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33)
633화 펜을 칼보다 강하게 해 줄게 (2)
“하아, 짜증 나는구만.”
편집장에게 아부 떨던 기자, 박해준은 윤기가 다녔던 중학교 주변에 있는 분식집에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초록색 그릇에 작은 하얀색 무늬가 따박따박 박혀 있는 추억의 분식집 그릇.
그곳에 담긴 라면을 뒤적이며 박해준은 머릿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어차피, 뒤는 없단 말이지?’
그동안 30퍼센트의 언론에 몸담아서 꿀 한번 제대로 빨았던 박해준.
솔직히 말해서 30퍼센트의 언론이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필연적인 존재였다.
MEV에서 신문을 취급하기 전에 꽤나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었던 신문사들.
그런데 MEV가 신문을 무료로 나눠 주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그야말로 처참하게 박살 났다.
물론 이러한 신문사들 중 MEV 계열에 탑승하는 데 성공한 신문사도 있었지만, 이들은 탑승하지 못한 신문사들.
따라서 이들은 MEV, 그리고 와이케이, 나아가 윤기까지도 죽일 듯이 미워했다.
기자들 역시 마찬가지.
빠르게 MEV 계열 신문사로 이직하는 데 성공한 기자들이야 신나서 윤기를 찬양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이직에 실패한 기자들이었다.
시장이 고착화된 이후로, 이들은 절대 70퍼센트의 언론에 이직할 수 없었다.
MEV와 와이케이를 성토하는 기사를 그렇게 쏟아냈는데, 어떤 미친 신문사가 이들을 고용하겠는가.
윤기야 ‘뭐, 신문사가 시킨 거잖아?’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일일이 ‘봐줘’라고 말하지 않은 이상은 신문사 사장들 입장에서 굳이 이들을 고용할 이유가 없었다.
따라서 이직하더라도 같은 30퍼센트 언론 내에서만 이직이 가능해진 기자들.
덕분에 이들은 오로지 MEV, 와이케이, 그리고 윤기를 까는 데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었다.
죽으나 사나 월급 받고 살려면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다른 재벌들을 살려야 우리가 먹고살아. 이 수밖에 없어.’
갈수록 광고 의뢰가 줄어들고 있는 대기업들.
이게 다 윤기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국내 경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윤기 입장에서 30퍼센트의 언론에 광고할 이유는 전혀 없는 상황.
따라서 30퍼센트의 언론은 와이케이를 제외한 기업들로부터 광고 의뢰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성산을 비롯한 4개의 그룹이 사실상 패망의 길에 들어섰고, 영원그룹 역시 영원카드를 와이케이에 넘기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30퍼센트의 언론에도 영향이 안 올 수가 없는 법.
박해준은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든 와이케이에 흠집을 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에 따라 이번 일을 건의한 것이다.
‘삼촌이 해 준 말만 믿고 기자가 된 건데, 꿀은 제대로 빨지도 못하고 이게 뭐냐. 썩을.’
정의로운 기자?
애초에 그런 것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던 박해준.
[해준아, 기자가 되면 뭐가 좋은지 알려 줄까?]삼촌이 알려 준 기자의 장점.
박해준의 삼촌은 정의를 추구하는 기자가 아니라, 권력에 빌붙는 전형적인 기자였다.
군부정권 시절에 어용 기사를 쏟아내면서 온갖 쾌락을 맛본 박해준의 삼촌.
박해준은 어려서부터 삼촌의 말을 듣고 기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기자가 되었다!
그것도 그냥 기자가 아니라 국내 3대 신문사 중 하나에 입사한, 전도유망한 신입 기자.
그런데, 어느 순간 국내 신문 시장이 완전히 바뀌었다.
지방에서도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은 신문사가 갑자기 1일 100만 부 판매량을 올리게 만들어 버린 MEV.
덕분에 국내 1위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던 박해준의 신문사는 한없이 쪼그라들어, 이제 7퍼센트의 점유율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다.
연예 매니지먼트의 접대?
권력층의 뇌물?
그런 거 없다.
그냥 신문사 월급을 제외하면 가뭄에 콩 나듯 정치에 관심 있으신 양반이 써 달라고 하는 원고 써 주고, 성에도 안 차는 접대를 받는 수준.
그렇기에 박해준은 그 누구보다도 윤기를 미워했다.
[저 새끼만 아니었어도!]만약 MEV로 이직할 기회가 있었다면, 박해준이 이직했을까?
사실 기회는 있었다.
단지 안 했을 뿐이다.
윤기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MEV 소속의 기자들이 어떻게 접대 같은 것을 받겠는가.
결국, 박해준은 기존 신문사에 남았고, 그 결과 지금 이렇게 라면을 뒤적이게 된 것이다.
후루룩 후룩
어쨌거나 배는 채워야 했기에 학교 부근 싸구려 분식집에서 박해준은 허기를 해결했다.
‘젠장, 내가 이따위 음식을 먹어야 한다니.’
그래도 만약 이번 일이 잘 풀린다면 편집장은 승진할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은 확실한 편집장의 라인을 탈 수 있을 것이다.
괜히 구역질 나는 편집장에게 계속 아부를 했을까.
‘적어도 편집장은 될 수 있겠지?’
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꿈나무들은 많다.
그리고 편집장 정도 되면 그러한 꿈나무들을 털어먹는 것 역시 쉽겠지.
박해준은 이번 일로 무슨 큰 꿈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적당한 안녕을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유치원이나 국민학교는 별 의미가 없을 거야. 사춘기로 피가 펄펄 끓는 중학교랑 고등학교에 사고를 쳤을 게 분명하다는 거지.’
라면을 다 비운 박해준은 계산을 하고는 일단 중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도착한 교무실.
그중에서도 박해준은 명패에 ‘학생주임’이라고 적혀 있는 사람을 향해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저는 산양신문의 박해준 기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방과 후였기 때문에 나름대로 한가한 시간.
따라서 학생주임은 박해준 기자의 기자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살짝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지금은 괜찮아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나요?”
학생주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만면에 미소를 짓는 박해준.
“이곳이 최윤기 회장님의 출신 중학교라고 들어서요. 저희 신문사에서 최윤기 회장님에 관한 특집 기사를 준비 중인데, 혹시 당시 담당했던 선생님이 계신가요?”
하지만, 학생주임은 박해준 입장에서 살짝 안타까운 소식을 알렸다.
“그때 선생님들은 다 다른 학교로 가셨죠. 벌써 10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요.”
“아, 그런가요? 그러면, 혹시 당시 선생님들이 어디로 가셨는지라도 알 수 있을까요?”
“어디 보자…, 제가 알기로 중2 때 담임이셨던 분이 명학중으로 가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명학중이요? 감사합니다!”
바로 교무실을 나가려는 박해준.
그러자 학생주임이 빠르게 말을 꺼냈다.
“성적표나 이런 건 안 보셔도 되나요?!”
박해준이 그리 유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명확한 상황.
분명, 박해준은 윤기에 관한 특집 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의 학창시절에 꼭 나와야 하는 것은 바로 성적표.
더불어서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이다.
하지만, 박해준은 마음이 콩밭에 가 있던 나머지, 이런 당연한 확인을 하지 않아 학생주임에게 위화감을 주었다.
물론, 지금 이 상황만으로 학생주임이 ‘의심’까지 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나중에 무언가 일이 터졌을 때, 학생주임은 분명 증언을 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될 것이다.
“아! 그렇군요. 제가 당시 선생님들부터 만나려고 하는 마음이 급하다 보니 깜빡했네요. 한번 볼 수 있을까요?”
“네, 당연히 보셔야죠!”
윤기의 성적표나 생활기록부는 이곳에 부임한 선생님들이 꼭 한 번은 보는 인기 자료.
덕분에 학생주임은 빠르게 윤기의 생활기록부를 보여 주었다.
“진짜 대단하다니까요. 출결이야 어쩔 수 없지만, 성적이라든가 태도라든가 흠잡을 곳이 없어요.”
당시 이 학교에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생활기록부를 토대로 그때를 상상하는 학생주임.
박해준이 보기에도 윤기의 생활기록부는 출결을 제외하면 흠이 없었다.
‘출결가지고 흠을 잡아 봤자 아무런 이익이 없어.’
더불어서 성적표 역시 박해준 입장에서 전혀 관심이 안 가는 부분.
아니, 오히려 짜증이 났다.
‘새끼, 진짜 흠잡을 곳이 없네.’
그렇다 보니 박해준은 생활기록부를 보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자리를 떴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빠르게 복도를 통해 사라지는 박해준.
또다시 생긴 위화감에 학생주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이내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자리에 놓인 전화기에 손을 올리는 학생주임.
잠시 후, 학생주임은 MEV계열의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는 자신의 조카에게 전화했다.
“어, 정선아. 혹시 산양이라는 신문사 들어본 적 있냐? 방금 기자를 사칭하는 녀석이 왔다 간 거 같아서 말이야.”
* * *
한편, 박해준은 학생주임이 말해 준 명학중학교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윤기의 중학교 1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드디어 찾았네요. 소개 드립니다. 저는 산양신문의 기자 박해준이라고 합니다.”
담임선생님에게 허리를 숙이며 악수를 권하는 박해준.
담임선생님 역시 윤기의 학창시절을 취재하러 왔다는 말에 반가워하며 박해준의 손을 잡았다.
“반갑습니다. 제가 윤기의 담임선생님이었다는 게 정말 영광으로 느껴지네요.”
누가 봐도 호감도가 확 느껴지는 담임선생님의 말.
박해준은 속으로 짜증이 일었지만, 미소를 잃지 않고, 담임선생님과의 악수를 풀었다.
“최윤기 회장님이 다니던 학교에서 생활기록부는 이미 확인했거든요.”
상담실 소파에 앉아 운을 떼기 시작한 박해준.
말의 의도는 ‘볼 건 다 보고 왔으니, 당시의 일을 묻겠다’였지만, 담임선생님은 당연히 이를 다르게 받아들였다.
“아, 보셨어요? 정말 대단하죠? 학교를 그렇게 빼먹었는데도 그런 성적이라니. 솔직히 누가 보면 컨닝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절대 컨닝이 아니었어요.”
빠르게 말을 잇는 담임선생님.
“윤기의 앞자리가 전교 꼴등이었고, 왼쪽과 오른쪽, 뒷자리도 하위권이었거든요. 출결이 답 없는 애가 성적이 너무 높아서 일부러 그렇게 자리를 배치했는데도 성적이 그렇게 나왔다니까요?”
그야말로 껄껄 웃음을 터뜨리는 담임선생님.
“아, 그렇군요.”
역시나 상대에게 위화감을 주는 화법을 쓰는 박해준.
아까 윤기의 출신 중학교에서도 그랬지만, 지금 담임선생님도 박해준에 대해 서서히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회장님의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담임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다는 듯 환한 표정을 지었다.
“훌륭했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고, 배려심도 좋았고. 수업 시간에 수업을 듣지 않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긴 했지만, 그래도 수업 분위기를 저해하는 일을 하지는 않았어요.”
“아, 수업 시간에 딴짓을 자주 했다구요?”
담임선생님은 고개를 저었다.
“딴짓이라기보다는 다른 공부였죠. 중학교 교육과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요. 마음만 먹으면 월반도 가능했을 텐데, 본인이 그건 싫다고 하더라구요. 덕분에 살면서 좋은 경험 했어요.”
눈에 띄게 드러나는 박해준의 아쉬워하는 표정.
하지만, 박해준은 이내 표정을 바꾸며 자신의 진짜 목적을 물었다.
“혹시 재미있는 일은 없었나요?”
“아, 재미있는 일이요? 어디 보자….”
담임선생님은 박해준에게 윤기가 만들었던 몇몇 일화를 말해 주었다.
하지만, 역시나 박해준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일화들뿐.
그렇기에 박해준은 좀 더 직설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물었다.
“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그런데, 혹시 다른 일화는 없었나요? 아무래도 최윤기 회장님도 어릴 때는 혈기가 왕성하니, 실수도 하고 그랬을 거 같아서요.”
살짝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담임선생님은 과거를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아! 김명환이라는 녀석과 좀 그런 일이 있긴 했네요.”
김명환.
중학교 1학년 수업 첫날, 윤기에게 박연지와 관련한 성적인 패드립을 날렸던 녀석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