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587)
587화 아낌없이 주는 회사 (4)
“A/S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최남인.
당연한 일이다.
원래 역사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 A/S라는 개념이 제대로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은 1994년.
S기업이 A/S에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했는데, 이것을 기점으로 경쟁사들 역시 A/S에 투자하면서 대한민국 대기업에는 A/S 열풍이 불었다.
이때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바로 ‘방문 수리’.
그렇다면, 1994년 이전은 어땠을까?
그런 거 없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동네에 흔히 자리 잡고 있었던 점포 중에 ‘전파상’이라는 게 있다.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이 고장 나면 전파상에 찾아가서 고쳐 달라고 하는 거다.
물론, 요즘에도 ‘사설 수리’라는 명목으로 사설 수리업체들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이 사설 수리업체는 엄밀히 말하면, 블록 놀이를 하는 개념이다.
고장 난 제품을 싸게 사들이고, 거기에서 고장 나지 않은 부품을 이용해서 다른 제품들을 수리하는 방식.
반면 70~80년대의 전파상들은 주로 용접이 관련된 ‘납땜’의 영역이 많았다.
요약하자면, 70~80년대 국산 전자제품들은 상대적으로 조악했기 때문에 수리 역시 전파상에서 적당히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만약, 산 지 얼마 안 되어서 제품이 고장 났을 경우, 물건을 판 곳으로 달려가 목소리를 높여서 환불해 달라고 하는 정도가 이 시기의 현실이었다.
전자제품이 이럴진대, 육아용품은 오죽할까.
“네, 아무래도 물건을 사용하다 보면 고장 나기 마련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그런데, 고장 날 때마다 새로 사는 것보다는 수리하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저희는 판단했습니다.”
“아, 그래서 저를…?”
“그렇습니다. 설계 부문에서 일하셨으니 당연히 수리도 가능하시겠지요. 아닙니까?”
“흐음…, 하고자 하면 못 할 것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가능하다고 해도 제가 수리가 가능한 것은 제가 경험한 제품들 정도일 텐데요?”
지금 최남인에게는 제품의 설계도 같은 것이 전혀 없다.
물론, 설계도가 없다고 해도 오랜 기간 설계를 해 온 만큼, 고장 난 제품을 봤을 때 어디가 문제인지 정도는 알 수 있겠지.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존에 연구했던 제품의 이야기일 뿐.
다른 회사의 제품을 수리하게 될 경우, 당연히 주먹구구식으로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식탁 의자의 다리 높낮이가 안 맞아 흔들릴 때, 의자 다리 아래에 박스 자른 것을 밀어 넣는 식의 수리 말이다.
“아, 그 부분에 있어서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번에 와이케이에서 도입할 육아용품은 전부 최남인 씨께서 일하시던 회사의 제품이거든요.”
“예에…?”
순간 최남인의 표정이 자기도 모르게 일그러졌다.
자신을 아주 잔인하게 해고한 회사.
하지만, 이내 다시 얼굴은 펴졌다.
이전 회사가 이득을 보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쨌든 그 회사에서 일했었기 때문에 자기가 지금 이렇게 기회를 얻은 것 아니겠는가?
“가만…, 그런데 와이케이에서 왜 육아용품 수리 A/S가 필요한 거죠? 와이케이 백화점에서 판매한 제품에 대해서 따로 A/S를 지원하시려구요? 아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만약, 최남인의 추측대로였다면 굳이 최남인을 고용할 필요가 없다.
와이케이가 해당 기업과 따로 협의해서 특별 A/S 계약을 맺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을 테니까.
“아, 이번에 와이케이에서는 육아용품이 필요한 사원들에게 육아용품을 장기 대여해 주는 시스템을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최남인 씨 같은 인재가 필요한 것이지요.”
“예? 육아용품을 장기 대여해 줘요?”
“네, 우리 와이케이의 복지형 연봉에 복지가 추가된 거지요.”
“워…, 와이케이의 복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기는 했습니다만…, 놀랍네요.”
“회장님께서 자식을 얻으시고 나서 추진하셨습니다.”
“크으…, 최윤기 회장님한테 아이들이 생긴 것이 와이케이 사원들 입장에서는 참 은혜로운 일이 되었네요.”
“그렇지요.”
씨익 웃는 김 과장의 모습을 보던 최남인이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가만…, 물품을 사서 수리를 하게 되면, 당연히 물건을 살 일이 줄어드는 거겠죠?”
“그렇습니다. 수리뿐만이 아니라, 용품의 유지, 보수도 함께 이루어질 테니까요.”
한마디로 자기가 와이케이에 가서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원래 회사가 볼 이익이 줄어든다는 뜻.
그렇기에 최남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 와이케이에 가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보수 조건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아, 맞다.”
원래 다니던 회사에 대한 증오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던 조건.
최남인은 자신이 와이케이에서 어떤 대우를 받게 될지 궁금했다.
“기존 회사에서 16년을 일하셨고, 이전에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하신 것으로 저희가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혹시 다른 점이 있나요?”
“예? 어디 보자….”
최남인은 자신이 이전 회사에서 일했던 시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접히기 시작하는 손가락.
“아, 네! 맞습니다. 16년. 이야, 그걸 어떻게 알아내셨대?”
누군가가 자신에 대해 알아냈을 때,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고, 신기해하는 사람이 있다.
최남인은 후자.
“네, 저희는 그 경력의 절반을 근속연수로 인정해 드리려고 합니다. 따라서 와이케이로 오시게 될 경우, ‘일반기술직 9년 차’의 연봉을 받으시게 되는 겁니다.”
“네?”
잘 이해하지 못하는 최남인의 모습.
“이게 올해 일반기술직의 연봉 테이블입니다. 확인해 보시죠.”
윤기가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올해로 15년 차.
따라서 와이케이에는 최대 15년 차 직원이 있었다.
“으잉, 연봉을 이렇게 다 정해서 준다구요?”
“우리 와이케이는 그렇습니다. 이쪽이 금액형 연봉이고, 이쪽이 복지형 연봉입니다. 복지형 연봉을 선택할 경우 받게 되는 복지 혜택은 여기에 따로 적혀 있으니 확인하시길.”
최남인은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연봉이 정해져 있다니?
공무원이나 군인들이야 호봉에 따라 연봉이 정해져 있지만, 사기업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사기업에는 부장이 과장보다 연봉을 적게 받는 웃픈 일도 존재한다.
부장이 신입사원이랑 대화하다가 우연히 신입사원의 연봉을 듣고 빡쳐서 퇴사하는 이야기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사기업.
하지만, 와이케이는 직원 모두가 같은 보직이라면 누가 얼마를 받는지 얼추 알 수 있었다.
보직이 다르더라도 다른 보직에 아는 사람이 있다면 마찬가지로 알 수 있다.
‘생각보다 직급에 따른 연봉 격차가 낮네?’
연봉 테이블을 보던 최남인의 독백.
이것이 바로 와이케이가 복지에 전념할 수 있는 이유였다.
2020년 대한민국과는 전혀 다른 경영.
대기업 회장과 그 측근들이 수십억 연봉을 받는 반면, 일반 사원들은 몇천만 원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회장과 신입사원을 비교하면, 최대 300배 이상의 격차까지도 보이는 상황.
어떤 사람은 회사를 세웠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회사를 세워서 얻은 이득은 배당으로 가져가야 하는 것이 옳다.
그게 바로 주식과 투자라는 것이니까.
그런데, 2020년의 재벌들은 배당은 배당대로 챙기고, 연봉은 자신이 가진 주식이 가진 의결권을 이용해서 엄청나게 높인다.
국회의원들이 자기 월급 올리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윤기의 와이케이는 이 부분을 확실히 구분했다.
윤기의 최측근이라고 할 수 있는 류근태와 최철규조차도 일반 사원과 비교했을 때 연봉의 차이가 극적으로 나지 않는다.
그나마 와이케이 백화점의 지분을 각각 5퍼센트씩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한 배당금을 좀 받는 정도?
“이 연봉 테이블대로라면 류근태 사장님이 받는 연봉도 생각보다 높지 않겠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 최윤기 회장님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분들은 회장님이 따로 지급하는 돈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장 100억 신화가 있지 않습니까?”
예전 윤기가 측근들에게 지급했던 100억.
이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아직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전설이다.
“아, 맞다, 그랬었죠. 워….”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최남인.
하지만, 최남인은 와이케이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연봉 테이블을 보자 살짝 식는 기분을 느꼈다.
“제가 원래 회사에서 받았던 연봉보다 적어서 좀 고민되네요….”
복지형 연봉은 말할 것도 없고, 금액형 연봉조차도 원래 받았던 연봉보다도 적었다.
하지만, 이런 최남인의 고민을 해결(?)해 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아내다.
“으악!”
갑자기 최남인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는 바로 아내가 옆구리를 꼬집었기 때문.
“그냥 일해! 지금 어디 들어갈 데라도 있어? 그리고, 옆집 철수 엄마가 하는 말이, 철수 아빠는 와이케이에서 일해서 해고당할 걱정도 없고, 노후 걱정도 없다더라. 그냥 들어가! 안 들어갈 거면 오늘부터 각방 써!”
“그, 그것만은…….”
최남인은 상당한 수준의 애처가.
그렇기 때문에 결국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와이케이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 * *
[복지형 연봉을 선택한 사원은 집에 만 48개월 이하의 영유아가 있을 경우, 육아용품 대여가 가능함]와이케이 그룹 산하 기업들에 붙은 공고.
복지형 연봉을 선택한 직원들은 처음엔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실제로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신청한 사람들이 진짜로 육아용품을 지원받자 모두가 물품을 신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꽤나 많은 사원들에게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전염되었다.
첫 번째로 복지형 연봉에 대한 부러움.
금액형 연봉을 선택했지만, 집에 아기가 있는 집도 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복지형 연봉으로 바꾸고 싶어도 바꿀 수 없는 것이, 한 번 정하면 5년 뒤에 다시 바꿀 수 있는 것이 현실.
그렇기에 금액형 연봉을 선택한, 아기가 있는 사원들은 자신들의 예전 선택을 후회하며 이번 제도를 부러워했다.
두 번째는 근속연수에 대한 부러움.
이번 육아용품은 근속연수에 따라 고급형과 보급형이 분류되었다.
따라서 똑같이 육아용품을 신청했어도 1년 차 직원과 7년 차 직원이 받은 용품은 분명히 달랐다.
따라서 많은 사원들이 부러움과 동시에 ‘왜 와이케이에서 나가면 안 되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새겼다.
마지막 세 번째는 두 번째 이유의 연장.
“저…, 손주들한테도 지원해 주나요?”
총무과 직원에게 묻는 13년 차 직원의 말.
거의 최고참 직원이었기에 총무과 여직원 역시 해당 직원을 알고 있었고, 동시에 복지형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주민등록등본 가져오셔서 손주랑 같이 살고 있다는 것만 증명하시면 돼요!”
“우와!”
나이에 맞지 않은 환호를 터뜨린 직원.
이 직원은 며칠 후, 퇴근할 때 집에 육아용품을 가져가자 만삭인 며느리와 아들에게 엄청난 감사 인사를 들었다.
그야말로 으쓱으쓱해지는 상황.
이를 통해 이 직원은 가능하면 오래오래 와이케이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은퇴 절대로 안 해! 죽을 때까지 일할 거야!’
그야말로 사기가 충천하는 와이케이의 상황.
이를 바라보는 다른 기업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유급 육아 휴직에, 남자 직원 출산 휴가에, 육아용품까지 지원하다니.
반면, 이러한 상황이 기쁜 기업도 있었다.
당연히 와이케이에 육아용품을 판매한 기업.
하지만, 지나치게 효율을 추구하는 사장 덕분에 부하 직원 하나가 과잉 충성을 준비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