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49)
549화 서민이 뭐가 힘드냐! (4)
“그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대수롭지 않아 하는 상대의 말에 윤명철이 황급히 되물었다.
“혹시 접시 많이 깬 건가요?”
“아니, 그냥 못 받는 건데?”
“그, 그게 가능해요?”
“어. 나 중학생 때, ‘어린놈이 무슨 돈이야!’ 하면서 못 받은 적도 있고, 막판에 갑자기 뭔가 트집 잡혀서 못 받은 적도 수두룩해.”
“아니, 그게 무슨…….”
“상상이 안 되지? 그게 서민의 삶이야. 당장, 첫날에 네가 와이케이 들먹이는 게 성공했어 봐. 너 편히 놀 때, 나는 존나게 뺑뺑이 치는 거지.”
“아…….”
윤명철은 부끄러움에 얼굴이 목덜미까지 붉어졌다.
“그리고, 너 어제 걸어서 여인숙까지 갔지?”
“네? 아…, 네.”
“그거 나한테는 일상이야. 나 여기까지 매일 1시간 넘게 걸어서 오거든.”
“예? 아니, 진짜요?”
“어.”
“서민들이 버스 타는 거 아니었어요?”
“서민 정도는 그렇겠지. 난 서민 그 이하의 존재거든. 버스 탈 돈도 아껴야 돼.”
“아니, 도대체……, 왜요…?”
“그 돈이 없으면 굶어야 되거든. 돈이 없으면 몸이 고생해야 하는 거야. 너 돈 천 원밖에 없을 때, 여인숙이랑 밥 중에 어떤 거 선택할래?”
“아…….”
윤명철은 단박에 이해했다.
만약, 어제.
점장이 라면과 공깃밥을 주지 않았다면, 그 천 원으로 여인숙에 갔을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안 아끼면 우리 집 다 굶어 죽어야 돼. 부모님이 일하시다 다쳐가지고 일을 못 하시거든. 부모님이랑 나랑 동생까지 합쳐서 네 명. 하루하루가 힘들다.”
“네? 부모님이 일을 해요?”
윤명철은 또 하나의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일을 해야지. 일 안 하는 부모님도 있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엄…, 아니 어머니도 일을 해요?”
“가난하니까 해야지. 우리 아버지가 결혼하고 군대 갔는데 베트남전 강제로 뽑혀서, 거기에서 크게 다치셨거든.”
실제로 베트남전은 ‘지원’이었지만, 강제로 지원서를 쓰게 한 경우도 흔했다.
지금 윤명철의 앞에서 이야기하는 사람의 아버지가 바로 그러한 사례의 피해자.
전쟁 후유증으로 인해 수입이 안정적이지 못하니 아내가 일을 나가야 했고, 아내 역시 특별한 기술이 없어 수입이 변변치 않았다.
그렇다 보니 맏아들인 이 사내까지 생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따금 보면 장남에게 몰빵하는 사회 구조에 크게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장남이 온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경우도 그만큼 많았던 것이 바로 이 시대다.
“네? 강제로 뽑혀요?”
“어, 너는 상상이 안 가지? 그런데 돈 없고, 빽 없으면 그런데 강제로 뽑혀서 가는 거야. 후우….”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해요….”
“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정말 안하무인처럼 군 거 같아요….”
윤명철의 말에 사내가 픽 웃었다.
“그래, 그렇게라도 깨달았으면 됐다. 어차피 네가 말한 게 사실이면 얼마 안 있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갈 텐데, 거기 가서는 처음처럼 그러지 말아 주라. 나 같은 서민, 아니 빈민 비참해진다.”
“저, 절대로 안 그래요! 안 그럴 거예요….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래, 이참에 내가 너한테 다른 것도 좀 말해 줄까?”
윤명철은 이날, 서민과 빈민들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다.
* * *
[야, 내가 초등학생 때, 선생들한테 6년 내내 얻어맞고 다녔거든? 나는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는 줄 알았어. 그게 촌지 때문이란 걸 20살 먹고 알았다. 그래서 내가 선생이란 족속들을 존나 싫어해.]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고등학생 때, 집에 뜨거운 물이 안 나오더라? 동생들이 찬물로 샤워하면서 우는데, 그 꼴을 볼 수가 없더라. 그래서 학교 때려치우고 일 시작한 거야.] [그나마 운 좋게 와이케이 들어와서 다행이지. 나는 당연히 복지형 연봉을 선택했거든. 그 덕분에 지금 그나마 집 같은 집에서 살고 있어. 난 죽어도 와이케이에서 못 나간다.]여러 대화를 통해 윤명철은 상대가 알바가 아니라 정직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윤기가 서민과 빈민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직원이 된 서민과 빈민을 얼마나 잘 챙겨 주는지도 말이다.
그렇기에 과거 자신이 한 말이 떠올라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 윤기 형이 그때 다 알면서 나 이거 시킨 거구나…….’
그나마.
정말 그나마 윤명철은 이런 걸 깨달을 수 있는 부류였다.
이런 상황에서조차도 갱생이 안 되는 녀석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
하지만, 윤명철의 마음에는 그래도 최소한 인간의 도리라는 게 존재했었다.
그렇기에 윤명철은 허름한 여인숙에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진짜, 옛날의 나를 죽이고 싶다.’
예전에 자신이 망나니짓을 해도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제야 깨달은 윤명철.
돈이 있고, 인맥이 있어서였다.
심지어 아버지가 다른 지역이긴 하지만, 교감의 직위를 가지고 있으니 더더욱 그랬겠지.
‘엄마…….’
윤명철은 신류영을 떠올리며 눈물 속에 잠이 들었다.
* * *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윤명철은 마침내 다시 원룸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냈다.
그동안 매일 설거지를 하고, 옷도 매일 빨았다.
점장이 준 옷과 자신이 나올 때 입었던 옷밖에 없었기에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지만, 예전의 윤명철이었다면 그냥 대충 입었겠지.
하지만, 정말 많이 달라졌다.
매일 걸어서 다니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빨래도 그냥 건너뛸 수 있었고, 일도 대충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윤명철은 모든 것을 열심히 했다.
“형, 저 그냥 계속 여인숙에서 생활하게요.”
“어? 진짜?”
같이 설거지를 하는 형의 이름은 강동규.
다른 직원들도 있었지만, 윤명철은 그래도 나이대가 비슷한 강동규가 편했다.
물론, 강동규가 다른 직원들에 비해 윤명철의 첫날 망나니짓을 좀 더 대범하게 눈감아준 것도 있지만 말이다.
“네. 원룸에서 자면 3천 원이고, 여인숙에서 자면 천 원이잖아요. 2천 원이면 차이가 너무 커요.”
“이야…, 완전 사람이 달라졌는데?”
예전의 윤명철은 고등학생인데도 당구장에 돈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내기 당구에서도 돈을 엄청 잃었다.
하지만, 그때는 돈을 아까워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만 하면 됐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윤명철은 돈 2천 원을 아까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달라졌다기보다는…, 이제야 사람이 된 거 같아요. 이전에는 그냥 개였죠. 멍멍!”
심지어 재미는 좀 없지만 유머까지 생긴 윤명철.
그렇기에 강동규는 킥킥 웃었다.
“푸흐흐, 너 그렇게 바뀐 거 보면 부모님이 좋아하시겠다. 너 이 생활 언제까지 해야 돼?”
“12월 말까지로 알고 있긴 한데…, 모르겠어요. 더 시켜도 해야죠. 제가 잘못한 거니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윤명철.
강동규는 솔직히 정말로 놀랐다.
첫날에 본 윤명철과 지금의 윤명철이 너무나 달랐으니까.
‘결혼해도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이 있던데, 얘는 결혼을 안 했는데도 정신을 차렸네?’
그래도 누군가가 개심하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것은 즐거운 일.
그렇기에 강동규는 물론이고 다른 직원들 역시 점차 윤명철을 잘해 주게 되었다.
사람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어느덧 1991년의 크리스마스이브가 다가왔다.
* * *
윤명철의 한 달 서민 체험도 며칠 안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신류영의 집 초인종이 울렸다.
하지만 신류영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엄마! 저예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는 신류영.
그래도 요새 엄청나게 달라졌다는 말을 들었는데, 며칠 남기고 다시 찾아온 것을 보니 ‘역시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심지어 잠시 후.
마당에서 무언가가 착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담을 넘었다는 소리.
그렇기에 신류영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업어치기를 준비했다.
신류영 역시 아들에게 또 업어치기를 하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 차필규에게 특훈을 받고 있던 상황.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본 신류영은 깜짝 놀랐다.
매우 서투르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포장.
거기에는 곱게 접힌, 작은 편지가 들어 있었다.
[사랑하는 엄마.저예요, 명철이.
난생처음으로 엄마 선물을 샀어요.
비싼 건 아니지만, 그래도 버스비랑 숙박비 아껴서 산 선물이에요.
3일 있다가는 문 열어 주실 거죠?
그때 봐요. 메리 크리스마스.]
편지를 다 읽은 신류영은 선물 상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리고 울었다.
하지만, 얼굴은 웃고 있었다.
* * *
마침내 윤명철은 한 달에 걸친 서민 체험을 끝마쳤다.
사실, 서민 체험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윤명철 본인의 문제로 인해 빈민 체험이 되긴 했다.
물론, 다시 서민 체험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지만, 어머니의 선물을 위해 스스로 빈민 체험을 유지한 윤명철.
그렇기에 신류영은 아예 대문을 열어 놓은 상태로 아들을 기다렸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아들의 모습.
하지만, 아들이 멀리서 주춤거릴 뿐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자, 신류영은 그런 아들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렸다.
“아들!”
“어, 엄마!”
그제야 윤명철은 멀리서부터 전속력으로 뛰어 어머니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신류영은 본능이 발휘되었다.
쿵-!
“으갸갹!”
마당의 푹신한 흙바닥 위에 메다꽂아진 윤명철.
“헉! 며, 명철아, 괜찮니? 아이고, 어떡해…!”
한 달 넘게 차필규에게 업어치기를 배운 결과, 자신도 모르게 기술을 쓴 것이다.
“으으…, 이걸로 유리창 값은 갚은 거로 하면 안 될까요?”
그래도 한 달 동안 고된 노동을 통해 생존 근육이 단련된 윤명철은 아프긴 하지만, 고통을 참으며 일어났다.
“그, 그래, 당연하지!”
어색하게 웃는 신류영에게 윤명철이 다시 안겼다.
“엄마…, 보고 싶었어요…, 진짜로….”
“엄마도 우리 명철이 보고 싶었어….”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신류영.
윤명철은 자신의 머리에 떨어져 이마로 흐르는 눈물을 느끼고는 마주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우는 모자.
불과 한 달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두 모자의 관계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이,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차려 놨어.”
실제로 식탁에는 윤명철이 평소 좋아하던 반찬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아니, 엄마. 이게 다 얼만데 왜 이렇게 많이 차리셨어요. 아이고…….”
“아니, 너……, 이제 그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저 이제 김치만 놓고도 밥 먹을 수 있어요. 그런데…, 만드느라 힘드셨겠어요….”
윤명철의 말에 신류영은 또 눈물을 흘려 버렸다.
정말 눈물이 많은 모자다.
“아니, 왜 울어요. 산타한테 선물 받으셨으니까, 이제 울어도 되는 거예요?”
“아니, 얘가 참…….”
하지만, 윤명철 역시 어머니의 따뜻한 밥을 한술 입에 넣자 어머니처럼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그동안의 일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따뜻한 두 모자의 모습.
하지만, 윤명철에게 있어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다.
“왜 문이 다 열려 있어?”
윤명철의 아버지가 평일인데도 나타난 것이다.
윤명철이 어릴 때부터 사소한 실수만 해도 엄청나게 체벌을 했던 윤명철의 아버지 윤상구.
그렇기에 윤명철은 사회성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얼어 버렸다.
그만큼 트라우마란 무서운 법.
심지어 윤상구는 무서운 말을 꺼냈다.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들었어. 명철이가 큰 사고를 쳤다지.”
말을 들은 윤명철은 거의 오줌 쌀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다가오는 윤상구.
하지만 의외로.
정말 의외로.
윤상구는 윤명철에게 체벌을 하려는 게 아니라,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위해, 따뜻한 말을 해 주기 위해 머리 위로 팔을 뻗었다.
하지만.
아들의 상태를 본 신류영의 본능이 다시 발동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