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46)
646화 나비효과 (1)
마치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한재용의 몸.
“학생, 정신 차려! 학생!”
정신을 차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이미 도로에 피까지 흐르고 있는 상황.
여학생을 미친 듯이 흔들던 한재용은 그제야 자신이 가지고 있는 휴대폰을 떠올리고는 119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119죠? 여기 사고 났어요! 빨리요! 여자애가, 아! 아, 빨리요!”
너무 경황이 없는 나머지 말도 횡설수설하는 모습.
전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재용은 여학생의 정신을 어떻게든 깨워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확인해 봐도 숨소리가 들리지 않고, 맥박이 뛰고 있는지조차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점점 모이기 시작하는 사람들.
교통량이 그리 많지 않은 도로였기 때문에 사고 당시에는 지나가는 차가 없었고, 행인도 없었지만, 어느새 한재용의 주변에 서성이고 있는 행인들이 꽤 늘어난 상황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도착한 구급차.
거의 동시에 경찰차 역시 도착했다.
일단 구급차가 할 일은 여학생을 수습해서 서둘러 병원으로 떠나는 것.
그리고 경찰이 할 일은….
“서로 동행해 주셔야겠습니다.”
한재용은 순식간에 교통사고 가해자가 되었다.
* * *
“아니, 저도 피하려다가 친 거라니까요!”
한재용은 경찰서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믿지 않았다.
경찰들의 눈에 들어온 증거는 오로지 보닛 부분이 찌그러진 한재용의 차와 지금 긴급 수술에 들어간 여학생의 상황뿐.
그렇기에 경찰이 보기에 한재용은 영락없는 교통사고 가해자였다.
거기에 나타난 여학생의 아버지까지.
눈이 뒤집힌 여학생의 아버지는 경찰서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한재용을 발로 걷어찼다.
“내 딸! 내 딸 어쩔 거야!”
눈물을 흘리며 한재용을 마구 때리는 여학생의 아버지.
덕분에 한재용은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려야 했다.
어쨌거나 여학생을 친 것은 본인이었으니까.
결국, 경찰들이 나서서 뜯어말렸고, 경찰서에는 여학생 아버지의 황소 같은 괴성이 애처로이 울렸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경찰이 수갑을 찬 한재용을 경찰서 현관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담배 한 대를 권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즈음.
경찰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한재용을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렸다.
“그냥 인정하세요. 모든 증거가 선생님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있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차가 있다고 해 봐야 법정에서 형량만 커져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그 차가 있었다구요….”
새로이 눈물을 흘리면서 담배를 뻐끔거리는 한재용.
연신 눈물과 콧물이 터져서 제대로 담배를 피우지도 못해, 담배 연기는 입안에만 머물다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그건 선생님의 말뿐이라구요. 우리 경찰은 증거로밖에 안 움직여요.”
그제야 한재용의 머리에 블랙박스라는 구세주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 그래!’
지금까지 너무 경황이 없어 전혀 떠올리지 못하고 있던 블랙박스.
한재용은 다급히 경찰서 정문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어? 어어?”
깜짝 놀라 약 2초 정도 멍하니 한재용을 바라보던 경찰.
이어서 경찰은 황급히 한재용의 뒤로 달려가 바로 바닥에 찍어눌렀다.
“이 새끼, 뭐 하는 거야?!”
더 이상 선생님 소리를 하지 않는 경찰.
동시에 주변에 있던 다른 경찰들도 어느새 달려와 한재용의 구속을 돕고 있었다.
“브, 블랙박스! 블랙박스에 사고 당시의 장면이 찍혀 있을 거예요!”
최근 블랙박스는 신문과 뉴스를 통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품목이었다.
“블랙…박스…요…?”
다시 존댓말이 돌아온 경찰.
“네! 블랙박스요! 제 차에 블랙박스가 있어요! 와이케이 그룹한테 받은 거라구요!”
자신이 가해자가 되었다는 억울함과 블랙박스로 인해 구명줄이 생겼다는 환희가 섞인 목소리.
한재용의 등을 깔고 앉았던 경찰의 몸이 살짝 들렸다.
“일단 차가 있는 곳으로 가시죠.”
잠시 후, 차에서 블랙박스를 회수한 한재용과 경찰은 경찰서에서 블랙박스를 확인했다.
녹화된 장면은 불과 20초.
다행히도 사고 발생 전, 한재용이 정면으로 들이닥치는 폭주 차량을 피해 우회전을 한 것이 확인되었다.
“으아아아아!”
영상을 보며 목 놓아 울부짖는 한재용.
마치 ‘이제 살았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이랄까.
반면, 경찰들의 표정은 매우 심각해졌다.
단순해 보였던 사건이 생각보다 복잡한 사건임을 알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 * *
1990년대 초반은 대한민국에 차량이 폭발적으로 보급되던 시기.
따라서 평범한 차량이었다면 이번 폭주 차량을 특정하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폭주 차량은 상당한 수준의 고급 차였다.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아니 꽤나 적은 차종.
이것만으로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을 정도인데, 와이케이 그룹의 블랙박스는 차량의 번호까지 식별할 수 있는 수준의 성능이었다.
물론, 요즘 블랙박스처럼 아주 명확하게 찍힌 것이 아니라, 과학 수사를 통해 추려낸 차량 번호.
덕분에 차량의 주인은 지금 경찰서에 와서 조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름을 말씀해 주시죠.”
한재용을 대할 때보다 훨씬 공손해진 경찰의 모습.
이유가 무엇일까?
“알잖아요?”
영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오른손 새끼손가락으로 자신의 귀를 후비는 20대 초반의 남성.
“그래도…, 본인이 직접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사내는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귀를 후비며 왕건이가 나온 것에 눈을 살짝 크게 뜰뿐.
대신 사내를 따라온 변호사가 대신 대답했다.
“주영만입니다.”
굉장히 죄송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변호사.
조서 작성할 때, 변호사가 끼어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찰들이 싫어하는 일이다.
하지만 경찰은 입맛을 다시며 주영만이라는 이름을 키보드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이, 김 변, 누가 대신 대답하래?”
도리어 눈살을 찌푸리는 주영만.
그렇다면, 이 주영만이라는 망나니는 도대체 누구일까?
주영만의 정체는 바로 대한민국 재벌가 TOP 10에 들어가는 신명그룹의 외동아들이었다.
“도련님, 저기, 그게….”
그야말로 쩔쩔매는 변호사.
주영만은 그런 변호사의 뒷덜미를 손바닥으로 툭툭 치며 씨익 웃었다.
“왜 그렇게 쩔쩔 매? 우리 당당해도 된다니까? 내가 사고 냈어?”
백주대낮에 술에 잔뜩 취해 도로를 역주행한 주영만.
하지만, 주영만은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편이었다.
“예?”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는 경찰의 모습.
“그렇잖아, 내가 사고 냈어? 내 죄는 심심해서 도로를 역주행한 것밖에 없는데?”
심지어 경찰은 아직 음주운전조차 증명하지 못했다.
블랙박스의 입수부터 주영만의 체포까지 걸린 시간은 4일.
한재용은 일단 귀가 조치되었고, 여학생은 아직도 의식불명의 중태인 상황이었지만, 주영만은 아무런 죄의식이 없는 표정이었다.
“아니, 그 역주행 때문에 이번 사고가 난 것을 모르십니까?”
그야말로 기막혀하는 경찰의 표정.
“내가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리랬어?”
그야말로 자신감이 한껏 넘치는 주영만의 말.
실제로 주영만은 도로 역주행에 대한 내용으로만 조서를 작성하고 귀가 조치되었다.
* * *
신명그룹의 회장실.
윤기의 역사에서 대한민국의 재벌 2위부터 10위까지의 그룹은 꾸준히 바뀌어 왔다.
1위는 와이케이가 안착한 후 그야말로 요지부동.
하지만, 2위에서 10위까지는 그야말로 혼돈의 역사였다.
이 위치는 절대 운만으로는 올라올 수 없는 자리.
신명그룹의 회장 주성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김 변호사를 향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나?”
“일단, 역주행에 관한 부분은 인정하되, 역주행과 사고에 대해서는 별개의 건이라 주장하는 방향으로 정했습니다.”
허리를 30도 정도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하는 김 변호사의 모습.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이번에 다친 여학생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그야말로 전혀 상관없다는 모습.
“결국, 재판은 받게 될 거라는 얘기로군?”
마치 칼날과도 같은 말에 김 변호사가 허리를 45도까지 숙였다.
“그, 그렇습니다. 블랙박스만 없었어도 어떻게든 증거불충분을 주장했을 텐데,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이 너무 확실한지라…….”
비록 20초짜리 영상이었지만, 한재용을 나락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주기에는 충분했던 영상.
“언론의 상황은 어떻지?”
“경찰 쪽을 틀어막고 있기 때문에 아직 이슈가 되지는 않은 상황입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회장의 모습에 김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꺼냈다.
“회장님, 이슈화를 막으려면 피해자 가족들에게 어느 정도 돈을 쥐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큰 거 다섯 장 정도면 어떻게든……”
“그건 안 될 말이지.”
회장은 김 변호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뜸 잘랐다.
침을 꿀꺽 삼키는 김 변호사의 모습을 보며 회장이 말을 이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우리 영만이가 잘못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꼴이지 않은가?”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우리 영만이가 무슨 잘못을 했나? 그저 도로 역주행을 한 죄밖에 더 있겠어?”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김 변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자신의 목숨줄, 아니 월급은 오롯이 눈앞의 회장이 주는 것.
따라서 김 변호사는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조아렸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 영만이가 지금 귀찮게 된 이유가 결국 블랙박스 때문이라는 것이잖나?”
“그, 그렇습니다.”
“만약, 블랙박스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네?”
김 변호사가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자, 주성진은 미간을 찡그리며 한 번 더 설명했다.
“만약, 블랙박스가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물었다네.”
“만약, 블랙박스가 없었다면…, 한재용이라는 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 했을 겁니다.”
“지금 경찰이 가지고 있는 블랙박스 영상을 삭제한다면?”
“그, 그건…….”
“그건…?”
“아, 아마, 같을 겁니다. 하, 하지만, 경찰들은 사실을 알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말을 흐리는 김 변호사.
하지만, 회장은 어깨를 가볍게 으쓱해 보였다.
“그깟 짭새들이 알고 있어 봤자 달라지는 게 뭐가 있을까. 어쨌거나 블랙박스가 사라지면 이번 사건에서 우리 신명그룹이 언급될 일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거로군?”
“그렇…습니다.”
정말 자신이 상상도 못 했던 해결법에 당혹감을 금치 못하는 김 변호사.
하지만, 김 변호사도 결국 회장에게서 월급을 받고, 회장의 명령에 따라 더러운 일을 하는 자일 뿐이었다.
“좋아, 그렇단 말이지….”
회장은 혀를 바깥으로 한 바퀴 돌려, 입술을 한번 싹 핥았다.
* * *
한재용은 비록 불안하긴 했지만, 유치장이나 구치소가 아닌 집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피해자 가족과는 한동안 접촉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그쪽에서도 그걸 원치 않고 있구요.]자신의 잘못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과를 하려 했던 한재용.
하지만, 한재용은 경찰의 조언으로 피해자 가족과의 접촉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가해자인 자신을 보기 싫을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재판이 어떤 내용으로 진행될 것인지 확인한 한재용은 그야말로 얼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블랙박스에 관한 내용이 그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