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it turns out, 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RAW novel - Chapter (73)
#73화 일석오조 (3)
이틀의 시간이 지나자 에르메스 재팬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윤기는 병원에서 메릴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야마다가 찾아왔을 때는 짐짓 심신이 피로한 기색을 보였다.
“저……, 몸은 괜찮으신가요?”
“아, 예…….”
굉장히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기의 대답에 야마다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의 관리가 어설픈 바람에 정말 큰 피해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용서를 거론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번 일은 어떻게 마무리 짓기로 하신 거죠?”
당장 당사자인 와타나베가 찾아오질 않았는데, 용서를 거론하는 야마다의 모습에 윤기는 쓴웃음이 나왔지만 그걸 내색하지는 않았다.
“아……, 본사에서 ‘일단’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와타나베 군과의 모델 계약을 해약하는 것으로요.”
“그렇군요.”
윤기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때, 야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면 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네요.”
윤기는 야마다가 자신을 유약하게 보는 정도가 지나친 듯싶었기에 대화의 완급을 조절했다.
“예? 아니, 저기……, 그게…….”
상상도 못 한 윤기의 대답에 야마다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그냥 하려던 말을 꺼냈다.
“죄송합니다. 그……, 본사의 지침은 그렇게 내려왔습니다만, 아직까지는 교섭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어서……. 와타나베 군도 사과를 하고 싶어 하는데 이번 일, 한 번 재고해 주실 수 없으십니까?”
윤기는 야마다를 쳐 내야겠다고 강하게 마음먹었지만, 대화 자체는 계속 이어나갔다.
“재고라니요?”
“윤 님께서 허락만 해 주신다면 이번 일을 좋게 끝내고 본사에 연락하여 와타나베 군의 모델 해약을 취소했으면 합니다. 와타나베 군이 아직 젊어서 치기 어린 행동을 한 것인데, 어쩌다 저지른 실수로 젊은이의 인생을 망치기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윤 님도 나중에 혈기 어린 나이가 되시는 날이 올 테니까요.”
“아니, 이 미친 새끼가 뚫린 입이라고 어디서 입으로 오줌을 싸?”
차필규가 성질을 내자, 서종훈이 그런 차필규를 노려보았다.
윤기에게 별다른 말을 듣지는 않았지만, 저번 경호 미스는 엄청난 실수.
서종훈은 자신이 경호원이 아니라 비서 역할로 왔다고 생각해서 차필규를 가이드하지 못했고, 차필규는 경험이 부족하여 화장실까지 따라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서종훈은 윤기가 입원해 있는 동안 차필규에게 자신의 경호 경험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차필규가 또 미스를 저지른 것이다.
경호는 이렇게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차필규!”
“으……, 죄, 죄송합니다. 너무 화가 나서…….”
윤기가 일본어를 할 줄 알았다면 차필규가 이렇게 흥분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윤기와 야마다의 대화가 서종훈의 통역을 통해 행해지고 있었기에 주변 사람도 들을 수 있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물론, 윤기가 그냥 놔둔다는 것 자체가 괜찮다는 방증이기는 하지만.
“윤기야, 미안하다.”
“아뇨, 계속 통역 부탁드릴게요.”
고개를 끄덕이는 차필규의 행동과 함께 윤기와 야마다의 대화가 다시 이어졌다.
“사과도 하러 오지 않은 녀석을 용서하라는 것이 상당히 신기하네요. 일본은 원래 그런가요?”
“아, 아닙니다. 오늘 찾아온 이유도 사과 자리에 한 번 찾아와 주셨으면 해서 온 겁니다.”
“사과를 하러 오는 게 아니라요?”
“와타나베 군이 굉장히 미안해서 찾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 더 격식 있는 자리에서 사과를 하고 싶어 하고 있거든요. 부디 한 번 만남을 해 주시면…….”
윤기는 야마다가 보라는 듯 어이없다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얼마나 진정 어린 사과를 하는지 두고 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얼굴에 화색이 돋은 야마다는 몇 번이고 감사의 말을 한 뒤, 병실을 떠났다.
“윤기야, 진짜 만날 거냐? 내가 일본인들과 교류를 자주 하기는 했지만, 저거 정말로 미안해서 그러는 게 아니야.”
서종훈의 말에 윤기는 픽 하고 웃음을 흘렸다.
“당연히 저도 알죠. 하지만, 여지라는 걸 남기지 않기 위함이에요.”
“여지?”
“네. 내일 제가 그 자리에 나가야지, 안 나가면 또 본사에 징징대겠죠. ‘우리는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상대가 받아 주지 않았다.’라면서요. 뭐, 본사 지침은 바뀌지 않겠지만, 이참에 확실히 눌러 주는 게 낫지 않겠어요? 벌레를 휴지로 감싸서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휴지를 드는 순간 날아가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은 없으니까요.”
윤기의 표정에 야릇한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 *
야마다가 병실을 떠난 다음 날.
윤기는 요청받은 대로 교토에 있는 최고급 요정으로 향했다.
사과를 하러 병실을 찾아와도 모자랄 판에 교토까지 오라고 하는 대담함에 모두가 놀랐지만, 윤기는 일단은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거기에 가야 추후 계획이 성립되니까.
“야마다, 혹은 와타나베의 초대로 오신 윤 님입니다.”
서종훈의 말에 요정 직원은 접객용 미소를 띠며 요정의 가장 안쪽으로 윤기와 서종훈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꽤 긴 복도가 보이는 장소가 나왔는데, 딱 봐도 그 복도의 끝에는 특별실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여기서부터는 윤 님만 들어오실 수 있습니다.”
복도의 초입에 서 있던 30대 중반의 양복 입은 남자가 서종훈의 앞을 가로막자, 서종훈은 헛웃음을 흘렸다.
“개소리 지껄이지 마,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을 혼자 들여보내서 어쩌려고?”
다소 경직된 표정의 30대 남자는 어울리지 않은 얇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인 통역을 준비해 두었기에 대화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겁니다.”
“헛소리하지 말라니까.”
“죄송합니다만, 요정 방침입니다.”
수평을 달리던 둘의 대화를 끝낸 것은 윤기였다.
“같이 들어갈 수 없는 것 같으니 돌아가죠.”
고민도 없이 뒤로 돌아선 윤기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30대 남자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 알겠습니다! 같이 들어오십시오!”
약간 어눌한 한국말.
윤기는 그런 직원을 보고는 쓴웃음을 흘리며 서종훈과 함께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괜찮을까……?”
“걱정 마세요.”
윤기와 서종훈이 특별실의 문을 열자, 그곳에는 야마다와 와타나베가 앉아 있었고, 그 주변에는 딱 봐도 야쿠자로 보이는 사내 수십 명이 벽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윤 님!”
야마다는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조금 숙였지만, 와타나베는 앉은 상태에서 고개만 살짝 보일 듯 말 듯 숙일 뿐이었다.
“사과를 한다기에 왔는데, 참 대단한 광경이네요.”
“아, 이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냥 어디까지나 병풍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람 좋은 미소를 흘리는 야마다의 모습에 윤기는 어깨를 으쓱하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서종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윤기를 안고 도망쳐야겠어.’
퇴로를 찾는 서종훈의 마음과 달리 윤기는 한껏 여유롭고, 우위에 선 태도로 야마다를 향해 말했다.
“그래서, 사과는요?”
자리에 앉은 윤기의 말에 야마다가 다시 웃음을 흘렸다.
“아아,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조만간 음식이 나올 테니까요. 이곳은 VIP들만 들어올 수 있는 특별실인데 오늘 윤 님을 위해 예약한 겁니다.”
음식 같은 건 전혀 바라지 않았고, 윤기가 굳이 바라는 것이 있다면 사과.
하지만 야마다의 행동은 아까부터 다리 간지러운 사람의 손등을 간지럽히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봐, 음식 아직 멀었어?!”
야마다의 외침에 안으로 음식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내 딱 봐도 맛깔나 보이는 일식이 차려졌다.
“이건 일본이 자랑하는 가이세키 요리입니다. 한번 드셔 보시죠.”
“의사가 당분간 먹는 것을 조심하라고 해서요. 아무튼, 별로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일어나겠습니다.”
순간 병풍이라 생각하라던 야쿠자들의 표정이 굉장히 험상궂게 변한 것과 동시에 와타나베가 비웃음을 흘리는 것이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제대로 사과를 하려다 보니 실수가 조금 있었네요.”
야마다가 말과 함께 자신을 바라보자, 와타나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 뒤, 윤기를 바라보았다.
“이번 일은 정말 유감이야.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는데, 내가 실수한 것 같아.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한번 도와주면 안 될까?”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 거지?”
윤기는 다음 상황이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었지만, 야마다는 매우 화색이 돋으며 윤기를 향해 종이와 볼펜을 내밀었다.
“여기에 서명만 해 주시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릴 겁니다.”
[나 최윤기는 와타나베 군의 해약을 원하지 않는다.]축약하자면 이러한 내용의 각서였기에 윤기는 서종훈의 번역을 듣자마자 코웃음을 치고는 종이를 찢어 버렸다.
“칙쇼!”
와타나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으르렁거리는 표정을 지었고, 야쿠자들 역시 금방이라도 윤기에게 달려들어 온몸을 토막 낼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동시에 서종훈 역시 언제라도 윤기의 몸을 빼낼 시뮬레이션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지만, 이들의 충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입구를 지키던 30대 남성이 모습을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라고! ……헉!”
처음에는 남성을 바라보며 짜증을 내던 와타나베였지만, 뒤에 서 있는 수많은 흑인과 백인을 보고는 그야말로 질겁한 표정을 지었다.
군복을 입고 있는 미군이 특별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으니까.
“빽 오프!!!”
영어로 물러나라고 외치는 흑인 대위의 말에 야쿠자들은 질겁한 표정을 지으며 와타나베의 뒤에 있는 벽에 뭉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군들이 미군 보병의 소총인 M4를 자신들을 향해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여기 있는 야쿠자들을 다 죽이면 저는 처벌을 받을까요, 안 받을까요?”
서종훈이 통역을 하지 않자, 윤기는 서종훈을 바라보았고, 서종훈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시 통역을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지만, 와타나베는 그런 와중에도 지지 않으려 애썼다.
“흐, 흥! 그런 협박은 안 통해!”
“협박이라니. 너희 같은 버러지는 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 줄까?”
윤기가 오른팔을 하늘과 수평으로 세우자 미군들이 철컥 소리를 내며 야쿠자들을 향해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방아쇠가 당겨지는 순간 야쿠자 한 개 조가 그대로 몰살당할 상황.
그러자 야마다는 그만 바지에 오줌을 지렸고, 나머지 야쿠자들 역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았다.
[유루시떼구다사이!!]용서해 달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야쿠자들을 바라보며 윤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게 웃었다.
“이봐 와타나베. 넌?”
윤기의 말에 야쿠자와 야마다가 달려들어 와타나베를 무릎 꿇리고 이마를 바닥에 찧도록 만들었다.
그런 와타나베의 뒤통수 위에 윤기가 발을 올리며 지그시 힘을 가하자 와타나베는 모멸감에 겨워 몸을 덜덜 떨었지만, 윤기는 오히려 그런 와타나베의 반응을 즐겼다.
“넌 벌써 두 개의 스트라이크를 당했어. 세 번째 스트라이크를 당할 때는 너 때문에 팀이 지는 거야. 이해하겠어? 와타나베?”
와타나베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야마다가 다급한 표정으로 대신 대답했다.
“예, 예! 잘 이해했습니다. 절대 다시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야마다의 말에 윤기는 와타나베를 좀 더 밟은 뒤, 뒤통수에서 발을 뗐다.
“그럼, 또 보는 일 없도록 하죠. 야마다 씨?”
환한 미소와 함께 윤기는 특별실을 나섰다.
* * *
“나는 진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
호텔 객실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서종훈의 말에 윤기가 미소를 지었다.
“미리 설명해 드렸잖아요? 와타나베 같은 일본인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라고 말이죠.”
“아니, 아무리 계획을 들었다고는 해도 막상 겪어 보는 것과는 다르지. 당장 안에 있던 녀석들이 너한테 달려들어서 칼빵 놨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나 진짜 네 아버지한테 죽을 뻔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오히려 아버지한테는 죽을 일이 없었겠죠?”
씨익 웃는 윤기의 약간 무서운 농담에 서종훈은 질겁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쓴웃음과 함께 가벼운 한숨을 내뱉고는 윤기를 향해 물었다.
“그나저나 네 인맥이 진짜 대단하구나. 미군까지 동원을 하다니. 그런데 진짜 다 죽이려고 그랬어?”
윤기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저라고 해도 그런 초법적인 지위는 없죠. 그냥 쇼였어요. 하지만, 그 쇼를 진짜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능력이죠.”
“으음……, 확실히. 난 진짜 네 팔 바라보면서 오금이 저렸어. 콜로세움의 로마 황제인 줄 알았다니까.”
말을 들은 윤기가 쇼의 진행자와 같은 포즈와 함께 외쳤다.
“지금까지 주연 최윤기였습니다!”
“너도 네 아빠 닮아서 진짜 유쾌하구나.”
“피는 못 속이는 법이죠.”
다시 웃음을 짓던 서종훈이 궁금한 것이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런데 너무 과하게 손을 쓴 것 아니야? 상대가 이대로 쉽게 물러날 것 같지는 않은데……. 뒤통수 밟힌 녀석 표정이 굉장했잖아.”
“아아, 일부러 그런 거예요. 쉽게 물러나지 말라고요.”
윤기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객실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윤기는 수화기를 집어 들고 잠시 뒤, 수화기의 아랫부분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서종훈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예상대로네요.”