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8)
#58화 럭셔리즈 (2)
언뜻 듣기에는 평범한 배려.
하지만 윤기는 이 말의 속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제가 감히 그 회의실을 써도 될까요?”
“내가 괜찮다고 하는 데 감히 누가 뭐라고 할까. 걱정 말고 쓰거라. 어차피 요새는 그룹 회의를 본사에서 하는 일이 대부분이니까 말이다.”
실제로 최기현의 서재는 회의실의 기능이 사라진 지 꽤 되기는 했었다.
윤기가 10살 때까지는 그래도 간신히 명맥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그룹의 규모가 커지면서 대부분의 회의가 그룹 본사에서 이루어진 탓이다.
물론, 아직 독대의 장소로써 쓰이고는 있었지만, 애초에 그럴 일 자체가 그다지 많지 않다.
‘할아버지가 저택 회의실을 나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윤기의 생각대로 그것은 자신의 후계자로 윤기를 거의 낙점 중이라는 얘기였다.
‘하긴, 실제로 그럴 생각이 없으셨으면 개인 자산을 나에게 투자해 주시는 게 아니라, 백화점이 망하는 것을 그냥 지켜보고 계셨겠지.’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어도, 그것을 실제로 듣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법.
윤기는 다시 할아버지를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절대로 할아버지의 기대가 어긋나는 일이 없는 인생을 살도록 할게요.”
“그렇다면야 내가 더 바랄 게 없지. 너는 비록 중학생이지만, 여러 개의 회사를 뒤에서 운영하고 있는 경영인이야. 언제나 그것을 잊지 말도록 하거라.”
“명심할게요.”
“그리고 이건 정말 어려운 주문이지만…….”
최기현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가족을 사랑할 줄 아는 재벌이 되도록 해라. 재벌이기 전에 모두가 가족이니까.”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제가 가족을 밀어내는 일은 없을 거예요. 저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니까요.”
40대 시절에 가족 없이 살아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윤기는 언제나 화목한 가족을 갈구했다.
그렇기에 지금 최기현 앞에서 하는 말은 진실이었다.
그리고 윤기가 말하는 특별한 경우.
“특별한 경우에 대해서는 내가 참견할 수 없는 노릇이지. 그것은 전적으로 너의 판단에 맡기마. 그리고 내가 판단하기에도 아직은 일러.”
“공사장에 가 보셨나요?”
최기현은 고개를 저었다.
“직접 가 본 적은 없고 비서실장한테서 이야기를 들었지. 피부가 아주 구릿빛이 되었다며? 이제야 내 핏줄 같아졌어.”
묘하게 허탈한 음색이 섞여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잘 됐다’라는 느낌의 표현이었다.
아들이라는 표현 대신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핏줄’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 현재 최기현의 심정을 반증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사람이 불과 1년도 안 되어서 바뀌기는 어려운 법이죠.”
“그래, 그렇지. 아무튼, 그 녀석들에 대해서는 굳이 나한테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으니, 알아서 하려무나.”
말을 끝으로 최기현은 다 식은 녹차를 단숨에 들이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아가 일어났는지 들어가 볼까.”
환한 웃음과 함께 안방으로 들어가는 할아버지를 보며 윤기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성적인 판단의 극치를 달려야 하는 경영인이라 하더라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가족이구나.’
이러한 윤기의 독백을 읽은 최덕배의 마무리가 윤기에게 묘한 여운을 주었다.
제대로 된 가족이 생기도록 신경을 썼을 때의 얘기지만.>
* * *
삼우 그룹 회장 저택의 서재.
윤기는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았다.
상석을 비워 두고 그다음 자리에 앉는 방법도 있었지만, 일부러 상석에 앉은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현재 회의실에 있는 최철규와 류근태에게 윤기가 어떤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지 간접적이지만 분명하게 알려 주었다.
‘나야 회장님의 야망이 크면 클수록 좋은 일이지.’
‘애초에 예견되었던 일이니까. 나중에 집안사람들을 모아 놓고 회의를 할 때 반응을 보면 꽤 재미있겠어.’
집안사람이 아닌 류근태의 경우야, 마음에 와닿는 정도가 굉장히 작기 때문에 판단의 정도가 얕았다.
반면 가족 구성원인 최철규는 추후 아버지가 빠진 가족회의를 할 때, 윤기가 상석에 앉는다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윤기가 상석에 앉았을 때 표정이 안 좋아지는 가족이 있다면 윤기 성격상 거의 100퍼센트 배제될 테니까.
‘상석에 앉기 전에 보듬느냐, 상석에 앉고 나서 보듬느냐. 그게 가장 궁금하네.’
최철규가 상념하고 있을 때,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제4의 인물이자 마지막 인물인 페르난데즈가 먼저 입을 열었다.
“회장님, 외장 공사가 두 달 안쪽으로 마무리될 것을 감안하면 슬슬 내장 인테리어에 들어가야 합니다. 기본적인 구획 자체는 기존에 이미 정해졌다 하더라도 VIP 전용 층인 7층 같은 경우에는 입점 브랜드를 알아야 그에 걸맞은 내장 인테리어를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두신 바가 있으신가요?”
이제는 회장님이라는 말과 존댓말이 입에 달라붙은 페르난데즈의 어휘력은 한국 사람과 차이를 크게 느끼기 힘들 정도였다.
애초에 천재였던 만큼, 같이 미국에서 온 애런이나 파이크에 비해서 적응력이 대단히 뛰어났던 덕분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그 건에 대해서 회의를 하려고 불렀어요. 페르난데즈, 미국에서 부자들이 선호하는 명품의 종류에 대해 알고 있나요?”
현재 윤기는 학교에 갈 때 필기도구나 시계, 손수건, 속옷 등의 물품에 대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들은 어디까지나 ‘손에 닿을 만한 명품’들.
서민들도 큰맘 먹으면 하나쯤은 맞출 수 있는 수준의 명품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백화점 7층에 입점할 브랜드 중 상당수는 정말 VIP를 위한 명품이었기에, 명품에 대해 공부 중인 윤기라 하더라도 아직 선택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았다.
“미국인들이 어떤 브랜드의 명품을 선호하는지 물으시는 건가요?”
“좀 더 명확하게 하자면 ‘부자’ 미국인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에 대해서 묻는 거죠.”
페르난데즈가 잠시 수염을 쓰다듬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미국에서 일할 때, 회사 고위직이나 클라이언트들이 어떤 명품을 쓰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본 적은 있습니다만, 그게 미국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개인의 경험이지 통계가 아니니까요.”
윤기가 납득하자, 페르난데즈는 말을 이었다.
“일단 제가 보고 들은 브랜드에 대해서는 내일 오전 중에 정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말을 들은 김에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요?”
“명품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중적 순위는 1등이지만 프리미엄 순위는 떨어지는 브랜드, 나머지 하나는 대중적 순위는 떨어지지만 프리미엄 순위는 1등인 브랜드죠. 회장님은 둘 중 어떤 브랜드를 입점시키시고 싶으신가요?”
“당연히 둘 다죠. 하지만 7층에는 기본적으로 후자를 더 우선시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페르난데즈가 고개를 끄덕일 때, 류근태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회장님, 저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지금까지 백화점 계획에 저도 관여하면서 이 백화점이 일반적인 백화점이 아니라는 사실은 저도 머리로, 그리고 몸으로 깨닫고 있습니다. 당장 장사 대상이 기본적으로 미군이니까요.”
“그렇죠.”
“그리고 미군이 기본적인 대상이지만, 미군 그 자체만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미군을 통해서 구매층을 유도하는 것 역시 알겠습니다.”
윤기가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자 류근태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 백화점에는 식자재 같은 것을 팔 계획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류근태의 말에 윤기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일반적인 식료품 매장은 두지 않을 생각이에요. 일부 미니 백화점에 미국 식료품을 일부 판매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 백화점은 식료품을 팔지 않을 겁니다. 다른 백화점들과는 달라요.”
류근태가 느끼고 있는 괴리감.
이것은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백화점이 황금기를 맞이하는 것은 80년대 후반, 그나마도 제대로 된 백화점은 80년대 중반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현재 81년을 기준으로 이전에 운영되고 있는 백화점은 대부분 식자재 마트를 운영하는 2010년대의 대형 마트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러한 시절에 2010년대의 백화점을 지으려는 것이 윤기의 의도이다 보니 류근태가 다소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8, 90년대에 백화점 쇼핑을 해 본 사람이라면 모든 쇼핑이 끝나고 마무리로 지하 1층에서 찬거리를 사거나 옥상에서 끼니를 해결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혹시 몰라서 다시 얘기하지만, 우리는 그냥 백화점을 짓는 게 아니라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상권’을 만드는 겁니다. 괜히 신군부의 권력자들에게 일부 노른자 지역을 할애해 준 게 아니에요.”
현재 백화점을 중심으로 주변에 미니 백화점이 속속들이 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본 계획은 1층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대부분 2층짜리 점포.
미니 백화점 내부에 본 백화점에서 가져온 물류를 보관할 창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덕분에 건설 사무소 인력들의 일이 훨씬 더 늘어났고, 그중에서도 페르난데즈의 직계 제자라 할 수 있게 된 파이크와 애런의 작업량은 그야말로 비명을 지르는 수준이었지만, 그들 덕분에 상권 계획은 차곡차곡 안정적으로 쌓아지고 있었다.
“제가 알고 있었어야 하는 건데 설명을 하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확실히 이해했습니다.”
“아니에요, 모르는 걸 혼자 판단하고 하는 것보다 물어보고 행동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요. 잘 물어본 거예요.”
류근태는 최소한 답변해 줄 가치를 느끼게 하는 인재였다.
“그렇다면 선점 효과를 확실히 가져야겠군요. 현재까지 이러한 느낌의 백화점은 국내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류근태의 말에 최철규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추가적인 예산을 투자하더라도 공사 기간을 앞당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윤기는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고개를 저었다.
“무리하게 공사 기간을 앞당기는 것은 절대로 허용할 수 없습니다. 지금으로도 충분해요. 오히려 주어진 기간 동안 운영 전략을 더 다듬는 게 낫습니다.”
명백한 윤기의 거절에 최철규는 고개를 숙였다.
원래라면 반말로 대화를 나눴겠지만, 지금은 외인인 페르난데즈가 동석한 상황. 그렇기에 최철규는 말을 높였다.
물론, 이러한 공과 사를 구분하는 눈치 덕에 윤기에게 중용될 수 있는 것이겠지만.
“일단 내일 페르난데즈가 미국에서 인식이 좋은 명품들에 대해 조사를 해 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 보죠. 최 실장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있는 명품에 대해서 가볍게 조사해 보도록 하세요.”
최철규가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 10시에 다시 이곳에서 만나죠.”
꼭 필요한 대화로만 이루어진 알찬 회의가 빠르게 끝났다.
* * *
오전 10시에 이루어진 회의 역시 40분 정도 만에 끝이 났다.
VIP층에 입점시킬 브랜드에 대해서 후보군들이 정해졌고, 그중에서도 초고가 브랜드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화두가 되었다.
“중고가 라인업은 백화점에 입점시키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판로 개척에 열심이니까요. 하지만 초고가 라인업으로 가게 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들은 이제 막 1호점을 여는 백화점에 그다지 관심이 없을 거예요. 더군다나 백화점 이름이 삼우 백화점도 아닌 데다가, 삼우의 계열사도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쉽지 않을 겁니다.”
건설 전문가이지만, 명품 자체가 예술과 관계되어 있다 보니 이 방면에 대해 준전문가인 페르난데즈의 말에 초고가 라인업은 윤기가 책임지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라인업에 대해서 세 사람이 협업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이번 회의의 중심 내용.
셋이 떠난 회의실에서 최덕배가 윤기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하려고 네가 해결하겠다고 이야기를 한 거냐?>
굉장히 궁금해하는 최덕배를 향해 윤기가 모처럼 욕먹을 발언을 내어놓았다.
“음……, 얼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