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0)
#70화 버블의 돗자리 (2)
“종훈이를?”
최철호의 말에 차범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잖아? 어차피 종훈이 요새 일본으로 이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네 아들하고 연결 고리 만들어 두면 좋을 거 같은데.”
“흠, 종훈아. 네 생각은 어떠냐?”
서종훈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금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제가 그런 중책을 맡아도 될까요?”
“어차피 너 대학에서 일본어학과에 경영학과 복수 전공했잖아. 거기에 범진이 녀석 밑에서 실무도 배웠고.”
“그렇기는 한데 워낙 중책이라……. 사장님 아드님한테 손해를 끼칠까 봐 솔직히 걱정이 되네요.”
서종훈의 말에 차범진이 서종훈의 등을 한 번 팡하고 내리쳤다.
마치 소닉붐을 일으킬 것만 같은 손바닥이었지만, 당하는 입장 역시 근육근육한 사람이었기에 의외로 ‘윽’ 같은 소리는 없었다.
“자신감을 가져, 임마. 그리고 너 일본 건너가서 평생 와이프 집안에 빌어먹고 살 거야? 너도 네 생활 기반을 만들어 놔야 언제든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거야. 돈 벌지 않는 남자가 얼마나 비참한데. 혹시 기둥서방 노릇을 하려는 건 아니지?”
“그, 그건 절대로 아니죠!”
황급히 고개를 젓는 서종훈을 바라보던 차범진이 다시 윤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 이름은 서종훈이라고 하는데, 31살이야. 못 믿겠지?”
액면가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람이 31살이라는 사실에 윤기는 모처럼 감정을 드러내고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3, 31살이요?”
그러자 사무실에 웃음소리가 터졌고, 차범진 역시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세상에 모태 신앙이라는 말이 있지만, 모태 노안이라는 말이 있다면 이 녀석이 바로 그 표본이지.”
“가만……, 31살이면 30년 전에 자전차왕이라고 불렸다는 건 무슨 소리예요?”
적절한 윤기의 의문에 차범진이 약간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우리하고 같이 있었던 것은 이 녀석이 아니라 이 녀석의 큰형이었거든. 그런데 그 녀석이 사고로 죽고 나서 이 녀석이 자기가 큰형을 대신하겠다면서 우리를 찾아왔어. 원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는데, 우리에게 하드 트레이닝을 받고 나서 형이랑 비슷한 수준은 됐지.”
“아……,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것을 물었네요.”
서종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벌써 9년이나 지난 일인걸. 오히려 이 노안 덕분에 이분들이랑 문제없이 융화될 수 있었던 거니까.”
“그래, 노안도 때로는 복이라니까?”
차범진의 말에 서종훈이 차범진을 흘겨보았고, 그 눈빛에 차범진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크흠! 자, 자! 자세한 설명은 종훈이 네가 윤기한테 해 봐라. 내가 계속 네 일을 미주알고주알 떠들 순 없잖아?”
‘에휴’ 하고 한숨을 한 번 내쉰 서종훈이 윤기에게 조금 더 가까이 왔다.
“그럼, 자리를 옮겨서 둘이 얘기를 해 볼까?”
“저야 좋죠.”
최철호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윤기와 서종훈은 진지한 이야기가 가능한 분위기를 원했기에 조용한 빈 사무실을 찾았다.
* * *
“흡연하시면 담배 태우세요.”
윤기의 말에 서종훈이 고개를 저었다.
“담배를 피우면 근 손실이 일어나서 안 돼.”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서종훈을 바라보며 윤기가 속으로 감탄했다.
‘근 손실이라는 단어를 이 시대에 들을 줄이야. 헬창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나네.’
작은 사무실과 대조적으로 덩치가 큰 서종훈을 보고 있으려니 윤기는 이곳이 어쩐지 꽉 차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만약 이곳에 다른 분들도 같이 들어왔다면…….’
순식간에 꽉 찰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끔찍한 생각이 든 윤기였다.
‘그래도 눈앞의 이분은 다른 사람보다는 근육이 덜 하긴 하네. 다른 분들이 올록볼록한 엠보싱이라면, 이분은 마이너 엠보싱 같은 느낌? 하긴, 다른 분들은 30년을 넘게 몸을 썼다면, 이분은 9년 정도니까.’
이어진 서종훈의 말은 이러한 윤기의 생각을 확인해 주었다.
“사실 예전의 나는 이렇게 좋은 몸이 아니었어.”
“그래요?”
“응. 대학 생활을 하던 중이었는데 형이 교통사고로 먼저 떠났거든. 큰형이 내 학비도 대주고 정말 잘해 줬었는데 그 큰 형이 갑자기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돌아 버릴 것 같더라. 장례식장에서 사장님이랑 다른 분들이 대성통곡하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나눠 봤는데 정말 좋으신 분들이더라고.”
“확실히 유쾌하고 서로 간의 정이 끈끈하신 분들인 것 같아요.”
“맞아. 아무튼, 장례식이 끝나고 내가 그분들을 찾아갔어. 혹시 내가 형의 대신이 될 수 없겠느냐고 말이야.”
“당연히 된다고 하셨겠죠?”
“처음에는 힘들어서 안 될 거라고 하셨는데 내가 하겠다고 우겼어. 처음에는 운동하다가 토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섞여도 아무런 위화감이 들지 않을 정도지. 노안이 도움이 되기는 했네…….”
“그렇다고는 해도 자기가 말을 하는 것과 남이 말을 하는 것은 정말 큰 차이가 있죠.”
정확한 윤기의 말에 서종훈이 무릎을 탁 쳤다.
“맞았어, 바로 그거야.”
“그런데 일본에 이주하실 생각이 들었다는 건 어떤 이야기인가요?”
“아, 그거?”
서종훈이 자신의 뒤통수를 긁기 시작했다.
“사실, 몇 년 전 휴일에 길거리에서 길을 묻는 일본 여자한테 안내를 해 준 적이 있었거든. 그런데 내가 일본어학과라서 말이 잘 통해서 그런지, 그 여자가 나보고 커피를 한 잔 대접하고 싶다고 했어. 그러다 어물쩍 하루 가이드를 해 주게 된 거지.”
“그럼, 그분을 위해……?”
서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반년 뒤에 결혼하기로 일본에 예식장이 잡혀 있어. 그런데 나는 이제 부모님도 안 계시고, 다른 형제들도 다 독립했는데 굳이 한국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일본으로 이주할 생각을 한 거지.”
“로맨티시스트시네요.”
“굉장히 기분 좋은 말인걸? 그냥 연고가 없어서 아내 따라가는 건데 그렇게 포장이 되다니 말이야.”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생활 기반이 한국에 다 있으신데 일본으로 가시게 되면 사실상 데릴사위 하시게 되는 거잖아요. 일본에서 직장은 잡으셨나요?”
서종훈 역시 윤기처럼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내 힘으로 잡은 것은 아니야. 그래도 큰 걱정은 없는 게 내가 일본어가 네이티브 수준으로 가능하고, 경영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장인어른이 자기 밑에서 일을 하면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
“장인어른이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도쿄 근처에 있는 카나가와현에서 작은 규모의 부동산을 하시고 계셔.”
“일본에서 공인 중개사 일을 하시게 되겠군요.”
“아마? 하지만 네 일이 우선이니까. 일본 법인을 운영할 거면, 법인 대표는 누구를 생각하고 있어? 직접 할 생각이야?”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니고 정해 둔 사람이 있어요.”
“누구?”
“아저씨요.”
“아저씨? 설마……, 나?”
서종훈의 얼굴에 경악이 어렸다.
“이상한가요? 아까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셨으니 이런 흐름을 예상하셨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윤기의 말에 서종훈이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아니, 나는 그냥 보조적인 역할만 할 줄 알았거든. 그런데 나를 대표로 앉히겠다니 조금 신기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제 아버지가 괜히 신뢰하는 게 아닌 것 같아서요. 제 입장에서도 아저씨 입장에서도 좋을 것 같은데, 혹시 싫으세요?”
“나야 좋지. 네 아버지가 네 자랑을 얼마나 하시는데.”
“그런가요?”
서종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자세한 이야기는 기밀이라고 말을 안 해 주셨는데,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사업 수완도 좋고, 이런 내용을 계속 들어와서 그런지 난 지금 복권 당첨된 기분이야.”
“실제로 당첨된 복권이에요.”
듣기에는 꽤 당돌한 윤기의 말이었지만, 서종훈은 그 말에서 진심을 느꼈다.
“그러면 난 무슨 일을 하면 돼?”
눈을 반짝이는 서종훈의 말에 윤기가 아주 쉬운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간단해요. 첫 번째는 일본에 법인을 세우는 것. 아마 출판업이 될 것 같은데, 실제 업무를 하지 않아도 법인 취소가 되지 않는 분야면 어디든 상관이 없어요.”
“두 번째는?”
“그 법인을 그냥 유지만 하세요. 월급은 제가 적정한 수준으로 드릴 테니까요. 한 몇 년 정도 그렇게 묵히고 있으시면 본격적인 일을 드릴게요.”
“몇 년 동안 놀고먹어도 월급을 주겠다고?”
“네. 이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아마 아저씨의 장인어른이란 분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장인어른을? 안 될 것은 없지만…….”
의아한 반응을 보이는 서종훈이었지만, 이들의 일본행은 최종적으로 결정됐다.
* * *
“다 외우셨어요?”
윤기의 말에 조청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죽는 줄 알았어…….”
공항에서 만난 조청우의 안색은 그야말로 ‘핼쑥하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고생하셨어요. 이분은 서종훈이라는 분인데, 제 아버지의 경호원이셨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일본에 차릴 법인의 대표가 되실 분이에요.”
“아……, 반갑습니다. 저는 조청우라고 합니다.”
피곤에 전 조청우는 복잡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기에 그저 본능적으로 서종훈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습니다. 서종훈이라고 합니다.”
조청우의 손을 붙잡은 서종훈이 ‘흠’ 하는 소리와 함께 말문을 열었다.
“아무래도 몸에 근육이 부족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피곤하신 거죠. 어떠십니까. 저하고 일본에서 운동을 해 보시는 게.”
“예? 아, 아뇨. 전 지금 무진장 피곤해서…….”
“그러니까 운동을 하시면 그런 피곤함이 싹 사라집니다.”
“으으으…….”
질겁하는 조청우의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윤기는 서종훈을 자제시켰다.
“아저씨, 곧 수속 시간이니까 대화는 비행기에서 하세요.”
“그럴까요?”
“법인 세우기 전까지는 말씀 편히 하세요.”
“아닙니다. 지금부터 미리 적응을 해야죠. 그리고 저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서종훈의 시선은 윤기의 옆에 있는 한 명의 근육남을 향했다.
“아, 그렇지. 이분은 차필규라고, 제 아버지의 비서실장의 아들이에요.”
15mm 반삭에 까만 피부, 거기에 약간 찢어진 눈이 특징인 차필규가 조청우를 향해 공손히 손을 내밀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차필규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아, 저는 조청우라고 합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 23살밖에 안 됐습니다.”
“예? 그, 그래도 될지…….”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 저도 그게 편합니다.”
차필규는 조청우를 향해 미소를 지었는데, 웃을 때 감기는 차필규의 눈은 푸근한 인상을 주었다.
[내 아들이 인상 때문에 취직을 못 하고 있는데, 네 경호원으로 써 주면 안 되냐?]얼마 전 아버지 회사를 나설 때 들은 차범진의 말.
차필규를 직접 만나 본 결과, 무표정일 때의 인상과 달리 속은 굉장히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윤기는 차필규의 고용을 확정했다.
[고맙습니다! 목숨을 바쳐서 지켜 드릴게요!]나이 차이가 10년 정도 나지만, 차필규는 윤기에게 처음부터 존대를 했고, 지금도 조청우를 향해 바로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다만.
“삼촌의 말씀처럼 아무래도 운동을 좀 하시는 게…….”
“으아아악!”
피곤에 전 조청우의 비명이 김포 공항에 울려 퍼졌다.
* * *
“안녕하십니까, 에르메스 재팬에서 과장 직함을 맡고 있는 나카무라라고 합니다.”
듣기 나쁘지 않은 한국말을 구사하는 나카무라는 오돌토돌한 블랙 헤드가 잔뜩 있는 코가 인상적인 40대 일본 직장인이었다.
“반가워요. 저는 최윤기라고 합니다. 외국 친구들은 저를 ‘윤’이라고 부르는데, 부르기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알겠습니다, 윤 님. 혹시 예약해 두신 숙소가 있으십니까?”
“아뇨. 바로 에르메스로 갈 생각이었거든요.”
“그러면,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나카무라와 나카무라가 데려온 수행원들.
이들을 통해 윤기 일행은 꽤 괜찮은 호텔에 방을 잡았고, 이어서 에르메스 재팬으로 향했다.
꽤 널찍한 회의실로 안내된 윤기 일행이 잠시 기다리자, 나카무라가 50대 초반의 남성을 데리고 들어왔는데, 아주 풍성한 머리에 붉은 얼굴이 특징인 사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에르메스 재팬의 홍보 부장 야마다라고 합니다.”
나카무라와 달리 야마다는 나쁘지 않은 영어로 윤기에게 말을 걸어왔다.
“반갑습니다. 저는 최윤기라고 합니다. 외국 친구들은 저를 윤이라 부르니 편히 부르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윤 님.”
잠시 날씨나 올 때 비행기는 편했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본론을 꺼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야마다가 다소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본론을 꺼냈다.
“사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