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07)
607화 재벌은 지성의 척도가 아니야 (1)
“…예?”
가장 먼저 입국심사대에 올랐던 성산 비서실장의 반응.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당신은 테러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입국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자국으로 돌아가십시오.”
“아,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제가 테러라니요!”
어쨌든 나름 좋은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억양이 어색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영어가 가능한 성산 비서실장.
하지만, 입국심사관은 그저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돌아가십시오.”
“아니, 저는 테러를 일으킬 생각이 없습니다. 그저 사업 때문에 온 것이라구요!”
“돌아가십시오.”
사실, 테러를 이유로 한 입국 거부는 2000년대부터 흔해지는 일.
하지만, 부시는 윤기에게 일종의 서비스를 해 주었다.
바로 CIA를 통해 이번 윤기의 도청 장치와 관련된 정보를 입수해서 그와 관련된 업체들의 미국 입국을 불허하는 것.
당연히 성산그룹을 비롯한 네 개 그룹의 인물들이 미국으로 입국하려 한다는 정보가 포착되었고, CIA는 빠르게 입국심사대의 협조를 받아 이들의 입국을 막았다.
‘테러’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윤기는 CIA의 수장인 메이슨에게 이러한 사실을 전달받았고, 이에 따라 이들이 다른 미국 밀 농가와 계약하려 해도 담담하게 있을 수 있었다.
왜?
미국의 힘을 믿었으니까.
“아니, 난 진짜 급한 일로 왔단 말입니다! 들여보내 주세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성산 비서실장.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경찰들의 수갑 선물이었다.
“놔! 놓으란 말이야! 난 아무 죄가 없다고! 저기요! 저 좀 살려 주세요!”
고래고래 악을 쓰는 성산의 비서실장.
하지만, 그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에서의 동양인은 신분 카스트에서 최하.
L.A 쪽이라면 윤기가 다져 놓은 발판 덕분에 그래도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은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당신은 테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 입국할 수 없습니다.]다른 비서실장들 역시 똑같은 상황이 적용되었다.
당연히 날뛰는 비서실장들.
따라서 비서실장들은 하나 같이 포박, 연행되었고, 비서실장들을 따라온 수행 인원들 역시 ‘관계자’인 것을 감안하여 똑같이 연행되었다.
그야말로 60명의 인원들이 순식간에 ‘테러’를 이유로 구금당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식은 당연히 이경준을 비롯한 네 명의 회장들에게 알려졌다.
* * *
쾅-!
그야말로 책상이 터질 것 같은 소리.
이경준은 저릿저릿한 오른 주먹을 자신도 모르게 쓰다듬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빌어먹을!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 거야!”
지금 이경준의 앞에 있는 것은 비서실장이 아니다.
원래 비서실장은 지금 미국의 입국심사대에 의해 구금되어 있는 상황.
따라서 그다음 직위의 비서가 이경준의 앞에서 그저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아니, 테러라니, 테러라니! 그 새끼는 도대체 평상시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닌 거야!”
상식적으로 비서실장은 테러를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이경준은 비서실장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에만 모든 것을 집중했다.
비서실장 입장에서는 너무나 억울할 일.
비서실장이 미국에 간 이유?
이경준이 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경준의 머리에는 ‘비서실장이 억울하게 구금되었다’라는 내용은 없고, ‘그 새끼가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라는 내용만 입력되어 있는 상황.
따라서 비서실장의 안위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회장님, 일단 비서실장님을 어떻게 해야 할지……, 흐억!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나름 비서실장의 안전을 걱정하던 비서는 사람을 죽일 것 같은 이경준의 눈빛에 오금이 저려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빨리 새로운 인원을 다시 보내! 이번에는 테러를 일으키지 않을 인원으로 말이야!”
“회, 회장님. 이번에 간 인원만 20명이었기 때문에 또 인원을 보낼 경우 공백이 너무 커집니다.”
“야! 이미 공장도 곧 있으면 가동 중단이잖아! 있어서 뭐 해!”
“하지만, 높은 직책의 담당자들이 이미 미국에 구금된 상태라….”
“다른 녀석들을 보내면 되잖아! 일을 할 수 있다면 아무나 보내!”
그야말로 흥분의 극에 달한 이경준.
당장 자금 순환이 언제 끊길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경준은 정상적인 판단이 잘 안 되는 상태였다.
“아,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하지만, 비서실장조차도 없는 지금, 이경준의 지시에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또다시 꾸려지기 시작한 원정대.
그러나 이번 2차 원정대에는 참가하려고 하는 고위직이 없었다.
[아니, 나도 테러로 구금되면 어떻게 해?]일단 사장급과 부사장급은 전부 어물쩍 빠져나갔다.
전무급 역시 자신들의 라인을 이용해서 이번 일을 회피했다.
그렇게 해서 남은 것은 상무급.
개중에서도 전무를 절대 하지 못할, 인맥이 다 끝난 상무들이 이번 2차 원정대를 담당하게 되었다.
힘이 없는 상무들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으니 수행원들 중에서 전문가가 있어 봤자 얼마나 있을까?
따라서 2차 원정대의 인선은 1차 원정대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허술했다.
자칫하다간 큰 손해를 보는 계약을 할지도 모르는 인원 구성.
하지만, 이경준은 지금 흥분에 빠져 상황을 돌보지 못했고, 이를 틈 타 알짜배기들은 모두 자신의 안위를 돌보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포장이라도 할 수 있을까?
2차 원정대 역시 테러를 이유로 미국 입국이 거절되었고, 이들은 1차 원정대와 달리 부리나케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무런 소득 없이 말이다.
* * *
쫘악!
“크억!”
2차 원정대에서 나름 리더 격이었던 상무가 비명과 함께 바닥에 엎어졌다.
이유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
“내가 밀을 싼값에 사 오라고 했냐! 그냥 밀만 구해오면 된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 쉬운 일 하나를 못 해?!”
솔직히 상무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완수가 불가능했던 일.
입국심사대에서 거절당했는데 어쩌란 말인가?
“도대체 평소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닌 거야! 테러가 뭐야, 테러가! 너 빨갱이 새끼야?!”
동시에 이경준은 상무의 장딴지를 구둣발로 걷어찼다.
“크악!”
막 일어나려던 상무는 장딴지가 걷어차이자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누군가는 지금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 된다.
재벌가 비서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부하 폭행 따위야 그냥 술 한잔으로 털어 넘겨야 할 정도로 별거 아닌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정중한 재벌들도 있기야 하겠지만, 당연히 이경준은 정중하지 않은 재벌 아니겠는가?
“어떻게 된 게 쓸 만한 놈이 어디 하나도 없어! 야! 다시 미국으로 인원 보내!”
고래고래 악을 쓰는 이경준.
덕분에 또다시 원정대가 꾸려지게 되었다.
미국으로 보내는 왕복 비행기 푯값에 인원들의 공백.
거기에 11월 말인 지금, 공장은 언제 가동이 중지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되었다.
당장, 운송기사들이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상황에, 이들에 대한 임금이 그야말로 ‘순손실’이 되고 있는 상황.
이경준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이런 개새끼! 지랄 맞은 새끼! 그냥 죽어!”
쓰러져 있는 상무를 연신 발로 걷어차는 이경준.
연신 비명을 지르던 상무는 어느 순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으응? 뭐야, 이 새끼! 왜 조용해?”
상무의 상태를 확인하던 이경준은 잠시 후, 표정이 새하얗게 질렸다.
“야! 빨리 들어와 봐!”
급하게 들어오는 비서들.
잠시 후, 상무는 비서들에 의해 어딘가로 실려 나가고, 이경준은 깊은 침묵에 잠겼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 입국심사대와 관련한 이야기는 오성, 금철, 대상이라 하더라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심지어 오성과 금철 역시 2차 원정대를 보냈다.
그나마 2차 원정대를 보내지 않은 것은 대상.
그렇다면 대상은 왜 2차 원정대를 보내지 않은 것일까?
간단하다.
네 개 그룹 중에 규모가 가장 작았기 때문에, 무턱대고 2차 원정대를 보낼 수 없었던 것이다.
더불어서 다른 그룹들의 2차 원정대 역시 구금당했다는 소식에 대상그룹 회장 고신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2차 파견을 보내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보냈으면 우리도 똑같이 구금될 뻔했잖아.”
고신근 회장의 앞에 서 있던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찬가지로 비서실장이 아닌 다른 비서.
차이점이 있다면 고신근은 그나마 다른 회장들에 비해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습니다.”
담담하게 대답하는 비서.
그런 비서를 보며 고신근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상황은 어떻지?”
“공장 가동이 중단된 상황입니다. 공장 직원들을 출근시키고는 있지만, 할 일이 없어서 청소만 계속 시키고 있습니다. 운송기사들 역시 다른 곳에 투입하긴 했지만 의미 없는 상태입니다.”
“하아아……. 더 보고할 건?”
“조만간 자금 순환에 문제가 생깁니다.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으으윽…….”
추가 대출.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추가 대출을 받으려면 계열사의 보증이나 담보가 필요한데, 현재 대상그룹은 모든 계열사가 보증인이 된 상태였고, 담보 역시 더 이상 걸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사업체의 매각뿐인데, 부채가 가득한 사업체를 누가 산단 말인가?
그렇다고 해서 설비를 팔 수도 없었다.
설비를 팔면 당장 돈을 구할 수는 있지만, 해당 사업체의 운용이 불가능해진다.
그야말로 가불기에 걸린 대상그룹의 회장 고신근.
고신근은 결국 선택할 수 없었던 선택지를 고르기로 했다.
“최윤기 회장님의 저택으로 가자.”
* * *
의외로 윤기는 대상그룹 회장인 고신근의 방문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평소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메릴과 함께 고신근을 맞이했다는 점.
그렇기에 고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다.
지금 윤기를 찾아온 것은 고백할 것이 있어서 찾아온 것인데, 왜 하필 최윤기 회장의 아내가 옆에 있단 말인가?
그런 고신근을 바라보며 윤기는 속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꼴에 자존심은 있다는 건가?’
자신이 추해지는 모습은 오로지 당사자 앞에서만 보이고 싶다는 생각.
윤기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메릴과 함께 온 것이다.
물론, 사전에 설명했기 때문에 메릴 역시 일부러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그저 윤기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찾아오셔 놓고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네요? 이만 자리를 끝내도 될까요?”
경호원을 향해 축객령을 내리려는 윤기.
그 모습에 고신근은 결국 자존심이고 뭐고 없이, 일단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용서해 주십시오, 회장님!”
“엥? 용서라니요?”
전혀 모르겠다는 윤기의 말.
따라서 고신근은 결국 자신의 입으로 죄를 고백해야만 했다.
“도청 장치를 설치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백번 사죄하겠으니,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하지만, 상황은 고신근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아니, 그 수준을 넘었다.
왜냐하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이 윤기의 입에서 나왔으니까.
“네? 도청 장치요? 무슨 소리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