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롸끈한 대우 (1)
개선장군처럼 보무당당히 한국으로 돌아온 윤기는 곧바로 페르난데즈를 소환한 뒤, 입점할 브랜드 명단을 넘겨주었다.
그러자 백화점 내부 공사는 착착 진행되기 시작했고, 윤기 역시 종종 백화점에 들러 공사가 얼마나 진행되는지 알아보곤 했다.
진짜 미국과 유럽을 옮겨 놓은 느낌이네.>
6층까지는 그냥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백화점의 느낌이라면, 7층의 풍경은 완전히 달랐다.
마치 르네상스 시대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을 가져다주었으니까.
하지만, 윤기가 백화점에 올 때마다 감동을 하는 부분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최철민과 박경자의 고생하는 모습.
종종 보는 그 모습이 살인적인 일정을 자랑하는 윤기에게 있어서 삶의 활력소가 되어 주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활력소를 두 번 경험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대문 앞에 최철민과 박경자가 초조한 행색으로 서 있었으니까.
물론, 윤기는 그들에게 단 한마디의 말도 걸지 않은 채로 대문을 열려고 했지만, 둘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덕택에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윤기야, 제발 용서해 줘…….”
최철민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어느새 구릿빛으로 변한 피부. 통통하게 변한 육체. 하지만, 초췌한 안색은 영양 공급이 양적으로는 많을지 몰라도 질적으로는 하잘것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싫은데요?”
일부러 얄밉게 말하는 윤기를 향해 이번에는 박경자가 윤기의 다리를 붙잡으려는 시늉과 함께 용서를 빌었다.
물론, 윤기가 빠르게 다리를 뺐기에 볼썽사납게 바닥에 넙죽 엎드리는 모습이 되었지만.
“윤기야, 이 숙모가 정말 잘못했어. 너한테 그런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였는데……. 제발……, 제발, 우리 좀 용서해 줘. 너무 괴로워……. 언제까지 우린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박경자를 향해 시선을 돌린 윤기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경자의 외모는 예전과 비교해서 정말 많이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부는 언제나 주방의 뜨거운 습기에 절어 탄력을 많이 잃었고, 화장할 여유가 없는 것인지 시간이 없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에는 화장기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에 언제 파마를 했는지 알기도 힘들 정도로 풀려 있는 머리칼과 팔 여기저기에 보이는 화상 자국이 윤기로 하여금 미소 짓게 만들었다.
“윤기야, 제발…….”
고된 일 때문에 저질의 영양이 다수 공급되어 배가 볼록 나온 최철민의 피눈물 어린 애원에도 윤기는 그저 웃음만 짓다가 그냥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대문 바깥에서 최철민과 박경자가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윤기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오늘 집에 할아버지가 안 계셔서 다행이야. 만약 들으셨으면 가슴 아파하셨을지도 모르니까.’
집안에 대한 영향력이 완벽하게 사라진 최철민과 박경자는 저런 행동을 할 타이밍조차도 제대로 못 잡는 신세가 되었다.
‘저 울음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나랑 상관없는 일이지. 내가 저들을 용서해 줄 때가 온다면…….’
윤기는 저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도 무감각해질 때가 온다면 그때가 바로 용서해 줄 때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때가 언제 올지는 윤기 자신조차도 모르지만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현관문을 닫자마자 기분 나쁜 울음소리는 두툼한 벽과 이중창에 막혀 더 이상 들려오지 않게 되었다.
‘아쉬워해야 하나,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오빠의 귀가에 신나서 달려오는 동생 정아를 보며 ‘다행이겠지?’라는 생각을 한 윤기는 정아와 잠시 놀아 준 뒤, 서재로 향했다.
“먼저 와 계셨네요? 류 비서 퇴근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거 같아서 여유롭게 오셔도 됐는데 말이죠.”
윤기의 말에 최철규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꼭 약속 때문만이 아니라 여기 책들이 워낙 많아서 읽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거든. 그래서인지 일부러 여유 있게 오나 봐.”
최철규는 언제나처럼 100점짜리 대답을 내어놓았다.
어차피 사회성 방면에서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특별한 이유 없이 상사보다 늦게 도착한다는 것은 하등 좋을 것이 없는 선택.
아무리 윤기가 천천히 오라고 해도 최철규가 정말 여유롭게 오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매제라면 저 말을 듣고 정말 여유롭게 올지도 모르겠네.’
조청우를 떠올린 최철규는 속으로 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고, 윤기 역시 서재에서 책 하나를 꺼내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자기 발전.
아무리 재능을 타고났어도 꾸준히 노력을 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윤기였고, 최철규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나는 고작해야 100대 그룹 안쪽에 겨우 드는 그룹에서 대리를 하던 녀석이지. 계속 공부해야 해. 안 그러면 도태될 거야.’
최철규는 윤기가 와이케이 백화점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점점 더 윤기 주변이 뛰어난 인재들로 가득 찬다는 이야기.
당장 페르난데즈만 봐도 최철규가 상상한 것 이상의 능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오자마자 백화점의 외장을 어레인지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레인지시켜 놓았고, 내장 공사 역시 7층을 기준으로 두고 봤을 때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을 보는 기분이 들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김정선이 운영하는 건설 사무소의 직원들이 페르난데즈의 밑에서 쌓고 있는 숙련도 역시 굉장했다.
비록 페르난데즈만큼은 아니더라도 미니 백화점을 비롯한 근처 상권 시설 건설에 있어서 이들의 능력은 그야말로 ‘역군’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아마 페르난데즈도 이직을 하지 않는 이상 비서급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겠지. 그전에 나는 내 토대를 더욱 단단히 굳히고, 더 높이 쌓는다……!’
속으로 이를 악문 최철규의 집중력은 그야말로 놀라운 수준이었고, 류근태가 들어오고 나서도 그 집중력은 한동안 이어졌다.
딱!
눈앞에서 들려오는 손가락 튕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린 최철규가 ‘핫’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번쩍 들었다.
“최 실장님, 집중력이 정말 대단한데요? 저 온 지 10분 지났어요.”
씨익 웃는 류근태의 표정과 함께 시계를 본 최철규는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아, 죄송합니다.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어떤 책을 보고 계신 거죠?”
류근태의 말에 최철규는 책의 표지를 보여 주었고, 류근태는 그 순간 ‘나도 저걸 사서 봐야겠군.’이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자리에 앉았다.
기본적으로 류근태와 최철규는 동반자 관계이면서도 적절히 경쟁해야만 하는 관계였으니까.
“류 비서, 무언가 보고해야 할 내용이 있나요?”
윤기의 말에 류근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삼촌을 통해서 들은 얘기인데 여의도 쪽에 몇 달 전부터 백화점 하나가 건설 중이었다고 합니다.”
류근태의 말에 최철규는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날 뻔했다.
고급 백화점의 선두 건설은 와이케이 백화점의 정신과도 같은 것인데, 여의도에 다른 백화점이 생긴다면 그 정신에 흠집이 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철규는 윤기가 생각보다 평온한 태도였기에 가까스로 표정 관리를 하며 조용히 윤기의 말을 기다렸다.
“다른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가 봐요?”
“그렇습니다.”
류근태의 대답처럼,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 중에는 현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와이케이 백화점 같은 경우에는 한 번 온 사람이 계속 오는 경향이 있어서 정보 유출이 거의 없지만, 다른 공사장 같은 경우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정보를 흘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번 같은 경우도 와이케이 백화점 공사장으로 온 신입 중 한 명이 ‘여의도에도 백화점이 건설 중이던데~.’ 하는 식으로 썰을 풀다가 김정선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아마 무시해도 좋을걸요?”
“그, 그렇습니까?”
류근태는 예상치 못한 윤기의 말에 말을 잠시 더듬었다.
“네. 사실, 이미 알고 있었거든요.”
“예?”
최철규는 속으로 류근태가 고마웠다. 자신이 내야 할 소리를 대신 내주는 느낌이었으니까.
“두 달 전인가, JSD가 영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연락이 왔어요. 여의도에 백화점이 건설되고 있는데, 대책을 세우지 않아도 되겠느냐고요.”
“아……!”
“사실 별로 말할 ‘거리’도 아니라서 둘에게는 말을 안 했어요. 그 백화점의 투자처나 재정 상황을 봤을 때 오래가지는 못할 것 같았거든요.”
“회장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여의도 백화점에 대해서는 우선권을 미뤄 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류근태와 최철규의 앞에서는 간략하게 말을 한 윤기였지만, 사실 윤기는 여의도에 생기는 백화점이 얼마 안 가서 망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회귀 전 인생에서 말만 백화점이지 사실상 복합 상가로 변한 모습을 본 적이 있었으니까.
애초에 윤기는 한국 사회에서 마지막까지 생존하는 백화점들이 어떤 것들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백화점들은 와이케이 백화점보다 몇 년이나 지나야 출범이 될 테고, 출범이 된다 하더라도 지금의 인생에서는 신군부가 유지되는 동안 각종 제한을 겪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여의도 쪽의 백화점 말고 다른 안건은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류근태의 보고에 윤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둘을 부른 목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라, 두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도 제 밑에서 오래 일했잖아요?”
말을 들은 류근태와 최철규가 동시에 다양한 의미를 담은 웃음을 지었다.
멋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자부심도 담겨 있는 그런 웃음 말이다.
“류 비서, 류 비서는 그동안 사 놓은 주식이나 땅들이 가격이 잘 오르고 있나요?”
류근태가 고개를 숙였다.
“사장님 덕분에 나중에 제 아들이 최소한 은수저는 잡을 것 같습니다.”
“아직 결혼도 못 했잖아요. 슬슬 결혼 생각해야죠?”
“에이,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사장님을 최대한 보필하고, 결혼은 다음으로 생각하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윤기가 잠시 ‘엘레아노’를 생각하고는 이내 ‘안 되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저 때문에 결혼을 못 하게 할 수는 없죠. 저도 좋은 혼처가 있으면 찾아보도록 할게요.”
윤기의 배려에 류근태는 ‘흐흐’거리는 소리와 함께 뒤통수를 긁었고, 최철규조차 그 모습에 웃음을 흘렸다.
“작은아버지는 류 비서보다는 일한 기간이 적어서 아마 이득을 볼 여지가 없었을 거예요. 청계천 주변에 땅을 사 놓은 것도 없고, 아마 주식도 살 만한 게 뭔지 전혀 모르는 상황이죠?”
최철규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땅은 못 샀지만, 류 비서가 미국 주식을 살 때마다 나에게 귀띔을 해 주고 있어서 조금씩 이득을 보고 있어.”
측근 둘이서 무한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적당한 협업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윤기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하지만, 그렇게 번 돈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으로 돈을 번 것들이고, 와이케이 백화점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기 전에 둘에게 지금까지 일한 중간 보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윤기의 말에 류근태와 최철규 모두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현재 이곳에는 오로지 두 명뿐.
페르난데즈도 없고, 조청우도 없다.
그야말로 윤기가 자신의 왼팔과 오른팔은 눈앞의 두 사람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얘기다.
물론, 지금까지 그게 당연하다고 믿으면서 일해 온 두 사람이었지만, 상사의 입에서 직접 그 말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감동을 주는 일임에는 분명했다.
“회장님이 저희를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 있다면 그건 그룹 비서실에서 파견 명령을 받은 겁니다.”
최철규 역시 질세라 말을 이었다.
“나도 그냥 회장님이라고 부를까? 어쩐지 그렇게 부르고 싶은 기분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윤기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사석에서야 적당히 편한 관계가 서로 좋지 않겠어요? 제가 나이를 많이 먹으면 혹시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제가 둘에게 주고 싶은 중간 보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