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68)
#68화 롸끈한 대우 (3)
탁!
최철규가 상자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윤기가 상자를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에 어지러이 던져진 한과들, 상자 안에 있는 만 원짜리 지폐 100장.
언뜻 보면 뇌물을 받다가 적발된 관리자의 모습이었지만, 윤기는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는 픽 하고 웃었다.
“작은아버지, 오늘도 주머니가 쏠쏠해지셨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이렇게 갖다 바치는 데 내 입장에서야 고맙지.”
너무나 평화로운 분위기.
그도 그럴 것이 윤기는 뇌물 수수를 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1차적으로 뇌물을 거절하지는 말라고 지시를 내려놓았다.
뇌물을 바치는 녀석들은 사업에 있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부류.
그런 만큼 뇌물을 거절당하면 어떤 일을 벌이지 절대 알 수 없는 종족들이었다.
그렇기에 윤기는 뇌물을 받게 될 경우, 자신에게 보고만 한다면 전부 가져도 좋다고 류근태와 최철규에게 미리 지시를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만약 보고를 받았을 때, 뇌물이 너무 위험한 분야다?
그러면 윤기는 뇌물의 반환을 지시했고, 최철규와 류근태 역시 군말 없이 뇌물을 반환했다.
예전 같은 시대라면 도청이나 도촬 때문에 이러한 방법이 위험했겠지만, 현재 세대는 80년대 초반.
뇌물을 받았다 하더라도 받은 적이 없다고 하면 그만일 뿐이다.
이 시대의 뇌물 수사는 뇌물을 받고 무언가 혜택을 줬다면 문제가 생기는데, 아까 김순호만 보더라도 뇌물은 뇌물대로 바치고 호구가 되었으니, 추후에 뇌물과 관련해서 경찰 신고를 하더라도 와이케이 백화점이 손해 볼 일은 없다.
더군다나 와이케이 백화점과 신군부의 관계를 생각한다면 김순호가 안기부에 끌려갈 가능성까지도 생기는 것이다.
갑자기 통장에서 돈이 왜 사라졌냐고 압박하면서 혹시 대북 송금을 한 것이 아니냐고 하면 그만이니까.
“불법적인 방법을 써서 이득을 보려고 하는 녀석들의 돈을 빼내는 거야 정말 쉬운 일이죠. 받고 안 들어주면 되니까요.”
“그것도 우리니까 가능한 거지만 말이야.”
윤기는 최철규의 말에 다시 웃음을 지으며 최철규의 앞자리에 앉아 한과 세트를 집어 들었다.
“더럽게 맛없네요. 어디 가게에서 한 1~2년은 묵은 걸 가져온 모양인데요?”
“그걸 알고 산 건 아니겠지. 판 쪽이 조용히 판 걸 테니까.”
“하긴, 가정주부가 상인한테 한 마리 더 달라고 하면서 통에서 멋대로 고등어 한 마리 더 꺼내고, 상인은 국산 생고등어라고 속여서 수입 냉동 고등어를 팔고, 다시 상인은 다른 가게에서 바가지를 쓰고, 뭐 경제 세계란 이런 거죠.”
[경영에서 중요한 건 도덕보다도 식구 챙기기다.]한번 노선을 정한 만큼 윤기는 이러한 생각을 바꿀 의향이 전혀 없었고, 덕분에 윤기 주변 사람들은 차곡차곡 윤기에 대한 충성심을 쌓아나가고 있었다.
당장 건설 사무소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는 것만 봐도 충분히 증명된 사항이니까.
“그건 그렇고, 윤기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씀하세요.”
“네가 지시를 내린 거라 별말 않고 수행하고 있기는 한데, 초고가 브랜드를 너무 미니 백화점에 넘겨주는 거 아냐? 물론 모든 점포가 아니라 실세들의 점포에 넘겨주는 것이기는 한데, 이렇게 하다가는 본 백화점에서는 하나도 못 팔겠어.”
최철규의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미니 백화점의 숫자.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대한 쇼핑 단지를 만들기 위함이었기에 대부분 중저가 품목을 출하하는 것이겠지만, 개중에는 분명히 명품을 취급하게 될 곳도 있었다.
그러한 점포 숫자에 초고가 브랜드에 대한 예상 수요를 생각해 보면, 본 백화점으로 넘어올 수요는 결코 많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최악의 경우 제로가 될 수도 있었으니까.
“일부러 그렇게 하는 거예요.”
“엥? 일부러?”
다소 멍청한 소리를 낸 최철규는 머릿속으로 생각을 잠깐 정리했다.
‘본 백화점에서 명품을 팔 때의 매출이 100퍼센트라면, 미니 백화점에 출하된 명품이 팔릴 때의 매출은 40퍼센트인데, 너무 차이가 크지 않나?’
하지만 이어진 윤기의 말에 최철규의 의문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와이케이 백화점에 초고가 브랜드가 있다는 것만으로 사러 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고객들이 물건을 사러 올 유인이 별로 없긴 하네.”
“그렇죠? 하지만 실세들의 친인척들에게 초고가 브랜드를 출하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왜냐하면, 초고가 브랜드가 권력의 중심부와의 소통 창구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제야 최철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는 중고가 브랜드를 실세들에게 출하할 줄 알았거든. 그걸 소통 창구로 삼게끔 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초고가 브랜드는 어디까지나 본 백화점의 프리미엄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최철규가 JSD를 설득할 때, 친인척들에게 중고가 브랜드를 우선 출하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설득을 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런 의문을 가진 것이 아니었다.
“조금 핀트가 엇나가셨었네요. 저는 오히려 초고가 브랜드를 넘겨줄 생각이에요. 일단 초고가 브랜드가 권력층과의 소통 창구로 쓰이기 시작한다면, 어느새 대부분의 재벌들이 초고가 브랜드를 하나 이상씩 들고 다니게 될 거예요. 왜냐하면, 그 브랜드를 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나는 누구누구와 친하다.’라는 증표가 될 테니까요.”
“아……! 각 미니 백화점을 브랜드 단위로 구분을 지은 게 아니라, 브랜드의 품목 단위로 구분을 짓게 한 이유가 그거구나!”
“그렇죠. 어떤 장군의 친인척 가게에서 사면 핸드백을 가지게 될 테고, 어떤 장군의 친인척 가게에서 사면 시계를 가지게 될 테죠. 그렇다면 또 다른 효과를 가져와요.”
“뭔데?”
“A라는 장군의 물건을 샀는데, A 장군과 친밀한 B 장군의 물건을 안 가지고 있다? 이건 아킬레스건이 되겠죠.”
“호오, 그렇다면 물건을 하나둘 더 살 수밖에 없다?”
“바로 그거예요. 갈수록 재벌들은 명품으로 온몸을 도배할 테고, 그러한 시류는 조만간 중산층에게까지 퍼지게 되겠죠. 그리고 서민층들은 자신들의 임금 수준에 맞는 괜찮은 물건들을 살 테고요.”
“세상에…….”
“그래서 현재 제일 방직 쪽의 공장 규모를 늘리고 있어요. 이건 모르셨죠?”
“뭐? 진짜?”
“네.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 낼 순 없지만, 명품 브랜드들을 준 독점적으로 취급하는 상표에서 적당한 가격의 품질 좋은 옷을 만든다? 또 하나의 시장을 개척하게 되는 거죠.”
“세상에…….”
최철규는 입을 떡 벌렸다.
지금 윤기가 말한 내용은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망상 정도는 할 수 있는 내용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그 망상을 현실화한다는 점에서 최철규는 등줄기에 닭살이 미친 듯이 돋는 기분이었다.
세상의 그 누가 이런 계획을 입안하고 시행하며, 성공까지 시킨단 말인가.
“어른들의 명품은 신군부의 실세들을 이용해서, 미성년자의 명품은 제가 현재 물밑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죠. 이 추세가 이어지다 보면 분명 소통 창구만을 위해 명품을 구입하지 않는 시기가 와요. 미니 백화점 주인들이 자기가 물건을 판 모든 사람들을 생각하겠어요? 그리고 초고가 브랜드만 명품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그렇지.”
“그러면, 그때 본 백화점에서 특판 활동을 하는 거예요. 세일을 해도 좋고, 다른 이벤트를 열어도 좋겠죠. 그래서 계약서에 몇 가지 조항들을 넣어 놓은 거예요.”
윤기의 말처럼 계약서에는 미니 백화점에 출하되는 특정 품목들은 물량에 따라서 구간별 정산 비율을 다르게 매겨 놓았다.
첫 출하 때는 40퍼센트지만, 추후에는 80퍼센트까지 오르게끔 해 놓은 것이다.
더불어서 가격은 무조건 본 백화점에서 정해 놓은 대로, 세일을 하고 싶다면 본 백화점에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독소 조항이지만, 이 시대에는 충분히 합리적이라 납득될 내용이었고, 계약 당사자들 중 신군부의 친인척들은 신군부의 힘을 믿었기에 도장을 찍었고, 그 외의 사람들 역시 요즘 떠오르는 사업이니 도장을 찍었다.
“가족들 사이에서 네가 아빠고 형이 아들이었어야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닌 거 같다.”
“아빠가 아빠로 계셨으니까 지금의 제가 있는 거죠. 저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들이에요.”
푸근히 미소 짓는 윤기를 바라보며, 최철규는 모처럼 ‘누군가의 행복한 아들’인 윤기의 표정을 보았다.
* * *
“그러니까 이 원과 저 원의 거리를 x라 하면…….”
수학 선생님의 수업이 진행 중인 학교에서 윤기는 수학 교과서와 완전히 동떨어진 책을 보고 있었지만, 수학 선생님은 그런 윤기에게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전교 1등이라서?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다르다.
아무리 윤기가 돈을 써서 수업 시간의 자유를 얻더라도 이따금 교장의 말을 듣지 않는 선생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수학 선생님이 바로 그런 축이었는데, 교장 선생님에게 지시를 받고, 교장 선생님에게서 뒤로 주는 보너스까지 두둑하게 받았음에도 수업 시간 중에 툭하면 윤기를 방해했다.
심지어 윤기가 수학 100점의 전교 1등을 했는데도 그것은 달라지지 않았고, 결국 교장 선생님이 예전 서울대 본고사 수학 시험을 둘에게 치게 하는 데에 이르렀다.
결과는 윤기는 100점 환산 기준 96점, 수학 선생은 81점밖에 맞지 못했다.
이쯤 되면 그냥 내버려 둘만도 한대, 수학 선생은 자신이 학생에게 졌다는 열등감 때문인지 더욱 집요하게 윤기를 귀찮게 만들었고, 결국에는 사복 경찰이 학교를 방문하게 만들었다.
안기부에 끌려갔다가 1시간 만에 돌아온 수학 선생이었지만, 이후로는 절대 윤기를 건드리는 법이 없었고, 덕분에 윤기는 편히 에르메스 촬영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윤기가 보고 있는 것은 모델들이 보곤 하는 개론서와 사진가들을 위한 개론서.
모델이 될 생각도 없었고, 사진가가 될 생각도 없었지만, 이번 촬영이 충분히 이득이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좀 더 심도 있는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윤기야, 이건 무슨 책이야?”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진수였지만, 윤기가 읽는 원서를 읽기에는 역부족했고, 덕분에 원희에게 넘겼다.
“원희야, 이거 책 뭐야?”
“어, 어?”
원희는 깜짝 놀라며 윤기의 책을 슬며시 집어 들었다.
“제목은 ‘피사체란’이라는 뜻 같아.”
“내용은?”
“어……, 내용은…….”
원희는 구레나룻을 통해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더니 책을 진수를 향해 떠넘겼다.
“네가 공부해서 읽어! 이것도 못 읽냐?”
“이게! 지도 못 읽으면서!”
서로 투덕거리는 원희와 진수를 보면서도 윤기는 일부러 에르메스 촬영을 간다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이러한 일들을 직접 말하는 것이 오히려 서프라이즈를 낮추는 결과만 낳을 테니까.
어쩐지 남동생 같은 둘이 툭탁거리며 싸우는 느낌에 윤기는 큭큭 거리며 웃었고, 둘은 그런 윤기를 보며 싸울 힘이 빠졌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방과 후.
윤기는 서재로 또다시 조청우를 불렀다.
“무슨 말을 할지 알죠?”
“헉!”
또다시 테이블 위로 쌓인 책 탑을 바라보며 조청우는 비명과도 같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자, 잠깐. 이번에는 계약이 아니라 촬영을 하러 가는 것 아니었어?”
다급히 말하는 조청우를 향해 윤기가 부처님과도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거야 당연히 부업이죠. 제가 일본에 가는 이유가 그것뿐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