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05)
605화 이유를 모르겠지? (3)
“역시….”
“뭐, 뭐라고?!”
이미 짐작은 하고 있었던 비서실장과 전혀 모르고 있었던 회장 이경준 간의 반응 차이.
이경준은 자신과 다른 비서실장의 반응에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잠깐, 역시라고?”
비서실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방금 말씀드리려던 차에 김 비서가 들어와서 지금 말씀드리는 겁니다만, 농장 주인이 와이케이가 계약 상대인 것을 추측할 만한 말을 했었습니다.”
“자세히 얘기해 봐!”
방금 헐레벌떡 뛰어 들어온 김 비서를 뒤로한 채 대화에 빠져드는 비서실장과 이경준.
덕분에 김 비서는 조용히 회장실 문을 닫고, 구석에 자리 잡았다.
“농장 주인이 말을 하길, 계약 상대가 ‘어음’이 아니라 ‘현금’을 주기로 했다더군요. 현재 대한민국에서 상대한테 어음이 아닌 현금을 주는 경우라면 두 가지밖에 없지 않습니까?”
“상대한테 아쉬운 게 있거나, 와이케이이거나.”
“그렇습니다.”
기업이 어음을 쓰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을 조금이라도 늦게 주는 것이 이득이 되기 때문.
왜 이득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자율’만 생각해 봐도 충분하다.
내가 돈 1억을 3일 동안 가지고 있으면, 최소한 3일 동안의 은행 이자를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은행 이자는 어디까지나 수익률을 최하로 잡은 거다.
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입장에서 자신이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수익을 불러오니까 말이다.
갑 입장에서는 돈을 자기가 쥐고 있으니까 좋고, 을 입장에서는 이것보다 더러운 일이 없다.
당장 돈을 받아야 사업을 돌리는데, 어음이란 게 ‘언제 어디에서 얼마의 돈을 줌’이라고 쓰여 있는 증표다 보니 그날까지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을은 또 병에게 어음을 준다.
병은 다시 정에게 어음을 주고 말이다.
괜히 I.M.F 때 사업체들이 줄도산한 게 아니다.
어음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던 기업체들이 부실 운영과 각종 분식회계 등의 비리로 픽픽 쓰러지니, 그 기업들과 거래하던 다른 사업체들이 돈을 받지 못해서 도미노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국민들이 해외여행을 가서 I.M.F가 발생?
정말 개 같은 소리도 이보다 더 개 같은 소리가 있을까.
“이런 썅! 와이케이 그 새끼들은 왜 갑자기 국산 밀 농장들을 매수하고 지랄이야!”
현재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이경준은 이성적인 판단력이 꽤 흐려진 상태였다.
반면 비서실장은 다년 간의 비서 생활 동안 많은 일을 경험했기에, 당황해하긴 했어도 이성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회장님,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이 상황에 와이케이가 갑자기 국내 밀 농장들을 전면 매수한 것 말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아마 미국 밀 수출 업체들과 연락을 한 것도…….”
말을 흐리는 비서실장이었지만, 이만큼이나 설명을 들은 만큼 이경준은 뒷말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에 빠진 이경준.
이런 이경준을 향해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와이케이가 도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장 최근 최윤기 회장님이 주최한 파티에 초대도 받지 않으셨습니까?”
비서실장은 이경준이 윤기의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다.
만약 그 사실을 알았다면 단박에 ‘미치셨습니까, 회장님?’이라는 말이 튀어나왔겠지.
비서실장이 회장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이경준의 행동은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물론, 재벌가의 전쟁에서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비서실장 역시 부하들에게 시켜서 적대 세력의 저택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 일이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상대가 윤기라는 게 문제다.
덤빌 상대를 잘 알아보고 덤벼야 하는데, 윤기의 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한다?
만약 이경준이 비서실장에게 조언을 구했다면, 절대 그래선 안 된다고 했겠지.
하지만, 이경준과 비서실장은 판단의 척도가 크게 달랐다.
이경준은 성산을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비서실장은 그 정도까지 성산과 일체화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의 차이가 도청 장치의 설치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불러온 것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소리를 빼액 지르는 이경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을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비서실장은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죄, 죄송합니다. 지금 가장 착잡하신 것은 회장님이실 텐데…. 저도 너무 답답해서 그랬습니다. 하아…, 그렇다면 최윤기 회장이 정말 와이케이 직원들에게 국내 밀가루를 먹이려고 그런 것일까요…?”
이경준은 대답 대신에 의자에 앉아 왼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오른 검지로는 책상을 톡톡톡 두드렸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이경준의 머릿속을 꽉 채운 다섯 글자.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도청 장치를 설치한 것에 대해 사죄를 해?’
절대 불가능한 선택지.
상대가 도청 장치에 대해 알고 있는지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데, 제 발로 가서 도청 장치에 대해 고백한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었다.
‘만약, 알고 이런 행동을 하는 거라면 사죄에 의미가 있을까?’
이경준은 침묵을 깼다.
“만약 내가 덮어 두고 최윤기 회장을 찾아가서 엎드려 빈다면 어떨까? 제발 살려 달라고, 도와달라고 한다면 말이야?”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최윤기 회장님은 의외로 자비롭지 않습니까? 당장 국내 산업에 대해 확장을 하지 않는 것만 봐도 기업들에 숨통을 열어 주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실제로 일반적인 기업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가지는 순간 다른 기업들을 죽이려고 든다.
막대한 자금력을 통해 저가 공세를 펼치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면 고객들은 신나서 ‘저 회사는 정말 고객을 생각할 줄 아는 회사야!’라고 칭송하게 되고, 서서히 시장은 해당 회사가 독점하게 된다.
그리고 독점하게 되는 순간?
저가 정책을 펼치던 기업은 순식간에 고가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고객을 털어먹기 시작한다.
이래서 시장에 독점은 안 된다는 거다.
“회장님,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아무래도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최윤기 회장님을 방문하는 것밖에 없는 듯합니다. 초대장도 받으셨던 만큼, 가능성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경준은 비서실장의 조언을 들었음에도 이 선택지를 고를 수가 없었다.
[내가 최윤기 회장의 저택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는데도?]이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이경준이었지만, 끝내 속내를 드러내지 못했다.
“시끄러워! 너는 지금 감히 나보고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한테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라는 거냐?!”
“예? 아, 아니, 그건 절대로 아, 아닙니다!”
다급히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는 비서실장.
정말, 개처럼 엎드려 빌어서라도 이번 일을 해결해 줬으면 하는 비서실장이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어쨌거나 지금 월급을 주는 건 이경준이지 저 멀리 있는 최윤기 회장님이 아니었으니까.
“어떤 방법으로든 밀을 구해! 밀이 아니면 밀가루라도 구해 오라고!”
“회장님, 지금은 종전 가격으로는 절대 구할 수 없습니다.”
“알아! 하다못해 피자 프랜차이즈를 유지할 밀이라도 구해 오라는 말이야!”
“가, 가격은 어떻게 합니까?”
비서실장의 말에 씩씩거리던 이경준이 숨을 고르며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렸다.
“미국에 밀 농가가 많을 거 아니야! 다른 밀 판매처를 어떻게든 찾아!”
“하지만, 그동안의 밀가루 수급을 어떻게 해야 할지……”
비서실장의 말을 끊는 이경준.
“아직 공장에서 제분이 끝나지 않은 밀들이 있고, 출하되지 않은 밀가루도 있을 거 아니야! 그걸 프랜차이즈로 돌리면 되는데 왜 그렇게 생각이 짧아?!”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름대로 꽤 괜찮은 생각을 펼친 이경준.
하지만, 이경준이 그 어떠한 경우의 수를 펼치더라도 윤기의 손바닥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 * *
요즘 최덕배의 취미는 무엇일까?
일단 항상 하는 취미는 윤기와 대적하는 녀석들이 어떻게 발버둥 치는지 보는 것이다.
이거야 상시하고 있는 취미.
그리고 최근에 즐겼던 취미에는 바둑이 있다.
하지만, 바둑에서 사실상 끝판왕을 찍었던 만큼, 최덕배는 잠시 바둑에 대한 취미를 접었다.
그렇다면 어떤 취미일까?
바로 ‘물질’이다.
물질은 바로 해양생물을 애완동물처럼 키우는 것을 말하는 거다.
90년대생이라면 어린 시절, 문방구에서 팔던 500원짜리 열대어를 키워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이름 모를 열대어.
물론, 열대어만 500원이고, 아주 작은 플라스틱 어항까지 사게 되면 돈이 조금 더 나갔지만, 당시 아이들은 앞다투어 이 열대어를 샀다.
그리고 대부분의 아이들은 열대어 학살자가 되었다.
어항의 물을 갈아 줘야 하는데, 이러한 지식이 없으니 사망.
어항의 물을 갈아 줘야 하는 것을 아는데, 방법을 몰라서 어항의 물을 버리다가 열대어가 하수구 속으로 들어가 실종.
어항의 물을 갈아 줬지만, 수온을 맞추지 못하고, 수돗물을 그대로 썼기 때문에 사망.
그나마 열대어가 오래 버티는 집은 부모님이 어떻게든 살려 놓는 집이었지만, 이마저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물론 이것은 90년대 후반의 이야기.
90년대 초반에는 열대어보다는 금붕어가 좀 더 많았다.
가난한 집이라 하더라도 집에 투명한 유리, 혹은 유리 비슷한 재질로 된, 작은 항아리 모양의 어항이 있었지 않을까?
거기에 물과 돌을 채워 넣고 금붕어 한 마리를 키우는 거다.
그리고 돈이 좀 있는 집이라면 집에 아예 큰 수조가 있었다.
벽 한쪽을 꽉 채우는 우람한 수조.
어린 시절, 이 수조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안 사람은 거의 없겠지.
그저 한쪽 벽을 꽉 채운 수조에서 각종 물고기들이 돌아다니는 모습.
돈이 더 있는 집이면 나름 예쁜 비단잉어를 키우고, 돈이 많은 집이라면 수조가 아니라 아예 집에 연못을 조성해서 거기에 수백만 원은 가볍게 호가하는 비단잉어를 키웠다.
그리고 최덕배는?
당연히 억 소리가 나는 비단잉어를 키우고 있었다.
그것도 한두 마리가 아니라 열 마리가 넘는 비단잉어를 말이다.
물론, 최덕배는 보기만 하는 거고, 비단잉어를 키우는 것은 윤기가 따로 고용한 전문 사육사들이 하는 일.
그래도 윤기네 집 비단잉어들은 최덕배 덕분에 세상에 다시 없을 호강을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고양이인가?’
윤기는 노가다 시절 봤던 인터넷 짤을 떠올렸다.
그것은 바로 하루 종일 집 수조만 바라보는 고양이의 모습이었는데, 멍한 표정으로 수조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내게 했다.
마찬가지로 은은한 미소와 함께 연못을 바라보는 최덕배의 모습은 어쩐지 그때의 고양이를 떠오르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도 물질이 있었어요?”
당연히 있었지. 금붕어를 키우는 양반들도 있었거든. 물론, 가격이 엄청나게 비싸서 어지간히 있는 집안이 아니면 못 키웠지만 말이야.>
“그때는 금붕어가 비쌌군요.”
그래, 백자나 청자에 넣어서 키웠어.>
“워…, 비쌀 만했네요.”
어항이 고려청자라면?
확실히 비쌀 수밖에 없다.
잉어 키우는 양반들도 많았지. 비단잉어까지는 좀 드물더라도, 잉어 정도라면 집안에 연못을 만들어서 키우면 되니까.>
“물질의 역사가 깊네요.”
그래, 그래도 네 덕분에 양반 시절에 못했던 것을 다 해 보는구나.>
“그때 투전판에서 돈 좀 벌지 않았어요?”
그게 아무리 그래도 제대로 된 사치를 벌일 수준이 됐겠냐. 흥선대원군도 자기 돈이 없으니까 백성 돈으로 궁궐 증축하려다가 망했잖아.>
“아, 확실히 그렇네요.”
뭐, 자기 돈이 있었어도 백성 털어먹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그래도 옛 주군인데 그렇게 말해도 괜찮아요?”
최덕배는 어깨를 으쓱였다.
너랑 오래 지내다 보니까 나도 생각이 변하는가 보다.>
최덕배는 다시 연못을 향해 시선을 돌리려다가 뭔가 생각난 듯, 윤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보니 네가 아무리 국내 밀 농가들을 장악하고, 공화당 소속의 농장주들을 회유했어도, 성산 애들이 공화당 소속이 아닌 농장에서 밀을 사면 끝나는 거 아니냐?>
최덕배의 질문에 윤기는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저랑 원데이, 투데이 같이 지낸 것도 아니시면서 왜 그러세요?”
아, 그렇네!>
연못을 보는 것도 재밌지만, 윤기가 해놓은 일의 진행을 보는 것도 재밌는 법.
최덕배는 연못을 보다 말고 사라졌다.
“자, 열심히 뛰어 봐. 아무 소용없겠지만.”
성산, 오성, 금철, 대상 그룹을 겨냥한 윤기의 말.
동시에 윤기가 먹이를 뿌리자, 연못의 비단잉어들이 먹이를 먹기 위해 윤기를 향해 몰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