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럭셔리즈 (1)
“오빠, 오빠!”
학교를 다녀온 윤기가 현관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윤기의 동생인 정아가 달려와 윤기의 다리에 달라붙었다.
“아이구, 우리 정아.”
윤기는 귀여운 여동생의 모습을 보며 번쩍 들어 안았다.
“꺄하하하!”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진 정아는 쾌활하게 웃으며 조막만 한 손과 얇은 팔로 오빠의 머리를 끌어안았고, 덕분에 윤기는 거의 눈앞이 안 보일 지경이 되었다.
“어유, 정아야. 그러다가 네 오빠 넘어질라.”
할아버지인 최기현이 나타나 정아를 윤기에게서 떼어 놓으려 하자, 거실에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앙!”
정말로 눈물까지 뚝뚝 흐르는 정아의 통곡에 최기현은 다급하게 양손을 휘저으며 떼어 놓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말을 했고, 그제야 정아는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방긋방긋 웃으며 윤기에게 매달리는 것을 계속했다.
“정아야, 오빠 손만 씻고 올게.”
“싫어!”
토라진 표정을 한 여동생을 조심스럽게 안아 소파에 내려놓은 윤기가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었다.
“더러운 손으로 정아 만지기 싫어서 그래. 괜찮지?”
“우웅……, 알았어!”
여동생을 향해 픽 웃어 준 윤기가 화장실로 들어간 사이, 최기현이 정아를 향해 다가갔다.
“우리 정아, 오빠 손 씻는 동안 할아버지랑 놀까?”
“싫어! 오빠랑 놀 거야!”
단호하다 못해 쇳덩이 같은 정아의 거절에 최기현은 조금 상처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휴우……,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할아버지가 최고라고 하던 녀석이…….”
입맛을 다시는 최기현을 향해 박연지가 푸근히 웃으며 쟁반 위의 녹차를 건넸다.
“아버님은 바빠서 자리를 비우실 때가 많으셔서 그래요. 윤기는 일을 한다 하더라도 집에서 대부분 일을 하잖아요.”
“그렇기야 한데……. 남매끼리 사이가 좋은 것을 좋아해야 하는 건지, 손녀가 할아비를 점점 멀리하는 것을 슬퍼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말이다.”
“에이, 정아가 아버님을 싫어하다뇨. 윤기가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에는 아버님만 졸졸 따라다니잖아요? 그냥 윤기를 좀 더 좋아할 뿐, 아버님을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보여 드릴까요?”
“어떻게?”
녹차를 한 모금 마시던 최기현의 말에 박연지가 생글생글 웃으며 정아의 앞에 서서 몸을 숙였다.
“우리 정아는 할아버지가 혼자 다른 집에서 살면 어떨 거 같아?”
방금까지만 해도 화장실을 바라보며 생글생글 웃던 정아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며 눈에는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대성통곡 3초 전.
하지만 박연지는 프로 엄마답게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정아는 할아버지 좋지?”
“응, 좋아!”
환히 웃으며 말하는 정아의 모습에 최기현의 입이 귀에 걸리기 시작했다.
“그럼, 할아버지랑 오빠 중에 누가 더 좋아?”
“오빠!”
그야말로 1초의 고민도 없는 대답에 최기현이 다시 입맛을 다셨고, 그 모습을 본 박연지가 다시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보셨죠?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냥 오빠를 더 좋아하는 거죠.”
“좋기는 한데……, 어쩐지 왜 진 것 같지?”
“지셨으니까요.”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연지의 모습은 어느새 새초롬한 새댁이 아니라 완숙한 며느리가 되어 있었다.
“너도 며느리 짬을 많이 먹긴 먹었구나. 예전의 너라면 그런 말 절대로 안 했을 텐데……. 하긴 벌써 며느리 생활도 15년이 넘었지?”
“아버님도 참. 저도 내일모레면 마흔인데요.”
입을 가리며 웃는 박연지의 나이는 실제로 30대 후반.
그러나 외모로 따지면 아직도 30대를 겨우 넘겨 보일 정도의 젊음을 자랑했다.
“네가 내일모레 마흔이라는 말을 믿을 사람이 누가 있겠냐. 콜슨 녀석 보면 너희 집안이 확실히 동안은 동안이야.”
“아버님도 참. 아버님도 엄청 동안이세요.”
“우리 집안은 동안이 아니라 동체지. 동체. 얼굴이 젊은 게 아니라 몸이 젊은 거니까.”
“동안이든 동체든 젊어 보인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시아버지와 마음 편히 농을 주고받는 며느리의 모습은 이 시대에 결코 흔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했다.
끼익-!
화장실 문이 열리며 윤기가 다시 나오기가 무섭게 정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다시 윤기에게 달려갔고, 윤기는 그런 정아를 안아 다시 소파로 온 뒤, 정아를 무릎 위에 앉힌 상태로 이런저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4살에게는 시기가 많이 지났을, ‘얼룰룰루 까꿍’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윤기나 정아나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 바쁘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래도 저 녀석들이 좋은 유전자만 물려받아서 다행이야. 안 좋은 유전자만 물려받았어 봐라, 정아는 상남자 같은 얼굴을 물려받았을 거고, 윤기는 뭔가 위화감 드는 백인의 얼굴을 물려받았겠지.”
“제 아버지랑 아버님이 덕을 많이 쌓아서 괜찮아요. 내친김에 애 아빠한테 셋째도 이야기해 볼까요?”
“아서라. 애미 네 나이도 이제 많이 찼는데 또 낳으면 힘들어.”
몸 걱정을 해 주는 시아버지의 말에 박연지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고, 그를 잠시 바라보던 최기현이 윤기를 바라보며 약간 의아한 음색을 냈다.
“윤기 녀석이 정아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꼭 나를 보는 것 같단 말이지? 저 나이대 오빠들이라면 사춘기 때문에 데면데면하게 굴 텐데, 정아를 볼 때마다 ‘아이구’거리는 거나 놀아주는 모습을 보면 영락없는 내 모습이야.”
“그야 당연히 아버님을 닮았으니까 그렇죠.”
“아니, 날 닮았다는 게 아니라 애늙은이 같다는 건데…….”
“그러니까 아버님 닮은 거죠.”
“애미야……?”
“호호호호.”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쾌한 대화는 당연히 윤기의 귀에도 들어오고 있었다.
애초에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윤기는 굳이 대화에 맞춰서 행동을 바꾸지 않았고, 한동안 정아와 즐거운 장난을 즐겼다.
딸 같아서?>
‘맞아요.’
최덕배의 말에 윤기는 곧바로 긍정의 대답을 날렸다.
어째 뭔가 위험한 발언인 거 같긴 한데, 넌 정말로 딸 같아서 여동생을 잘해 주는 게 맞겠지.>
‘아니……, 꼭 그런 첨언을 안 해도 된다니까요…….’
미안, 미안. 그런데 어쩌냐. 200년에 가까운 인생 중에 의사소통을 제대로 해 본 기간이 절반도 안 되는데. 네가 이해 좀 해 줘.>
‘에휴.’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윤기는 그러려니 하면서 다시 정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진짜 귀엽다.’
40대의 삶을 살던 시절에는 주변에 아들과 딸을 데리고 이동하는 가족들을 보면 솔직히 많이 부러웠었다.
해맑은 미소의 아이들이 있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행복해 보였으니까.
하지만 본인은 절대 이룰 수 없었던 꿈.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랐다. 가정을 꾸리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정아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아주 실컷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딸에게 쏟는 수준의 사랑을 윤기는 정아에게 베풀고 있었고, 정아는 당연히 그런 윤기를 굉장히 좋아했다.
할아버지와 아빠도 사랑을 쏟아부어 주고 있었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은 오빠를 엄마 다음으로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잘생겼지, 돈 많지, 잘해 주지.
윤기는 최소한 정아의 사춘기 때 ‘오빠 재수 없어.’라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어유, 정아 졸린가 보다.”
박연지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정아를 안아 들고는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들어가자, 거실에는 자연스럽게 최기현과 윤기만 남게 되었다.
“요즘 사업은 잘되고 있느냐?”
순식간에 거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 * *
“할아버지랑 부모님 덕분에 정말 잘되고 있어요.”
교과서적인 윤기의 대답에 최기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니, 그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닌 것을 알지 않느냐.”
상석과도 같은 1인용 소파에 앉아 녹차를 한 모금 마시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윤기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말로 할아버지랑 아버지 덕분에 전 산 거예요. 두 분이 아니었다면 백화점 개장이 거의 5년 이상 미뤄졌을걸요?”
윤기는 백화점 건설에 필요한 자본과 자신의 자산운용을 계산해 본 결과 5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냐……?”
“네. 원래 계획은 내년 하반기에 백화점을 개장하려고 공사를 시작했던 건데 제가 생각이 물렀던 거죠. 물론, 몇 년 뒤에 백화점을 연다고 해서 제 인생이 망하지는 않았겠지만, 원래의 계획대로 밀고 나가게 해 주신 데에는 할아버지랑 부모님의 도움이 컸어요.”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할아버지의 손자로 태어난 것이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에요.”
대놓고 얼굴에 금칠을 하고 있는데도 최기현은 이러한 손자의 말들이 너무나 예뻤다.
‘예전에 철민이 녀석이 나한테 아부할 때는 몸에 두드러기가 날 것 같더니, 윤기 녀석이 이러면 입이 쭉 찢어진단 말이야.’
그도 그럴 것이 진심으로 하는 말과 환심을 사기 위해 하는 아부의 차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럼, 현재로서는 자본의 문제가 거의 없는 것이 맞느냐?”
“네. 현시점에서 자본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작은아버지들이랑 고모들, 그리고 숙모나 숙부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이번 사업을 성공시켜야죠.”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다행이구나.”
사실상 최기현의 재산 중 현찰을 비롯한 유동 자산은 윤기가 거의 선 상속을 받은 상태다.
집안에서 절대 권력을 자랑하는 최기현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특혜는 사실 다른 가족들에게 불만을 살 수 있었는데, 당시 둘째 작은아버지인 최철민이 벌여놨던 대형 사고로 인해 이러한 불만이 1차적으로는 덮였다.
물론 이후에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2차 불만이 있었지만, 최철규가 윤기에게서 받는 특혜로 인해 다른 구성원들 역시 윤기와 적대하기보다는 환심을 사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고, 윤기 역시 그들을 보듬는 쪽으로 민심을 휘어잡았다.
덕분에 최기현은 손자의 행동을 바라보며 한숨 놓을 수 있었고, 윤기 역시 집안 구성원들의 적극적 그리고 소극적 지지 속에서 무난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너를 보면 항상 신기한 게, 어디서 인재들을 구해 온다는 거야. 페르난데즈였던가? 물산 소속의 녀석을 보내서 이야기를 나눠보게 했더니 정말 대단히 유능하다고 하더구나.”
“그것도 대부분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의 덕분이죠. 제가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미국에 갈 기회를 얻고, 투자를 할 기회를 얻었겠어요.”
손자의 말에 최기현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너무 겸손해할 필요는 없단다. 아무리 수저를 물고 태어났어도 자기 능력이 없으면 ‘아직까지는’ 집안을 망하게 할 수 있는 시대야. 철민이 녀석을 보면 알잖느냐?”
윤기 역시 할아버지의 말에 동의를 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할게요.”
2010년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부의 고착화가 시작이 된다.
대기업 부장을 달아서 20년을 근무해 봤자 손에 쥐는 돈은 25억에서 30억 남짓인데, 생활하면서 쓰는 돈을 생각하면 흙수저가 은수저가 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반면 당장 사업을 수도 없이 말아먹은 대기업 자제들은 아무런 기스 없이 기업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것을 윤기는 40대의 삶을 살며 수없이 봐 왔다.
하지만 현재는 1980년대.
윤기는 할아버지가 어떤 생각으로 이러한 말을 하는지 알기에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을 가슴 속에 담았다.
“그리고 보니 백화점의 외장 공사가 거의 다 끝났다고 하던데 그러면 슬슬 내장 공사가 시작되겠구나. 아까 말한 페르난데즈가 그쪽 전문이라지?”
“네 맞아요. 슬슬 백화점에 입점시킬 브랜드나 물품들을 준비해야 할 시기죠.”
“그러면 회의를 할 일도 굉장히 많아지겠지?”
“아무래도 저 혼자 모든 걸 결정할 수는 없으니까 아무래도 비중이 조금 커지긴 할 것 같아요.”
대답을 들은 최기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윤기를 향해 결정했다는 듯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내 집의 서재를 네 회의실로 쓰도록 하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