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77)
577화 이 정도면 되겠지? (1)
“……?”
뭔가 익숙한 목소리인데 자주 들은 건 아닌 것 같은 목소리.
하지만, 최근에 들어본 것 같은 목소리.
그렇기에 강민정은 대답 대신 엎드린 상태에서 고개를 위로 올렸다.
그러자 보이는 정동윤의 얼굴.
주임 직급인 강민정과 대기업 회장인 정동윤의 격차는 엄청났지만, 강민정은 최근 정동윤을 본 적이 있었다.
[출산 축하하네. 아무래도 이번 유급 육아 휴직은 최윤기 회장님께서도 관심을 가지시는 사안이라, 출산 휴가 중인 사람한테는 내가 직접 온 거라네.]이번 육아 휴직에서 지켜야 할 주의사항을 직접 찾아와서 전해준 정동윤.
그 앞에서 강민정의 대답은 100점이었다.
[네…, 고맙습니다. 정말 열심히 키울게요….]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수척한 표정, 완벽한 대답까지.
그렇기에 정동윤은 ‘보기 드문 멋진 직원이야’라는 생각과 함께 강민정을 머릿속에 심어 두었던 것이다.
강민정은 정동윤이 자신을 기억하는 것만큼 정동윤을 마음에 새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상황에서 알아볼 정도로는 기억하고 있었다.
“회, 회장님?!”
엎드렸던 자세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무릎까지 단정히 꿇는 강민정.
원래 꿇리는 것이 없으면 일어나기만 했을 텐데, 지금 자신의 상황이 절대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더불어서 유선일 역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유선일 역시 예전에 정동윤이 찾아왔을 때 옆에 있었으니까.
“회, 회장님…….”
강민정과 똑같은 말을 내뱉는 유선일.
이런 둘을 향해 정동윤이 말했다.
“자네…, 육아 휴직 중 아니었나? 애기는 어쩌고?”
“네? 아, 저기, 그게, 그…, 시, 시어머니랑 같이 있어요!”
“호텔에서?”
“네? 아, 네!”
순간 강민정은 돌이킬 수 없는 거짓말을 해 버렸다.
“아, 그렇구만. 가족들끼리 여행이었어. 잘 놀다 들어가게나.”
“회, 회장님은 지금 어디에 묵고 계신가요?”
“나? 나는 저기에 있는 호텔에서 묵고 있지. 하와이가 하도 인기라 그러길래 와봤더니, 역시 난 제주도가 좋구만.”
정동윤이 가리킨 곳은 강민정과 유선일이 묵고 있는 곳과 다소 거리가 떨어져 있는 호텔.
그렇기에 강민정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어색하게 ‘호호호’ 웃음소리를 냈다.
“그, 그런가요. 회장님도 즐거운 여행하세요.”
“그래, 자네도 푹 쉬게나.”
정동윤이 멀어지자 유선일이 호들갑을 떨었다.
“누, 누나 어떡해! 우리 큰일 나는 거 아니야?”
하지만, 강민정은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았다.
“시끄럽고, 오일이나 발라.”
“뭐? 지금 이렇게 들켰는데?”
관자놀이가 불룩 솟아오르는 것 같은 강민정의 표정.
“들키긴 뭘 들켜! 시어머니랑 같이 호텔에 있다고 이해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문제없어. 오일이나 바르라니까?”
“그래도…….”
“아, 진짜, 짜증 나게!”
“미, 미안! 바를게!”
조금씩 떨리는 유선일의 손은 강민정의 몸에 오일을 바르기 시작했다.
그 손길에 몸을 맡기며 한껏 풀어지는 강민정의 모습.
정말, 어떤 의미로는 미친 듯이 대범하다.
* * *
하와이는 관광지인 만큼 식당이 많다.
하지만, 강민정은 저녁으로 호텔의 식당에서 식사하는 것을 선택했다.
첫 식사는 기분을 제대로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짜 사람은 성공해야 돼.’
강민정은 와이케이 그룹의 사무직에서 주임으로 일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무직은 일할 때 스펙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직종.
대기업 사무직들이야 스펙이 엄청나긴 하지만, 그 스펙을 실제로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다.
단지 지원자가 무지막지하게 높다 보니 스펙 커트라인이 엄청나게 높아질 뿐이다.
반면, 와이케이 그룹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추첨.
물론, 와이케이 그룹의 자체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 사무직은 상식 시험만 통과하면 될 정도이기 때문에 강민정도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었다.
이후로는 당연히 추첨.
그렇기에 와이케이 그룹의 사무직 경쟁률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는데, 강민정이 그 경쟁률을 뚫고 행운을 손에 거머쥐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돈가스도 벌벌 떨면서 먹어야 했는데.’
아주 작은 기업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었던 강민정.
하지만, 와이케이 그룹의 힘으로 이렇게 하와이 여행도 올 수 있는 재력을 얻게 되었다.
더군다나 앞에는 자신의 말이라면 설설 기는 잘생긴 남편까지.
아주 행복한 인생 아니겠는가?
“우와, 여기 비싸지 않아?”
“마누라 잘 둔 덕인 줄 알아.”
“그러게, 우리 누나가 최고야!”
비행기에서 아기를 걱정하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20대 극초반인 유선일의 나이.
당장 임신하고 있는 강민정부터가 모성애가 쌓일 행동을 하지 않는데 유선일이라고 해서 부성애가 생길까.
물론, 강민정에 비해서 ‘아기’에 대한 열망이 분명 있었던 유선일이었기에 조금 낫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실상은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너무 누나라고 부르지마, 내가 늙은 것 같잖아.”
“알았어, 민정아!”
“어? 지금 맞먹는 거야?”
“아잉.”
애교를 떨며 포크로 스테이크를 찍어 강민정의 입가에 갖다 대는 유선일.
강민정은 웃으며 포크에 찍힌 스테이크를 받아먹었다.
“어머, 진짜 맛있다. 이게 진짜 스테이크인가 봐.”
“와, 진짜 맛있네!”
마찬가지로 감탄사를 터뜨리는 유선일.
그런데, 다른 사람의 감탄사가 섞였다.
“오! 자네들도 여기서 밥 먹는구만?”
정동윤의 목소리.
유선일은 앉은 상태에서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강민정 역시 깜짝 놀라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렸다.
소스가 있는 접시에 포크를 떨어뜨린 터라 소스가 옷에 묻은 강민정.
“에헤이, 사람이 칠칠치 못하게. 이거로 닦게나.”
자신의 손수건을 건네는 정동윤이었지만, 강민정은 급하게 테이블의 냅킨으로 옷에 묻은 소스를 닦았다.
“회, 회장님. 어떻게 여기에…?”
너무 놀라 뒷말을 흐리는 강민정.
“아, 여기 스테이크가 맛있다고 해서 찾아왔지. 그런데 시어머니랑 애기는 어디에 있나?”
“네? 아, 저기 그게…….”
강민정조차도 뇌 정지가 올 정도의 상황.
그런데 이번에는 유선일이 거짓부렁을 내뱉었다.
“머, 먼저 먹고 객실에 있습니다!”
“아, 그래? 그렇구만. 하긴, 애 보는 어른 셋이서 다 같이 밥을 먹기는 쉽지 않겠지.”
고개를 끄덕이는 정동윤의 모습에 강민정의 얼굴에 약간이지만 여유가 돌아왔다.
앞에 정동윤만 없었어도 유선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강민정.
하지만, 정동윤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나저나 자네는 언제까지 하와이에 있을 계획인가?”
“네?”
“언제까지 여행할지 물어보는 거라네. 돌아가는 날짜가 있을 거 아니야.”
미국은 돌아가는 비행기 표가 없으면 입국이 거부될 수도 있다.
따라서 강민정과 유선일 역시 돌아가는 표가 있었다.
다만, 그 돌아가는 날이 40일 후라는 게 문제였다.
“저, 그게…….”
“언제인가?”
대수롭지 않게 물어보는 정동윤.
강민정은 정말 머리를 필사적으로 돌려서 적당한 날짜를 적당히 언급했다.
“4일 후에 돌아가요!”
“아, 그런가? 생각보다 길지 않군. 애기가 있으니 아무래도 한국이 편하겠지. 즐거운 여행하게나.”
“네…, 네! 회장님도 조심히 들어가셔요!”
등을 돌려 사라지는 정동윤.
강민정과 유선일은 그야말로 십 년 감수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 * *
첫날 이후로 정동윤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둘째 날까지만 해도 불안감에 떨던 강민정과 유선일은 셋째 날에는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넷째 날.
“민정아, 우리 오늘은 밤에 공연 보는 것 말고 계획 없지?”
“응, 없지. 혹시 바다 또 가고 싶어? 그것도 괜찮고.”
객실에서 룸서비스로 조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강민정과 유선일.
대답을 들은 유선일이 은근한 표정을 지으며 강민정을 바라보았다.
“아니, 밤까지 일정이 없으니까…….”
포크를 세워 접시에 대고 빙글빙글 돌리는 유선일.
강민정은 유선일의 말을 알아들었다.
“미쳤어, 미쳤어. 정말 체력이 왜 그렇게 좋아?”
“아니, 우리 민정이가 너무 예뻐서 그런 걸 내가 어떻게 해.”
유선일은 이번 여행이 너무 재밌었다.
아들이 걱정되는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즐거움에 비하면 별거 아닌 일로 취급된 지 오래.
따라서 유선일은 강민정이 가진 사회적 배경에 스스로가 취해 강민정에게 더욱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강민정 역시 이러한 유선일의 행동을 통해 자신이 가진 사회적 힘이 얼마나 센지 느낄 수 있었다.
시어머니랑 아기만 떼고, 딱 이 상황만 보면 참 행복해 보이는 이 부부.
하지만, 권리만 챙기고 의무는 내팽개치면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은 법이다.
따르르르릉-!
울리기 시작하는 호텔 객실의 전화기.
유선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다소 어눌한 한국말.
[네, 프런트입니다. 혹시 정동윤이라는 분을 아시나요?]“네?!”
유선일은 너무나 깜짝 놀라 수화기의 말하는 부분을 손으로 막으며 고개를 돌렸다.
“왜, 무슨 일인데?”
아직 상황을 모르는 강민정.
“프, 프런트에서 자기 회장님을 아냐고 물어보는데, 어, 어떻게 해?”
“뭐?!”
강민정은 깜짝 놀라 포크를 내려놓고는 전화기를 건네받았다.
“여보세요?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 정동윤이라는 분이 객실로 연결을 부탁하시는데 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지금 그분 앞에 있어요?”
[네, 제 앞에 계십니다.]강민정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아, 지금 바꿔 달라고 하시는데 바꿔 드릴까요?]이미 전화가 연결된 이상 없는 척을 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직원에게 보이지 않겠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연결해 주세요.”
[알겠습니다.]잠시 말이 끊긴 수화기.
[아, 강민정 주임?]“네, 네! 회장님!”
[다른 게 아니라, 자네 오늘 귀국한다며. 나도 오늘 돌아갈 건데 자네도 전용기에 타게나.]“네? 저, 전용기요?”
난데없이 전용기라니.
[그래, 회장님이 나 휴가 간다고 전용기를 빌려주셨거든. 올 때도 전용기를 타고 왔는데, 너무 편하지 뭔가. 그래서 자네도 태워 주려고.]이것이야말로 윤기가 쓴 필살기.
윤기는 상대가 할 만한 모든 변명에 대비해서 작전을 구상했다.
그 작전의 결과물이 바로 전용기.
물론, 전용기를 한 번 운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결코 싼 것은 아니었지만, 일벌백계라는 기준에서 본다면 딱히 비싼 건 아니었다.
“회, 회장님. 제가 그런 피해를 끼칠 수는……”
정동윤은 강민정의 말을 잘랐다.
[괜찮다니까. 애기가 있잖아. 애기가 삼등석에서 가는 거랑 전용기에서 가는 거랑 안전자체가 다를 텐데 무슨 거절인가? 딴소리하지 말고 타. 이건 사장 명령이야.]일부러 강짜를 부리는 정동윤.
그렇기에 박민정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네…, 감사합니다….”
[오후 5시에 자네 객실로 갈 테니, 준비해 놓게.]빠르게 끊긴 전화.
덕분에 강민정은 뭐라고 말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아…….”
뚜뚜뚜 소리가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지 못하고 있는 강민정.
이를 공포에 질린 눈으로 바라보는 유선일.
엿.됐.다.
* * *
오후 5시.
똑똑똑
그야말로 저승사자가 찾아오는 것 같은 노크 소리였다.
“회장님, 오, 오셨습니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유선일.
“자네, 왜 그렇게 떠나?”
“아, 아뇨, 그게….”
더는 대답하지 못하고 강민정의 뒤로 슬쩍 물러나는 유선일.
정동윤은 그런 유선일의 모습을 뒤로한 채, 짐짓 객실을 휘휘 둘러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시어머니랑 애기는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