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13)
613화 먹고 싶지? 먹고 싶지? (2)
그나마 미국 밀 밀가루는 국내에 유통되고 있었다.
국내 제분 업체 네 곳이 모두 박살 나면서 적신호가 켜진 국내 밀 공급.
윤기는 일단, 기존 네 개 업체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과 반 년짜리 임시 계약을 맺었다.
반년 안에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바로 정직원으로 전환시켜 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덕분에 국내 밀 공급은 아슬아슬하게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윤기가 도청 장치를 설치한 수십 개의 기업들을 한꺼번에 박살 내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시에 박살 내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
윤기는 그룹들을 하나하나 박살 내더라도 국민과 노동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전부 박살 내지 않는 대신 주식 자격시험을 도입했으니, 그걸로도 어느 정도는 만족할 수 있는 수준.
이제 윤기는 말 안 듣는 기업이 나타나면, 도청 장치 설치 유무에 따라 하나하나 박살 낼 것이다.
물론, 지금은 잠시 휴식기지만 말이다.
‘떡국도 좋지만, 역시 제대로 손맛을 느끼려면 수제비지.’
60년대, 돈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그야말로 물리도록 먹었을 수제비.
미군정을 통해 전국적인 규모로 대량 보급된 밀가루는 한국 사람들의 굶주림을 면하게 해 주었고, 덕분에 나이가 좀 있는 사람들 중에는 수제비라고 하면 아주 극혐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90년대.
한국전쟁이 사실상 종료된 지 50년이 지난 만큼, 수제비가 일종의 별미 취급을 받고 있었기에 박경자는 수제비를 선택한 것이다.
만약, 수백 명의 조리를 하는 것이었다면 절대 선택되지 못했을 수제비.
하지만, 오늘은 수십 명분만 만들면 되었기에 박경자에게도 부담이 없었다.
‘좋아! 윤기한테 보답하는 거야!’
그야말로 전의를 다지는 박경자.
잠시 후, 와이케이 본사 직원식당의 주방에서는 밀가루를 반죽하는 소리와 반죽을 치대는 소리, 그리고 파를 써는 통통통 소리 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온 아침 식사 시간.
어제 숙직을 선 사람과 경비들이 하나둘 찾아오자, 박경자는 인원을 파악한 후, 곧바로 수제비를 넣었다.
백 번 이상 치대고, 냉장고에 숙성까지 시킨 반죽이 빠르게 국솥에 들어가자, 육수와 밀가루의 뭉근한 냄새가 밤새 고생한 사람들의 후각을 활짝 열게 했다.
순식간에 군침을 꿀떡꿀떡 삼키기 시작하는 사람들.
“오, 떡국을 끓이나 보네?”
“저기 봐. 국내산 밀가루래.”
[오직 와이케이에서만 먹을 수 있는 국내산 밀가루 수제비] [오늘 첫 공개!]“국내산 밀가루?”
“우리가 처음이라는데?”
“이야, 숙직한 보람이 있는데?!”
국산 밀 밀가루와 수입 밀 밀가루의 맛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하늘이 내린 혀를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사람이란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희귀도’를 통해서 대상을 평가하는 존재.
따라서 ‘국내산 밀가루’라는 말은 식당을 찾아온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당장, ‘밀가루 파동’이 얼마 전의 일.
밀가루를 구하지 못해 중국집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고, 라면의 생산이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국가적인 위험이 뉴스와 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런 만큼, 사람들은 ‘국내산 밀가루’라는 표현에 상상 이상의 기대감을 보였다.
그리고 여기에 박경자의 조리 실력이 추가되었다.
음식 맛 하나로 윤기에게 쫓겨나서도 살아남은 박경자.
함바집에서의 경험과 본인의 노력이 더해져 박경자의 음식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었다.
대량 조리면 대량 조리, 소량 조리면 소량 조리!
윤기에게서 용서를 끌어낸 음식 맛이 가감 없이 발휘되었고, 덕분에 머슐랭 별쯤은 우습게 따낼 수제비가 사람들에게 배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으아, 맛있겠다!”
추운 겨울, 외곽 경비를 섰던 사람들은 뜨끈한 식당의 온기에 외투를 벗어 놓고는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술 입에 넣었다.
아직까지 한기가 남아 있는 몸에 들어오는 뜨끈한 수제비 국물.
“크아-!”
그야말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박경자가 직접 새벽 시장에 가서 공수해 온 싱싱한 새우와 조개까지 넣은 수제비다.
아예 냉장 차량까지 대동해서 신선도를 유지한 만큼, 1월 1일 오늘, 대한민국에 이것보다 맛있는 수제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떡국과 이 수제비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절대다수가 이 수제비를 고르겠지.
그런 음식이 대부분의 회사라면 전혀 신경도 써 주지 않을 야간 경비와 숙직자들에게 제공된 것이다.
오로지 와이케이에서만 가능한 일!
“야, 떡국이 아니라서 실망했는데, 오늘 숙직 안 섰으면 오히려 더 실망했겠어!”
사람들의 숟가락이 마하의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국물 한 방울 남지 않은 그릇과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어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 주방.
그 모습에 박경자는 뿌듯함을 느꼈다.
‘그래, 나 박경자야. 요리 실력 하나만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는다고.’
윤기의 기대에 부응했다는 생각 덕분인지 박경자의 자존감은 그야말로 한껏 상승했다.
“아, 아줌마.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어요…?”
“호호호, 맛있죠?”
“네, 네! 우리 엄마가 해 준 것보다 맛있어요!”
“우리 와이프 것보다 맛있어요!”
박경자는 국솥을 열더니, 조미가 살짝 덜 된 육수를 추가했다.
육수라는 것은 끓이면 끓일수록 기화되어 잔존 육수가 짜게 변하는 법.
더군다나 수제비에서 나오는 전분 성분 덕분에 국물의 감촉 역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추가되는 간이 덜 된 육수.
이어서 박경자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수제비를 뜨기 시작했다.
“조금만 기다려요. 오늘은 사람 숫자가 적어서 이렇게 만드는 게 훨씬 맛있어.”
[[[[[네,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어요!]]]]]마치, 어깨동무라도 할 것처럼 합창하며 기다리는 사람들.
인기 식당을 손수 운영했던 실력답게 박경자는 동시에 여러 동작을 수행하면서 빠르게 새로운 수제비를 만들어 냈다.
원래 수제비 같은 음식은 국솥에 미리 끓여 놓은 상태로 배식하면 점점 쓸데없이 걸쭉해지고, 짠맛이 강해지는 법.
하지만, 박경자의 수제비는 추가 육수를 넣는 데다가, 수제비 역시 미리 넣어 두고 끓인 게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 만든 것처럼 원안을 유지했다.
“많이 드세요!”
그릇에 다시 담긴 수제비.
사람들은 신명 나게 다시 자리로 돌아갔고, 이내 게 눈 감추듯 다시 수제비를 먹어 치웠다.
그리고 또다시 주방으로 향하는 눈동자들.
분명 배가 충분히 찼을 텐데도 맛이 워낙 좋아, 사람들은 위장의 경고를 무시하고 주방을 바라보았다.
“호호호, 아직 더 있으니까 많이 먹어요.”
이날, 숙직을 선 사람들과 경비들은 집에 가서 새해 음식을 먹지 못했다.
* * *
1993년의 1월 1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렇기에 1월 2일 일요일에 당직을 선 사람들과 야간 경비를 선 사람들 역시 박경자 특제 수제비를 먹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감탄을 나오게 하는 박경자의 수제비.
따라서 1월 3일인 월요일.
사람들은 ‘전설의 수제비’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다.
[야, 어제랑 그저께 식당에서 나온 수제비가 그렇게 굉장했다던데?] [집에 가서 떡국 못 먹을 정도의 맛이었대.] [국내산 밀가루 썼다는 데 그렇게 차이가 나나?] [식당 아줌마가 바뀌었다는 말도 있고.]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것.
그것은 바로 직장의 점심밥이다.
중소기업의 이직률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식당 밥이라고 할 정도니 오죽할까?
공사판에서 함바집 음식이 맛없으면 폭동이 일어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런 곳에서 나름 자랑스러웠던 외모까지 버려가며 일을 배웠던 박경자의 손맛.
이 손맛이 바로 국내산 밀가루에 대한 입소문을 퍼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어? 수제비가 아니라 떡국이네?”
점심시간.
사내식당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은 메뉴가 떡국인 것에 조금 아쉬워했다.
오전 내내 ‘전설의 수제비’를 기대했는데, 막상 나온 것이 떡국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수십 명분의 수제비는 손수제비를 뜰 수 있다.
하지만, 수백 명분의 수제비를 직접 뜬다면?
박경자가 한 3일 정도는 앓아 누워야겠지.
철봉으로 만두피 50개를 단박에 만드는, 그런 요리 만화의 캐릭터가 아닌 이상, 수백인 분의 수제비를 직접 뜨면 사람 잡기 딱 좋다.
“아…, 수제비 먹고 싶었는데….”
사실, 오늘 출근한 사람들 중 대부분이 1월 1일에 떡국을 먹은 사람들이다.
따라서 떡국을 또 먹는 것은 아무래도 감동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하지만, 앉은 사람들은 한술 뜨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오옷?!]]]]]그야말로 머리에 스파크가 튀는 맛.
더군다나 오늘의 육수는 어제보다 더 대단했다.
자고로 육수가 들어가는 음식들은 대용량으로 만들수록 진한 맛을 만들어 내는데, 오늘은 며칠 전과 달리 수백인 분을 만들어야 하는 대량 조리였다.
그렇다는 건?
수백 인분의 재료가 우러난 진국이 사용된 떡국이라는 얘기다.
후루룩 후루룩 후룩 꿀꺽
벌컥 벌컥 벌컥
“앗 뜨거!”
국물을 거의 목구멍에 들이붓다가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생길 정도의 맛.
순식간에 그릇을 비운 사람들은 빠르게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오늘은 ‘한 번 더’ 찬스를 쓰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직도 길게 늘어져 있는 줄.
더군다나 식당에서 준비한 식재료에는 한계가 있는 법.
결국 이날, 와이케이 본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머리에선 종일 떡국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 * *
야근하고 싶어지는 맛.
그렇다.
떡국 이후로 나온 밀가루 메뉴는 1월 3일이 아니라, 1월 4일 야식으로 나왔다.
아무리 박경자가 열심히 일한다고는 해도 철인은 아니니, 아침부터 점심, 저녁, 야식까지 모두 할 수는 없는 노릇.
따라서 윤기는 박경자에게 일단 ‘밀가루 음식’에 대해서만 전적으로 부탁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잔치국수다.
박경자의 두 번째 밀가루 요리를 먹게 된 행운의 사람들.
물론, 국수는 공장제다.
아무리 박경자라고 해도 국수를 만들어낼 능력은 없으니까.
하지만, 마찬가지로 육수가 그야말로 환상이었고, 덕분에 사람들의 인식에는 점점 더 ‘국내산 밀가루’라는 단어가 각인되기 시작했다.
박경자의 요리 실력도 요리 실력이지만, 덤으로 따라붙은 ‘국내산 밀가루’ 역시 평가가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국내산 밀가루의 맛?
구분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신들만 먹을 수 있다는 우월감.
따라서 1월 초순 내내 와이케이 직원들의 사기는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사내식당을 운영하는 와이케이의 계열사들은 박경자에게로 식당 조리사들을 보내 몇몇 밀가루 요리를 배우게 했다.
만드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만드는 방법 자체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박경자의 비법.
그렇기에 1월 중순에는 와이케이 계열사 모든 직원들이 ‘국내산 밀가루’를 호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언론까지 탔다.
[와이케이 직원들만 먹을 수 있는 국내산 밀가루, 대호평?] [국내산 밀가루에는 어떤 비밀이 있나?]그렇기에 국민들은 아주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허니버터칩 광풍을 생각하면 아주 쉽지 않을까?
“물이 들어왔으니, 이제 노를 저을 시간이네요.”
그렇다.
이제 프리미엄 국내산 밀가루를 판매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