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0)
#60화 밑 준비 (2)
“윤기야, 여기에 있었으면 진작 부르지 그랬어?”
환히 웃으며 말하는 서종오에 비해 조청우는 여러모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죄송해요.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거든요. 일단 앉으세요.”
윤기는 사과를 하면서 서종오와 조청우를 최철규의 맞은편에 앉혔다.
현재 시각은 저녁 8시.
최철규가 이 시간까지 회의실에 있다는 사실이 두 사람에게 전달되었지만, 이것에 대해서 현재 제대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서종오뿐이었다.
‘철규 녀석은 확실히 윤기의 측근으로 자리를 잡은 모양이네. 아무래도 철규하고도 친분을 좀 쌓아야 하나?’
주판알을 굴리고 있는 서종오와 달리 조청우는 아직도 당황해서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기가 장인어른의 저 자리에 앉아도 되는 건가? 장인어른이 화내실 거 같은데……, 아니 허락을 받은 건가? 그것보다도 거실에서의 말을 윤기가 들었으면 어떡하지?’
조청우는 최철호에게 단 한마디도 불손한 말을 하지 않았으나 서종오의 말을 떠올리고는 오히려 자신이 더 전전긍긍했다.
서재와 거실의 거리는 그야말로 지척. 말소리가 들리려면 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서종오는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회의실은 기본적으로 방음이 아주 잘되어 있지. 안의 말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이 윤기 녀석에게 들렸을 가능성은 전혀 없어.’
똑같은 직군이었기에 인생의 차이가 곧 경력의 차이였고, 그렇기에 둘의 행동이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게 된 것이다.
‘윤기 녀석이 JSD와 친분이 대단하다고 했지. 윤기한테 잘 보이기만 하면 충분히 다시 원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원래 자리가 뭐야? 서울 중앙지검도 노려볼 수 있겠지.’
머릿속으로 맹렬히 주판알을 튕기는 서종오를 향해 윤기가 입을 열었다.
“현재 저는 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비서를 한 명 구하려고 해요. 굳이 표현하자면 법무 비서가 되겠죠?”
“법무 비서?”
서종오의 반문에 윤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외국 기업과의 거래라든가 기업의 행보가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를 자문해 줄 역할이죠. 물론 추후에 인력이 확충되기야 하겠지만, 현재로서는 법무 비서의 느낌으로 한 명을 우선적으로 구할 생각이에요.”
경우에 따라 최측근으로 고용해 주겠다는 의미.
서종오가 이러한 말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지만, 서종오는 일부러 반색하는 표정을 숨겼다.
“괜찮은 법조인을 소개해 달라는 의미로 생각하면 될까?”
“아뇨. 두 분 중에 법무 비서를 하실 분이 있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일단 시작 연봉은 대기업 과장급 혹은 신입 사원 수준이 될 것 같네요. 역량을 보고 이후 조정을 해야 할 테니까요.”
연봉을 들은 서종오가 속으로 불만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젠장, 겨우 대기업 과장급 대우? 겨우 그거 받으려고 검사직을 버릴 수는 없지. 하지만, 이렇게 세상 물정 모르는 녀석을 옆에서 조종한다면 꽤 크게 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고. 어쩐다……?’
욕심이 많은 만큼 마음속의 저울 역시 많았기에 서종오는 역시나 단숨에 동의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일단 생각할 시간이 좀 필요…….”
서종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조청우가 반색하는 목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할게!”
“셋째 고모부가 하시겠어요?”
윤기의 말에 서종오가 조청우의 상의를 잡아당기며 강제로 자리에 앉혔다.
“이봐, 동서. 이런 거는 함부로 결정하는 게 아니야.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 보고…….”
“아니, 저는 생각하고 뭐 할 것도 없어요. 그냥 하면 될 거 같은데요?”
“그러면 안 된데도.”
말과 함께 서종오는 윤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윤기야, 동서가 아직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해서 섣부르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아.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는 잘 알았으니 며칠 후에 연락을 줘도 될까?”
윤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뜻은 알겠어요. 그러면 두 분 다 제가 뭘 제안했는지 이해하셨다고 보면 될까요?”
“아니, 나는 할…….”
“씁!”
조청우가 계속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자 서종오가 눈을 부릅뜨며 입에서 쓴 소리를 냈고, 그제야 조청우는 주눅 든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남자가 그렇게 가벼워서 어떻게 해. 무게를 잡을 줄도 알아야지. 연수원에서 그렇게 배웠어?”
“죄송합니다…….”
인상을 쓰던 서종오가 다시 윤기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는 아주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러면 며칠 안에 연락 줄게.”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 보세요. 저는 아직 이야기가 남아서…….”
“그래, 한창 바쁠 때지, 그럼 ‘우린’ 이만 가 볼게.”
서종오는 조청우를 강제로 끌어내다시피 하며 서재를 나갔고, 서재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최철규가 윤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결정된 거 같은데?”
* * *
최철규도 집으로 돌아갔을 때, 서재에서 최덕배가 혀를 끌끌 차며 윤기를 향해 말했다.
이런 거 보면 인간관계라는 게 너무 무섭다니까. 방금까지 나하고 즐겁게 얘기를 나누던 사람이 밖에 나가서 내 뒷담을 깔지 어떻게 알겠어?>
윤기 역시 최덕배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기에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나 혼자 귀신으로 돌아다닐 때는 별생각이 안 들었는데, 네 부탁으로 바깥 상황을 미리 지켜보고 있으려면 인간 혐오에 걸리고 싶을 때가 있다니까.>
“안 돼요. 할아버지가 악령이 되면.”
윤기의 말에 최덕배가 감동스러운 눈빛을 지었다.
이 자식, 나를 생각할 줄도 알고…….>
“할아버지가 악령이 되면 전 어떡해요. 아직 할 일이 많은데.”
이런 쓰…….>
된시옷 소리가 나오려고 할 때 윤기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농담이에요. 존슨 녀석의 모습을 보면 전 할아버지가 악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제가 죽으면 둘이 세상 돌아다니자고요. 할아버지가 질릴 때까지. 그게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나중의 보답이겠죠.”
이번에는 최덕배가 쓴웃음을 짓다가 이내 다시 윤기에게 말을 걸었다.
그나저나 서종오라는 녀석은 자기가 거실에서 한 말이 네 귀에 들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을 거야. 네 아빠는 너한테 시시콜콜 이것저것 떠들 위인이 못 되니까.>
“그렇죠. 서재가 기본적으로 방음이 잘되어 있다는 사실은 잘 캐치했지만, 그러한 생각이 결국에는 자기를 그대로 오픈한 거죠.”
확실히 나이가 어리니 이게 참 단점이야. 나이만 보고 우습게 달려드는 무능력자가 생기는 거. 그래도 미리 거를 수 있어서 다행 아니냐?>
“그렇죠.”
그러면 나 도움 된 거지?>
“그럼요.”
그러면…….>
“알았어요. 알았어.”
최덕배가 한창 포식을 한 다음 날, 조청우는 다시 연락을 받고 서재로 들어갔다.
“앉으세요.”
이번에는 최철규도 서종오도 없는 오로지 독대.
그렇지만 조청우의 태도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 윤기야. 거기 앉아도 된다고 허락받은 거야? 나는 앉으라고 해도 무서워서 못 앉을 것 같은데…….”
은근히 순박한 말에 윤기는 긴장도 풀어 줄 겸 짐짓 푸근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당연히 허락을 받았으니까 앉은 거죠. 제가 막 앉았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어……, 음……. 살다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좀 보이더라고. 허락 안 받아 놓고 밑의 사람들한테는 허락받았다고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는 사람들…….”
조청우의 말에는 세상에 대한 은근한 혐오가 깔려 있었다.
‘아마 로펌한테 된통 당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변호사 사무소에서 잘린 거랑 개인 사무소에서 진상들 겪으면서 생기기도 했을 테고.’
윤기는 이 정도 단점쯤이야 단점 축에도 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
“저는 어떤 사람 같으세요?”
“어……, 솔직히 모르겠어.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도 알겠고, 주변에서 칭찬하는 것도 알겠는데 내가 직접 겪어 본 것은 아니니까…….”
윤기는 씨익 웃음을 지으며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그러면 직접 경험해 보실래요?”
조청우는 무슨 뜻인가 싶어 자신의 앞으로 내밀어진 종이를 바라보았다.
그것은 바로 계약서.
하지만 생각보다 엉성한 계약서였다.
“자, 잠깐. 형님이 아니라 날 고용하겠다고?”
윤기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에요. 그러니까 계약서를 내민 거죠.”
하지만 조청우의 당황은 계속 이어졌다.
“아니, 그게……. 어제는 내가 황급하게 일을 하겠다고는 했지만, 형님이랑 비교하면 나는 검사 생활을 한 적도 없고, 법조인 경험도 사실상 없는데, 정말로 날 고용할 거야?”
“네.”
윤기의 대답은 짧았다.
“정말로?”
“네.”
“왜……?”
좋게 말하면 순진한,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이 기회를 차기 딱 좋은 조청우의 말에 윤기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왜인지 정말로 모르겠어요?”
그제야 조청우는 어제의 일들을 마치 파노라마 필름처럼 좌르륵하고 머릿속에서 재생했다.
그리고 잠시 뒤, 조청우는 왜 자신이 선택되었는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내가 이런 성격이라서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잘렸거든…….”
자책하는 조청우를 바라보며 윤기는 오히려 만족하고 있었다.
‘최소한 멍청이는 아니네.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는 일이라면 제 몫을 할 거야.’
어차피 법무와 관련된 실무라는 게 시간을 들여서 해야 하는 법이었기에 윤기는 조청우의 성격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얘기가 너무 길어지는 것 같네요. 할 건가요. 안 할 건가요? 저는 지금 가족 간의 친목이나 다지자고 고모부를 부른 게 아니거든요.”
윤기의 말에 날이 서 있다는 것을 파악한 조청우가 황급히 계약서를 집어 들었다.
“저기……, 이 계약서……, 아무리 봐도 나한테 유리해 보이는데……?”
말을 들은 윤기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그걸 공평한 계약서로 한번 바꿔 보시겠어요? 그렇게 해 줄 사람이 필요해서 저는 고모부를 고용하고 싶은 거예요. 쓸데없이 머리를 쓰는 일은 제가 하면 되니까요.”
세상에는 자기가 이득을 보는 일인데도 부정이 섞인다면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이게 중증이 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동마저도 제지하려고 하지만, 조청우는 중증이 아니라 경증이었고, 윤기 역시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최덕배가 알려 준 사실과 직접 본 것들로 결론을 내린 것이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조청우를 부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어디 보자, 여긴 이렇게…….”
볼펜이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계약서 곳곳에 줄이 그어짐과 동시에 여러 문장이 더해졌다.
그리고 잠시 뒤, 수정된 계약서가 윤기의 손에 넘겨졌고, 윤기는 계약서를 확인하더니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바로 이런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다시 제안할게요. 시작 임금은 상여금 제외하고 월 29만 원 정도로 책정하죠. 추후 백화점의 규모가 커지고 사업이 확장되면 연봉은 능력과 업무량에 걸맞게 늘려 줄 생각이에요.”
“그렇게나 많이…….”
29만 원이 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었지만,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는 조청우에게 있어서는 마른 가뭄에 단비 같은 느낌이었는지, 조청우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하지만 조청우는 단순히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 능력 때문에 윤기에게 선택된 것도 있었다.
대학교 4학년 때 사법 고시를 붙고, 군대는 할아버지의 독립 유공자 활동으로 면제를 받은 27살의 불운한 초엘리트 법조인.
이것이 바로 조청우의 경력이었다.
문제는 특유의 성격으로 인한 불운 때문에 다 말아먹었다는 사실이지만.
“뭐든 시켜만 줘. 열심히 할게.”
사실상 고용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조청우는 윤기를 향해 고개를 숙였고, 윤기는 환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6주의 시간을 드릴 테니 지금 드리는 책들을 공부해 주세요.”
윤기는 서재에서 책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처음 한 권이 꺼내졌을 때 미소를 짓던 조청우의 표정이 점차 경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쌓였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책 탑.
“외우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