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1)
#61화 밑 준비 (3)
“이걸…… 다……?”
경악 어린 조청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윤기가 빙긋 웃었다.
“당연하죠. 꼭 필요한 내용들이거든요. 영어는 잘하시죠?”
윤기가 내민 책자는 심지어 한글도 아니었다.
오직 영어만으로 가득 차 있는 유럽과 영미권의 세법 관련 책자들.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를 들은 윤기가 다시 웃으며 당근을 내밀었다.
“6주 안에 이걸 다 외우신다면 1년 치 연봉을 보너스로 지급할게요. 뭐,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할게!”
장인어른한테서 소정의 생활비를 지원받는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생활을 겨우 유지할 수준이지, 풍족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집을 지원받는 것만으로도 사실상의 큰 생활비를 매달 받고 있는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기에 1년 치 연봉이란 말에 조청우는 죽을 각오로 쌓인 책 탑을 양손으로 만졌다.
“근데 이거……, 어떻게 들고 가지?”
“아, 걱정 마세요. 사람을 시켜서 집으로 배달해 드릴게요.”
“알았어. 그러면 일단 한 권은 가지고 갈게. 이만 가도 되는 거지? 6주 안에 하기에는 정말 빠듯한 일이라…….”
“물론이죠. 운전사한테 말해서 집까지 타고 가세요. 지금부터는 1분, 1초가 전부 돈이 될 테니까요.”
“고마워.”
금세 책에 빠져든 조청우가 집으로 돌아가고 몇 시간 정도 지났을 때, 집 안의 수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 * *
“도련님, 첫째 고모부 전화예요.”
노크 소리와 함께 들려온 가정부의 목소리에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좀 걸린 걸 보니 셋째 고모가 첫째 고모한테 말을 한 게 아니라, 내 지시대로 작은아버지를 통해서 연락이 되었나 보네.’
윤기는 거실로 나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느긋한 윤기의 목소리와 달리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서종오의 목소리에는 다급함이 가득했다.
[윤기야! 동서를 법무 비서로 고용하기로 확정했다는 데 그게 무슨 소리냐?]거의 따지듯이 묻는 목소리.
현재 삼우 그룹에서 윤기한테 이렇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확히 세 명밖에 존재하지 않고, 그 세 명조차도 윤기에게 애초에 이렇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세 명이란 게 할아버지와 부모님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종오는 자신과 윤기의 나이 차이만을 생각하면서 윤기를 단지 조카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기에 이런 태도로 윤기를 대했고, 윤기 역시 이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아, 그거요? 아무래도 그 자리에는 셋째 고모부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어제 내가 며칠 정도 생각해 본다고 했잖아!]거의 화를 내기 직전 수준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서종오를 향해 윤기가 일부러 야릇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었다.
“고모부, 잘 생각해 보세요. 제가 괜히 셋째 고모부를 고용했겠어요?”
[뭐……?]“생각해 보니까 첫째 고모부는 현직 부장 검사잖아요? 부장 검사 타이틀 내려놓고 굳이 아직 성장 동력도 확실히 못 잡은 기업의 법무 비서가 되어야겠어요?”
[그건…….]서종오의 목소리가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만약에 제가 사업이 잘된다고 하면 고모부의 부장 검사 타이틀이 상당히 도움이 될 거예요. 만약 고모부가 차장 검사 이후에는 지검장까지 올라간다면 나중에 저한테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리고 제가 도움을 받는다면 고모부를 모르는 척할까요?”
수화기 너머에서 침묵이 흐르는 것이 열심히 주판알을 튕기는 게 분명하다고 윤기는 확신하며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나를 고용하지 않은 이유가…….]지금까지 설명이 이어졌지만, 서종오는 한 번 더 확인을 해 왔다.
“당연히 방금 말한 대로죠.”
[하지만, 나는 지금 지방에서 근무 중이야. 서울로 복귀하려면…….]윤기는 ‘일부러’ 서종오의 말을 끊었다.
“에이, 고모부. 제가 누구를 알고 있는지 아직도 모르시는 거예요? 한 2년 정도만 조용히 근무하세요. 그러면 빛 길이 따라올 테니까요.”
“샤이닝 로드…….”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침 삼키는 소리와 다소 흥분한 콧소리.
직접 만났을 때야 눈에 보이는 부분이 크다 보니 윤기에게서 자신을 포장할 수 있었던 서종오였지만, 목소리만으로 대화를 나누는 전화에서는 아예 본인을 드러내고 있는 서종오였다.
‘부장 검사는 99퍼센트 달고 은퇴하는 검사의 특성상 공부만 잘하면 누구라도 부장 검사가 될 수 있지. 차장 검사 정도는 단 위인이라면 이렇게 속내가 뻔한 사람이 아니었겠지만 말이야.’
서종오가 침묵하고 있는 동안 윤기는 일부러 말을 꺼내지 않았고, 꽤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서종오가 다시 입을 열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90퍼센트는 자신할 수 있죠. 지금 둘째 작은아버지한테 연락받으신 거 아니에요? 왜 셋째 고모부가 선택되었는지 설명을 하라고 말씀드려놨는데 못 들으셨어요?”
[아, 그게 동서로 결정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가 전화를 끊고 여기에 전화하는 바람에…….]“지금 제가 말하는 것은 원래 작은아버지를 통해서 전달될 말이었어요.”
[내가 성격이 좀 급해 놔서…….]원래는 ‘미안하다’라는 말이 나올 타이밍이었지만, 서종오는 나이 차이를 생각하고는 어물쩍 말을 흐렸다.
그리고 잠시 뒤, 서종오의 목소리에 평온함과 흥분이 동시에 공존하기 시작했다.
[아무튼, 미, 믿으마!]“물론이죠. 그러면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그래! 나만 믿으라고! 내가 지검장……, 아니 차장 검사만 돼 봐. 그러면 누가 감히 윤기 너한테 시비를 걸겠어? 하하하핫!]“그러면 이만 끊을게요.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해서요.”
[그래, 알았다!]신이 나서 전화를 끊는 서종오를 생각하며 윤기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등신, 내가 너보다 힘이 훨씬 센데, 굳이 너한테 특혜를 줘 가면서까지 신세를 지겠냐.’
수화기를 내려놓은 윤기는 자리에 앉아 조청우의 집에 보냈던 책들과 똑같은 책을 쌓아 두고 읽기 시작했지만, 최덕배가 말을 걸어오자 잠시 고개를 돌렸다.
굳이 희망 고문을 하는 이유라도 있어? 그냥 최철민이처럼 확 내칠 수도 있잖아.>
“세상에는 적으로 확실히 돌려야 하는 녀석이 있고, 굳이 대놓고 적으로 돌릴 필요가 없는 인물이 있죠. 그중 서종오는 후자일 뿐이에요.”
윤기는 서종오를 이름으로 부르며 외인임을 명확히 선을 그었고, 동시에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적을 두들겨 패는 것도 맛이지만, 자신이 끓는 물 안의 개구리인 걸 모르고 죽어가는 적을 보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나중에 저한테 ‘야! 차장 검사 시켜 준다며!’하고 난리 치는 모습이 벌써 기대되네요. 사이다는 단숨에 들이켜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홀짝이는 것도 묘미니까요.”
윤기는 다시 고개를 돌리며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딩동-!
초인종 소리와 함께 최철규가 입을 열었다.
“윤자야, 오빠다.”
아파트의 문이 열리며 20대 후반의 여성이 최철규를 맞았다.
“오빠, 왔어?”
“그래, 매제는?”
“오자마자 방에 들어가서 책만 읽고 있어. 밥도 식빵에 잼이나 발라서 달라기에 그렇게 줬지. 오빠는 밥 먹었어?”
“나도 먹었지. 일단 안으로 들어가도 될까?”
“아, 참.”
최윤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최철규를 거실로 안내했다.
“역시 아파트도 아파트만의 맛이 있다니까.”
국민 크기라 할 수 있는 33평 아파트의 베란다를 바라보며 최철규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윤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우리 집이었으면 진작에 내놓고 이사 가야 했어. 그나마 아빠 집이니까 우리가 처분도 못 한 거지.”
“그렇게 사정이 어려웠냐?”
“보면 몰라?”
최철규는 소파에 앉아 바닥에 앉아 있는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았다.
28살의 나이.
분명 한창 꾸며야 할 나이이건만 얼굴에 화장기도 없었고, 입고 있는 옷도 자주 세탁해서 계속 입었는지 색이 꽤 바랜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파마를 한 지 꽤 되었는지 생머리인지 곱슬머리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헤어 스타일.
고등학생 때, 아니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멋쟁이로 불렸던 막내 여동생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힘들었구나…….”
“결국, 내 선택이었기는 하지만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그리고 나도 남편이 일류 로펌 들어간다고 설레발을 떨었으니까.”
사실, 조청우는 최윤자의 ‘정해진’ 남편감이 아니었다.
최윤자는 아버지가 제안한 현직 판사와 선을 보았는데, 같은 날 같은 장소 다른 자리에서 선을 보고 있던 조청우에게 한눈에 반해 버렸다.
당연히 선은 펑크.
때마침 조청우의 선 역시 펑크가 났고, 최윤자는 자신보다 한 살 어린 조청우에게 구애하다시피 해서 결혼에 성공했다.
비록 판사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연수원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연수원생이었기에 최기현 역시 어쩔 수 없다며 동의했지만, 최종적으로 조청우의 상황이 이리되었으니 최윤자 역시 아버지에게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빠, 여긴 무슨 일이야? 그동안 딱히 연락도 없더니.”
여동생의 말에 최철규는 머쓱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의아한 목소리를 냈다.
“윤자야, 매제가 너한테 무슨 말 같은 건 한 거 없어?”
“없는데……? 그냥 오자마자 공부해야 한다면서 방 안에 틀어박힌 게 전부야.”
“아이고…….”
이마를 짚는 최철규의 모습에 이번엔 최윤자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야, 오빠. 무슨 일 있어?”
“목소리 크게 내지 말고 잘 들어. 윤기가 네 남편을 법무 비서로 고용했어. 상여금 제외 월급 29만 원으로.”
“뭐?!”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여동생의 행동에 최철규가 황급히 소파에서 일어나 다시 앉혔다.
“소리 내지 말라니까. 그렇게 하나하나에 다 흥분해서 어떻게 재벌가 구성원으로 살아갈래?”
“아니, 너무 뜻밖의 일이라서. 그렇지 않아도 사무실 월세 낼 돈도 없어서 건물 주인이 아까도 찾아왔었거든. 벌써 3개월이나 밀려서…….”
“그 정도는 아버지에게 가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든 도와주셨을 거 아냐.”
“죄송하니까 그렇지……. 아빠 말 안 들은 결과가 이런 거니까…….”
최철규는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무튼, 지금 월급이 29만 원인 거고, 나중에 월급은 훨씬 더 올라갈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저, 정말?”
돈이 궁하기는 했는지 여동생의 반색한 표정을 보면서 최철규가 쩝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후계자 구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최철규가 이렇게 다채로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겠지만, 구도도 정해진 데다가 아군이 확실시된 여동생의 앞이었기에 최철규는 꽤 솔직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 내가 듣기로 지금 매제는 유럽이랑 미국의 세법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는 거거든. 그러니까 절대로 방해하지 말고 의아하게 생각하지도 마. 저거 다 외우면 윤기가 1년 치 봉록을 보너스로 지급한다고 했거든.”
“뭐? 정말?!”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여동생을 자리에 앉힌 최철규가 말을 이었다.
“목소리 좀 줄이라니까…….”
“저 사람이 왜 말을 안 한 거지? 그리고 보니 아까 본가에서 책이 무진장 배달 와서 무슨 일이 있나 싶긴 했는데, 저이가 아무 말 없이 방 안으로 책 들여놓기에 못 물어봤거든.”
“그거야 로펌 사건 때문이겠지. 설레발 떨다가 망했는데 볼 낯이 있겠냐. 잘되고 나면 말하려고 한 거 같은데, 아무튼 내가 지금 찾아온 것은 네 행실 좀 조심하라고 말하려고 온 거야.”
“내 행실?”
최철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행실. 당장 지금만 봐도 일희일비하고 있는데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특히 큰누나한테는 절대로 네 남편이 뭘 하고 있는지 이야기하지 마.”
“언니한테? 언니가 그래도 나 은근히 도와줬는데…….”
“큰 누나한테는 미안하긴 한데, 형님이 큰형을 비웃고, 윤기 앞에서 함부로 대했거든. 큰 누나는 몰라도 큰형님은 이미 윤기한테 단단히 찍혔어.”
“앗…….”
손으로 입을 가리는 여동생을 보며 최철규가 얼굴을 굳혔다.
“너 혹시나 큰누나 불쌍하다고 절대 말하지 마라. 그러는 순간 네 남편 무조건 잘려. 윤기는 입이 가벼운 사람은 절대 신뢰하지 않아. 윤기의 측근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너도 알지?”
저번에 최철민이 호되게 당할 때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던 최윤자였던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한테 미안하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을 것 같네……. 나중에 내가 잘되어서 도와주든지 해야지…….”
“그래, 그거야. 명심해, 전업주부는 단순히 집안일만 하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야. 남편 자랑하다가 인생 망친 여자 내가 한두 명 본 게 아니다. 네 입 밖으로 나오는 모든 말들이 정치 싸움에 쓰이는 정보라고.”
최철규의 진솔한 충고에 최윤자는 훗날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큰 실수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되었다.
당장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으니까.
“오빠, 고마워…….”
“고맙긴. 기껏 일 좀 할 만한 인재가 들어왔는데 내쳐지면 내가 너무 힘들거든…….”
“그리고 보니 오빠 다크서클이 생겼네. 예전엔 없던 거 같은데…….”
“윤기가 세종대왕 같은 사람이라서 그래. 자기가 일하는 만큼 밑의 사람을 부려 먹어. 물론 대가는 확실하지만.”
최철규의 얼굴에 떠오른 쓴웃음이 미소로 바뀌는 속도처럼, 6주라는 시간은 굉장히 빠르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