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일석오조 (1)
“어떤 건가요?”
“음…….”
야마다는 쉽게 말문을 열지 못했다.
뜨거운 커피가 따뜻하게 편할 정도가 되어서야 겨우 열린 야마다의 입에서는 약간 예상외의 말이 나왔다.
“그게……, 원래대로라면 며칠 안에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데, 일이 조금 꼬였습니다.”
“어떻게 꼬였다는 거죠?”
“본사 지시로는 윤 님을 에르메스 재팬의 모델로 쓰라는 내용이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기존 모델이 반발하고 있습니다.”
“모델의 교체야 흔한 일 아니던가요?”
“그게 꼭 흔한 일은 아닌지라…….”
야마다의 반응을 보며 윤기는 기존 모델이 단순한 모델이 아니라 권력이 개입된 모델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회사란 기본적으로 방침을 정하고 있지만, 그 방침을 실행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고용인들의 몫.
고용인이 자기 잇속을 차리기 시작한다면 방침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뭐, 나 같은 경우에는 모델을 꼭 해야겠다는 절박함은 없으니까 말이야.’
애초에 에르메스의 모델이 되는 것 자체가 윤기에게 있어서는 선택지였기 때문에 윤기는 상대의 말을 들어 보고 들어줄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예를 들어서 촬영이 취소된다면, 그걸 통해서 에르메스 본사에 빚을 남겨 두는 식으로 말이다.
“저는 지금 막 도착해서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네요. 자세한 설명을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순진무구한 윤기의 태도에 야마다가 다시 한번 뜸을 들였다.
“으음……, 기존 모델의 반발이 워낙에 크다 보니, 고민이 되기는 합니다.”
“모델이 한 명은 아닌 거죠?”
“아, 반발하는 모델은 한 명입니다.”
에르메스의 모델은 당연히 한 명이 아니다.
전속 모델이 있고, 비전속 모델이 있는데 그중에서 한 명이 윤기에게 특히 반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권력이 있는 녀석이면 내가 모델이 된다고 해서 밀려날 이유가 없을 테고, 그렇다면 내가 모델이 된다는 것 자체에 불만을 느꼈다는 얘긴가?’
어디까지나 추측이었지만 윤기의 추론은 타당했다.
실제로 윤기에게 반발하는 모델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으니까.
“제가 어떻게 해 주셨으면 하는 건가요?”
먼저 본론으로 들어간 윤기를 바라보며 야마다가 또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아주 밥을 한 가마를 짓는구먼.’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 뜸을 들이는 게 아니라, 단지 말하기 껄끄러워서 뜸을 들이는 것이 뻔히 보였기에 윤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야마다에 대한 점수를 깎았다.
“저……, 촬영을 취소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네!’라고 하는 것은 협상의 초보나 하는 실수.
윤기는 일부러 미간을 찡그렸다.
“그런 일이라면 제가 비행기를 타기 전에 알려 주실 수 있는 것 아니었나요?”
“죄송합니다. 내부에서도 계속 토의가 되다가 방금 정해진 거라…….”
“제가 모델이 되는 것은 에르메스 본사에서 정했다는 것은 아시죠?”
“그,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번 취소 지시는 본사에서 내려온 건가요, 아니면 에르메스 재팬의 결정인가요?”
“그게……, 에르메스 재팬의 결정입니다.”
“저는 현재 에르메스 본사와 계약을 한 가지 하고 있는데, 그것은 제가 모델 계약을 해야 완료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촬영이 취소되면 사실상 모델 계약 역시 철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건데, 이것에 대하여 본사에 문의는 해 보셨나요?”
순간 야마다는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 모르고 계셨나요?”
“저기……, 그게…….”
야마다는 고개를 돌려 나카무라를 쏘아보았고, 나카무라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수행원을 쏘아보았다.
‘이야, 내리 갈굼의 원조를 이렇게 보게 될 줄이야.’
군대에서 툭하면 겪어 보았던 상황을 눈앞에서 또 보게 되자 윤기는 착잡하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더불어서 외국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에르메스 본사에서 만난 파비앵과 로랑은 결정권을 위에 돌리는 일은 있어도 책임을 아래에 돌리는 일을 하지는 않았으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일단 확인을 해 보고…….”
야마다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회의실의 문이 갑자기 쾅 하고 열렸으니까.
* * *
얼마나 세게 열렸는지 열린 문이 벽하고 부딪히면서 그 반동으로 다시 닫힐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열린 문을 통해서 170센티 정도의 키를 가진 20대 초반의 청년이 나타났다.
‘누구지? 상황으로 추정하자면 뻔하기는 한데…….’
그 상황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려는 듯, 야마다가 외쳤다.
“와타나베 씨! 들어오시면 안 된다고 제가…….”
“시끄러워!”
큰소리로 외치는 와타나베의 모습을 본 윤기는 눈을 찡그렸다.
‘지독한 뻐드렁니네.’
입을 다물고 있었을 때는 그래도 ‘곱상하다’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외모였지만, 입을 연 와타나베의 외모는 그야말로 괴물이었다.
그야말로 양면의 외모.
하지만 와타나베는 자신의 그러한 외모에 전혀 콤플렉스를 가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표정에서 자부심까지 보이는 것이 와타나베가 자의식 과잉이라는 사실을 윤기는 알 수 있었다.
일본은 뻐드렁니가 귀여움의 상징이야. 나라도 네 조각나서 불완전한 놈들이 불완전한 걸 엄청 좋아한다니까.>
최덕배의 말에 윤기가 속으로 물었다.
‘왜 좋아하는데요?’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한성에서 벼슬아치 할 때, 일본 놈들의 대화를 자주 들었는데, 서로의 뻐드렁니를 칭찬하더라고. 참 신기한 놈들이야.>
최덕배조차도 뚜렷한 이유를 모르고 있기는 하지만, 일본의 뻐드렁니는 학계에서 대략 네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육식을 안 한 기간이 길어서, 잦은 근친혼 때문에, 영양소 중 미네랄이 부족한 환경 때문에, 턱이 작은데 치아가 많은 골격이라.
넷 다 그럴듯한 반응이지만, 두 번째인 근친혼과 같은 경우에는 일본인에게 있어서 대단히 모욕적인 언행이었기에 사실상 금기시되는 발언이다.
물론 일본인에게 금기시되는 발언이 있기에 한국인에게도 금기시되는 발언이 존재하지만 말이다.
“뭐야, 겨우 이런 녀석인데, 일본 광고에 조센징을 넣는다고?”
어눌한 영어지만, 그 의미는 윤기의 귀에 명확하게 박혔다.
조선은 이미 멸망한 지 오래.
한국 사람을 조센징이라고 부르는 일본인은 한국을 아직도 식민지로 평가하는 부류다.
이 쌍놈의 새끼가!>
최덕배 역시 분노했는지 윤기의 주변을 빠르게 부유하면서 노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야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않아? 고작해야 이런 외모의 조센징을 에르메스의 모델로 넣다니. 브랜드 가치 떨어지는 소리 안 들려?”
야마다는 덥지 않은 날씨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하긴,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우니.’
야마다의 시선은 와타나베가 아니라 와타나베의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굉장히 험상궂은 인상에 80년대 일본 학원물에서나 나올법한 리젠트 머리를 하고 있는 둘은 누가 봐도 ‘나 야쿠자요.’하고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부류였다.
‘쯧쯧.’
윤기가 와타나베를 보며 속으로 혀를 차고 있을 때, 윤기의 무반응을 본 와타나베가 신이 났는지 윤기를 향해 더욱 모욕적인 언사를 해 왔다.
“이봐, 조센징. 본토는 2등 국민이 올 곳이 아니야. 좋게 말할 때 얼른 조센으로 돌아가. 그럼, 다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을 듣던 윤기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170센티가 훌쩍 넘어 버린 키.
덕분에 키 170센티의 와타나베를 내려다보는 형국이 되었고, 와타나베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핫!”
자신이 뒤로 물러났다는 사실에 분노한 와타나베는 다시 두 걸음을 걸어 윤기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었고, 그에 맞춰서 야쿠자들 역시 와타나베의 뒤에 더욱 달라붙었다.
하지만.
“물러서.”
윤기가 한 말이 아니라 서종훈이 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윤기의 지시로 앉아 있던 서종훈과 차필규가 윤기의 보호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야쿠자들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나니까 자신들쯤은 주먹 한 방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근육질의 남자들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분을 느낀 것은 와타나베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와타나베는 세 걸음이나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 모습에 윤기는 와타나베가 아닌 야마다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여기 화장실이 어디죠?”
* * *
에르메스 재팬의 화장실.
관리가 매우 잘된 것인지, 안에서는 은은한 향수의 냄새까지 날 정도였다.
물론 향수가 화장실의 기본 냄새를 가리고 있는 것일 뿐이기에 윤기가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는 일은 없었지만.
야, 너는 그런 소리를 듣고 화도 안 나냐?>
잔뜩 심통이 난 최덕배의 말에 윤기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답했다.
‘왜, 화가 안 나겠어요?’
화가 안 나면 왜 그따위로 반응을 한 거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윤기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최덕배였지만, 가슴에 품고 있는 한국인이라는 장작에 와타나베가 말한 ‘조센징’과 ‘2등 국민’이라는 단어가 불을 붙인 게 분명했다.
대추 만져도 소용없어! 지금만큼은 너한테 화낼 거니까!>
‘대추 안 만지는데요?’
너무나 수더분한 윤기의 반응에 최덕배는 순간 의아한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당연히 저도 화나죠. 하지만 그 자리에서 화를 내서 저한테 이득을 볼 게 있을까요? 여기는 일본이에요. 야마다도 일본인, 나카무라도 일본인이라는 얘기죠.’
……?>
아직 흥분한 상태인 최덕배는 윤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화장실에 온 거예요. 그 녀석, 제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두 번이나 뒤로 물러난 게 쪽팔려서라도 지금 화장실로 따라올걸요?’
화장실 방음이 잘되어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기에 최덕배는 문을 뚫고 바깥을 바라보았다.
진짜네……?>
와타나베를 확인한 최덕배는 다시 윤기의 옆으로 돌아와 다소 흥분이 가라앉은 모습을 보였다.
‘그 자리에서 흥분하는 것보다 자리를 옮기는 게 훨씬 나아요. 에르메스에서의 저는 저 혼자만의 평판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거스터와 메릴의 평판도 어깨에 올리고 싸우는 거니까요.’
호오…….>
‘단순히 앞에서 면박을 주고, 금기를 말한다고 해서 이기는 게 아니잖아요? 하긴, 그게 승리라고 한다면 일본인들은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민족이 되겠네요.’
마침내 최덕배가 웃었다.
푸하하핫, 그렇지. 그렇지. 그렇게 따지면 일본인들은 정신승리의 민족이니 단 한 번도 진적이 없는 민족이 되겠구먼.>
‘어디까지 왔어요? 그놈?’
코앞까지.>
최덕배의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윤기는 일부러 소변기 앞에 서서 자세를 잡았다.
직후, 와타나베가 화장실의 문을 열었고, 와타나베는 화장실의 금기를 범했다.
바로 소변기가 여러 개 있는데도 윤기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존나 작네.”
심지어 남자의 금기마저 저질렀다.
윤기의 것을 바라본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의 것이 더 작은 데도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윤기는 결코 작지 않다.
성장의 여지가 있는 10대 초반의 소년과 성장을 마친 20대 초반의 청년.
누가 봐도 윤기의 승리이건만, 역시 와타나베는 정신 승리를 근본으로 삼는 민족의 후예다웠다.
“내가 특별히 신사답게 이야기를 할 테니까, 좋게 말할 때 한국으로 돌아가. 일본은 너 같은 녀석이 밟을 곳이 아니니까.”
“까고 있네.”
다른 사람의 앞이라서 지금까지 참고 있었을 뿐, 윤기는 입담과 깡에서 지면 모든 게 지는 노가다에서 오랜 기간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뭐, 뭣?”
단 네 글자로 당황한 와타나베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윤기를 향해 쌍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어디서 더러운 조센징 주제에……, 너 따위가 감히 대일본 제국의 화장실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불경인지 모르는 거냐?”
윤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휴, 뻐드렁니가 얼마나 심한지 영어를 알아듣지도 못하겠네. 아빠가 삼촌인 녀석이라 그런가?”
순간 와타나베의 주먹이 윤기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