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10)
610화 재벌은 지성의 척도가 아니야 (4)
“예?”
김성진은 그야말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경준 회장을 고소하라니?
지금 와이케이로 가는 것을 고민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경준은 김성진의 하늘이었다.
고작해야 상무로 끝난 자신이 올라가려고 해도 올라갈 수 없는 성산의 지존.
오랜 기간 성산에 근무하면서 생긴 경외감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이경준 회장은 더 이상 당신의 상사가 아니에요. 물론, 문서상으로는 아직 상사지만, 당신이 사직서를 내는 순간 상사가 아니게 되는 거란 말이죠.”
“아니, 그건…, 저….”
마음의 동요가 크게 왔음이 분명한 김성진.
그런 김성진을 향해 마석일이 은밀한 표정을 지었다.
“한 가지 부수적인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뭐, 뭡니까?”
“한번 사직서를 내보십시오. 그리고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상황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이쪽의 제안을 수락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사직서…를요?”
“네, 어차피 내도 큰 문제 없잖아요?”
“으음….”
결국, 김성진은 마석일의 제안에 동의했다.
‘그래, 밑져야 본전. 한번 해 보자.’
며칠 후, 퇴원한 김성진은 아직 편치 않은 몸이었지만, 이경준의 집무실을 직접 찾아갔다.
* * *
“회장님, 김성진 상무가 찾아왔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비서의 목소리.
평상시라면 이경준은 김성진이 이렇게 찾아온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묘했다.
어쨌거나 이경준은 김성진에 대한 폭행 가해자.
따라서 이경준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성진의 입을 막을 필요가 있었다.
평상시라면 지금보다 좀 더 위협적인 방법을 사용했겠지.
하지만, 이경준은 지금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가 윤기를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김성진을 폭행했던 문제도 최대한 온건하게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전무로의 직급 상승.
물론, 성산 제분이 사라졌지만 말이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김성진이 이경준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그래, 몸은 많이 나았고?”
지금 심기가 대단히 불편한 상황이지만, 이경준은 애써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살난 성산 제분, 성산 제분의 부채로 인해 덩달아 흔들리는 성산그룹.
여기에 자신의 아킬레스건이 되어 버린 김성진의 방문까지.
안 참으려 해도 안 참을 수 없는 상황의 완성이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다 나았습니다.”
“그래, 몸조리 잘하고, 조금 더 요양하고 있어. 조만간 전무 계약서 보낼 테니까. 그나저나 소식 들었나?”
“아…, 그렇습니다. 성산 제분이 부도가 났다고….”
“그래, 맞아. 그래서 자네를 아마 다른 계열사의 전무로 보낼 거 같아.”
마석일은 김성진에게 이경준이 1년 후 김성진을 자를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말은 반만 맞았다.
이경준은 한 2년에서 3년 정도는 유지할 생각이었으니까.
1년 만에 자르면 너무 티가 난다.
하지만, 2년에서 3년 정도 유지하다가 자르면 근무 태만으로 자르기가 쉬워질뿐더러, 김성진의 고소에 대한 근거도 희석시킬 수 있다.
애초에 증거가 없는 폭행 아니던가.
단지 사회적인 잡음을 없애기 위해 전무 자리를 제안했을 뿐이다.
지금 상황에서 회장의 폭행까지 터져 버리면 성산은 그야말로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을 테니까.
“아…, 그 부분과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뭐…? 무엇인가…?”
이경준은 대단히 불안했다.
혹시나 상대가 더 큰 요구를 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렇지 않아도 지금 빠듯하다 못해 미칠 지경인데, 상대가 전무 그 이상의 자리나 연봉을 대폭 올려달라고는 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하지만, 김성진이 한 말은 이경준을 다른 의미로 당황시키는 말이었다.
“제가 병원에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성산은 저에게 있어서 과한 자리였던 거 같습니다. 차라리 퇴직금으로 식당이나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김성진은 공손히 양손으로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사직서’라는 단어가 쓰인 봉투.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봉투를 확인한 이경준은 ‘이게 꿈이야, 생시야?’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부담스러운 존재가 제 발로 나가 주겠다고 한다니.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조금만 생각해 봐도 위화감을 느낄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이경준은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김성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 버렸다.
‘퇴직 후 식당을 차리겠다’라는 내용을 말이다.
그렇기에 이경준은 대뜸 가장 급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정말인가? 정말이야? 자네 혹시 퇴직하고 나를 고소하려는 것 아닌가?”
그야말로 쐐기를 박는 이경준의 말.
이 말을 듣는 순간 김성진은 마석일이 했던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이게 현실이지…….’
나한테 99번 잘해 주는 사람이 또 잘해 주는 것과, 99번 더럽게 대하는 사람이 1번 잘해 주는 것.
둘 중 어떤 게 더 효과가 클까?
당연히 후자.
그렇기에 김성진은 구타까지 당했음에도 그 회장이 자신에게 직접 사과하고 전무 자리까지 약속했을 때, 솔직히 말해서 조금 감동했다.
하지만, 몸이 좀 낫고, 마석일이라는 사람의 외부 정보, 거기에 지금 회장의 행동을 보고서 현실을 깨달았다.
회장은 상무인 자신이 안중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소’만 안중에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전무가 된다고 해도 똑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터.
따라서 김성진은 마음을 다잡았다.
“고소할 생각 같은 건 없습니다.”
“정말이야? 맹세할 수 있어?”
“……네.”
어이가 없어서 늦게 나온 대답.
이경준은 이 살짝 늦은 대답이 불안한 듯, 계속해서 김성진을 다그쳤다.
“아니, 왜 대답이 늦어? 안 되겠어. 각서라도 써.”
“각서 말입니까…?”
“그래, 못 쓰겠어? 쓸 수 있잖아. 고소 안 할 거면.”
“……알겠습니다.”
여기서 안 쓴다고 강짜를 부릴 수도 없겠지.
“그래, 잘 생각했어.”
말은 이렇게 하면서 이경준은 속으로 ‘어휴, 이 새끼 고소하려고 했나 보네’라고 생각하며 김성진을 욕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각서를 쓴 김성진은 마침내 자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딱 하나 좋은 점이라고 한다면 퇴직금이 덤까지 좀 얹어서 바로 지불되었다는 것 정도?
각서의 효력을 만들기 위해 이경준 나름대로 궁여지책을 쓴 결과라 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고소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 버렸어요. 퇴직금도 받았구요. 와이케이에 가지 않아도 좋습니다. 죄송합니다…….”
마석일 앞에서 솔직히 사과하는 김성진.
하지만, 마석일은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냥 고소하면 되거든요.”
김성진의 눈에 들어오는 마석일의 환한 미소.
마석일은 진심이었다.
* * *
[속보, 전 성산 제분 상무, 성산그룹 회장 폭행으로 고소해!]꽤나 많은 신문의 1면을 수놓은 기사.
덕분에 이른 아침에 집에서 조간신문을 보던 이경준은 그야말로 분통을 터뜨렸다.
“아니, 이 새끼가! 고소 안 한다며!”
쾅-!
습관처럼 테이블을 내리친 이경준.
하지만, 사무실 테이블과 달리 유리가 윗부분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쨍그랑’ 소리와 함께 이경준은 자신의 손을 감싸 쥐었다.
“크아악!”
순식간에 피의 축제가 벌어진 이경준의 집 거실.
이경준은 난생처음 응급실이라는 곳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당연히 고소가 접수되었으니 조사를 받아야 할 터.
이경준은 경찰 앞에서 씩씩대며 자신이 받아낸 각서를 들이밀었다.
‘고소 안 한다는 각서가 있으니까 문제없어!’
하지만, 각서 내용을 확인한 경찰은 ‘이건 뭐지, 신종 병신인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 뭡니까. 그 표정은?”
이경준의 말에 되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 경찰.
경찰은 이경준에게 자신이 이런 표정을 짓는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각서는 이런 내용을 쓰라고 있는 게 아닌데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내가 모를 것 같아요?!”
의외로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경준의 말도 분명 일리는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경준을 담당한 경찰은 나름 똘똘한 경찰이었다.
“회장님은 성산그룹의 회장이시죠?”
“네, 그렇습니다.”
경찰이 자신을 인정해 준다고 착각한 이경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거드름을 피우는 느낌이 되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경준을 인정해 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고소인 김성진 씨는 성산 제분의 상무였구요.”
“네, 맞습니다.”
“그러면, 회장님이 상무한테 각서 쓰라고 하면 상무가 써야 해요, 쓰지 않아야 해요?”
흡사 유치원생을 상대로 가르치는 듯한 느낌.
순식간에 이경준의 얼굴이 다시 시뻘게졌다.
“아니,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경찰은 대답 대신 자신의 말을 이었다.
“이 각서가 효력을 가지려면 공증이 필요해요. 제3자의 공증 말입니다. 그런데, 관계에서 ‘위력에 의한 강제’가 느껴지는데, 제3자에 대한 공증도 없다? 당연히 각서는 무효가 됩니다. 뭐, 어디까지나 제 의견이기는 하지만, 법정 들고 가셔도 상황은 똑같을 거예요.”
정말 상세하고, 친절한, 보기 드문 경찰의 설명이었지만 이경준은 절대 납득할 수 없었다.
“아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 경찰 바꿔!”
“여기가 무슨 술집인 줄 아시나? 상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꾸라고 하게. 아무튼,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상대는 대기업 회장인데, 경찰이 왜 이러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와이케이가 성산을 제거 대상으로 정했다는 사실이 퍼졌을 뿐이다.
그냥 일반적인 상황에서 대기업 회장을 조사하는 거라면, 이 경찰도 이경준에게 아주 굽실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와이케이에게 표적이 된 사람에게 굽실거린다?
있을 수 없는 일.
더군다나 이 경찰은 똘똘한 타입이었기 때문에 성산이 재기불능이 되리라는 데 근거한 주식 투자까지 완료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산그룹의 회장인 이경준에게 호의적인 조사를 한다?
절대 그런 일은 발생할 수 없다.
“경찰 바꿔, 경찰 바꾸라고!”
당연히 경찰이 바뀌는 일도 없었다.
* * *
이경준은 엄청난 실수를 했다.
그것은 바로 각서.
경찰 조사 단계에서라도 각서를 철회했으면 몰랐겠지.
하지만, 이경준은 12월 중순에 열린, 굉장히 빠르게 열린 재판에 각서를 제출하는 최악의 오판을 했다.
따라서 ‘이경준이 김성진을 구타했다’라는 사실이 각서를 통해 입증된 것이다.
더군다나 김성진은 병원에 입원한 것과 더불어서 전치 6주의 진단을 받았다.
지금이야 통원치료를 하고 있지만, 꽤나 심각한 구타를 당했다는 얘기.
주변의 조언을 받아가며 대처했다면, 분명 주변에서는 모르쇠로 일관하라고 했을 것이다.
폭행의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모르쇠로 일관하면 최종적으로는 증거불충분으로 끝났을 테니까.
하지만, 성산은 그냥 끝났다.
[성산그룹 회장의 상무 구타, 사실로 밝혀져!]오성, 금철, 대상은 서서히 말라죽을 기회라도 있지, 성산은 그냥 주식이 와지끈 주저앉았다.
이제 성산에 대한 처단은 거의 종료.
윤기는 내친김에 나머지 기업들에 대해서도 적당히 겁을 줘 놔야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렇기에 다시 한번 소집된 재벌 총수들.
이번에는 윤기의 저택에 소집된 것이 아니라, 박경자의 식당을 하루 빌려 그곳에 200명에 가까운 총수들을 소집했다.
물론, 이번에는 모두 참석하지는 못했다.
성산, 금철, 대상, 오성은 현재 이곳에 참석할 경황이 없었으니까.
따라서 윤기는 나머지 총수들과 함께 오찬을 들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고, 식사가 끝나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참, 여러분. 그거 아세요?”
윤기의 말에 숨죽이고 경청하는 총수들.
“대상의 고 회장님이 제집에 도청 장치를 설치했었어요.”
그제야 총수들은 네 개의 그룹이 왜 박살 났는지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