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2)
#72화 일석오조 (2)
야! 피해!>
최덕배의 외침과 동시에, 윤기는 손바닥으로 관자놀이를 보호함과 동시에 일부러 화장실 벽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쳤다.
원래 와타나베가 기대한 것은 하반신의 일부를 드러낸 채 볼썽사납게 넘어진 윤기의 모습이었겠지만, 윤기는 어느새 지퍼를 올린 상태였었기에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윤기에게 한 방 먹였다는 사실이 변하지 않은 만큼 와타나베는 윤기를 향해 다시 비웃음을 흘렸다.
“어디서 조센징 주제에 감히……. 허약한 조센징 주제에 감히 일본인한테 대드니까 이렇게 되는 거다.”
이 씹새가 어른이 아이 때려 놓고 자부심 가지는 거 봐라? 야, 너 뭐 해! 일어나서 한 방 먹여!>
하지만 윤기는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와타나베를 더욱 도발했다.
“이름에 냄비가 들어가서 그런가, 정말 자주 흥분하는 녀석이네. 그 이름, 네 부모가 지어 준 거지? 삼촌이 지어 줬냐, 아빠가 지어 줬냐? 아, 둘이 똑같은 사람이니 같은 사람이 지어 준 거겠네.”
와타나베는 진짜로 눈이 돌아갔다.
방금은 가까스로 참았지만, 실제로 와타나베의 부모는 원래 남매였기 때문이다.
부모가 꽤 힘이 있는 집안이라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상황에 서류를 조작해서 서류상으로 문제없게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와타나베는 어쩌다 보니 부모님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역린이 자신이 하찮게 생각하는 조센징에 의해 건드려졌으니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하지만 이러한 분노는 윤기에게 있어서 바라는 바였다.
물론 와타나베 집안에 대한 사실을 알고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죽어! 죽어! 죽엇!”
괴성을 지르는 와타나베가 벽을 등지고 쓰러진 윤기를 향해 있는 대로 발을 내질렀고, 덕분에 윤기의 옷에는 와타나베의 발자국이 진하게 찍히기 시작했다.
‘운동 더럽게 안 하나 보네.’
어쨌든 모델이기 때문에 와타나베는 굉장히 마른 축에 속했다.
남자 모델은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근육질의 모델이 있고, 나머지 하나는 기아형 모델이 있다.
와타나베는 그중 후자.
그러니 발길질에 제대로 힘이 실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크악! 악! 아아악!”
윤기는 무지하게 큰 비명을 지르며 짐짓 괴로운 표정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동시에 계속해서 와타나베의 역린을 건드렸다.
“아빠가 삼촌인 게 진짜구나!”
“이런 개자식이!”
와타나베의 괴성과 윤기의 괴성, 그리고 화장실을 울리는 발길질 소리까지.
이러한 소리는 화장실의 방음을 뚫고 복도로 빠져나가기에 충분했고, 마침내 회의실에 있던 야마다를 비롯한 일행들을 불러오는 데에도 충분했다.
“이런 개자식, 어디서 감히…….”
문이 열렸을 때 와타나베가 한 말은 문을 연 사람들에게 똑똑히 들렸고, 동시에 윤기는 일부러 기절한 척 눈을 감았다.
“윤기야!”
서종훈은 눈이 뒤집혀 화장실 안으로 뛰어들었고, 와타나베를 거의 뒤로 던지다시피 하고는 윤기를 안아 들었다.
“으아악!”
졸지에 뒤로 던져진 와타나베는 야쿠자들에게 부딪쳐 함께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그것에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 큰일 났다!”
야마다의 외침. 나카무라 역시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는 윤기를 안아 든 서종훈을 향해 달려갔다.
“의, 의무실로…….”
“닥쳐! 의무실은 무슨 의무실! 병원에 가야 할 거 아냐!”
“하, 하지만 응급 처치를…….”
“닥치라고!”
서종훈이 에르메스 재팬을 빠져나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찰칵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찰칵찰칵!
연이어 두 번 더 울린 셔터 소리.
그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라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다, 당신, 지금 뭐 하는…….”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야마다의 목소리에 조청우는 대답하는 게 아니라 차필규에게 카메라를 넘겼다.
끄덕!
고개를 끄덕인 차필규가 엄청난 속도로 에르메스 재팬을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서종훈 역시 그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조청우 역시 최선을 다해 뛰었다.
“자, 잡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와타나베가 외쳤지만, 세 명은 모두 건물을 빠져나간 후였다.
* * *
에르메스 본사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일본 지사에다가 모델 촬영을 하라고 어렵게 잡은 모델을 보내놨더니 지사 건물에서 폭행 사건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그 폭행의 주범이 제3의 인물도 아니고, 일본 지사의 모델이니 그 파장은 더욱 컸다.
프랑스에서 파비앵이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 정도였으니까.
“윤 씨는 괜찮은 겁니까?!”
에르메스 재팬이 아니라 윤기가 입원한 병원으로 먼저 달려온 파비앵이 안쪽의 상황을 보고는 헛바람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군복을 입고 있는 덩치 큰 미군들의 모습.
‘미군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파비앵은 거스터를 보고는 그야말로 기절할 뻔했다.
“거, 거스터 님…….”
거스터와 에르메스가 직접적인 관계는 없더라도 메릴이 누구의 손녀인지는 에르메스 본사에 잘 알려져 있었기에 파비앵의 수염이 덜덜 떨렸다.
“내 예비 손녀사위가 폭행을 당했다기에 왔더니 이것 참…….”
파비앵은 그야말로 눈앞이 아찔해졌다.
거스터가 대놓고 윤기를 ‘예비 손녀사위’라고 인정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옆에서 훌쩍이고 있는 메릴을 보니 파비앵은 그야말로 지옥에 떨어진 기분이었다.
“파비앵,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예요. 다른 곳도 아닌 에르메스가 윤기를 이렇게 만들다니……. 제가 앞으로 윤기 얼굴을 어떻게 봐요…….”
에르메스 본사는 그야말로 억울한 일이었지만, 파비앵은 메릴 앞에서 그런 말을 도저히 꺼낼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따가 지사로 가서 자초지종을 확인해서…….”
“확인하고 말고 할 게 뭐가 있어요!”
메릴은 사진 세 장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덕분에 사진들이 바닥에 흩어졌는데, 한 장, 한 장 주울 때마다 파비앵은 그야말로 눈앞이 핑핑 도는 것을 느꼈다.
한 장은 서종훈이 윤기를 안아 들고 있는 사진, 다른 한 장은 야쿠자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있는 와타나베의 사진,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모두가 보이는 사진이었다.
누가 봐도 와타나베가 윤기를 구타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윤기의 몸에 찍힌 발 도장 때문이었다.
발 도장과 와타나베가 신은 신발의 모양이 일치했으니까.
“아아아…….”
파비앵이 손을 덜덜 떨고 있을 때, 거스터가 조용히 파비앵에게서 사진을 회수했다.
“혹시 모르니 이건 내가 가지고 있도록 하지.”
“저……, 사진을 저한테 주시면 그걸 토대로 본사에…….”
“자네는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인 줄 아는가!”
고함을 치는 거스터의 모습에 파비앵의 목이 거북이처럼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거스터의 말처럼 파비앵은 경우에 따라 사진을 파쇄할 생각이 안 든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장 나가!”
결국, 파비앵은 병실에서 쫓겨나 일단 에르메스 재팬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고, 잠시 뒤, 거스터가 데려온 미군들 역시 병실 밖에서 대기하게 되었다.
“윤기야, 눈 떠도 돼.”
쾌활함이 가득한 메릴의 모습에 윤기가 눈을 떴다.
“다들 연기가 아주 수준급인데요?”
현재 병실에 있는 것은 메릴과 거스터뿐만이 아니라, 서종훈과 조청우, 그리고 차필규까지 있었다.
한마디로 이들 모두가 윤기 각본의 연극을 아주 훌륭히 마쳤다는 얘기다.
“난 진짜로 걱정했잖아. 다친 줄 알고…….”
메릴이 고운 손으로 이마를 쓰다듬어 주자 윤기가 그 손길에 눈을 감으며 조용히 답했다.
“사실 위험하긴 했어. 그 녀석의 첫 타가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왔거든.”
“뭐?”
순간 메릴이 깜짝 놀라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윤기는 이마가 빳빳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뭐, 막았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 녀석이 흥분을 잘하는 타입이라서 일이 쉬웠어. 이번 일을 잘 이용하면 메릴, 네가 더 이상 에르메스의 전속 모델로 활동할 필요는 없을 거야.”
윤기의 말에 메릴이 감동적인 표정을 지었다.
“나를 생각해서 이렇게까지 한 거야?”
“사실 나 때문에 에르메스 전속 계약을 맺은 게 미안했거든. 선택은 오로지 메릴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윤기야…….”
“그리고 부수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녀석들이 알아서 경질될 거야. 최소한 와타나베 녀석은 끓어넘친 냄비가 가스레인지에서 퇴출당하는 것처럼 에르메스에서 퇴출당하겠지.”
“그야말로 일석이조로군.”
거스터의 말에 윤기가 웃었다.
“일석삼조죠. 에르메스에게 마음의 빚을 만들어 놨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이던 거스터는 윤기에 대해 더욱더 신뢰를 가졌다.
‘이런 녀석이라면 나중에 안심하고 메릴을 맡겨도 되겠어.’
사실 이번 일은 윤기가 혼자만 알면서 추진할 수도 있었다.
이들이 연기를 할 필요가 없었단 얘기다.
하지만, 윤기는 이들에게 모든 패를 공개했고, 덕분에 강한 신뢰를 얻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니 사실상 일석사조.
거스터는 물론이고, 서종훈과 조청우, 그리고 차필규는 자신들이 모실 사람이 심계가 뛰어나다는 사실에 본능적으로 충성심이 한층 더 올라갔다.
“이번 일의 일등 공신은 고모부세요. 그 상황에서 사진을 찍은 덕분에 더욱 일이 확실해졌거든요.”
윤기의 말에 모두가 조청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손뼉을 쳤다.
“사실 외국은 처음 와 보는 거라서 여행 느낌 좀 낼 겸, 목에 카메라를 걸고 있었던 거거든. 그런데 상황을 보니까 어쩐지 증거가 필요할 것 같아서 사진을 찍은 거야.”
“역시 사법 연수원 성적 우수자!”
윤기가 엄지를 치켜세우자, 조청우는 슬며시 웃으며 부끄러운지 뒤통수를 긁었다.
“나중에 보너스 기대하세요.”
포상이 함께하는 칭찬에 조청우의 얼굴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졌고, 덕분에 분위기는 한층 더 무르익었다.
“아마 에르메스에서 연락이 오는 것은 내일이 되겠죠. 그때까지 잠시 쉬고 싶은데 다들 나가 주실 수 있나요?”
적절한 타이밍에 퇴실을 부탁한 윤기의 말에 모두가 병실을 나섰다.
물론, 메릴만 빼고.
거스터조차도 별말 없었기 때문에 1인 병실에는 윤기와 메릴만이 남게 되었다.
“보고 싶었어.”
윤기의 말에 메릴의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했다.
“저번에 만난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래서, 메릴은 나 안 보고 싶었어?”
“그, 그럴 리가!”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기 힘들었을 텐데 고생했어. 그리고 고마워.”
“고맙긴……, 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
평상시의 메릴이었다면 서종훈, 조청우, 차필규가 있는 앞에서 절대 아까와 같은 연기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힘은 메릴로 하여금 콤플렉스를 극복하게끔 만들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파비앵조차 메릴의 행동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해 내지 못한 만큼, 메릴의 연기는 그 효과가 엄청나게 컸다.
에르메스의 전속 모델의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졌다는 사실을 본사에 알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면 뽀뽀해 줘.”
“응?”
순간 메릴이 당황했다.
“뽀뽀해 줘. 지금까지 기습 뽀뽀만 했잖아. 열 살 때도, 그리고 얼마 전에도. 그런 것들은 여운이 남지 않는다고.”
“아, 아니. 그건…….”
얼굴이 발그레해지다 못해 발갛게 물든 메릴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선을 여기저기로 마구 돌렸다.
“뭐든지 다 해 줄 수 있다더니 거짓말이었나 보네.”
짐짓 삐진 표정을 짓는 윤기를 본 메릴이 울상을 짓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침대에 누워 있는 윤기의 입술을 향해 상체를 숙였다.
그리고 침묵.
꽤 긴 침묵 속에 윤기는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