어허! 일을 시작하려니까 이렇게 건강해졌는데, 내 건강을 빼앗으려 드는 게냐?”
“그, 그런 건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이번 일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 믿고 있단다. 그리고 때마침, 메릴의 임신 소식도 들려왔지. 메릴, 내가 돌아올 때 환히 웃고 있는 너의 얼굴을 선물로 주지 않으련?”
메릴은 여러모로 착잡한 심정으로 보였지만, 할아버지의 부탁인 만큼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허, 제대로 웃어야지!”
자신의 손가락으로 메릴의 양쪽 입술 끝을 올려주는 거스터의 모습.
그야말로 할아버지와 손녀의 모습이었다.
“할아버지는 정말 20년 전이랑 차이가 없으세요.”
“그게, 내 장점 아니겠느냐?”
씨익 웃던 거스터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메릴에게 당부했다.
“그 어떠한 상황이 오더라도 긍정적인 생각을 잃지 말거라. 내가 너에게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 하나뿐이야.”
“네, 꼭 그렇게 할게요.”
이번에는 확실히 고개를 끄덕이는 메릴의 모습.
거스터는 바쁜 일정을 이유로 헨드릭과 빠르게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 * *
거스터와 헨드릭이 떠나고 일주일 후.
윤기는 헨드릭에게서 급히 미국으로 비밀리에 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그리고 찾아간 곳.
헨드릭이 지정한 곳은 한적한 시골 별장이었다.
“장인어른, 무슨 일인가요?”
무언가 불길한 기분이 들어 버린 윤기.
헨드릭은 그런 윤기를 향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 대신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착한 안방.
그곳의 문을 열자, 침대 위에 누워있는 누군가가 보였다.
얼굴에 하얀색 손수건이 덮어져 있는 누군가….
그걸 보자마자 윤기는 털썩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리고 눈물이 핑 돌았다.
“할아버지!”
목 놓아 외치는 윤기.
“으, 응…? 아, 깜빡 잠이 들었었네.”
거스터는 자신의 얼굴에 올려져 있던 하얀색 손수건을 치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