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내가 명품이다 (3)
로랑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문을 열고 나타난 것은 사업 이야기를 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누가 봐도 미소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동양인 청소년이었기 때문이다.
“누구……?”
로랑의 시선이 윤기의 주변으로 확장되었고, 이내 윤기의 뒤에 서 있는 조청우를 발견하고는 사태를 어림짐작했다.
‘저 사람이 관계자인가 보군. 그런데 저 아이는 왜 데려온 거지? 그나저나 놀라워. 주변 사람들을 태양 주변을 도는 수성으로 만들 정도의 몰입력이라니.’
하지만 이러한 로랑의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다.
자리에 앉은 것은 20대 중반의 남자가 아니라 1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이였기 때문이다.
“반갑습니다. 저는 와이케이 백화점의 실질적 지분 소유자인 최윤기라고 합니다. 외국 친구들은 저를 ‘윤’이라고 부르죠.”
유창한 영어.
로랑 역시 영어를 상당히 하는 편이었기에 윤기의 영어를 듣고서 두 번 놀라야만 했다.
“혹시 한국계 미국인인가요?”
“아뇨,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입니다. 그저 영어 공부를 많이 했을 뿐이죠.”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원래 외국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때문에 생긴 나이 문화로 인해 한국은 한 살만 차이 나도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영미권 국가들은 애초에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나이를 묻지 않기 때문에 따질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로랑은 진심으로 순수 궁금증만으로 나이를 물었다.
혹시 눈앞에 있는 이 소년이 엄청난 동안의 동양인일 수도 있었으니까.
“한국 나이로 14살, 국제 기준으로는 13살이네요. 생일이 지났으니까요.”
“13살…….”
아무리 나이를 따지지 않는 관습이라 하더라도 사업의 개념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이가 아닌, 나이가 증명하는 경력이 문제가 되니까.
그렇기에 로랑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물품을 출하해 달라고 요청을 한 사람이 당신이라는 말입니까?”
“예. 제 백화점에 에르메스를 꼭 사입하고 싶은데, 거절이 계속되어서 직접 설득을 드리기 위해 약속을 잡은 겁니다. 전화로는 보여드릴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하니까요.”
“그 건에 대해서는 본사 방침상 어렵다는 말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꼭 저희 브랜드가 아니어도 되지 않습니까? 한국처럼 작은 시장이라면 충분히 다른 브랜드를 사입하셔도 될 겁니다.”
로랑은 설득을 위해 한 말이었지만, 윤기에게 있어서는 포문을 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제가 에르메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에르메스를 좋아하신다고요?”
“보면 아시지 않나요?”
윤기는 자신의 몸을 가리켰고, 그제야 로랑은 윤기의 얼굴이 아닌 전체적인 인상을 확인했다.
“세상에……, 그거 전부 에르메스입니까?”
윤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에르메스로 입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전부 입었죠.”
“허허…….”
로랑이 감탄하고 있을 때, 윤기가 볼을 돌리지 않고 계속 슛을 날리기 시작했다.
“저는 에르메스를 정말로 사랑합니다. 그렇기에 제가 운영하는 백화점에서 에르메스를 팔고 싶은 겁니다. 에르메스가 얼마나 뛰어난 명품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거든요.”
자사 브랜드를 극찬하는 데 싫어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로랑의 반응은 아직 미적지근했다.
“그렇긴 하지만, 한국의 백화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명품 숍과는 전혀 다릅니다. 보아하니 한국의 백화점은 서민들이 우글거리는 곳이던데 우리 브랜드는 애초에 그런 곳에서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저녁 찬거리를 사고 분식을 먹는 곳은 시장이지 명품 숍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저희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서 직원이 제대로 설명해 드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일단 저희 와이케이 백화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윤기는 얼마 전 백화점의 이름을 와이케이 백화점으로 결정지었다.
이름을 영어로 바꿨을 때의 앞 글자.
YG로 하는 게 어떻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할아버지의 ‘기’가 ‘Ki’였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YK로 낙점되었다.
“……이처럼 와이케이 백화점은 순수 쇼핑만을 위한 전문 쇼핑몰입니다. 더군다나 7층은 VIP 전문 쇼핑가가 될 것이기 때문에 에르메스의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으음…….”
“저는 정말 자신이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단기 계약으로 하셔도 좋습니다. 일단 특판 쪽으로 계약을 해서 물량을 주시고, 해당 물량을 소화하지 못한다면 거래는 거기서 끝. 물량을 소화한다면 단기 계약으로 넘어가고, 거기에서도 매출이 괜찮다면 장기 계약으로 가는 겁니다. 어떤가요?”
로랑은 다시 한번 윤기를 바라보았다.
‘나이가 어리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말주변이 좋고, 무엇보다도 우리 에르메스 제품이 정말 잘 어울리는 타입이야. 거래처 인물이 아니라 우리 모델이었다면 아시아 쪽에 상당한 힘을 발휘할 거 같은데…….’
로랑의 생각의 흐름은 윤기가 원하는 것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윤기가 에르메스로 도배하고 본사에 나타난 이유는 단 하나.
설득력을 가지기 위함이었다.
누구보다도 에르메스를 잘 알고 있는 것으로 위장하고, 친밀감을 끌어낸다.
그렇게 해서 일단 극소량의 물량이라도 받아내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로랑이 윤기에게서 상품성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3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요.”
“30분 정도야 기다릴 수 있지요.”
윤기의 말에 로랑은 빠르게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여기 계셨습니까?”
숨을 헐떡이는 로랑의 말에 해외 사업부 디렉터인 파비앵이 손을 씻으며 답했다.
“아, 자네군. 한국인가 하는 나라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내보냈나?”
“아뇨, 아닙니다.”
입 주변에 마치 원을 그리듯 나 있는 파비앵의 수염이 원이 아니라 직사각형으로 변했다.
“뭐? 그럼,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로랑은 자신의 민머리에서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로 훔치며 빠르게 상황을 설명했다.
“한국에서 직접 찾아온 사람을 만나 본 결과 우리 에르메스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이였습니다.”
“에르메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랑 사업은 전혀 다른 이야기야. 가만……, 방금 ‘아이’라고 한 건가?”
“그렇습니다. 13살의 동양인 소년인데 그 외모가 진짜 대단합니다. 게다가 전신을 에르메스로 도배하고 있는데, 아시아 판촉 모델로 써도 무방할 것 같았습니다.”
“일본 모델은 이미 있잖아?”
아시아 판촉 모델이라고 해도 에르메스에게 유의미한 매출을 가져다주는 것은 일본 정도였다.
그렇기에 파비앵은 로랑의 말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닌 이상 로랑의 말은 어디까지나 ‘일 못 하는 부하 직원’의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으니까.
“저라면 당장에 바꾸고 싶을 정도입니다. 나이가 13살이지만 키도 170 이상으로 보이고, 어른의 얼굴과 앳된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만약 판촉 모델로 쓴다면 구매자들에게 ‘에르메스를 입으면 어려진다.’ 같은 인식을 심어 줄 것 같습니다.”
“무슨 헛소리를…….”
피식하고 웃으며 대놓고 자신을 비웃는 파비앵을 보며 로랑이 답답한 듯 외치듯이 말했다.
“직접 보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일단 직접 가서 보십시오. 그러면 제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아시게 될 겁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예.”
단호한 파비앵의 물음에 로랑 역시 단호하게 대답했다.
로랑의 직책은 매니저. 한국의 직급으로 치면 과장급의 직급이지만, 하는 일은 과장하고 전적으로 달랐기에 매니저로서의 로랑은 현재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의 결정권이 없었다.
반면 파비앵의 직책은 디렉터.
한국으로 치면 부장급의 직책이었기에 해외 사업부의 부장인 파비앵은 VP(부사장)들에게 안건을 올릴 권한이 있었다.
“만약 자네 말이 허튼소리였다면 이번 인사고과를 단단히 각오해야 할 거야.”
대놓고 나오는 협박에 로랑은 순간 움찔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고 보십시오. 대신 제 생각이 맞는다면 인사고과를 기대해도 되겠죠?”
평상시에는 군말 없이 자기 말을 따르던 로랑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파비앵 역시 이쯤 되어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가 보자고.”
에르메스 로고가 찍혀 있는 타월에 손을 닦은 파비앵이 로랑의 앞에 서서 접객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 * *
문을 연 순간, 파비앵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에르메스를 걸치고 있는 태양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아니, 아무리 메이크업을 했다고는 하지만 저 정도까지 나온다고?’
1980년대 한국의 패션 잡지를 보면 2019년 기준으로 대단히 촌스러운 화장법과 패션을 볼 수 있다.
특히 30대 직장인 남성들의 머리 스타일을 보면 포마드를 바른 전형적인 2 대 8 가르마를 볼 수가 있는데, 아이들의 상황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공장에서 찍어 내듯이 학생과 군인을 조련하던 대한민국에서 청소년들의 모습이란 크게 다를 수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원판이 존재한다면 이야기가 다른 법.
메릴의 메이크업을 전담해 주는 3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도움을 받아 가발까지 쓴 윤기의 모습은 그야말로 빛 그 자체였다.
미국 아티스트들에 대한 인맥이 없었기에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한국 아티스트들에게 기억을 더듬어 주문을 하려고 했던 것이 윤기의 계획이었지만, 메릴의 도움으로 인해 시너지가 폭발하게 된 것이다.
“반갑습니다. 저는 에르메스 해외 사업부의 디렉터 파비앵이라고 합니다.”
파비앵은 윤기가 명백히 소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와이케이 백화점의 소유자인 최윤기라고 합니다. 윤이라고 불러 주세요.”
“저희 회사의 상품을 사입하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파비앵이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로랑은 속으로 득의의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을 티 내지는 않았다.
그도 엄연히 에르메스 본사에서 매니저 직함을 달고 있는 능력 있는 회사원이었으니까.
오히려 로랑은 파비앵이 생각보다 빠르게 일을 진행한다고 느꼈다.
‘하긴, 놓치면 아까운 존재가 본사에 있는 거니까.’
이러한 로랑의 생각처럼 대화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예, 저는 정말로 에르메스를 사랑합니다. 와이케이 백화점에 여러 명품 브랜드가 들어오게 되겠지만, 에르메스 가격대의 명품은 오로지 에르메스만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7층 전체를 에르메스로 도배할 수는 없는 일.
윤기는 아까 로랑에게 말했던 내용을 파비앵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확실히 에르메스를 사랑하시는 분에게 너무 매몰차게 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건 소중한 소비자 한 분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으니까요.”
윤기는 사실 에르메스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걸 말할 생각도 없었고, 파비앵 역시 그걸 알 방법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사업.
목적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쯤이야 가볍게 해야 하는 일이다.
“물량을 출하해 주시면 한국에 저 말고도 다른 에르메스 추종자가 생길 겁니다. 괜찮은 거래 아닐까요?”
하지만 파비앵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이유만으로 물건을 내어드릴 순 없습니다. 에르메스는 그만큼 고귀한 브랜드니까요.”
“여기까지 오신 것을 보면 제안이 있으시겠군요.”
“예. 현재 에르메스는 일본 쪽 광고 모델을 찾고 있습니다. 로랑의 의견으로는 윤 님이 적격이라고 하던데, 만약 모델 계약에 동의해 주신다면 소량 단기 출하를 약속드리겠습니다.”
“매출이 좋을 경우 장기 계약을 확정한다는 내용을 부속 조항에 넣는다면 좋습니다.”
“그야 물론이지요.”
윤기는 자신이 을이라는 상황을 명확히 인지했기 때문에 파비앵의 제안에 더 이상 떼를 쓰지 않았다.
소량이라도 일단 물량을 뽑아냈다는 것 자체가 대성공이었으니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윤기의 계획이 성공한 것이지, 메릴의 서브 미션이 아직 남아 있었다.
끼익-!
갑자기 열린 접객실 문에 로랑과 파비앵의 눈이 동시에 그곳으로 향했고, 둘 다 깜짝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메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